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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화 〉 낙하 그리고 주말 (108/121)

〈 108화 〉 낙하 그리고 주말

* * *

특전사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준비된 정예 군인이다.

백병전에 능해야 하고,

침투를 위해 수영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끝으로 언제든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수 있어야 한다.

낙하.

적지에 침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능력의 하나다. 특전사의 숙명이라 하겠다.

이제부터 여기에 있는 동안 지겹도록 하늘에서 땅으로 뛰어내려야 한다.

지난 며칠간 요상한 낙하 자세를 지겹도록 착실히 연습한 나는 드디어 실전에 돌입하는 날을 맞이했다.

남자는 나 하나에 여자들만 잔뜩 태운 군용 수송선이 서서히 위로 상승했다.

신입 나정미와 나는 처음이고 나머지는 다들 낙하 경험이 있다.

우리 둘을 제외하면 다들 경험에 준하는 여유가 있었다.

“낙하 오 분 전.”

황은아 대위가 고도와 위치를 살피며 낙하가 임박했음을 알렸다.

“배운 걸 잊어도 걱정하지 마라. 몸이 기억한다. 우리 특전사에게 어려운 건 없다.”

황은아 대위가 잔뜩 긴장한 나정미를 겨냥하여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긴장한 나정미 이병.

“금태양 소위. 낙하가 임박했다. 기분이 어떤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보기 좋다. 뛰어내리기 전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네 알겠습니다.”

좀비로 가득한 세상에서 능력자들과 싸우기도 했던 내가 고작 낙하에 겁을 먹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긴장이 되는 건 맞으나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다.

“낙하 일 분 전.”

수송선의 문이 열린다.

이제 뛰어내릴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마지막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주변이 평지라 특별히 위험한 구역은 없다.

고도가 아주 높은 곳에서 하강하는 것이 아니라서 낙하산을 금방 펼친다는 것 정도만 기억하면 된다. 낙하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높게 올라가야 하지만 우리는 이걸 재미로 하는 게 아니다. 빠르게 적지로 침투하기 위한 훈련이다.

상황을 점검한 후 나정미의 귀를 살짝 잡아당겼다.

“남자인 나도 하잖아. 하고 나면 정말 별것도 아닐 거야. 나중에 부끄럽지 않게 지금 용기 내자.”

나는 의도적으로 나정미의 앞에 섰다. 남자인 내가 뛰어내리면 그녀도 용감하게 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낙하 오 초 전.”

“사 초”

.

.

“낙하 시작.”

황은아의 외침과 함께 낙하가 시작되었다.

공 상사의 낙하를 시작으로 하나씩 뛰어내린다.

특전사답게 일사불란하게 우르르 내려갔다.

금방 내 차례가 와서 나도 바로 뛰어내렸다.

자유낙하를 시작하자 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묘했다.

분명한 건 결코 싫지 않은 감정이라는 거.

긴장한 몸이 풀리며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다들 낙하산을 펼쳤다.

나도 거기에 맞춰 낙하산 줄을 잡아당겼다.

튀어나온 낙하산이 활짝 펼쳐지면서 나의 몸을 일시적으로 붕 뜨게 만들더니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여자들 사이에 둘러싸여 지상으로 내려가는 건 낭만이 있는 일이다.

줄을 적절히 당겨가며 원을 그려놓은 낙하지점 안으로 정확하게 도착한 나는 우월한 신체를 바탕으로 완벽하게 착지했다.

‘이거 재미있어서 또 하고 싶은데?’

너무 짜릿했지만 너무 빨리 끝났다.

그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잘 했어. 금 소위.”

어느새 다가온 황은아 대위가 아주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소대장답게 우리 소대원들을 챙겼다.

나정미는 혼자 조금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낙하산 정리하는 걸 도왔다.

“잘했어. 나정미.”

나도 황은아가 했던 걸 그대로 따라 했다.

나를 바라보는 나정미 이병의 눈빛은 뭔가 감동받은 분위기였다.

*****

나를 포함한 새로 온 사람들의 낙하가 끝났다.

이제 우리 중대에는 낙하 경험이 없는 대원은 없다.

커다란 일정 하나가 끝난 탓에 부대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그렇게 주말이 찾아왔다.

나는 직업 군인이라 주말은 근무가 아니면 숙소에서 쉰다.

오늘은 대원들도 큰 행사가 찾아오고 있기에 개인 정비를 가진다.

나는 내가 관리하는 3소대 소대원들을 모두 모아 두고 물었다.

“차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없어?”

우리 소대의 에이스 한수아 상병과 또 다른 에이스인 김미진 일병이 손을 들었다.

생활기록부를 봤기에 이들 둘이 손을 든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예상처럼 둘이 손을 들었으나 이건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한수아. 나를 따라 밖으로 나가자.”

“네 알겠습니다.”

군바리가 밖에 데리고 간다는데 싫어할 리 없다. 한수아 상병의 표정이 밝아졌다.

김미진 일병은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보면 상당히 훌륭한 군인이다. 그렇지만 인물도 별로고 체격이 지나치게 좋다. 이곳에서는 저런 여자가 인기가 있는 스타일이라고 하니 내가 좀 굴려도 불만은 없을 거다.

한수아는 나를 따라 부대 밖으로 나왔다.

“나 오늘 중고차 살 거다. 수아 네가 좋은 걸로 골라 봐. 믿는다.”

“저..저는 그렇게 자세히는 모릅니다. 김미진 일병이 입대 전 정비소에서 일을 했습니다. 저보다 김민진 일병을 데려가시기 바랍니다.”

“시끄러워. 그냥 따라와.”

이곳 세상에서 중고차를 잘 산들 나에게 특별한 의미는 없다. 김미진이 비록 내 부하이지만 둘이 나가는 건 생각만 해도 벌써 끔찍하다.

나는 우선 숙소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음료가 있다. 먹고 싶은 거 마셔.”

“네 알겠습니다.”

한수아는 콜라를 꺼내 마셨다.

나는 의도적으로 한수아가 볼 수 있게 문을 열고 옷을 갈아입었다.

팬티만 입은 상태에서 천천히 옷을 고르는 척하며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를 하나 입고 밖으로 나왔다.

“나 어떠냐?”

“역시 남자는 청바지에 티셔츠가 가장 국민 복장입니다. 훌륭합니다. 소대장님.”

“다행이네. 너 근데 볼이 왜 이렇게 붉어?”

“아..아닙니다.”

“너 혹시 옷 갈아입는 거 구경했냐?”

“그...그게 보여서. 죄송합니다.”

“뭘 그만한 일로 그래. 보고 싶으면 말해. 보여준다.”

“푸웃.”

한수아 상병은 크게 놀랐는지 입에 있던 콜라를 조금 뱉었다.

“뭘 놀라냐?”

툭.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며 한수아의 가슴을 살짝 쳤다. 탱탱한 것이 감촉이 좋다.

“흐응.”

내가 가슴을 살짝 누를 때 나온 신음. 본인이 말을 하고 본인도 놀랐는지 입을 꾹 닫는 한수아 상병.

“죄..죄송합니다.”

“뭘 죄송해. 그럴 수 있지. 이제 가자. 수아야. 밖에선 소대장 말고 오빠라고 해.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너 오빠한테 그렇게 답해?”

“아....아니야. 오빠.”

확실히 센스가 있다. 나는 대견하다는 핑계로 한수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귀와 목도 만졌다.

한수아와 나는 읍내로 나가는 김 중사의 차를 얻어 타고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가까운 중고차 단지로 향했다.

“예산은 얼마나 생각하고 계십니까?”

“한 오천? 알아서 해. 돈은 넉넉하니까.”

“금 소위님 부잔가 봅니다.”

“부자까진 아니고, 조금 여유는 있어.”

고개를 끄덕이는 한수아.

나는 원래 자동차를 2금융에서 100% 할부로 한도 내에서 가장 좋은 걸로 구입하려고 했다. 군인이라 1금융 대출도 가능하지만 귀찮게 이것저것 서류를 많이 내라고 하기에 그냥 이자를 더 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 세상 역시 내 통장과 연동이 되어 가진 돈이 고스란히 있었다.

스포츠카를 사고 싶지만 특전사라 비포장도로가 많은 부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좋은 SUV를 하나 살 거다.

가는 동안 한수아는 자신의 폰으로 중고차에 대해 열심히 검색하고 공부했다.

당사자인 난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가는 중인데 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한수아의 모습을 보니 더 마음에 든다.

‘누구 집 딸인지 몰라도 잘 키웠네. 내가 맛있게 먹자.’

중고차 단지에 도착해서 한수아가 차 구경하는 걸 지켜보았다. 꼼꼼하게 살핀 한수아가 조심스레 추천하는 걸 바로 결제하고 차를 뽑았다.

깎아달라는 말도 하지 않자 딜리의 얼굴에 꽃이 폈다.

이곳 세상은 행정의 절차가 많이 간소화된 곳이다. 그래서 금방 하얀색의 새것과 다름이 없는 SUV 출고가 끝났다.

“나 대신 차 보느라 고생했다. 한수아.”

“알아서 하라고 말은 했어도 이렇게까지 알아서 하라고 할 줄은 몰랐습니다.”

“사람을 믿으면 끝까지 믿는 거야.”

“아. 네.”

“너 뭐 먹고 싶어? 고생했으니까 말만 해.”

“정말 뭐든 다 말만 합니까?”

“당연하지. 고생했으니까 내가 팍팍 쏜다.”

“저 동해로 가서 영덕대게를 먹고 싶습니다.”

눈웃음을 치며 말하는 걸 보니 어차피 가지 못한다고 여겨 장난으로 던지는 말이다.

이게 귀엽다 귀엽다 하니까 계속 더 귀엽게 논다.

“좋다. 콜. 동해 바다로 출발!”

“예에?”

“나 소대장이야.”

나는 답과 함께 액셀을 힘차게 밝았다.

부아아아앙.

여기서 강원도까지 두 시간이면 충분히 간다.

왕복시간만 계산을 해도 점호 시간 전에 복귀는 불가능이다.

한수아는 혼자 긴장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쪼냐. 너 담당관이 옆에 있는데.”

“죄송합니다.”

“차를 보다 시간이 지연되면 외출에서 외박으로 바꾼다고 행보관하고 이야기 끝났어. 넌 오늘 외박이다.”

“감사합니다.”

한수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우리는 그렇게 동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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