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벌레 (2) (63/156)



〈 63화 〉벌레 (2)

아무래도 대학가 주변이고, 여러 대학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모여있다 보니 이렇게 아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잦았어요.
그냥 술 마시다 찾아와서 고백한 걸 제가 매몰차게 찬 상대였고, 웃으면서 말하지만 조금 자기 자랑을 너무 많이 하는 게 있어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던 사람이었지만…딱히 서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서로 마주쳤을 때 인사할 정도는 되는 사이였어요.

“그럭저럭 지내요. 선배도 잘 지내시죠?”
“야~뭔 선배야. 이제 다 졸업했는데. 오빠라고 불러.”
“전 선배라고 부르는 게 편해서요.”
“왜 전화 안 받아. 중국에 남은 애들도 얼마 안 되는데 서로  지내야지~”
“잘 지내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친구랑 같이 술 마신 적도 있는 걸요.”
“그래…?”

저는 대학에 다닐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기 싫으니 빨리 가시죠. 하는 투로 말하다가, 뒤에 동생이 있다는  생각나서 조금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어요.

“전화하셨어요? 제가 요즘 바빠서  받았나 봐요.”
“아~맞아. 전화 많이 했지! 전에 얘기했잖아 모델 좀 해 달라고.”

저는 선배의 말에 조금 머릿속을 뒤적이듯이 별로 신경 쓰지 않던 기억을 끄집어냈어요.
분명 한국에서 아버지가 중소기업을 하시는 분이셨고, 돈이 부족할 일은 없는 집이었어요.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그렇고, 저한테 고백할 때도 주변 애들이 다 저만 보면 형수님이라고 하게 해주겠다며 고백해서 굉장히 어이가 없었던 게 기억이 났어요.
실제로 여러 남자가 돈에 끌리듯 형님 하고 따라다니던 사람이었고, 그런 걸 좋아하는 여자애들도 많이 쫓아다녔지만…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아는 사람 정도로만 알고, 더 친해질 생각을 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어요.

“모델…그거요? 스포츠 밴드 양말이었죠?”
“이야, 기억해줬네? 관심 있었나 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대학에 다니면서도 계속 자기가 졸업하면 사업할 건데 이런 상품이다 이렇게 만들 거다 하는 말만 해대고, 어디에  거다, 누구랑 할 거다, 얼마를  거다 하고 맨날 말하면서 유학생 애들한테 떠받들어지는걸 즐겼으니…모를 수가 없을 만한 일이었어요.

“진짜 모델 한 번만 해주라~내가 모델비 제대로 챙겨준다니까. 밥도 사주고. 사업 얘기도 좀 하고…전속모델 하는 거지. 우리 대학에서 창업하고, 같은 대학에 다니던 모델~스토리 되잖아? 거기다 네가 꾸준히 운동해서…와, 여전히 몸매 장난 아니네. 이거, 하체가 진짜 보물이라니까…? 사슴 같아 사슴. 이거에 딱 우리 양말 하나 신으면, 누가 봐도 와~이 양말 멋있다.  양말 신으면 나도 이 사람처럼 되겠다 생각할 테고. 응?”

저는 정말  듣기 싫다는 투를 확실히 내면서 손바닥을 내밀어 말을 멈추게 했어요.
확실히 재미있는 상품이기도 했고, 대학에 다니는 동안 제가 운동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굉장히 많이 나서, 시제품으로 만든걸 선물 받아 써보기도 했지만…별로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테이핑을 넣는다고 양말도 두꺼워서, 러닝 위주로 운동하는 저한테는 별로 맞지 않았고…테이핑도 직접 하는 만큼 팽팽하지도 않았고, 매번 테이핑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하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효과가 크지도 않았어요.
정리해서 말하자면, 별로 필요도 없는 상품이었고…정말 냉정하게 말해서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하지만 이런 피드백을 다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어서, 저는 그냥 확실하게 거절 의사만 밝혔어요.

“전에도 말했는데, 관심 없어요.”
“아~ 그러지 말고. 나 사업 잘돼. 아빠가 투자도 해주고~진짜 괜찮은데, 너가 진짜 모델 딱이야.”
“…저 죄송한데 오늘  홍콩 갔다가 돌아와서. 피곤하거든요? 집에 가는 길이에요.”
“어…홍콩?”

선배는 그제야 제 뒤쪽으로 시선을 향했고, 동생과 눈을 마주쳤어요.
고개를 들어 동생을 올려다보던 선배는 왠지 표정이 묘해지더니 저한테 질문했어요.

“어…남자친구 분이세요? 아~그래서 홍콩…? 아니, 에이 설마. 너 그런 개그 치는 성격은 아니잖아.”
“…남자친구 아니에요.”
“남자친구 아니야? 그치? 근데 그럼 무슨 사이야?”
“하아…전 피곤해서 갈게요. 조심히 가세요.”

저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선배가 슬슬 짜증 나서, 그냥 무시하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뒤돌아서서 동생 하고 걸어갔어요.
그러자 선배가 갑자기 다가와서 앞길을 막았어요.

“어, 어허~어딜 가 어딜. 얘기 아직 하고 있잖아.”
“뭐 할 얘기  남으셨어요?”
“아니…모델 일 생각 없으면 밥이라도 한번 하자고. 전화 잘 안 받아주니까 이럴 때라도 얘기해야지. 한국인들끼리 타지에서 좀 친하게 지내야 서로 도움이 되지.”

저는 대놓고 한숨을 내쉬고, 애써 웃으면서 대답했어요.

“네, 그래요. 나중에 밥이나 먹어요.”
“오오…말한거다? 오케이, 나중에 내가 전화할 테니까. 내가  살게.”

그제야 선배는 길을 비켜줬고, 저는 동생과 함께 밤길을 걸어서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어요.
제가 아는 사람이라 참고 있었던 건지 동생은 조용히 있다가, 다시 단둘이 되었을 때쯤 굉장히 짜증이  듯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어요.

“쟤 뭐 하는 노…누구예요?”
“어? 아…대학때 알던 선배예요. 음…저한테 고백했는데 차였었어요.”
“고백했었다고요?”
“음…예전에 별명이 여, 여왕님이었던 적이 있다고 한 기억나요?”
“…네.”
“그때 고백했던 사람이에요. 제가 고백받으면 너무 단호하게 찬다고, 약간…남자애들 사이에서 조금 장난처럼 저한테 고백하는 게 유행했었거든요.  마시다가 갑자기 술게임이라면서 전화하고 사귀자고 고백한다거나. 제 입장에서는 민폐기만 했는데. 뭐…제일 특이하게 고백하긴 했어요.”
“특이하게 고백을 해요?”

그러고 보니 고백을 받았던 곳이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 내의 놀이터였어요.
제가 밤에 조깅을 할 때  근처를 지나간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건지 기다리고 있다가 고백했던  떠올랐어요.

“뭐, 연애 눈치가 없다면서…밀당 적당히 하라고 하더니, 자기랑 사귀자고, 돈 많다고…주변에 애들이  저를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거 생각해보라고 기분 좋지 않으냐면서 오늘부터 자기 여자친구를 하라고 해서….”

저는 그때 얘기를 해주다가, 갑자기 제가 어떻게 찼는지 떠올라서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어요.
동생은 제가 얘기를 하다가 멈추니 궁금한지 가만히 말을 이어서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저는 제가 왜 이 얘기를 해줬지 하고 당황해서 식은땀이 났어요.

“…그래서요?”
“그, 저기…느, 늘 이러는 건 아니에요…?”

저는 조금 고민하다가. 그래도 말을 조금 순화시켜서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용하게, 좀 더 부드러운 말투로 얘기했어요….

“술 취했으면 집에나 들어가시라고….”
“네?”
“택시 타는 곳 가리켜서 말해주고, 바로 뛰니까…못 따라오더라고요.”

…사실  취했으면 집에나 들어가시고, 안 취했으면 맨정신에 정신 나간 소리 하실 시간 있으시면 집에 들어가서 발이나 닦고 주무시라고 했지만….
거기까지 말해주기에는 좀 부끄러웠어요.
동생 앞에서는 얌전한 말만 하고 조용조용하게, 나긋나긋하게 말하기만 하는데…동생은  말을 듣고 놀란 것인지 가만히 저를 내려다보고 있어서…저는 왠지 그게 정말 누나가? 라고 묻는 것처럼 느껴져서 옷소매를 잡고 끌어당겼어요.

“지, 진짜 그게 다였어요. 집에 가요.”

그대로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는 문득 동생의 연애가 궁금해졌어요.
제가 고백받았던 얘기를 해서인지 동생은 최근에 고백받은 일이 없었을까 싶었고, 여자친구를 사귀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도 들었어요.
선배가 동생을 보고 남자친구냐고 물어본 게 왠지 마음에 걸렸고, 다른 사람도 저를 여자친구로 착각하고 동생한테 고백하지 않거나 하면…동생이 저 때문에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동생에게 얘기를 꺼냈어요.

“대학 가면 여자친구도 만들어야 돼요?”
“…네?”
“지금은 대학 공부 때문에 누나가…성욕 해소하는 걸 도와주는 거지만, 대학에 가면 많이 쌓일 거 아니에요? 무, 물론 그거 때문에 사귀라는 건 아니에요…아, 그렇다고 해서 아무하고나 사귀면 안 돼요?”

당연히…정상적인 연애는 성욕 때문에 해서는  되는 거였고, 그런  굉장히 거부감이 들었어요. 동생은 성욕 때문에 연애하지 않았으면 했고,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생은 왠지 갑자기 말이 없어져서 표정이 안 좋아졌고…저는 아까  선배 때문에 기분이 아직 안 좋은데 제가 잔소리를 한 건가 싶었어요.
저는 그래도 이런 얘기는 꺼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집 앞의 문으로 다가가면서 분명 여자들에게 인기 많을 동생을 생각해서 조심해야 할 여자에 대해서도 얘기해줬어요.

“너무 얼굴만 보거나…좋아하는 이유가 몸 때문이라고 노골적이게 말하는 애들은 안 좋아요. 제대로, 배려심 있는 점이 좋다거나…잘 보면 섬세한 점이 좋다거나, 자제심이 있고 상냥한 점이 좋다거나 하는 애들…앗, 누나랑 너무 같이 다니다가 여자애들한테 오해받으면 안 돼요. 고백하려고 하다가도 오해받으면….”
“하아….”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한숨을 내쉬더니, 현관문 열던 손을 갑자기 잡아 멈춰세우고는…제가 놀라서 돌아서서 올려다보자 제 머리 바로 옆의 문을 손바닥으로 쿵 하고 치면서 막아 세우고, 조용한 복도에서 고개를 숙여 제 귓가에 작게 속삭였어요.

“누나는 내가 여자친구 생기면 좋겠어요…?”
“그야… 대학생 하면 캠퍼스에서 연애하는 게 꿈이라고도 하고….”

왠지 몹시 화가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동생이 말해서 저는 저도 모르게 조금 겁먹었어요. 으르렁대는 듯 울리는 목소리였고, 눈치를 보면서 눈을 치켜뜨며 동생의 얼굴을 보니 눈살을 찌푸린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아 보였어요.

“누나하고는, 섹스도 못 하잖아요…그렇게, 하고싶어하면서….”
“그래서 여자친구 사귀라고?”

저는…갑자기 굉장히 화가 나 버린 동생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눈치를 보면서 문에 등을 기댄 채 뒷걸음질 쳤어요.
더 이상 뒤로   없는데도 왠지 모르게 무서워서 더 벽에 붙어버렸고, 동생은 그런 저를 가만히 내려다보더니…갑자기 턱을 잡아 들어 올리면서, 얼굴을 점점 가까이해 왔어요.

어째서인지 저는 그게 혀를 서로 맞대고 싶어하는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고, 그대로 키스해 버릴 것 같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어요.
깜짝 놀라면서 제가 다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아 가리자, 동생은 제 손을 무시하면서 그대로 위에 입을 맞췄어요.

“우, 우응?! 앗…?! 아, 안돼요…! 읍…!”

그대로 동생은 당황한  손목을 잡아 입가에서 떼게 하더니…가만히 저를 내려다보다가 제 입을 막았어요.
제 입을 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저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동생과 눈을 마주치던 저는 왠지 동생이 화가 나면서도 조금 속상해하는 것 같아서 갑자기 가슴이 굉장히 갑갑해졌어요….
미안하다고 말해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왜 그런지 몰라 당황하던 제게 동생은 입을 막은 손 위로 다시 키스하더니, 손가락을 살짝 벌려 혀를 쭈욱 내밀어 제 입술을 핥아왔고…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입술을 살짝 벌리면서 동생의 혀에 쪽 하고 소리를 내줬어요.
그대로 동생이 혀가 입안으로 들어오고…서로 혀를 조용히 휘감으면서, 센서 등이 꺼진 어두운 복도에 키스 소리가 쪼옥, 쪼옥 하고 작게 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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