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참호격투
* * *
계급장은 떼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부대 자체적인 전통에 불과하다.
나는 여전히 장교의 신분이다.
식당에 마련된 직원용 자리로 가서 밥을 먹었다.
여자들 사이에 둘러싸여 밥.
대화에 끼이지 않고, 동료들의 얼굴을 하나씩 익혀갔다.
“거봐. 넌 특전사 체질이라니까.”
1중대의 훈련을 여전히 지켜보고 있는 황은정 대대장이 자신의 선택이 훌륭했음을 알리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상관인 그녀의 말에 다른 여군들이 거의 자동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내 눈은 역시 정확해.”
나를 특전사로 만든 장본인이 저렇게 말을 하니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참자. 참아. 여긴 군대야.’
나는 식사가 끝난 후 대화를 더 나누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벤치에 앉아 멍하니 쉬고 있을 때 내 옆으로 중대장 황은아 대위가 찾아왔다.
경례를 하자 그녀는 내 바로 옆에 앉았다.
“너 대단하더라? 난 남자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거에 충격 받았어.”
“별거 아닙니다.”
“이게 별거 아니면 우린 죽으라는 소리냐?”
“....”
“남자 소대장이라고 기어오르는 년들 많을 거다. 초장에 확실히 잡아. 그래야 앞으로 편해.”
“알겠습니다.”
황은아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저는 비흡연입니다.”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황은아는 다시 담배를 넣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들고 다니는 건 셔틀들이나 하는 짓이다.
내가 이상하게 여긴다는 걸 느꼈는지 황은아가 먼 곳을 바라보며 답했다.
“군대가 담배를 펴야만 친해지는 사람들도 많은 곳이다.”
황은아 대위는 사람을 파악하여 제한적으로 담배를 피우기도 하는가 보다.
‘군대는 인맥이라고 하더니 사실이네.’
엘리트 군인 집안의 딸도 인맥을 관리하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조금은 신기하다
“너 언니 조심해.”
“예?”
“내 언니지만 포기를 모르는 진짜 지독한 년이야.”
“그런 거 같기는 합니다.”
“동생이 이런 말 하기는 그런데 너를 보는 눈빛이 좀 뜨겁더라.”
“예?”
“함께 자랐지만 누군가에게 이렇게 관심을 보인 적이 없는 여자야. 긴장해.”
“알겠습니다.”
내 어깨를 살짝 친 황은아 대위는 중대본부로 떠나갔다.
*****
오후도 역시 체력과 관련한 다양한 테스트가 이어졌고, 당연히 내가 모조리 일등을 했다.
병사들을 관리하는 부사관들이 여자가 남자한테 지면 어떻게 하냐며 다들 젖을 떼라고 난리를 쳤으나 정작 본인들도 나에게 운동으로 발렸다.
나는 저녁이 되었을 때 퇴근을 했다.
부대 바로 옆에 지어진 낡은 직원용 숙소로 들어왔다.
거실과 방이 하나 있는 작은 1인실 숙소. 최소 1년은 여기서 생활해야 한다.
미리 보내 놓은 짐들은 숙소 앞에 놓여 있어서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정리하기 귀찮아서 일단 그냥 둔다.
조용히 누워 있으니까 다른 방에서 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방음이 부실한 건축자재와 나의 우수한 청력이 만든 결과이다.
소대장 엄청 꼴리지 않냐?
나 보지가 벌렁거려서 혼났다.
대대장이 뚫어지게 쳐다보더라. 오늘 하루 종일 있었잖아.
그러게. 그년 그거 사고 치기 직전의 눈빛이더라.
나도 금 소위 정도면 사고 저지르고 영창 간다.
미친년.
탕탕탕.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나야. 대대장.”
황은정 중령이다.
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검은색 바탕에 다양한 꽃무늬가 새겨진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군복도 잘 소화하는 걸 봤을 때 짐작했듯 몸매가 좋아서 옷이 잘 어울린다.
“나 때문에 너 여기로 왔잖아. 같이 술이나 하려고 왔어.”
황은정은 술과 치킨을 들어서 보여주더니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온 황은정 중령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직 짐 정리도 안 끝났네.”
“네 그렇습니다.”
“퇴근했잖아. 누나라 생각하고 편하게 이야기해.”
“아. 네.”
황은정은 이런 숙소를 잘 아는지 능숙하게 상을 하나 꺼내더니 치킨과 술을 올리고 식기를 가져와 세팅을 끝냈다.
“앉아.”
센스가 없는 년은 아닌지 후라이드 하나 양념 하나로 두 마리를 가지고 왔다.
황은정과 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셨고, 치킨도 뜯었다.
내가 부하인데, 말을 거의 하지 않자 조용했다.
술이 몇 잔 들어간 황은정은 점점 말이 늘어갔다.
나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황은정의 다리와 팬티로 향하는 시선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분홍색 망사 팬티라 보지털도 보인다.
빤히 보이는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황은정이다.
“내가 싫지?”
“아니라고는 못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황은정은 술을 마셨다.
“그럴 거라 생각했어. 근데 난 말이야. 후회하지 않는다. 넌 최고의 특전사가 될 거니까.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거지.”
“....”
“군대는 하고 싶은 거 하는 곳이 아니야. 그러니까 나 너무 미워하지 마. 여기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는 천국이 되는 곳이야.”
“제가 사회생활을 잘 못합니다.”
“내가 있잖아. 너를 여기로 데리고 왔는데 설마 그런 것도 챙기지 않을 것 같아?”
“감사합니다.”
“이제야 나를 알아봐 주는 군. 자~. 마시자.”
황은정은 혼자 신이 나서는 열심히 술을 마셨다.
나는 그런 그녀와 함께 계속 술을 마셨다.
이런저런 군대 이야기를 했다. 주로 황은정의 무용담이었다.
작은 입술로 조곤조곤 말하는 게 귀엽고 내용도 웃겨서 생각보다 집중해서 들었다.
내가 잘 들어주자 황은정은 더욱 열심히 군대 이야기를 했다.
“저 화장실 좀.”
“어. 그래 갔다 와.”
술을 많이 마셨고, 언제 가나 싶어서 오줌을 참았다.
나는 시원하게 오줌을 갈겼다.
오줌을 누고 손을 씻고 밖으로 나왔다.
“너 서서 오줌 눠? 소리가 다 들리더라.”
“무슨 문제 있습니까?”
“서서 오줌 누는 남자들은 성욕이 강하다고 하잖아.”
“그렇습니까?”
“오해하진 마.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여자들이 많아서 하는 이야기니까.”
“네.”
“어라? 시간이 제법 늦었네. 너도 자야지. 나 이제 갈 게.”
황은정이 일어서더니 밖으로 나갔다.
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 강렬해서 내심 기대했더니 그냥 가서 아쉽다.
‘실수하면 협박 좀 하려고 했더니 아쉽네.’
*****
체력측정이 끝났다.
진정한 특전사가 되기 위한 기본 교육이 시작되었다.
“오늘부터 기본 교육을 실시하겠다. 금태양. 특전사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 뭐지?”
황은아 대위가 물었다.
시발.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머뭇거리니까 바로 답을 해준다.
“낙하산 훈련이다.”
답을 모른다고 뭐라 하지 않는 걸 보니 이런 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여기고 한 질문인가 보다.
“지금부터 뛰어내릴 때 자세와 착지할 때의 자세를 집중적으로 연습한다. 조교 앞으로.”
비행기에서 떨어질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와 땅에 닿으면 어떻게 충격을 흡수하며 구르는지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냥 몸을 모으고 구르는 자세에 불과했다.
필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몇 시간을 이 자세만 반복해서 하려니까 재미가 없고 따분했다.
드디어 점심이다.
군대는 밥이 맛없다. 그걸 아는데 요즘 식욕이 좋다.
아무래도 군대 효과가 아닐까 싶다.
문득 입대할 때 봤던 군대 관련 글이 떠올랐다.
초코파이를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을 가르쳐 줄까?
뭔데?
군대를 가.
밥을 먹고 밖으로 나와 보니 오후 훈련을 준비하는 일부의 병사와 부사관의 모습이 보였다.
모레를 주변에 쌓은 후 가운데에 원형의 풀장을 만들었다.
물이 있어야 할 곳은 진흙탕이었다.
이건 군대에서 흔한 훈련인 ‘참호격투’
드디어 이걸 하는 날이 왔다.
장교 훈련을 할 때에는 이게 없었다.
이유는 남자가 너무 많아서.
하지만 여긴 남자가 나 하나다.
*****
오후 훈련이 시작되었다.
병사들이 연병장에 서있다.
황은정 중대장 나에게 다가왔다.
“금태양 넌 남자니까 탈의하지 마.”
“예 알겠습니다.”
지휘관들이 먼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전부 상의를 탈의하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젖을 가진 여자,
말랐는데 거유.
함몰 유두.
그 외 등등.
다들 자신의 젖을 자랑하며 상의를 탈의하고 병사들 앞에 섰다.
“오늘은 참호격투를 한다. 금태양은 열외 하도록 하겠다. 열외.”
나는 중대장의 말에 옆으로 빠졌다.
“모두 상의를 탈의 한다.”
여자들 모두가 상의를 탈의했다.
나는 특전사들의 젖을 즐겁게 감상했다.
크고 탄력 있는 젖을 가진 여자들은 가슴을 짝 폈고, 그렇지 않은 여자들은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이게 좋은 상체의 기준인가 보다.
“각자 다섯 명씩 5인 1조로 경기를 치르겠다. 룰은 간단하다. 힘으로 밀어서 참호 밖으로 보내면 끝이다.”
지휘관들이 적당히 조원을 나눠주었다.
누가 봐도 덩치가 좋은 여자들 팀이 있고, 호리호리한 팀도 있고 히다.
그래도 특전사들이라 그런지 다들 표정이 다부지고 비장하다.
의욕이 넘치는 거다.
‘지고 싶은 년들이 없어서 좋네.’
다들 눈빛이 매섭다.
이때....... 내가 손을 들었다.
“뭐지?”
황은아 대위가 나를 바라본다.
“저도 특전사입니다. 참호격투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