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입학시험 (4) [내용수정]
“무슨 일이라뇨. 정말로 그냥 대학에 와서 인사드리러 온 거에요.”
“올해 내가 유학생 시험 담당 중 한 명인데 말이야. 너는 내가 진짜 예뻐하니까 그냥 오라고 한 거야. 원래는 졸업생이라고 해도 유학생 이렇게 부르면 안 돼. 중국인도 함부로 못 만나. 넌 교수들이 다들 좋아하고 자주 인사 오니 뭐...다들 눈감아 주겠지만.”
저는 교수님의 말에 움찔 떨었고, 교수님은 방금까지 연구생들 앞에서 보이던 사람 좋은 얼굴이 점점 날카롭게 변하면서...조금 짜증 난 듯한 얼굴이 되었어요.
“커피가 아니라 과일주스를 줄 정도로 예의 있는 애가, 다음날 시험 감독 중 한 명인 교수한테 인사하러 오는게...너무 급해 보이지 않나? 왜 그리 급해?”
“...정말로 그런 거 아니에요.”
“과일주스도 다 마셨잖아? 이거 값이라고 생각하고 듣지. 그래...그냥 대학에 와서 인사드리러 왔다고? 그럼 대학에는 무슨 일로 왔나?”
“그건….”
“나 지금 투자 엄청 받은 연구 하고 있어서 여기 받은 거야. 이 연구실은 문 닫고 나가면 저절로 잠겨. 내가 너 오니까 그냥 열어두라고 한 거야.”
“하아아….”
저는 결국 교수님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집다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어요.
“...남동생이 올해 입학해요.”
“오, 남동생! 음? 자네 혼자라면서? 자네 닮았으면 귀엽게 생겼겠군.”
“조금 복잡한 사정이 있어요.”
동생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던 저는 귀여운가…? 하고 고민했어요. 확실히...평소 모습은 귀여운 거랑은 전혀 거리가 멀지만, 가끔 보면 귀여운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원하는게 뭐야? 점수 올려줘? 이거 녹음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아니...그런건 괜찮아요. 녹음 안 해요! 다른 건 아니고….”
저는 정말 이런 부탁도 하기 싫었고, 이런 얘기가 예민한 얘기라는 건 알지만...동생에게 혹시 피해가 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굉장히 망설이다가 말했어요.
“부정입학 하는 애들한테 밀려나지만 않게 해주세요.”
“오호…흐흐흐....”
정말 아쉬운 얘기고 안타까운 얘기지만...아무리 서로 간 감시가 심한 대학이라고 해도 부정입학을 하는 방법은 있었고, 들키지 않고 몰래 돈을 받는 교수님도 계셨어요.
대학에서는 과마다 받는 학생의 수를 제한하고 있었고, 정말 특별한 경우에만 제 3지망이라는 형식으로 대학이 맘대로 전공을 선택해서 넣어주는 대신 입학은 시켜주는 정도였어요.
시험 점수가 합격 커트라인을 넘겨도 이미 학생이 꽉 차 버리면 그대로 불합격이 되게 되어있었고, 그 과정에서, 그 아슬아슬한 선에 있는 학생 중에는...부정입학으로 점수가 올려진 학생에게 밀려나 떨어지게 되는 애들도 있었어요.
보통은 알지 못하는 일들이었지만, 몇 년 전 부정입학을 시키던 교수님이 퇴직당하면서 대학 내의 학생들, 특히 유학생들 사이에서 이러한 일에 대한 자세한 사정이 소문으로 돌았고, 저는 그 얘기를 굉장히 자세하게 듣게 된 학생에 속했어요.
교수님은 제 부탁을 듣자 손으로 턱을 긁으며 조금 음흉하게 웃더니 남은 커피를 들어 마시며 말했어요.
“난 자네가 이게 마음에 들어. 아쉽구먼. 입학시켜 달라고 했으면 연구생 시켜버리려고 했는데.”
“고민 중이라니까요….”
“아니면 딱 2년만 따로 개별 고용해주는 건 어때? 성과 봐서 논문에 이름도 넣어줄게.”
“지금 하고 있는 연구가 뭔데요?”
“탄소 반도체 초임계 전 공정 제조장비 연구.”
“저기, 이름만 들어도 거부감 드는데요.”
“너 번역 잘하잖아. 자료조사랑 번역이랑 높은 사람들 인사할 때 조교로 따라오기만 해.”
“죄송하지만 거절할게요.”
“아쉽구먼.”
저는 앞서 나간 연구생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단호하게 거절했어요.
그러자 교수님은 서랍을 열더니, 제 기억이 맞는다면 굉장히 아끼시는...찻잔 한 잔에 한국 돈으로 8만 원 하는 백호은침 녹차를 꺼내더니 차를 우리기 시작하셨어요.
“저기...그건 왜….”
“한국인들은 우전차나 마셔서 좋은 차를 몰라. 내가 오늘 본 김에 과일주스 값 좀 갚고 보내야지. 그래야 예절 있는 한국인에게 예절 있는 중국인이 될 수 있지 않겠어?”
“아니, 과일주스랑 그건 값이 다르잖아요.”
“겨우 그거 부탁한 걸로 뭘 과일주스까지 주고 있어. 나 얼마 전에 선물 받은 일본 떡 있는데 이거나 같이 먹고 가.”
“아뇨, 괜찮아요.”
“나도 예쁜 여자랑 다과 시간 좀 가지자. 동생 점수 깎아버린다?”
“하아아….”
저는 굉장히 부담스러웠지만...교수님이 주는 차를 거절하기도 난감해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셨어요.
“얼음 설탕 넣어줄까?”
“아뇨, 교수님 아직도 설탕 넣어 드세요? 그러다 당뇨 또 와요.”
“흐흐흐, 머리를 많이 써서 일없어. 동생이면 자네 닮아서 공부 잘 하겠구먼 왜 온 거야?”
“...반년밖에 공부를 못 했어요.”
“어이구, 걱정할 만 했구먼.”
그대로 차를 홀짝인 저는 정말 쓴 맛이 전혀 나지 않는 녹차는 처음이라 깜짝 놀랐고, 교수님은 저를 보며 씨익 웃더니 딸기가 든 커다란 모찌떡을건네주며 말했어요.
“맛있지? 어차피 그러면 지금 입학시험 치고 있을 테고, 혹시 점수 낮으면 약간은 올려줄 테니까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노사한테 젊은 기운 좀 나눠주고 가.”
“...요즘 많이 힘드세요?”
“투자 괜히 받았어.”
저는 그렇게 오랜만에 교수님하고 농담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따뜻한 차를 잔뜩 대접받았어요.
뱃속이 후끈해져서 살짝 더울 때쯤 저 멀리까지 나가서 디저트를 먹고 온 연구생들이 연구실로 돌아왔고, 교수님은 자리에서 버튼을 눌러 연구실 문을 열어주고는 연구생들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저거 봐 저거, 아무것도 없는 거 봐. 누구랑 참 다르게 말이야.”
“하아...다음에 케이크 사 드릴게요.
“하이고, 이제 또 남자애들하고 머리 아프게 놀 시간이구만...난 케이크보다 월병이 좋아.”
“월병은 위험하잖아요.”
“그냥 좋다는 말이지.”
...월병은 중국의 공산당 간부가 월병 선물세트 안에 재물을 넣어 뇌물을 받은 사건 탓에 정말로 조심해야 하는 선물 중 하나였어요.
교수님과 시간을 보낸 저는 슬슬 시험이 끝날 시간이라는 생각에 인사를 드리며 연구실을 나왔고, 다시 시험장 앞으로 걸어갔어요.
시험장 앞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는 근처 나무그늘 밑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대학에서 친하다면 친했던 사람 중 얼마 되지 않는 선배가 앉아있었고, 선배도 저를 보고 음료수를 마시다가 손을 흔들었어요.
저는 선배 쪽으로 가서 아직 안 마신 과일주스를 가지고 옆자리에 앉아서 인사했어요.
“대학에 오니까 너를 다 보네.”
“그러게요. 이게 얼마 만이에요? 잘 지내요?”
“뭐 그럭저럭?”
“여긴 무슨 일이에요?”
“시험날 온 거면 뭐겠어? 여동생 입학하는 거 보러 왔지.”
“그런 성격 아니잖아요.”
“그러게나 말이다.”
굉장히 특이한 성격의 선배였는데, 사실 친하다기보다는…조금 묘한 관계였어요.
별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성격도 아니고 그냥 조용하게 공부하는 사람이었지만 같은 조에서 과제를 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고, 제가 알게 된 사람 중에서는 제일 생각이 열려있고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기도 했어요.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묘하게 인기가 있는 듯 없는 듯했는데…가장 신기한 건 사귀다가 헤어진 사이인데도 잘 지내면서 전체적인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동생 시험 때문에 대학에 오니 오랜만에 예전에 알던 사람을 보는 기분에 저는 갑자기 대학에 다닐 때가 떠오르고, 동생이 시험을 치고 있을 건물을 보고 있으니 시험 때문이 아니라 제 수업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너야말로 무슨 일이야?”
“…남동생 입학하는 거 보러요.”
“남동생? 너 외동…아니, 아니다. 참…아니, 잠깐…너도 그런 성격 아니잖아?”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정말 묘한 사람이었어요.
목소리 톤 자체가 굉장히 최면을 거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이상하게도 여러 사람이 다들 이 선배랑 얘기할 때면 아무리 심각한 비밀 얘기나 충격적인 얘기를 해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거나, 난 좋다고 생각해 하고 말하는 태도 때문인지 쉽게 비밀을 털어놨어요.
저도 부모님이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다는걸 얘기한 사람은 여자인 친구들과, 남자는 이 선배가 유일했어요.
그런 걸 저도 모르게 말했다는 사실이 너무 이상해서 경계심이 들었고, 일부러 조금 피해 다니긴 했지만…그런 선배도 이렇게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어요.
“선배 여동생은 어디 전공이에요?”
“미술. 재미있는 거 넣었어.”
“미술…? 어떤 거 넣었는데요?”
“미술공학.”
“…공과에요 미술과에요?”
“몰라, 두개 합쳐서 신설한대. 학장이 직접 나서서 담당하더라.”
정말로…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고, 대학에 다닐 때 앉아서 과제를 만들다가 잡담하던 것처럼 얘기가 오갔어요.
예전처럼 선배는 저를 정말 그냥 아는 동생 대하듯 말했고, 저도 이 거리감이 마음에 들어서 빠르게 친해졌던게 떠올랐어요.
“그러고 보니까 너 얼마 전에 그거 봤다.”
“그거라뇨?”
“사진. 그 또라이 또 이상한 짓 하던데 신경 쓰지 마라. 걔는 원래 이거저거 다 주제 모르고 찔러보잖아.”
저는 선배의 말에 무슨 얘기를 하는지 바로 알 것 같아져서 피식 웃었어요.
예전부터 그런 소문 같은걸 듣기는 하지만 전혀 편견이 없는 사람이었고, 그런 만큼 애들은 자기편을 안 들어준다며 거리감을 느꼈지만…저는 선배가 정말 그런 걸 신경 안 쓸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어요.
거기에 입도 무거워서…정말 이 비밀을 쉽게 털어놓게 하는 묘한 분위기만 제외한다면 정말 마음에 드는 선배였어요.
“애들이 널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냐? 뭐 어떻게 된 게 졸업했는데도 이래? 예뻐서?”
“하아…글쎄요.”
“뭐, 대학 때의 추억 같은 거겠지. 나도 오랜만에 재밌었어. 남자애들 갑자기 진짜 대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네 얘기만 해대고…대학때도 이런 얘기 하지 않았었나 우리?”
“그러게요. 선배 그때 저랑 같은 조 돼서 남자애들이 막 가까워졌다면서요.”
“기생충들이지. 네가 고생 많았다. 참…남자가 참 불쌍해. 성욕의 노예들이야 그렇지?”
저는 선배의 말을 듣고 정말 묘한 감정을 느껴서…눈살을 찌푸리며 물었어요.
“선배는 남자 아니에요?”
“3차원에 관심 별로 안 둔다.”
“여자친구 사귀었었잖아요.”
“코스프레 시켜서 헤어지잖아. 매번.”
선배는 들고 있던 음료수를 마시며 말했고, 저는 정말 할 말이 없어져서 가만히 있다가 말을 이었어요.
“코스프레 정도는….”
“네가 생각하는 코스프레가 뭔지 모르겠는데, 내가 생각하는 코스프레랑은 달라.”
“아니…뭔지 알고 그래요.”
“인싸가 하는 생각이 뻔하지…아니 잠깐만…코스프레 정도는 이라니? 남자친구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다는 거야?”
저는 선배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선배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탁 치더니 입가를 지퍼로 잠그는 시늉을 했어요.
“왜 자꾸 애들이 나한테 이상한 말을 많이 해줘서 입을 다물게 만드냐….”
“애들이요?”
“별별 얘기 다 해. 무슨 내가 감정 쓰레기통도 아니고…여동생도 요즘 죽겠다.”
“여동생이 왜요?”
“음…나 원래 다른 사람 비밀은 얘기 안 해 주는데.”
대학 시절부터 선배는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많이 듣고 다녔는데, 그걸 한 마디도 안 흘릴 만큼 입이 무거워서 그런지 아예 고민상담을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 않는 건 아니고…절대로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의 비밀 같은 건 얘기하거나, 반대로 조언을 구하기도 했었어요.
“모르겠다, 어차피 네가 내 여동생을 만날 일도 없을 테고. 남동생은…네 남동생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아니겠지.”
“…무슨 얘기에요?”
“별거 아니고, 얘가 누구를 엄청 좋아해서…머리가 아파. 자꾸 얘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래? 하고 남자의 마음을 물어봐.”
“그게 왜 머리 아파요?”
“솔직히 가능성 없어 보이는데…사진을 보면 가까이에서 같이 찍긴 하더라고. 근데 보면 전혀 가능성 없어 보이는데….”
“여동생한테 너무 냉정한 거 아니에요?”
“아니, 날 전혀 안 닮았고 귀엽고 가슴도 커.”
“…여동생한테 할 말은 아니지 않아요?”
“가슴 큰 게 뭐 어때서. 엄청 커. 얼굴도 귀엽고. 근데 냉정하게 말해서 상대 남자애 사진을 보니까 내가 여자였으면 여동생 머리 잡고 내가 사귀겠다고 넘어뜨릴 것 같이 생겼더라.”
“…네?”
“솔직히 지금도 고민 좀 해볼 수 있어.”
“…선배 그쪽 성향이었어요?”
“고민만 해본다는 얘기지. 내가 이럴 정도면 어떻겠어.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럼 경쟁률이 너무 높겠지? 아, 그래…예를 들면, 네가 봐도 반할 것 같을 정도야.”
“저는 대체 왜 거기에 끼는 거예요?”
“내가 실제로 본 여자애 중에서는 그래도 네가 제일 예뻐서? 너 유명하잖아.”
그때쯤 건물에서 벨 소리가 울렸고, 창문을 통해서 건물 안의 사람들이 점점 나오기 시작하는 게 보였어요.
선배와 저는 벤치에서 일어나 건물 앞으로 다가갔어요.
“야, 네가 반할 남자면 얼마나 잘생겼겠냐? 사진 보여주고 싶네. 동생 핸드폰에 많던데.”
“그러면 가능성 있는 거 아니에요?”
“도촬한 사진이 많아…얘 위험해. 프로필 사진부터가 조금 그래. 그리고 그게 참 어렵단 말야…어쨌든 같이 사진을 찍긴 한다는 건 마음이 있다는 건가 싶긴 한데, 남자 쪽 외모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저는 그 남자의 사진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 선배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싶기는 했어요.
“네가 대학 다닐 때 남자애 차면서 하던 말 있잖아? 그…3번인가 고백한 애.”
“아…음, 네….”
그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배는 말을 계속했어요.
“안될 걸 알면서 불가능에 도전하는 건 멋있지만 그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방적인 부딪힘이면 멋진 게 아니라 그냥 민폐라고 했지.”
“…네.”
“비슷해. 좀 민폐 같아. 고백 이미 두 번 했는데 둘 다 차였다고 했거든. 그래도 좋다는데 더하는 건 진짜 민폐지.”
점점 사람들이 건물에서 나오기 시작하고…저는 창문 쪽 계단을 내려오는 동생의 모습을 발견했어요.
신기하게도 그 많은 사람 중에 동생이 한눈에 들어와서 순식간에 찾았고, 저는 눈으로 동생을 쫓아가면서 선배의 말을 곱씹었어요.
“선배.”
“응?”
“불가능한데…서로 좋아하면 어떡해야 할까요?”
“으으응…?”
제 말을 들은 선배는 저를 힐끔 보며 묘한 목소리를 내더니…가만히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요.
“친구 얘기지?”
“네? 아, 음…네.”
“하아…좋아, 친구 얘기다? 글쎄…불가능한데 서로 좋아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저는 선배의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어찌 보면 정말 잘 맞는 비유인 것 같았어요.
서로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주변의 시선이나 관계, 환경을 생각할 때 불가능한 얘기였으니까요.
어느새 동생은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었고, 저 멀리에서 저와 눈이 마주치더니…곧바로 웃으며 손을 위로 쭉 뻗었다가 갑자기 표정이 안 좋아지며 손이 내려갔어요.
“네…아니, 친구 각오에 달렸지.”
“각오요?”
“로미오와 줄리엣도 서로 주변 다 무시하고 둘이 도망갔으면 해피엔딩이었어.”
동생은 얼굴을 굳힌 채 인파를 헤치며 점점 제게 다가왔고, 동생의 뒤로는 가슴이 큰…동생의 여자친구라고 착각했던 여자애가 열심히 따라왔어요.
저는 선배의 말을 듣고 멍하니 동생을 보고 있었고, 선배는 갑자기 조용해진 제 얼굴을 보고는 시선을 쫓아 동생을 봤고, 깜짝 놀라며 말했어요.
“야야, 쟤다 쟤. 너도 보니까 눈길이 가지? 쟤 뒤에 있는 애가…응? 왜 여기로….”
“…누나.”
“같이 가! 어? 오빠?”
“응…?”
그리고 저는 동생을 가만히 올려다보면서…조금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수고한 동생에게 웃어주며 말했어요.
“수고했어요. 시험 잘 쳤어요?”
“…네.”
“오빠 부끄러우니까 어디 가 있으라고 했잖아. 여기에서 뭐해…언니…분이랑 아는 사이야?”
“…혹시 이 전혀 귀엽지 않고 동생 같지 않은 남자분이 네 남동생이야?”
저는 선배의 말에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자 선배는 한 손을 눈가에 대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어요.
“…핏줄 장난 아니네.”
선배는 그 말을 끝으로 저에게 아까 한 얘기는 비밀로 해달라면서 여동생을 끌고 데려갔어요.
저는 동생의 여자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제가 아는 사람의 여동생이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고 있었고, 선배의 여동생은 선배에게 계속 언니랑 아는 사이냐며 혹시 나 뭐 좀 부탁해도 되냐고 물으며 멀어져갔어요.
선배는 계속해서 무시하고 팔을 잡아 끌고 가고 있었고, 어느 정도 멀어지고 나자 동생이 참고 있었던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물었어요.
“…누구에요.”
“응? 친한 선배예요.”
“친하다고요?”
“음…아마도요. 꽤 친한 선배예요. 어? 어?”
그런데 동생은 제 말을 듣고 갑자기 팔을 잡았고…그대로 근처에 보이는 공원으로 저를 끌고 갔어요.
대학 안에는 공원이 여러 개 있었는데, 북경에는 어울리지 않게 옛날부터 전부 울창한 숲을 조성하고 있었어요.
딱따구리도 많고 다람쥐, 족제비도 있고 고슴도치도…중국 학생들이 기르던 여러 동물을 몰래 풀어주기도 하는 곳이었어요.
저는 그런 숲까지…방학기간인 탓에 학생들이 전혀 없는 곳까지 끌려갔어요.
“왜, 왜 그래요?”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동생은 갑자기 저를 끌어안고…정말로 갑자기 허리를 꽉 끌어안으면서 목에 키스하기 시작했어요.
“어? 앗, 아읏…잠깐, 여기서…?!”
“쪼옥…쯔읍….”
“아, 아앗…잠까안…왜, 왜 그래요오….”
저는 처음에는 저항했지만…동생의 팔에서 전혀 벗어날 수 없었어요.
굉장히 단단하게 잡고 있어서 결국 전 저항을 포기했고, 흡혈귀에게 물리고 있는 것처럼 목을 얌전히 물려주면서 동생의 등을 토닥여줬어요.
“시험 끝나니까아…참기 힘들어서 그래요…?”
“…아뇨.”
“잔뜩 서 있으면서….”
동생은 아니라고 했지만…동생의 말이 부끄러워서 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잔뜩 커져 있는 게 옷을 사이에 두고 제 배를 꾸욱 누르고 있었어요.
저는 동생이 이럴 정도로 참기 힘든가 싶어 걱정하면서…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많이…참기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