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식량이 필요하다.
* * *
우리 중대는 다른 중대와 합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점심이 되기 전 모든 대대의 중대들이 하나의 장소에 모였다.
대대장 황은정 중령이 단상으로 올라간다.
“육해공 전군을 통틀어 오직 우리 특전사만이 천리행군을 한다. 이 영광스러운 순간을 그대들과 함께 수행할 수 있어 영광이다. 대대장인 나 황은정 역시 너희와 함께 똑같이 400km 행군을 진행한다. 나의 심장은 특전사니까 이것은 우리의 전통이니까 말이다. 단 하나의 낙오자도 없이 끝까지 가보자!”
나는 대대장도 천리행군에 당연히 참가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 놀랐다. 특전사는 참으로 이상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내 생각과 달리 솔선수범을 좋아하는 황은정의 표정은 벌써부터 들떠 있었다.
‘저년 저거 8박9일 동안 존나 굴러도 똑같이 저 표정인 거 아니야?’
이상하게도 황은정 중령이라면 이런 훈련을 즐기지 않을까 싶다. 뼛속까지 군인이니까 말이다.
황은정은 대원들의 심정을 아는지 짧게 대대장의 말을 끝났다.
이제 여기에서 정비를 하며 저녁이 될 때까지 쉬어야 한다. 천리행군은 야간에만 이동을 하기 때문이다.
특전사에게는 낙하를 통하여 적진에 투입하는 임무가 내려진다.
이 과정에서 아군과 떨어져 고립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천리행군은 바로 이런 상황을 대비하는 극한의 훈련이다. 이걸 재현하기 위해 훈련 과정에서 추가로 임무가 내려오며 보급도 열악하게 만들어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더럽게 빡센 훈련이라는 거다.
주변에 표정이 좋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다들 예민해지기 쉽다는 걸 알아서 서로가 서로를 건드리지 않으려 함이 느껴진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날이 저물었고, 첫날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20kg의 군장을 짊어지고 밤에만 이동하여 9일 동안 400km를 움직인다는 건 결코 쉽지가 않다. 체력이 가장 좋은 첫날은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다들 체력이 줄어드는 걸 우려하여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하게 지휘관을 따르며 이동을 한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한참을 이동하다 어느 야산의 중턱에 도달했다. 상당히 넓은 공터가 있었고, 여기서 쉰다고 한다.
첫날의 이동이 끝난 거다.
대원들이 막사를 설치했고, 지휘관들은 대원들을 통솔한 이후 환자와 부상자가 없는지를 살폈다. 아직은 첫날이라 특별한 무언가는 없었다.
‘오늘 퍼지면 그땐 답도 없는 거지.’
다음날 아침.
다들 곯아떨어졌다. 잠은 늦게 깨운다고 했기에 불침번을 제외하면 다 쉬고 있다.
특별한 상황을 대비한 힘든 훈련이라 이러한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규율을 강조하지 않는다. 전시에 그런 거 따지면 죽기 딱 좋다가 이유이다.
“금태양 소위 지휘부로 가자.”
나는 황은아 중대장과 함께 지휘부로 이동하였다.
“1중대 3소대에 내려온 임무를 하달하겠다.”
나는 어떤 임무인지 중대장에게 듣기 시작했다.
“3소대는 이틀 뒤 소대원들과 함께 특별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3소대가 가장 빠르다는 판단을 통해 내려진 임무이다.”
내가 체력이 좋아서 시키는 거 같다. 사실이니까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 지점으로 이동하여 떨어진 물자를 확보하고, 삼일 후 저녁 22시 본대가 지나가는 여기 지점에서 다시 합류한다. 오는 동안 적군의 시야를 피하기 위해 우회경로를 사용한다.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천리행군이 정말로 짜증나는 건 바로 이거다.
이렇게 힘들게 밤마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임무가 따로 계속 하달이 된다.
우리 소대는 함께 움직이던 본대에서 빠져야 한다. 그리고 다른 어떤 특전사들보다 힘든 이틀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다들 잠깐의 쉴 틈이면 그대로 주저앉는 행군이 이틀간 이어졌다.
나는 임무를 이행하기 위해 소대원들을 데리고 본대에서 떨어져 단독 이동을 시작했다.
잠을 적게 자고 저녁이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이동한 결과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주는 몇 가지의 보급품을 획득했다.
대원들은 주저앉고 싶은 표정이다.
“다들 정신 차려라. 정신이 육체를 이기면 못 할 것도 없다.”
지휘관들이 자주 하는 말이라 따라 하기는 했지만, 대원들 상태는 나쁘다.
이제 우리는 이 무거운 보급품을 추가로 들고, 중간에 자잘한 임무 몇 가지를 수행하면서 이동하다 본대와 합류를 해야 한다.
군장 20kg도 욕이 절로 나오는 무게인데 여기서 추가 물품까지 쥐고 이동하려니 죽을 맛이다.
나는 지휘관이라 짐을 들지 않아도 되지만 대원들의 고통을 분산하기 위해 가장 무거운 걸 들어주었다.
남자이고 소대장인 내가 가장 무겁게 들자 누구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리더십이라 생각하면 묵묵하게 움직였다.
신체 능력이 우월한 나도 솔직히 지금은 짜증나고 피곤하다.
내가 이렇게 지칠 정도라면 다른 여자들은 오죽할까 싶다.
“소대장님이 가장 고생한다. 여자인 우리가 인상을 쓰면 곤란하지. 다들 조금만 힘내자!”
에이스인 한수아 상병이 병사들을 독려한다. 그녀 역시 어렵고 힘든 일을 자처한 상황이라 남들보다 훨씬 더 군장이 무겁다.
우리는 서로 협동하여 가며 한참을 이동하였고, 그렇게 아침이 밝았다.
“여기서 쉰다.”
이번 임무에서 이동과 관련한 모든 것은 내가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소위에 경험도 부족한 내가 어떻게 이런 임무를 받았을까 생각하면 대번에 황은정 중령이 떠올랐다.
‘썩을 년!’
화가 난다. 이건 분명히 황은정이 내린 명령이다.
내가 싫어서 이런 임무를 내렸다면 적당히 복수를 한다는 마음을 품었을 거다. 그런데 황은정은 나를 진정한 군인으로 만들고 싶어서 좋다고 이런 임무를 내렸을 년이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했어. 넌 군인 체질이야. 최고다 금태양!
‘신이 나서 이딴 소리를 지껄일 년!’
여기서 막나갈까 생각도 했지만.
고작 이것도 못하는 남자일 줄은 몰랐어.
이딴 실망의 소리를 내뱉을 거고 그건 나의 자존심을 긁는다.
‘넌 내 밑에 깔려서 앵앵거려야 제 맛이다!’
나는 피로함을 참으며 대원들을 독려했다.
현재 상황을 전시라 가정을 하면 발각 우려가 높은 낯은 위험하다. 지금은 다양한 이유로 쉬어야 한다. 나는 대원들에게 막사를 설치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포근한 시간대라면 산길에서 그냥 자라고 해도 아무도 불만이 없다.
‘그래! 편한 게 최고지.’
다들 군장을 뒤에 두고 산에서 뻗었다. 나는 불침번 1번을 자처하며 대원들을 재웠다.
지휘관이 무너지는 상황이 가장 위험하지만 내가 압도적으로 체력이 좋아서 문제는 없었다.
다들 극도의 피로감으로 인하여 죽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잠을 잘 자고 있다.
“아아. 으음.”
신음성이 들려온다. 나는 누가 끙끙거리는지를 살폈다.
부상자가 발생한다면 하루 종일 힘들어서 인상을 쓰는 막내 나정미 이병이 가장 유력하다. 바로 확인한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문제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하나씩 살펴보니 우리 소대의 에이스인 한수아가 힘들어 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수아를 흔들어서 깨웠다.
“너 괜찮아?”
“그..그게 춥고 배가 고픕니다.”
우리는 내일까지 먹을 게 나오지 않는다. 이걸 알기에 본대와 떨어지기 전 든든하게 먹었다.
배가 고픈 대원이 나왔고, 그게 에이스인 한수아라는 사실이 조금 당황스럽다.
“너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거야?”
“아무래도 제가 운동을 너무 무리하게 해서 체지방이 급격하게 떨어졌던 거 같습니다.”
“야이 미친년아. 천리행군을 앞두고 체지방을 낮추면 어쩌자는 거야.”
위급한 상황에서 체지방이 떨어지면 위험하다. 뱃살이니 허벅지살이니 해도 체지방은 생존을 위해 필수다. 몸에 군살이 하나도 없어서 예쁘다고 여겼던 한수아는 그 후유증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멋진 몸을 보여주고 싶고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겨서 그만.... 죄송합니다.”
고민이 생긴다.
여기서 연락하여 한수아를 빼면 일은 쉽다.
그렇지만 이렇게 될 경우 우리의 임무는 실패로 봐야 한다.
“죄송하다는 빼. 아픈데 사과까지 하면 서럽잖아. 계속 행군하는 건 무리겠지?”
“...하..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한수아를 가능하면 열외 시켜야 함을 느꼈다.
“할 수 있기는! 임무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니까 빠져.”
“아닙니다. 진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무슨 말을 하려나 궁금하다.
“뭔데?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
“먹을 거 없습니까?”
우리는 본대와 떨어지기 전에 군장을 털렸다.
적당히 먹는 것도 챙겨서 이동하는 게 맞는데 임무가 어쩌고 하면서 다 털어갔다. 지휘관인 나는 먹을 게 있지 않을까 여기는 모양이다.
“난 애초에 챙긴 게 없는데?”
“예에?”
한수아 상병의 표정을 보니 내가 실수한 모양이다.
우리 사이에 어색함이 찾아왔다.
한수아는 먹을 게 없어서 낙담한 모양이다.
지금 보니 아픈 것이 아니라 그저 배가 고프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사림이 굶주리면 아무것도 못하기는 하지.’
“힘들지만 본대와 합류하면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하루를 참아보겠습니다.”
한수아가 갑자기 전의를 불태운다.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무리다.
“하아~. 잠깐 따라와.”
나는 시체처럼 잠이 든 소대원들을 두고 한수아와 함께 조금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내가 먹을 걸 줄 수가 있기는 한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해야 한다. 괜찮겠어?”
“당연하지 말입니다. 전 초코바면 좋은데....”
먹을 게 있다는 말에 한수아의 눈빛이 살아났다.
“수아야. 바처럼 생긴 걸로 먹는 건 맞는데 초코는 아니야.”
“예에? 그런 게 있습니까?”
“어. 있어.”
“저 배고픕니다. 빨리 주시지 말입니다.”
나는 이제 말을 해야 할 때라는 걸 느꼈다.
“한수아 상병. 정액 급식이라고 들어 봤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