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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화 〉일본여행 - 첫째 날 (3) (112/156)



〈 112화 〉일본여행 - 첫째 날 (3)

그대로 황거 안에 있는 황궁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고 나자 동생이 정말 옛날 건물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으면서도 현대적인 게 섞인 건물을 보며 물었어요.

“저기에 진짜 천황이 사는 거에요? 가족들도?”
“음…글쎄요? 그건  모르겠어요. 가족들은 학교에 다니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등교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지금 이 안에 있겠죠?”
“…물어볼까요?”

동생의 의문대로 정말 천황이 황궁 안에서 거주하는지 저도 궁금해져서 관광지에서 경비분들께 길을 묻거나 건물에 대해 물어보는 듯한 기분으로 천황궁 앞에 서 있는 나이가 드신 경비병 할아버지께 다가가서 일본어로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안녕하세요, 고생 많으시네요.”
“뭔가 용무라도 있으십니까…?”

그런데 질문을 하니 경비 할아버지는 굉장히 딱딱한 말투로 말하면서…뭔가 각이 져 있다고 해야 하나 로봇 같은 느낌으로 말하더니 탁, 탁 하고 소리가 나게 발을 구르며 제 쪽으로 돌아섰어요.
저는 조금 어색한 느낌을 받으면서 황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어요.

“혹시 저쪽에…진짜로 천황이 거주하는 건가요?”
“무례하긴! 손가락으로 어딜 가리키는 건가!”

그런데 갑자기 큰소리를 치며 제 손가락 앞을 손으로 막아서 저는 깜짝 놀랐고, 동생도 놀라 제 옆으로 다가와 저를 감싸 안으면서 할아버지를 경계하며 말했어요.

“뭐라는 거에요? 왜 저래요?”
“어? 그, 그게….”

그런 동생과 저를 가만히 바라보던 경비 할아버지는 인상을 써서 주름이 깊어진 얼굴로 저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동생과 저를 번갈아 보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어요.

“일본 분이 아니신가?”
“아, 네. 관광 중이에요.”
“…일본에서는 높으신 분을 말할  반드시 높여 말해야 하네. 그게 예의지. 아가씨에게 큰소리쳐서 미안했군. 요즘 젊은 놈들이 생각나서.”
“어? 아아….”

저는 경비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일본에는 압존법이 있다는 것과 제가 손가락으로 황거를 가리킨 것도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굉장히 무례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걸 떠나서 경비 할아버지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일일 테니 제가 잘못한 점도 분명히 있었고, 저는 동생에게 괜찮다고 저를 감싼 팔을 톡톡 두드리며 경비 할아버지에게 사과했어요.

“아뇨, 죄송해요 제가 일본어가 아직 익숙하지 못해서 틀렸네요.”
“한국분이신가? 어린 사모님이 예의가 정말 바르시군. 요즘은 확실히 일본 젊은이들보다 한국인들이  옛 예절을 잘 기억하고 있어. 참 큰일이야.”

…뭔가 갑자기 택시에 타서 기사님의 잡담을 들어주는  같은 기분이 되어서 저는 어색하게 웃으며 얘기를 들어드렸어요.

“젊은 부부에게 실례했구먼. 신혼여행인가?”
“네에?! 그, 그래 보여요…?”
“나이가 드니 보이는  있어서 말이야. 서로 보는 눈빛만 봐도 알지. 한국분인 것 같은데 좋은 생각이네. 한국에는 오랜 역사와 하늘의 기운이 남아있는 거처가 없으니, 이런 곳에서 기운을 받아가면 부부생활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아…네에….”

한국인으로선 그런 거처가 남아있지 않은 이유를 생각하면 굉장히 복잡한 말이었지만….
괜히 시간 낭비할 이유도 없고, 서로 마음 상할만한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다는 생각에 저는 그냥 덕담을 들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미안하구먼, 나이가 드니 느는  말주변뿐이어서…폐하께선 지금은 황거에 안 계시다네. 외출을 나가셨지.”
“어? 일하러 가신 건가요?”
“그런 건 외부인에게는 말할  없게 되어있네. 특히나 외국인에게는 말이야. 밤이 되면 머무시니 한번 기도라도 하고 가게나. 물에  던지지는 말고, 조용히 폐하께서 거주하시며 맺힌 기운이 좋은 영향을 끼치기를….”
“아, 네에! 감사해요. 기도드리고 갈게요. 고맙습니다~”

 있다가는 고생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저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뒷걸음질 쳤고, 경비 할아버지는 못내 아쉬운 듯하면서도 다시 제자리로 가서 동상처럼 경비를 계속해서 섰어요.
동생은 혼나는 듯하다가 갑자기 친절해지고 말이 많아지는 모습이 이해가 안됬는 지 계속 궁금해하다가…제가 도망치듯 벗어나 멀리까지 떨어지고 난 뒤 제게 물어봤어요.

“…. 뭐라는 거에요?”
“아…제가 천황님이라고 안하고 천황이라고 해서 화내셨어요.”
“…이 사람들한텐 천황인데 저희한텐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상대의 입장에서 높은 사람인지를 따져서 대화하는 예의가 있으니 아마도 그것 때문에 화낸게 아닐까요? 문화랑 예절은 나라마다 다른 거니까….”

도망치는 것처럼 걸어가면서 슬슬 해가  가고 있는 걸 본 저는 동생을 데리고 황거 밖으로 나가려는 생각에 출구를 향했어요.
사진 찍을 것도 다 찍었고…구경할 것도 본 데다, 이젠 슬슬 배가 고파서 저녁 식사를 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지도를 보며 대답해주자 동생은 문득 이상하다는 듯 물었어요.

“근데 그 얘기를 그렇게 길게 해요?”
“어? 아, 아니…다른 얘기도 해서….”
“부부랑 신혼여행 얘기는 뭐에요?”
“네? 그, 그건 어떻게 알아요…?”
“발음이 비슷해서 대충…? 갑자기 그 얘기는 왜 나온거였어요?”

동생과 제 사이를 오해해서 한 말이었지만…기분나쁘거나 하지는 않고 그저 조금 부끄러워하며 대답한 말을 동생이 꺼내자 저는 얼굴이 뜨거워지고 당황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얘기해줬어요.

“그게…그, 신혼부부…냐고, 신혼여행 왔냐고 물어본 거에요.”
“…아까 서양인들도 결혼 얘기 꺼내지 않았어요?”
“커, 커플로…보이나봐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뭔가 달라보이는걸까…생각하자 경비 할아버지가 말한 눈빛에서 느껴진다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른 저는 부끄러운 마음에 시선을 피했어요.
그러자 동생은 가만히 절 내려다보는 듯 싶더니, 갑자기 잡고 있던 손을 풀고 어깨 위에 올려 안으면서 정말 연인처럼 끌어안고 걸어가며 말했어요.

“키스하고 싶다.”
“네, 네에…?”
“키스할 곳 없나….”
“네?!”

…정말로 동생은 저녁 식사로 찾아둔 유명한 라멘집까지 가면서 계속해서 골목길을 두리번거렸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람이 가득한 도쿄 시내에는 숨을만한 곳이 보이지 않아서 아무 일 없이 조금 이른 저녁 시간에 라멘집에 도착하게 되었어요.
일본어로 검색해서 찾아낸 관광객이 많이 가지 않고 현지인들이 가는 라멘 맛집을 찾아간 저는 식권을 뽑아 기다려서 동생과 함께 라멘을 먹었어요.
저는 미소라멘에 숙주를 잔뜩 올려서, 동생은 챠슈와 마늘, 아스파라거스를 얹어서 주문했고, 가만히 앉아서 동생과 기다리고 있자 아직 이른 시간인지 조금 여유가 있었던 사장님이 라멘을  주면서 말을 걸어왔어요.

“신혼부부세요?”
“네에?! 어?”

저는 오늘 벌써 몇 번째 듣는 건지 모를 말에 깜짝 놀랐고, 동생은 그새 신혼부부라는 일본어 단어를 외워서 가만히 저를 보며 신혼부부…하고 작게 말하고 있었어요.
저는 얼굴이 빨개져서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사장님에게 일본어로 물어봤어요.

“저기…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배낭 매고 있는것도 그렇고, 여행객이시죠? 장사를 제가 몇 년을 했는데…아우라만 봐도 알죠.”
“아우라요…?”
“기운이랄까…흐음~! 뭐, 라멘에 올리는 것부터 조금 아~오늘  힘이 필요하시구나 하는 것도 있고…어라? 남편분은 외모만 봐도 혹시 외국분 아니면 혼혈이실까 했는데…일본어를  하시는 건가?”
“앗, 네에…일본어는 저만 해요.”
“몸이 엄~청 좋네요. 저도 운동하지만, 격투기 선수 하시나? 이야…행복하시겠어요. 여기, 이건 내 선물입니다. 부인이 너무 예쁘셔서 드리는 서비스~”

동생과 저를 신혼부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장님은 제 반응을 보고 맞췄다고 생각한 건지 기분 좋아하시며 반숙 계란을 서비스해줬어요.
그리고는 갑자기 고개를 확 숙여서 동생이 일본어를  알아듣는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몰래 말하는 것처럼, 그런데도 전혀 숨길 마음이 없는지 조금 큰 소리로 말했어요.

“계란이 밤에 참 좋아요~나 신혼  생각도 나고 부인이 너무 예뻐서 힘내라고 드리는 거예요. 남편분이 정말 힘이 세 보이니까….”
“어? 그, 그게….”
“남편분한테도 죽순 좀 더 올려 드릴게. 죽순도 남자한테 좋아요~대신   가게에서 사진 좀 찍고  인터넷 홍보 그런   해줘요. 광고 효과 좋을 것 같아.”
“고, 고맙습니다….”

저는 얼굴이 빨개져서 아우라…아우라가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문득 또다시 경비 할아버지가 말한 서로 사랑하는  느껴지는 눈빛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티 나는 걸까?! 하고 진짜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동생을 힐끔거리다가도 시선을 못 마주치니 사장님은 웃으면서 다른 손님에게 갔고, 동생은 궁금한데 계속 기다렸는지 라멘 위에 갑자기 더 얹어진 아스파라거스와 마늘을 국물에 적셔 집어먹으면서 말했어요.

“신혼부부 같대요?”
“네, 네에…시, 신기하네요….”
“흐흠….”

…왠지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어요.
라멘이 불기 전에 맛있게 먹고 나서 가게 주인이 부탁한 대로 동생과 저는 가게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사장님이 갑자기 다가와서 찍어주겠다고 말하며 전부 마신 라멘 그릇을 들고 있는 사진을 찍어줬고, 동생은 가게 밖으로 나오자마자…그새 해가 져서 어두워진 거리를 보더니 주변을 살펴보고 갑자기 절 끌어안았어요.
그대로 키스하려고 해서 저는 깜짝 놀라 입가를 가리며 말했어요.

“아, 안돼요….”
“왜요?”
“길이잖아요….”
“신혼부부인데 뭐 어때서.”
“라, 라멘 냄새나요!”
“저도 방금 먹었는데요 뭐.”
“진짜 안돼요…저 부끄러워서 죽어요!”

정말 제가 그것만은 용서해 달라는  필사적으로 말하자 동생은 아쉬워하면서 품에서 놔줬고, 저는 뭔가 동생이 생일날 이후로 굉장히 여유롭고 능글맞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왠지…필사적으로 쫓던 사냥감을 입에 물고 가지고 노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신혼부부라는 말을 들어도 전혀 부끄러워하는 것도 없고 오히려 무척 기분 좋아하는  같아서…정말 부끄러움은 제 몫이었어요.

동생과 저는 소화를 시킬 겸 쭈욱 걸어서 도쿄 시내를 구경했고, 점점 위쪽의 아키하바라 쪽으로 걸어갔어요.
횡단보도를 지나기 전에 사진을 찍기도 하고…길거리를 지나가다 타코야키를 파는 걸 보고 같이 사 먹기도 하고, 야키소바도 먹고…일본 음식중에 대표적인 건 하루 만에 다 먹어버린 것 같았어요.
그렇게 도쿄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아키하바라까지 도착하자, 동생은 고개를 젖힌  주변에 가득한 만화 그림들을 보면서 입을 벌렸어요.

“…여긴 왜 온거에요?”
“오늘은 이쪽에서 잘 거예요. 그리고 내일 아침은~저쪽에 유명한 규동 가게에서 규동 먹을거고….”

이번 여행 계획은 동생에게 전혀 말해주지 않고, 조금은 깜짝 선물처럼 계획하고 있는 탓에 동생은 제가 가는 곳으로 따라오기만 해서 앞으로 어딜 갈지 잘 모르고 있었어요.
그 탓에 만화 그림들이 가득한 건물들을 보면서 동생은 정말로 놀란 것 같았고, 밤이 깊어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보며 동생은 정말 정신이 없는 것처럼 기운없이 말했어요.

“…여기 진짜 일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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