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입학시험 (7)
“사랑하면 예뻐진다잖아. 이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과학적인 거다? 논문 보내줄까?”
“아니…제, 제가 뭘요?”
“아, 미안. 네가 아니라 친구 얘기였지? 아니다.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도 사랑이긴 하니까…가족애도 여성호르몬을 분비시킬 수 있을까? 음…아무튼 뭐…가족애로 예뻐진 건 아닌 것 같지만 말이야.”
저는 선배가 제 얼굴 밑의 목 주변을 힐끔거리며 한 말에 깜짝 놀라며 더위를 잊을 정도로 등골이 오싹해졌어요.
마음에 드는 선배면서도 정말 묘하게 거리감을 두고 싶었던 이유는 이런 이유에서였어요.
선배의 말대로 선배는 굉장히 이상한 곳에서 감이 좋았고…비밀을 쉽게 털어놓게 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어요.
저는 한층 경계하면서도 경계하는 티가 나지 않게 하려 하며 선배에게 대답했어요.
“어떤 점이 예뻐졌다는 거에요 대체?”
“…다.”
“네?”
“전부다. 대학 때 만났으면 나도 고백했겠다. 어휴, 역시 서큐버스 답다.”
“서큐버스요?”
“아, 여왕님이란 별명밖에 모르지 넌? 신경 쓰지 마. 남자애들 저질 농담이니까.”
선배는 그렇게 말했지만 묘하게 신경 쓰였어요. 서큐버스라니…대체 무슨 말인지 처음 들어보는 단어는 아닌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질 않았어요.
그게 무슨 뜻이더라…하고 고민하고 있자 선배는 따로 가져왔던 포크로 케이크를 잘라 제 쪽으로 내밀어 줬어요.
“뭐, 내가 2차원이 좋다는 것도 다 이유가 있지.”
“대화가 조금 뜬금없지 않아요?”
“먹으면서 한번 들어봐. 2차원이 좋다는 말은 사실 현실적인 문제나 단점, 장애물들을 신경 쓰지 않고 단순하게 좋아할 수 있는 상대를 원한다는 거거든. 현실에서는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장애가 생기는 일이 많으니까 말이야.”
저는 선배의 말을 들으며 묘한 기분이 되어서 잘라준 케이크를 먹었고…역시 여러 카페에서 같은 걸 사용하는 중국의 공장제 케이크는 언제 어디서 먹어도 맛이 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들었어요.
“뭐 그냥 연애도 장애물이 많으면 헤어지는데 불가능한 수준이면 얼마나 고민이 많겠냐.”
“…그렇죠.”
“논리적이게 생각하면 정말 불가능하다면 헤어지는 게 맞다고 봐. 시작도 안 한 거면 차라리 잘됐고. 힘들게 뻔히 보이는데 뭐 하려 해?”
저는 대답 없이 조용히 수박 주스를 마시면서 일부러 해를 올려다봤어요. 눈살이 찌푸려지고, 조금 속상하고 기분 나빠지는 감정을 숨기기 편해진 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선배의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도 친구한테는 해보라고 해.”
“…네?”
그런데 선배는 갑자기 조금 전에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반박하는 말을 꺼냈어요.
저는 황당해서 주스를 마시다 말고 고개를 돌려 선배 쪽을 봤고, 선배는 제게는 관심도 없는 것처럼 어느새 꺼낸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얘기했어요.
“안 해봤는데 불가능한지 아니면 가능성이 조금은 있는지 어떻게 아냐? 너 프로그래밍 수업 기억나냐? Arduino 만들었었지?”
“네….”
“그거 코드 다 짜두고 돌리면 잘 썼는데 안 돌아갈 때도 있고, 절대 안 돌아갈 것 같은 데 돌아가기도 하지?”
중국은 앞으로 모든 학문에 공업이 포함될 것이라고 정책으로서 공학 특성화를 내세우고 있었고, 제가 나온 대학 과정에도 공학 수업이 전공에 상관없이 졸업 필수과정으로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 탓에 들었던 수업을 예로 들며 하는 말에 저는 조금 멍해져서 가만히 말을 듣게 되었어요.
“왜 그러겠어? 경험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 그렇지? 좀 더 알고 나면 그제야 좀 보이고, 또 어려운 거 쓰려고 하면 똑같이 실행해 보기 전엔 될지 안 될지 모르잖아.”
“…그렇죠?”
“너…아니, 그 친구 연애 경험은 있대? 많아?”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선배는 그런 제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았다는 것처럼 정말 아무 문제도 아닌 듯한 일을 얘기하듯 담담하게 말했어요.
“해보지도 않았는데 불가능한지 어떤지 어떻게 알아? 한번 해보고, 불가능해 보이면 로미오와 줄리엣 하라고 해.”
“…다 무시하고 둘이 도망치라고요?”
“정말 좋으면 그래야지. 정말 얘가 아니면 아무도 못 만나 싶을 정도로 좋으면 말이야. 그건 뭐 알아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고.”
저는 정말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만난 데다, 별생각 없이 꺼낸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준 선배의 답을 듣고 머릿속이 개운해지기보다는…굉장히 공허해졌어요.
공허하다기보다는 허무함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간단하게 대답해 버리니 정말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어서 단순하게 생각됐어요.
멍하니 고민하는 제 옆에서 선배는 말없이 게임을 하고 있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새 입학시험 시간이 다 끝날 시간이 되었어요.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테이블을 치웠고, 저도 같이 일어나며 건물 앞으로 가다가 저를 배웅해주고 여동생이 시험을 친 건물로 향하려는 선배에게 인사했어요.
“오늘 고마워요. 잘 가고 다음에 또 봐요.”
“나한테 고마울 게 뭐있어? 네가 그 친구도 아니면서.”
“후후후, 선배는 여자친구 왜 안 사귀나 모르겠네요.”
“…솔직하게 말해주면 연애라는 이름의 멘탈케어에 질렸어. 날 치유해주는 건 쿄코쨩 뿐이야….”
“…진심으로 하는 얘기는 아니죠?”
“반쯤은 진심이야. 그럼…동생 맛있는 것 좀 해줘. 내 동생 때문에 피곤할텐데…나중에 내가 돈 줄 테니까….”
그 말을 하면서 선배는 왠지 쓸쓸한 모습으로 멀어져가며 중얼거렸어요.
“근데 왜 이렇게 갑자기 오싹하지….”
잠시 후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 시험을 마친 동생이 건물 밖으로 나와서 저는 활짝 웃으며 정말 고생했을 동생에게 다가갔어요.
그런데 동생은…왠지 시험이 끝났는데도 기뻐 보이는 표정이 아니라, 굉장히 기분나빠하고…짜증이 나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어서, 저는 다가갈수록 점점 웃던 얼굴이 굳어서…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왜, 왜 그래요…? 혹시…시험 칠 때 무슨 문제 있었어요?”
그러자 동생은…굉장히 날카로운 눈으로 절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정말로 화가 났을 때만 들었던,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듯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 사람 왜 또 왔어요?”
“어?”
“같이 있었잖아요. 시험장 창문으로 다 보였어요.”
저는 동생의 말에…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괜히 깜짝 놀라고 피가 차갑게 식는 것처럼 오싹해져서, 부르르 떨며 얼굴이 창백해졌어요.
딱히 잘못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전혀 긴장할 일이 아닌데도 동생의 말은 묘하게 날이 서 있어서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어요.
“시험치면서 그거 본 거에요…?”
“다 치고 나서요.”
“동생 때문에 왔다는데…어제도 봤잖아요.”
“동생?”
저는 정말로 별일 아니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한 말이었는데…동생은 오히려 더 표정이 안 좋아져서 이를 물고 있는 게 사납게 보일 정도로 이가 드러났어요.
“걔는 다른 건물에서 시험치잖아요.”
정말로…그냥 말을 하는 건데 이상할 정도로 무서운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거부감이 들고 공포스럽기보다는 집에 기르는 커다란 개가 낯선 사람을 보고 이를 드러내며 위협하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선배가 늑대인간 같다고 한 말이 떠올라서 여름이라는 걸 잊을 정도로 서늘한 느낌에 오들오들 떨다가 갑자기 풉 하고 웃었어요.
“왜 웃어요.”
“그냥…뭔가 귀여워서요.”
그런데 제 말을 들은 동생은 사나워 보이던 얼굴이 굳어있다가…갑자기 기가 죽은 것처럼, 속상한 것처럼 표정이 안 좋아졌어요.
슬퍼하는 듯한 표정에 깜짝 놀란 저는 동생을 가만히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는데, 동생은 갑자기 제게서 휙 뒤돌더니 멋대로 한숨을 쉬며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어? 왜, 왜 그래요?”
“…가요, 그냥.”
저는 놀라서 동생의 눈치를 살피며 뒤를 쫓아갔어요.
그런데 동생은 평소보다 훨씬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갔고, 저는 자꾸만 뒤처졌어요.
동생의 다리를 본 저는 전혀 빠르다고 할 수는 없는 그냥 평범하게 걷는 거로 보이는 보폭에 문득 동생이 평소에는 절 배려해서 작은 보폭으로 천천히 걸어 주고 있었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저 따라가는 것만으로 점점 조금 숨이 흐트러진 저는 동생을 쫓아가느라 정신이 없었고, 동생은 대학의 중앙 도로가 있는 광장을 지나서 대학 정문 입구로 이어지는 정원이 조성된 잔디밭을 걸어갔어요.
“가, 같이 가요….”
해가 중천에 떠서 다들 햇빛을 피해 건물 안으로, 그늘 밑으로 들어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길가의 나무 그늘 밑을 지날 때쯤 결국 숨이 차게 된 저는 동생을 불러세웠고, 동생은 제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멈춰 서서 저를 돌아봤어요.
그리고 가만히…불만이 가득한지 입을 다물고 있다가, 어리둥절하며 동생을 올려다보고 있는 제 이마에 살짝 맺힌 땀을 닦아주며 길게 한숨을 쉬더니, 입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으며 망설이다가 말했어요.
“…전 누나는 싫어요.”
“어?”
저는 상상도 하지 못한 말에 깜짝 놀라며 정말 충격받아서 가슴 안쪽이 철렁 내려앉았고, 갑자기 숨이 콱하고 막혔어요.
잠깐 사이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뱃속이 꼬이는 것 같고 폐가 굳은 것처럼 숨이 안 쉬어지고, 턱에 힘이 풀렸어요.
눈물이 확 맺히고, 코가 아프고…저도 모르게 동생의 옷깃을 잡으며 매달리자, 동생은 갑자기 깜짝 놀라며 말을 고쳤어요.
“아, 아니…누나인 게 싫어요.”
“그, 그게 무슨 얘기에요?”
동생은 표정이 안 좋아지더니…그대로 저를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제 어깨를 잡았어요.
그리고 몇 번이나…입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던 동생은…정말로, 참고 참아 온 걸 얘기하는 것처럼 속에서 억누른 것이 새어 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정말로…나랑은 아무도 몰래, 둘만 있을 때 만이라도…연애 연습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안 돼요?”
“어…?”
저는 동생의 말을 듣고…오히려 깜짝 놀라서 당황해서 되물었어요.
“…왜 안 돼요?”
“네…?”
“네?”
그대로 동생과 저 둘 다 어리둥절해져서, 이상한 소리를 냈어요.
동생의 질문은 제겐 굉장히 당황스러웠어요.
이미 생일부터…둘만 있을 때에는 조금이지만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부끄러워서 말하진 않았지만, 머리를 올려달라고 한 것 자체가 그런 의미였어요.
해도 괜찮아요 하고…둘만 있을 때는 여자친구처럼 대하고 연습…해도 괜찮다는 의미였는데.
동생은 왠지…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은 질문을 해왔어요.
“둘만 있을 때는, 괜찮아요.”
“어?”
“이미…허락해줬잖아요.”
“어, 언제요?”
저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돼서 멍한 상태로 생일에 있던 일을 동생에게 얘기해줬어요.
“생일때…그, 좋다고…했잖아요.”
“아무 말 없이 그냥 넘어갔잖아요….”
“머, 머리 올려줬잖아요.”
“…그게 왜요?”
“으, 으으으….”
저는 동생의 반응을 보고 너무 당황스럽고…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졌어요.
저 혼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동생은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는 생각에 굉장히 혼란스러워졌고, 지금까지 시험 전이라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하루에 한 번만 하겠다고 한 것도 어쩌면 그 이유에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건 좋은 생각이었고, 저도 잘했다고 생각하지만…그게 정말로 저랑 동생이 이후 안 좋게 되지 않게 하려고 참아준 게 아니고 그냥 단순히 서로 오해가 생겨서 참은 거라고 생각하니…충격적이면서도 부끄러워서 머리가 어지러워졌어요.
“그, 그래서…대학 합격하면…세, 섹스…해도 좋다고 했잖아요.”
“어?”
“몰라요! 아아아아아…몰라아…창피해…나 혼자….”
“어? 어? 어, 언제요? 그게 그래서였어요? 언제부턴 데요?!”
저는 지금까지 뭔가 착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정말 어딘가로 숨고 싶어져서 도망치려 했는데, 동생이 곧바로 제 손목을 잡아 못 가게 하며 물어봤어요.
얼굴도 가리지 못하게 하면서 동생이 집요하게 물어보자 저는 고개를 잔뜩 젓다가…너무 부끄러워서 울먹이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머, 머리…올려 달라고 했잖아요.”
“그게 대체 왜요?”
“아아아아아아…마, 말 못해요…제 입으로는 진짜 안돼요.”
“머리? 머리가 왜요?! 머리 올린 게 왜?!”
“몰라요!”
저는 정말로 머릿속이 복잡해졌어요.
지금껏 그래서…저 나름 각오도 하고 고민도 하고 있었는데 동생은 전혀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니…섹스 얘기를 할 때도…진지하게 대답해 줘서 당연히 그런 건 줄 알았는데….
바보 같은 얘기지만 연습이라고 말은 해도…좋아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좋아하는 데 동생이니까 어쩔 수 없이 연습만 한다는 느낌이었고, 사실 그것도 저 혼자 생각하고 있던 것 뿐이라는 게 밝혀지고 나니 정말 부끄러워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어요.
그런데 동생은 제가 부끄러워서 가만히 있자…제 두 손을 잡은 채 끌어당기면서 점점 얼굴을 가까이했어요.
그리고 평소의 날카로운 느낌이 아니라…정말로 저보다 어리다는 게 확 느껴지는 잔뜩 긴장해서 붉어진 얼굴로 정말 필사적으로 용기를 내는 것처럼 눈을 크게 뜨며 말했어요.
“그, 그러면…지금 다시 물어볼게요.”
“…네?”
“평소엔 누나로 대해줄 테니까, 남들한테는 비밀로 할테니까…둘만 있을 때는 내 여자친구 할래요…?”
“어, 어?”
동생의 말을 들은 저는 얼굴이 순식간에 뜨거워졌어요.
하지만…별로 망설이진 않았어요.
이미 저는 생일부터 동생과 그런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자꾸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말없이 가만히 있다가…오히려 동생에게 되물었어요.
“…그걸로, 정말로…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