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거리감 (2)
“안돼요.”
다음날 동생은 아침부터 제 허리를 잡고, 제 위에 올라가 몸을 비비려 하다가 제가 한 말에 갑자기 시무룩해져서 내려갔어요.
조금 잠결에 그런 것 같았고, 말하자마자 아…맞다 하면서 내려가서 봐줬지만, 그 후로도 동생은 계속해서 제 눈치를 봤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뭔가 해주려 하거나…제가 화를 풀기를 바라는지 요리를 해 주려 하거나, 청소하거나 했어요.
저는 동생이 온 뒤 계속해서 동생에게 집중하다가 오랜만에 친구들하고 연락하면서 어디서 만날지 약속하고 있었고, 동생은 제가 핸드폰을 보고 메시지를 쓸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지 제 주변을 계속 어슬렁거리며 힐끔거렸고, 저는 이렇게까지 동생이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처음인 것 같아 조금 어색했어요.
아니, 잘 생각해보면 처음 봤을 때랑 조금 비슷한 것 같기도 했어요.
눈치를 굉장히 보고…뭔가 해주고 싶어하는 모습이었고, 처음 만났을 때랑 다른 점이 있다면 좀 더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뿐이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약해질 것 같을 때마다 저는 누나인 제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잡았고, 하루 종일 제 눈치를 보던 동생은 결국 밤이 돼서도 제가 손 하나 대지 못하게 하자 점점 멍해지고, 한숨이 많아졌어요.
“오늘도…안돼요?”
“안돼요.”
동생은 갑자기 이렇게 된 게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밤이 되면 자꾸만 정말 안되냐고 물어왔어요.
저는 정말로 단호하게 거절했고, 그럴 때마다 동생은 점점 더 시무룩해져서…왠지 너무 우울해지는 것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번에 정말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양보하지 않았어요.
“아, 안고 자는 것도…안돼요…?”
“…안는 정도는, 보통 가족끼리도 많이 하는 거니까….”
겨우 안고 자는 것 하나를 허락받고 난 후에야 조금 안심한 것처럼 꽈악 끌어안고 잤고, 저는 굉장히 두근두근하면서도 동생의 것이 엉덩이에 닿을 때마다 살짝 피해줬어요.
그랬더니 왠지 동생이 더 시무룩해져서…서로 침대 위에서 A자 모양으로 안은 채 잠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 여왕님 남자친구는 무슨 일이야?”
그리고 동생과 그런 일이 있고 나서 3일 뒤, 저는 대학 때 친했던 친구들과 함께 술집에 갔어요.
운이 좋게도 제가 친했던 여자애들이 상해 쪽으로 갔던 애도, 한국에 있던 애도 노동절 때 다들 쉬니까 친구들끼리 놀러 왔다고 해 오랜만에 다들 북경에 있다고 해서 아예 이런 일로 연락이 된 김에 다 같이 만나기로 했고, 술집에서 만나보니 다들 정말 대학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아서 저는 조금 한숨을 쉬고 싶어 질정도였어요.
다들 조금 날라리 같다고 해야할까…평소에 얌전한 애도 왜 그런지 저랑 있으면 야한 얘기를 막 했고, 여자애들은 예쁜데 이상하게 야한 쪽으로만 내성이 적어 보여서 야한 얘기만 하면 어색해하는 게 귀여워서 하게 된다는 말만 했었어요.
“맞아맞아, 우리 아가가 이제 드디어 자위에서 벗어나서 남자를 알게 되는 거야?”
“진짜 웃기지 않냐? 이렇게 생긴 애가 제대로 된 연애 소문이 지금이 처음이라는 거나, 남자랑 끌어안은 소문 하나 가지고 졸업 다 한 애들끼리 이렇게 시끄러운 게.”
“애기여왕님이 드디어 여왕님으로 변하는 거야?”
“아니…남동생이라니까…그거 그 선배가 이상한 소리 하고 다니는 거래도….”
대단히 시끄럽게 떠들 걸 예상해서 아예 방을 잡고 먹으러 왔지만…친구들은 오랜만에 본 만큼 뭔가 참고 있기라도 했던 건지 정말 상상 이상이었어요.
“남동생이랑 서로 가로등 아래에서 어깨 잡고 끌어안아? 와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야 아무리 그래도 남동생이라고 하고 넘어가려 하는 건 아니지. 그거 사진 뭐 거의 화보더라 화보.”
“그 선배가 ‘그 선배’ 이긴 해도 사진과 나오긴 했잖아. 잘 찍긴 했더라.”
“걔 그러고 보니까 소문 들었어? 여자친구 사귀기만 하면 할 때마다 사진찍는다고…뭐 섹스가 예술이라나 하면서.”
“미친, 예술 좋아하네. 아, 이거 선물. 우리 여왕님은 자주 못 보니까~”
“…내 선물은? 내 선물은?!”
“넌 전에 생일선물 보내줬잖아.”
“그 초콜릿? 집에 있는 식충이가 다 처먹었어!”
“아…그 오빠? 너도 참 오빠랑 사이좋다.”
“사이 좋기는 개뿔!”
저까지 더해서 겨우 4명인 것치고 정말 정신이 없게 떠들었지만…다들 결국 오늘 대화의 중심은 제 남동생이었는지, 얘기는 결국 동생 얘기가 되었어요.
“진짜 그런데 남동생이라니까…그거, 선배가 집 앞까지 찾아와서 귀찮게 하길래 동생이 쫓아내 준 거야.”
“어허, 쫓아내는데 그런 달콤하고 로맨틱한 분위기의 사진이 나올 리가 없잖아.”
“로맨스 영화 포스터인 줄 알만하지. 선배 계정 보니까 포스터 작업하냐고 영어로 누가 글 적었더라? 한국 애 아닌 애가 보고 오해했나 봐.”
“아니 잠깐…너네 동생 사진 봤어? 왜 나만 빼고 봐?!”
“넌 선배 차단했잖아.”
어째서인지 얘기는 그대로 동생 사진을 보여달라는 얘기가 돼서, 다들 끈질기게 사진을 보여달라고 말했어요.
“사진 보여줘! 너 닮았으면 귀여운 남동생일 것 같아. 키도 작고 아담하고 비율은 좋고 귀여운…쇼타라고하지 그런 거?”
“전혀 아닌 것 같던데…? 사진 보니까 수영선수 같은 체형이야 완전.”
“수영선수?! 아니…어, 남매가 맞긴 한가…? 얘 육상부 선수 하는 애랑 같이 연습하고 그랬잖아. 운동에 재능 있는 게 유전인가…?”
“아 그거…그거때문에 남자애들 괜히 같이 달려서 친해지겠다고 달린다고 하고…다 나가떨어졌던 거 생각난다.”
“그거 조금 웃겼는데. 그때 너 전 남자친구도 있지 않았어?”
“그 새끼 이름 꺼내지도 마.”
친구 중 한 명이 굉장히 기분 나빠해서 저도 조금 눈치를 봤어요.
원래는 제가 남자들한테 꼬리 친다며 절 아주 싫어했던 애였는데…처음에는 저를 욕하거나 공격하려고 다가왔다가 제가 정말 전혀 그럴 의도가 없다는 걸 보고 점점 친해진 친구였어요.
그 후에 술 마시고 실수로 해 줬던 얘기지만…헤어지게 된 이유가 친구랑 하면서 자꾸 제 이름을 불러대서 혹시 저랑 바람 피는 건가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자기랑 하면서 제 상상을 하고 있던 거라 자기를 자위기구 취급하는 듯한 남자친구 뺨을 온 힘을 다해 때리고 헤어졌다고…했던게 기억났어요.
“나도 남동생 줘! 나도 잘 키워줄 수 있어!”
“너네 어떻게 졸업하고도 이렇게 그대로야…?”
“사진 보여줘 사진. 동생이라고 믿길 바라면 사진을 보여줘야지.”
“야, 사진이 있겠어? 남동생인데….”
“있는데…많이….”
결국, 저는 친구들에게 홍콩 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어요.
같이 배 위에서 찍은 사진하고, 스타의 거리에서 다른 관광객이 찍어준, 동생이 뒤에서 안아주는 사진이랑…수영장에서 서로 수영복을 입고 찍어준 사진을 보여주니, 왠지 친구들의 태도가 확 달라졌어요.
장난치던 분위기에서…정말로 걱정스럽게 변했다고 해야 하나. 다들 할 말을 잃은 것처럼 있었어요.
“어…이거 선배가 찍은 사진보다 더한데…?”
“저기…남매사이에 보통 사진 잘 안 찍지 않아…?”
“저기 있잖아…남매끼리 여행 가는데 비키니는 조금…와, 얘 골반 봐봐. 수영복 끊어지려 하네….”
“남자친구…아니, 남동생이지. 얘 어깨랑 복근도 내 심장 끊어버릴 것 같은데…?”
“와…미쳤다, 진짜 너무 섹시해.”
“얼굴 퇴폐미 뭐야? 어우 이거 골반봐…언니 술 별로 안 마셨는데 취하겠다.”
“잠깐…뭘 보는거야. 그런 거 보지 마.”
저는 동생의 수영복 사진을 보면서 침을 흘리는 여우들에게서 제 동생의 사진을 구해냈어요.
그러자 친구들은 조금만 더 보자 하고 핸드폰을 뺏으려 했고, 저는 곧바로 화면을 잠가버려 보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미쳤는데…? 얘 이모 모델하신다고 하지 않았어? 그쪽 핏줄인가…?”
“아빠 핏줄 아냐? 아빠 사진은 없어…?”
“야, 잠깐….”
“아…미안….”
저랑 대학에서 그나마 제일 친한 사이였다 할 수 있었던 만큼 다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제가 혼자 살다시피 했다는 걸 알고 있었어서 그런지, 말실수했다 생각한 친구가 사과했어요.
“아냐 뭐 어때. 15년 전 일인데.”
“15년…그러네. 근데 그러면, 남동생하고도 15년 만에 만난건데…이렇게 생긴거야?”
“야 이건…이거 남동생으로 보기도 힘들겠다.”
“응…?”
그런데 갑자기 대화가 이상해지기 시작하면서…저는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어요.
“솔직히 이건 외모가 너무 깡패 아냐…? 아니 몸도 그렇고….”
“나 소개시켜 주면 안 돼? 여자친구 있어? 나 정말 언니로 모시고 살게!”
“미친년…미친년….”
“응, 니 전남친.”
“진짜 뒤진다 너….”
“아니…저기, 남동생으로 보기 힘들다는게…무슨 말이야?”
저는 다시 얘기가 산으로 가려 하자 조금 주뼛거리며 질문했고, 친구들은 제 말에 다들 같이 고개를 젖히며 으으음~하고 고민하더니 하나둘씩 입을 열었어요.
“이거 이런 얘기 진짜 해도 되는 거 맞아…?”
“몰라…우리 언제 이런 말 필터링 한 적 없잖아.”
“아니 그건 우리 여왕 애기가 자위 어떻게 하냐고 아가처럼 귀엽게 질문하니까 그때부터 놀리려고 그랬던 거고….”
“괜찮으니까 얘기해봐. 무슨 말인데…?”
제가 확실하게 괜찮다고 말을 하자, 그제서야 친구들은 정말 괜찮은 걸까 하고 눈치를 보면서 얘기해줬어요.
“저기, 이거 이상한 말이 아니고…15년이나 못 만났으면, 그것도 애기때면…이거 거의 드라마 설정 아냐? 집에서 좀 위험한 거 아냐…?”
“위험하다니?”
“아니, 음…너 동생 너무 야하게 생긴 것 같아서…이거 얼굴이나 몸이나 너무 폭력적이잖아. 이거 시선 폭행이야 완전.”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아니, 나 진짜 이런 말 해도 되는 거 맞아…? 친구 동생 가지고…?”
“나한테 먼저 말해봐.”
친구 둘이 서로 갑자기 귓속말하더니, 얘기를 들은 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말했어요.
“와! 남자친구랑 다음 달에 약혼한다는 애가! 친구의 남동생 가지고! 얼굴만 봐도 젖을 것 같다고 하다니!”
“너 진짜 죽는다!”
“쓰레기! 넌 쓰레기야!”
“야!! 야!! 너, 머리, 이리, 대, 죽는다, 너, 진짜!”
“아니, 잠깐 나도…양심고백할테니까 때리지 마 봐! 근데 솔직히 나도 공감하긴 해. 그보다 이거 남동생은 괜찮은 거 맞아?”
“무슨 소리야?”
“우리야 얘 입장에서 보니까 남동생이 야한데…남동생은 이제 막 고3 끝나고 성인이 되었는데 성욕 한창인 나이에 이런 누나랑 한집에서? 우리 여왕님 무사한 거 맞아?”
“아니 너…야, 그…당사자 앞에서 그런 말은….”
제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조금 생각에 빠져있자 친구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고 중국에 계속 남아있던, 저랑 동생이 온 직후에도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눴던 친구가 말을 꺼냈어요.
“내가 얘한테 전에도 말했지만 얘 남동생 분명 자위 엄청 할걸. 15년만에 본 누나가 이렇게 생겼으면….”
“아니, 그건…야, 좀 선 넘었지.”
“야 남에 동생한테 못하는 말이 없다.”
“와 또 나만 쓰레기 취급하네….”
저는 친구의 말에 전혀 대답하지 못했어요.
조금 선을 넘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서로 굉장히 제 눈치를 보고 있긴 했지만…그것보다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렇게 생각한다는 게 굉장히 충격적이라서 할 말을 잃은 것에 가까웠어요.
결국, 고민하던 저는 잘 마시지 않는 술을 한잔 마시고…정말 고민하다가 이상한 질문을 하나 해 버렸어요.
“저기…나 이상한 질문 하나만 해도 돼?”
“…얘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래?”
“해봐 해봐.”
“나 야해?”
“푸우웁!”
그리고 제가 질문을 하자마자, 친구 중 한 명이 마시던 술을 뿜었고, 다른 애들도 다들 황당한 얼굴이 되었어요.
“어…이거 진짜 질문이야?”
“…응.”
“음….”
제 말에 친구는 굉장히 심각하게 있더니, 서로를 바라보면서 뭔가 생각을 주고받는 것처럼 아무 말 없이 있다가…한명이 손을 들면서 말했어요.
“저기 있잖아, 내가 레즈비언이 아니고…네가 레즈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도 있어서 미리 말하는건데…이거 이상한 말 아니다?”
“응, 뭔데?”
“나 솔직히 만약 내가 레즈거나 남자였으면 너 따먹었을 것 같아.”
“뭐?”
“아니…얘 취했어? 미친거 아냐?”
“아니, 너네도 공감하잖아! 너네가 남자면 얘 안 따먹을 거야?!”
“얘 왜 이래?!”
“진지하게 생각해봐 좀! 남자면! 얘 어떨 것 같아!”
저는 갑자기 대체 왜 이런 얘기가 된 건지 당황하면서도 아니지? 하는 시선으로 친구들을 둘러봤는데, 불길하게도 셋 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더니 저를 보면서 작게 말했어요.
“…존나 따먹을 것 같은데요.”
“뭐?!”
“솔직히 골반 미쳤잖아. 키 작은것도 그렇고…평소에 도도한데 친해지면 이렇게 귀여운 것도 그렇고.”
“아, 그거 있지. 갭이라고 하잖아? 사실 계속 친하고 싶은 것도 얘 지금도 다른 애들한테는 완전 까칠한데 우리한테만 나긋나긋한게….”
“고양이 같아 조금. 뭔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남자면 얘랑 사귀고 싶긴 하겠다….”
“그거 생각난다, 처음에 얘가 우리한테 갑자기 술 마시다가 자위 어떻게 하는 거야? 물어봤을 때.”
“우와~그거, 그건 알아 뭔가 갑자기 내가 남자가 된 것처럼 엄청 귀엽고 흥분되서….”
“나도 그때 내가 레즈인줄 알았잖아. 얼굴 빨개져가지고 자위 어떻게 하는 거야? 하고 물어보는 거…그건 좀 너무한 거 아냐? 와, 내가 레즈였으면 얘 바로 모텔로 끌고 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미친 거 아냐?!”
저는 그때 친구들이 그런 시선으로 절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충격받아서 양팔로 어깨를 감싸 안으며 몸을 뒤로 뺏어요.
하지만 왠지 셋 다 그런 제 모습은 안중에도 없고 정말 당연한 걸 솔직하게 말하는 듯이 얘기를 이어갔어요.
“아니…사실 생각해보면 존재 자체가 야하잖아 얘는.”
“엉덩이부터가….”
“나 솔직히 얘 처음 봤을 때 남친 다섯 명 정도는 사귀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양다리 막 하면서 가지고 놀고. 남자애들이 고백도 엄청 해댔잖아.”
“아 그거? 그거 애들이 이상한 놀이 했었잖아. 고백해서 얼마 만에 차이나 하는 걸로 오래 버티면 더욱 남자로서 매력이 있는 거라면서.”
“당사자로서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으세요? 찰 때 오랫동안 고민하고 차는 경우는 왜 그러신 거였나요 여왕님?”
“그게, 뭐라고 차 줘야 좋을지 생각이 안 나서….”
“멘트 생각하는 중이었다! 와, 이거 진짜 잔인하다….”
“그러고 보니까 참 고백하는 애들끼리 그거 있었잖아. 좀 가능성 있어 보이는 애가 고백하려 하면 괜히 눈치 주고 고백하는 거 방해하거나 알아서 하라 하고 안 도와주고. 견제하는 거. 아, 그거 모르지? 예전에 졸업식 전날 술자리에서 고백하겠다고 하니까 니가 감히 누구한테 고백하냐면서 싸움 난 거.”
“얘랑 잠깐 사귀었던 애 따돌림당했던 거 기억나? 남자애들도 보면 질투 심해.”
저는 처음에는 어? 어? 하고 놀라면서 듣다가…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져서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어요.
“저기…나 더는 못 듣겠는데, 그만해주지 않을래….”
“아 예엡 마마. 안하겠사옵나이다.”
“마아~마아~~저희가 잘못 했나이다~”
“아니 근데 이건 얘기해야 되는데…너한테 고백한 애들 두 명이 술 마시고….”
“그…하지 말라는데 그만 얘기하자? 너무 쓰레기 같잖아….”
“또 나만 쓰레기 취급이야….”
저는 더 듣다가는 귀가 더럽혀질 것 같아 귀를 막으면서 주물렀다가 손을 뗐어요.
그리고…다른애들이 생각해도 동생을 제가 남자로 보는 게 당연해 보이는구나, 엄청 자위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구나…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머리를 좌우로 털다가 술잔을 채우고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어요.
“근황 얘기나 해줘! 짠해!”
“여왕님께서 건배하라 하신다~”
“짠~”
“짠짠~”
그리고 더는 동생 얘기는 하지 않은 채, 저는 친구들이 한국에 가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상해에 간 친구는 게임회사에 취직했다고 들었는데 뭘 하는지…그리고 제가 연구생을 할지 취업할지 고민 중인데 어떡하는 게 좋을지 얘기하다가…적당히 마셨을 때 헤어졌어요.
“다음에 또봐~또봐~”
“우와아…대학 끝나고 얼마나 됐다고, 이거밖에 안 마셨는데 취하다니….”
“여왕님 빠이빠이! 다음에 내가 왕관 만들어 올게!”
“그 여왕님이라고 부르는 거 언제 졸업할 거야…?”
“내가 만든 별명인데! 내 맘이다!”
그렇게 한국에서 온 친구와 상해에서 온 친구 둘은 같은 숙소에서 머물고 있다고 해서 한 택시에 태워 보내고, 중국에 사는 친구와 둘이서만 남아 같이 밤거리를 조금 걷다가…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 사서 길거리에서 마시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슬슬 헤어질까 싶을 때쯤 갑자기 조용히 있던 친구가 방금까지 취해 있었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왠지 고민스러운 듯 망설이며 말했어요.
“저기…있잖아.”
“…응?”
“나 진짜…에이, 왜 이러지…하아…모르겠어, 그냥 취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고민하다가 하는 말인데.”
친구는 말이 잘 안 나오는 듯 한숨을 몇 번 내쉬다가 음료수를 쭉 들이키고는, 바닥에 던져 발로 밟아 캔을 찌그러뜨리며 말했어요.
“그…너 요즘 너무 요염한 거 아냐…? 걱정돼….”
“요, 요염…? 무슨 말이야 그게….”
“이, 이거봐…말투가 예전이랑 다르다니까? 뭔가 달콤해. 엄청…아 씨…진짜, 나 미치겠네.”
그리고…왠지 이상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술기운이 확 달아나는 얘기를 해줬어요.
“저기, 하아…조심해.”
“뭐, 뭘…?”
“너…진짜 위험해 보이니까, 그냥 너 지금 행동 자체가…남자한테 엄청 위험해 보이니까…유혹하지 말라고.”
저는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면서, 저도 모르게 살짝 뒷걸음질쳤다가…이상해 보이지 않으려고 다시 앞으로 걸어나가 친구를 부축해주면서 말했어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너 취했어?”
“아…몰라, 그래 취했어! 몰라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아무것도 몰라 나 몰라!”
제 말을 들은 친구는 갑자기 자기 얼굴을 양손으로 막 치더니, 정신을 차린 것처럼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들었어요.
그리고 갑자기 저한테 다가와서 술 취한 사람처럼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사과했어요.
“미안…! 내가 미쳐서…아냐, 뭔가 이상한 생각 했어….”
“…무슨 생각인데?”
“아, 아냐…화내지 마. 무서워. 진짜 잘못했어.”
“화내다니? 뭐가?”
“너…누구 경계하거나, 싫은…사람이거나, 누가 고백 할 때…눈이 안웃어….”
“…그래?”
저는 친구의 말에 눈가를 의식하며 웃으면서 말했고, 친구는 왠지 굉장히 주눅이 들고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 아니…아니야. 나 취했나봐. 그치?”
“응, 많이 취한 것 같아.”
“가, 갈께…미안…나중에, 연락…할게?”
“응~조심히 가고, 택시 불러줄까?”
“아, 아니야. 오빠…불러서 같이 갈게. 먼저 가.”
그렇게 말하며 왠지 울상이 된 친구가 머뭇거리며 제게서 점점 멀어졌고, 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천천히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렇게 집 앞에 가니, 아파트 입구에 동생이 보여서 저는 깜짝 놀랐고, 급하게 머리 모양을 다듬고, 옷매무새를 확인한 뒤 조심조심 걸어가서 동생에게 인사했어요.
“여, 여기서 뭐해요…?”
“아, 누나…조금 늦으니까 걱정돼서요.”
왠지 요즘 점점 풀이 죽어 보이는 동생을 보며 저는 친구들이 하던 말이 떠올랐고, 조금 미안해 져서…동생의 손을 잡고 조금 부끄러워하며 웃는 얼굴로 말했어요.
“고마워요…안그래도 조금 취해서…집 가는 길 안 무섭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