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5화 〉거리감 (5) (85/156)



〈 85화 〉거리감 (5)

 신기하게도 이상한 말이나 웃긴 얘기를 하면서도 말투나 동작 같은 게 전혀 기분이 나빠지지 않게 말을 할 줄 아는 친구였어요.
가끔 이런 애들이 있긴 하지만…동생의 친구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딱 봐도 얘는 친구들하고 잘 놀겠구나 싶달까….
거기까지 생각한 저는 문득 동생이 학원에서 친구들하고는 어떨까 걱정되어서 하겐다즈를 들고 식품매장 옆의 식당 코너에 가서 테이블에 앉아 옆에 가만히  있는 동생의 친구에게 말했어요.


“뭐해? 앉아.”
“어? 어…저기, 같이 앉는건…들키면 저 죽을  같은데.”
“…들켜?”
“아,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영광. 와~모르겠다. 아예 사진도 같이 찍자고 해버릴까나~어…진짜로 이따가  장만 같이 찍어도 돼요? 청춘의 소원 같은….”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알았어.”
“오? 진짜요…? 아아아,  잘 꾸미고 나올걸….”


동생의 친구는 왠지 나중에 유튜버 같은 걸 하면 어울릴 것 같았어요.
그대로 테이블에 앉아서 하겐다즈를 떠먹던 저는 동생의 친구가…이번에도 저를 보다가도 묘하게 뒤쪽을 신경 쓰거나 옆을 힐끔거리는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원래 여기저기 많이 두리번거리는 애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궁금했던 걸 물었어요.


“저기…동생은 학원에서 어때?”
“동생…? 아, 아…학원에서요…?”
“응, 하겐다즈 먹었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어? 친구는 많아? 여자친구는?”
“와…이거 뇌물이었구나. 뇌물 먹으면서 누나랑 데이트라니…평생 뇌물 받고 싶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래도.”


조금 경고하듯이 단어를 살짝 끊어 말하자 굉장히 눈치가 빠른 애인지…곧바로 굳어서 제 눈치를 보더니 장난기 없는 목소리로 동생에 대해 얘기해줬어요.


“음…뭐, 잘 지내요. 처음 왔을 때는 되게 시끄러웠는데….”
“시끄러워?”
“생긴 게 아무래도, 여자애들이 엄청 좋아했죠. 없을 때마다 꺅꺅거리고, 교실 들어오면 조용해지고.”

저는 얘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동생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생각해봤어요.
하긴…아침마다 제가 머리가 뻗치거나 했으면 정리해주고 보내기도 하고, 옷에 보풀도 안 일어나게  만져주고 주름도  줬으니까…거기에 그 키에  외모면 당연한 반응이었어요.


“여자친구는 없어? 썸 탄다거나.”
“음…그게, 애들이 고백하려는 시도는  보는데 다들 실패해서.”
“응?”
“아…이거 뭐라고 말해야 하지…그…누가 먼저 고백하려고 하면 네가? 감히? 같은 분위기가 있거든요.”
“아….”

공감하기 어렵지만, 묘하게 알  같았어요.
머릿속에는 동생 주변에 또래 여자애들이 앉아서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이 그려졌고, 저는 왠지 묘하게 불편해져서 입안에 달콤한  한 스푼 더 넣으며 얘기를 계속해서 들었어요.


“어…근데 누나도 되게 유명해요.”
“제가요?”
“도시락에 맨날 공부 힘내요 하고 쪽지 붙여 두잖아요. 그거 볼 때마다 웃어서 원래 밖에 나가서 사 먹던 여자애들이 편의점 도시락 사 와서 교실에서 먹어요.”
“앗, 잘 먹어주는구나.”
“그거 때문에 처음에 여자친구랑 같이 산다, 신혼부부다 하고 농담하기도 있었는데 물어보니까 누나 자랑을 막 해대서…아, 그 후에 남자애들이 누나 보러 가고 싶대서 갔던 거예요.”


저는 동생이 처음으로 친구들을 데려왔던 날을 떠올렸고, 도시락을 잘 먹어준다는 걸 알게 되자 조금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무척 좋아졌어요.

“애초에 고백을 할 순간이 없기도 하고. 끝나면 바로 가잖아요.  같이 당구치러 가자고 하거나, 클럽 가자는 애가 있어도 공부해야 한다고 하고 안 가고…진짜 조용히 공부밖에 안 하는데 외모 되고 키 되고 몸 되니까 여자애들이 눈을  떼요. 심지어 연애는 대학 입학에 필요 없다며 공부만 열심히 하던 여자애들도 쟤는 달라! 하면서 무슨 왕자님 보듯이 하고. 그리고  조용히 공부만 한다고 해도 걔가 원래  사람 자체가 카리스마가 있잖아요? 되게 강렬하고,  무서운데 끌린다고 해야 되나.”
“카리스마…?”


저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고개를 조금 갸웃했어요.
이게 동생 얘기가 맞는 건가 싶었고, 아무 말도  하고 조용히 있는다는 것도…집에서 저랑은 그렇게 얘기를 많이 하고 동생도 계속 말을 걸고 해서 얘기하는걸 좋아하는구나 싶었는데 학원에서는 다르구나 싶었어요.
역시 친구한테 물어보는 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하겐다즈를 완전히 비운 저는 입에 물고 있던 스푼을 내려어요.
그런데 동생의 친구…뭐라고 불러야 할지 점점 고민되는 안경을 쓴 친구는 하겐다즈를 빠르게 먹고는 가만히 있다가…방금 전보다 훨씬 작아진 목소리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물었어요.


“저기 근데…노동절 때 무슨  있었어요…?”
“어? 왜…?”
“아니…그게, 어…이런  해도 되나.”


뭔가 고민되는 것처럼 빈 스푼을 입에 문 채 깨작깨작 씹더니 갑자기 뒤를 한번 힐끔 돌아본 동생의 친구는 제게 약간 더 가까이 다가와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해 줬어요.

“누나니까…가족이니까 말 하는 건데, 요즘 엄청 예민해요…날카롭다고 해야 되나, 학원 분위기가 그래서 엄청 안 좋아요.”
“예민하다고…? 왜? 날카롭다니…어떤게?”
“성적도 갑자기 막 떨어지고, 시험도 잘  보고 자꾸 멍하니 있고…다크서클도 심해지고. 여자애들 몇 명이 걱정된다고 계속 말 걸었는데 꺼지라고 해서.”
“꺼지라고 했다고?!”
“그때 그래서 말건 여자애들 욕 엄청 먹었어요.”
“어?  여자애들이…?”
“아…그게, 하루 종일  걸었거든요. 괜찮아? 이거 먹을래? 이거 마실래? 다크서클 어떡해, 나 화장품 좋은 거 있는데 발라줄까…? 이러면서. 걔가 됐어. 괜찮아. 놔둬 하는데 계속 그래서….”
“으, 응….”


설마 동생이 욕을 했다는 얘기를 들을 줄 몰랐던 저는 굉장히 충격받았어요.
얘기하면서 참, 말을 깨끗하게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동생도 욕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충격받으면서도, 동생 또래 애들 나이를 생각하니 제가 오히려 동생을 너무 제 마음대로 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실 충동적이고 욕도 하고 좀 더 거친 게 당연한 나이인데…문득 동생이 하고 싶은데도 제가 싫어할까 봐 굉장히 참고 있는 거라고 말한 것과, 친구가 유혹하지 말라는 말…자기가 동생이어도 여자로 봤을 거다, 내가 남자였으면 저를 덮쳤을 거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라서…동생이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굉장히 미안해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졌어요.


“장난 아니에요…애가, 그…여자애들이 다  눈치를 보고 남자애들도 눈치보고있는데…전에 술집 갔을 때 이후로 엄청 애들이 긴장하거든요. 눈치도 좀 보고…근데…그, 이번에 또 낙타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낙타?”
“아, 그 속눈썹만 엄청  애 있죠? 걔 별명이 낙타예요. 전에 누나 전화 몰래 받은 애.”

동생한테 전화했다가 다른 애가 받아서 제가 술집까지 찾아갔던 날을 얘기하는 거였어요.
갑자기 머릿속에 동생하고 같이 클럽에 갔던 게 떠오르고 그날 밤에 있던 일이 떠오른 저는 얼굴이 뜨거워졌고, 조금 호흡을 길게 내쉬고 시선을 살짝 피하며 물었어요.


“응…걔가 왜?”
“걔 자기 얘기 누가 몰래 하는 거 싫어해서. 전에 그…누나 전화 몰래 받은 애 있죠?  이번에도 이상한 소리하다가…좀 분위기 이상해져서.”
“이상한 소리라니?”
“자기가 아는 형이 무슨 사진 보여줬다고, 누나랑 연애하냐고 했다가 진짜 갑자기 걔가 한 손으로 옷 잡고  벽에 대고 들어 올려서 노려보는데…와, 진짜 살벌해가지고.”
“어?!”
“아…때린건 아니고 왜, 때리게? 하는데 애들이 다 말렸어요. 근데 걔 힘이 되게 세가지고…벽에 밀치면서 기대게 하긴 했는데 한 손으로 사람 드는 거 그때 처음 봤는데, 여자애들은 그거 가지고 나중에 갑자기 팔에 핏줄 섹시했다고 하는 애도 있고…웃긴게 남자애들도 다 낙타 별로 안좋아해서 운동 뭐하냐고 물어보는데 애 요즘 진짜 엄청 예민해서 좀 조용히 하라고 해서 애들 다 조용해지고….”
“어? 어…?”

설마 폭력을 쓰는 얘기까지 나올  정말 상상도 못 해서 당황스러웠어요.

“근데…그, 노동절 전만 해도 엄청 기분 좋았거든요. 노동절때 뭐하냐고 하니까 누나랑 여행 간다고 막 자랑도 하고….”
“응…그렇구나…응….”
“근데 갔다 오자마자 엄청 기분 안 좋아 보이고 맨날 한숨 쉬고 성적 안좋아지고…다른것보다 진짜 예민해져있으니까, 걱정되서….”
“아, 괜찮…아. 음…저기, 얘기해줘서 고마워.”


굉장히…충격이었어요.
다른 것보다도 저는 동생이 조금 힘들어 보이긴 해도 점점 적응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조용히 말을 잘 들어주니까 제 말을 들어주고 있구나, 시험 점수도 계속 잘 나오니까 괜찮겠지 싶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원래 95점을 넘어서 98점 근처에서 계속 나오던 시험도, 최근을 생각해보면 가끔 아예 80점 밑으로 내려간 적도 있었어요.
그때는 그냥 홍콩 갔다 와서 조금 피곤한가 보다 생각했는데…학원에서도 점수가 점점 내려가고 있다고 하고, 예민하고, 욕하고, 친구랑 싸울 정도라니….
얘기를 들어보니 친구라고 할 만한 애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제겐 너무 충격적인 얘기였어요.


“아, 제가 들어드릴게요.”


더는 얘기할 게 없을  같아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동생의 친구는 장  것들이 들어있는 제 비닐봉투를 들어서 멋대로 앞장서서 걸어갔어요.
이상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1층의 옷가게와 여러 브랜드들이 가득한 곳을 지나 입구까지 바래다준 동생 친구에게서 봉투를 받은 저는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생각이 난 의문을 물어봤어요.


“…근데, 여긴 무슨 일이야? 학원 안 가고?”
“어? 오늘 학원 쉬는 날이에요.”
“뭐?”
“학원 사정으로 쉰다고 누나 모르셨….”

그리고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린 동생의 친구가 입을 막더니, 뒷걸음질 치면서 말했어요.

“저, 저기…저 아무 말도 안 한 거에요? 그, 뒤에서 무슨 얘기 하는 거 엄청 싫어하는 것 같았고…비밀로 해주세요?”
“아, 응…오늘 본 적도 없는 걸로 할게.”
“아, 아니 잠깐…맞다. 사진….”


동생의 친구는 뒤늦게 떠오른 듯 저와 같이 사진을 찍었고, 그대로 기쁜 듯 불안해하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쇼핑센터로 들어갔어요.


“그럼 전 안에 친구가 기다려서…조심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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