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1화 〉일본여행 - 첫째 날 (2) (111/156)



〈 111화 〉일본여행 - 첫째 날 (2)

저는 혹시 말실수를  건가 싶어 동생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있었고, 잠시 후 갈아타기 위해 내려야 하는 역에 도착한다는 소리가 들릴  동생에게 얘기해줬어요.
전철에서 탈출한 뒤 동생과 저는 방금 내린 곳으로 오는 다른 전철을 타고 도쿄로 가는 노선으로 갈아탔어요.

“지금 오는 차는 아니고…다음 거에요.”
“같은 장소에 다른 차가 와요?”
“네, 그래서 방송을 잘 들어주고 안내판을 잘 봐 줘야 해요.”
“너무 복잡한 거 아니에요?”
“잘못 타게 되는 일이 그래서 종종 있어요. 아, 일본 드라마 보면 가끔 그런 장면 나오잖아요? 전철 잘못 타는 거.”
“…이러면 잘못 탈 수밖에 없겠네요.”

일본 드라마 같은 곳에 나오는 회사에 지각해서 전차를 잘못 타서 늦었습니다 하는 건 일본에서는 의외로 정말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어요. 급하게 타면 실수하기  쉽기도 했고요.
동생과 저는 다음에 오는 전철을 타고 도쿄역으로 향했고, 또다시 사람이 가득 차게 된 전철 안에서 동생이 사람들한테 부딪히지 않도록 저를 벽면에 대고 양팔로 가둬 주변에서 오는 사람들을 막아줬어요.

“아까는 누나가 왜 그런 생각 했나 했는데, 매번 전철이 이러면…진짜 치한 있을  같네요.”
“음…일본에선 되게 흔한 범죄이기도 했나 봐요.”

동생은 주변 사람들이 자꾸 제게 부딪히는 게 신경 쓰이는지 조금 신경이 곤두서 보였고, 저는 보호받는 것처럼 동생의 품 안에 안겨서 전철을 타고 있는 게 조금 부끄러워서  손을 모으고 가만히 서 있었어요.

“누나는 그러면 갈 때 일부러 아헤가오 하는 거예요?”

그런데 동생은 조용히 전철 밖의 낮은 빌딩들이 가득한 일본 특유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다가 문득 의문인  작게 속삭이며 물었고, 저는 얼굴이 뜨거워져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어요.

“아헤가오 아니에요…그런 표정은 안 해요. 그냥 혀만 살짝 내밀게 되었다는 얘기고…아아아아…제가 왜  얘기 해준거죠…? 이, 잊어주세요….”
“일부러 야해 보이려고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느껴서 정신 차리고 보면 침 흘리고 있을 때 얼마나 창피한데요…고치고 싶은데  고쳐지는 거에요.”
“근데 너무 느낄 때만 그러는 버릇이 아니지 않아요? 그냥 매번 그러던데.”
“그, 그거언…하아아…진짜, 지금 놀리는 거죠…?”

저는 약 올리는 듯 신난 목소리를 듣고 동생의 얼굴을 올려다봤다가, 굉장히 장난 궂은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고 동생이 저를 일부러 놀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동생은 그런 저를 보며 씨익 웃더니 다시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호텔에서 봐요.”
“어? 호텔….”

저는 동생의 말을 듣고 굉장히 당황했어요.
동생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호텔에 가면 밤에 괴롭힐 거라는 말이라는 걸 이해해서 오히려  동생의 눈치를 보게 되었어요.

“아까…괜히 입으로 해준다고   아닌데….”
“네?”
“이, 이런 얘기는 이제 그만 해야 해요. 한국사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중국어로 할까요?”
“중국어로는 야한 얘기 하는 거 아니에요.”

동생은  단호한 말을 듣고 잠시 곱씹어보더니 아, 하면서 말을 멈춰줬어요.
저와 동생은 그대로 전철 안에 서서 조용히 가게 되었고, 말없이 서로 마주 잡은 손을 꼼지락대며 장난쳤어요.
얼마 되지 않아 도쿄 역까지 도착할  있었고, 저는 동생에게 이제 곧 내릴 역이라는 걸 말해줬어요.

“여기에서 내려요.”

동생은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가 역에 도착하자마자 내렸고, 전철 안에 꽉 차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며 파도에 떠밀리듯 인파에 휩쓸리자 동생이 서로 잡고 있던 손을 꽉 잡으며 끌어당겨 품에 안아줬어요.
그대로 정말 주변 사람들이 밀치는 힘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처럼 그대로 멈춰서…파도치는 곳에 바위가 우뚝 서 있는 것처럼 가만히 버티고 있던 동생은 조금 인파가 덜해지자 상태를 확인하듯 저를 한번 내려다보더니 주변을 보면서 정말 짜증  얼굴로 말했어요.

“여기 예의 바른 나라라고 하지 않았어요? 무슨 멧돼지도 아니고….”
“일본 지옥철은 굉장히 유명하니까요…신주쿠 역은 그중에서도 제일 악명높은 곳이에요.”
“그런 거 상관 없이…이건 너무하죠. 누나 혼자 올 때도 이랬어요?”
“으음…두번인가 길을 잃긴 했어요.”

저는 꼭 주변에서 지켜주는 것처럼 가만히 안겨있던 탓에 심장이 멋대로 쿵쾅쿵쾅 뛰어서 정말 동생을 힐끔 봤다가 괜히 옆을 봤다가, 다시 힐끔 하고 다시 옆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어요.
전철에서 내리고 주변 사람들이 조금 없어져 한적해지자 동생은 저를 품에서 놓아주고 갑갑한 듯 기지개를 켜며 말했어요.

“뭔가…좁아.”
“그렇게 좁아요?”
“누나는 모를텐데…뭔가 그 묘한 느낌이 있어요. 음…전철 타고 내릴 때마다 고개 약간 숙이는 것도 불편하고.”

저는 오히려 일본에 오면 모든 것이 제 사이즈에 딱 맞춰진 느낌이라 좋았지만, 동생은 반대인 듯싶었어요.
키가 평균에서 아주 약간 작은 정도인 저와 다르게 남동생은 남자들 중에서도 특출나게  편이었고, 제 머리가 동생의 가슴에 오는 정도인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어요.
저는 그대로 동생하고 서로 잡은 손을 꼬옥 잡으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 안으로 들어섰고, 다시 사람이 가득한 곳으로 오자 동생은 어지러운  남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어요.

“어디로 가야 돼요?”
“아…잠깐만요, 일단 여기로…그리고 저기 쭉 보이는 데에서 오른쪽으로 간 다음에….”

저는 서로 손을 잡고 벽 쪽으로 너무 붙지 않도록 하며 천장에 매달려있는 표지판을 읽으면서 동생을 끌고 갔어요.

“여기, 여기, 이쪽으로…앗, 저쪽이에요. 여기로 와서…그리고…저기로 가면 출구에요!”
“…여기 구조가 왜 이래요?”
“좀 이상하죠…?”
“중국은 그냥 왜 이렇게 불필요하게 지었지 싶었는데, 여긴 그냥 미로 같아요.”
“후후, 신기하죠?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일단은 땅이나 교통이 달라서 그래요.”
“그냥 못 지은  아니고요?”
“중국은 지하철에서 내리면  대여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야 목적지에 도착할 정도로 역과 역 사이의 구간이 굉장히 길잖아요? 그래도 한국은 한 지역 안에서 압축하듯 아주 짧은 구간마다 역이 있어서…역 하나 정도 사이는 걸어갈 수도 있고요. 일본은 온 나라가 전철로 이어져 있으니까, 구간이 이렇게 많이 겹치는 곳은 복잡한 거예요.”
“그런데 한국은 왜 깔끔해요?”
“한국도 옛날에 지어진 복잡한 역은 복잡하기도 한데…글쎄요, 일본은 전철이 생긴 지 오래되어서 점점 선로가 많아진 탓에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중국은 도시개발을 너무 급하게 한 후에 지하철을 만드느라 지하에 있는 여러 시설을 피하느라 길이 이상해 진 느낌이에요. 한국은 적당한 시기에 지어진 게 아닐까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는 만큼 최대한 얘기해주자 동생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여줬어요.
도쿄에 도착한 뒤 동생은 여전히 많은 인파 속에서 손을 잡으며 역 밖으로 따라 나왔고, 저는 저보다 훨씬 큰 동생의 손을 잡고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처럼 끌고 다니자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면서도 신나서 기분이 좋아졌어요.

도쿄역에 도착한 뒤 동생과 가장 먼저  곳은 일본의 황거였어요.
천황이 거주한다 해서 황거라고 부르는 곳이었고, 천황이 사는 궁은 열어주지 않지만 커다란 공원처럼 되어있는 내부의 정원은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있었어요.
동생은 황거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둘러싼 해자를 보며 말했어요.

“이거 중국에도 있었죠?”
“원래는 한국에도 있었을 거에요. 이렇게 성 주변을 파서 물을 넣어둔 걸 해자라고 하는데…옛날부터 침입을 막는 용도로 쓰였어요. 서양 쪽으로 가도 있어요.”
“아, 저기 백조 있다.”
“앗, 진짜다. 오리도 있어요.”

자세히 보니 해자 안에는 물고기도 살고 여러 새도 와서 놀고 있었어요.
동생은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황거 안으로 커다란 문을 지나 들어가서 정원에서 사진을 찍어주다가 말했어요.

“…중국에는 해자 안에 아무것도 안 살지 않았어요?”
“앗!”

그러고 보면 동생을 데리고 자금성에 들어가지는 않고 근처를 지나갈 때 아무것도 못 보긴 했어요.
하지만 낚시를 하는 할아버지들도 있었던 게 생각난 저는 정말 잠깐이지만 동생의 말대로 아무것도 살지 않았다고 생각한 게 웃겨서 웃으며 대답했어요.

“뭔가 살긴 살 거예요!”
“살겠죠…?”

황거 안에는 무척 오래된 나무들이나 정원이 많아서 일본 특유의 정원도 구경하기 좋았지만, 사진을 찍기에도 좋았어요.
주변에는 중국인과 한국인 관광객들도 꽤 많았고, 서양인들도 많이 보였어요.
일본은 나무를 조금 비틀어지게 키우는 걸 좋아하는 듯 굉장히 오묘한 모양의 나무들이 많았고, 특히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자갈 마당에 그려진 문양들이 묘한 매력을 느끼게 했어요.

“오, 일본 사람이에요?”
“아뇨, 한국 사람이에요. 관광 왔어요.”
“아하…와우,  사람? 당신의 남자친구인가요?”

정원에서 동생하고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에 저는 셋이서 여행을 하는 거로 보이는 금발의 서양인 여자분에게 사진을 부탁했다가 조금 난감한 질문을 받았어요.
그러자 동생은 가만히 제 뒤로 다가오더니 끌어안고는 웃으면서 키스했고, 조금 서툰 영어로 대답했어요.

“예, 커플이에요.”
“오, 커플…? 언제 결혼해? 혹시 신혼여행이야?”
“…뭐라고 하는 거예요?”
“여, 영어로는…그러니까…커플이라고 하면, 연애하고 굉장히 오래된 사이라는 느낌의 말이라서…겨, 결혼 하냐고….”

동생은 제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서툰 영어로 끊으며 말했어요.

“we, very, hot, now.”
“여, 영어 그렇게 쓰는 거 아니에요….”

hot 이라는건 굉장히 성적으로 매력을 느끼거나, 성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얘기였지만 동생은 전혀 모르고 말한  같았어요.
저는 동생의 영어가 부끄러웠지만, 세 명의 서양 여자분들은 굉장히 재미있어 했어요.
세 사람은 정말 크게 웃으면서 동생이 한 말이 귀여운 듯 따라 말하더니 이젠 꽃이  져버린 커다란 벚나무를 배경으로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 저를 동생이 끌어안는 사진을  장이나 찍고 핸드폰을 돌려주면서 말했어요.

“와우…근데  남자친구 진짜 섹시하다. 아시안이 아니고 혼혈이야 혹시?”
“너도 비율이 조금 혼혈 같긴 해…혹시 혼혈 커플?”
“아이돌이야? 아니면 모델?  인스타 팔로우 하고 싶어.”
“뭐라는 거에요?”
“…이제 통역  해줄 거예요.”

저와 동생은 따로 여행을 다니고 있는 세 사람과 악수를 하며 인사했고, 방금 찍은 사진을 꼭 SNS에 올려달라며, 그럼 찾아서 팔로우 하겠다는 말을 들으며 멀어졌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