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계급장 떼고 시작하는 게 전통이다.
* * *
첫 휴가를 나왔다. 포상에 포상을 더하여 무려 14박15일로 말이다.
기본 근무가 끝나면 직업 군인이라 정상적인 연월차의 사용이 가능하나 아직은 아니다. 동기들보다 일주일이나 더 오래 나왔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동생은 하지 않던 공부를 하느라 바빴고, 엄마는 다시 매출이 올라오는 시기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집에서 멍하니 뒹굴 거리며 잠만 자다가 휴가의 대부분을 보내버렸다.
엉망으로 살다가 규칙적으로 살면서 쌓인 피로가 상당했음을 이번에 알았다.
“아들. 잠은 실컷 잤어?”
“오빠는 어떻게 잠만 자냐?”
이렇게 나의 첫 휴가는 금방 지나가며 끝이 났다.
가기 싫지만 억지로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특수전사령부를 찾아갔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내가 근무할 곳의 최고 책임자를 만났다.
“충성. 소위 금태양. 특수전사령부로 전출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경례를 받는 여자 군인.
어처구니가 없다.
보고를 받는 이 여자는 나를 여기로 보낸 황은정 중령이다.
“반갑다. 금태양 소위. 얼마 전 특수전사령부로 온 제1대대 대장 중령 황은정이다. 너는 1대대 1중대 소속으로 3소대를 관리하게 될 거다. 내 직속이라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대한민국 최고의 남군이 되어주기 바란다.”
지금 나를 먹이나 싶다.
마음 같아서는 두들겨 패고 싶으나 여기가 군대라서 어쩔 수 없이 꾹 참았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미소를 보이는 황은정 중령.
누군가가 저 표정을 보면 내가 원해서 여기에 온 줄 알 것이다.
나는 황은정 중령에게 제공되는 각진 군용 똥차를 타고, 산기슭에 있는 나의 첫 근무지로 이동했다.
원수라 할 수 있는 황은정과 나란히 앉아서 가려니 불쾌하다.
정복을 입은 그녀의 하얗고 늘씬한 다리가 계속 눈에 잡힌다.
‘30대 중반이라도 엄청 괜찮은데?’
황은정은 동안이라 20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거기다 군인의 각이 있어서 더럽혀 주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는 여자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의 다리를 바라보며 다짐했다.
‘나를 특전사로 만든 널 반드시 좆집으로 만든다.’
“금 소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부대에 잘 적응하자고 다짐했습니다.”
“특전사 년들이 거칠긴 하지만 너무 긴장하지 마. 어디건 다 사람이 사는 곳이야. 금 소위는 잘할 수 있을 거야.”
황은정 중령은 특전사도 별거 아니라는 듯 사람 좋은 표정을 지었다.
비포장도로를 이십 분 이상 달리자 주변에 온통 산만 있는 낡은 부대가 나왔다.
나는 황은정 중령과 함께 나의 직속상관을 만났다.
“반갑다. 나는 1중대 중대장 황은아 대위다.”
나는 그녀를 보고 황은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작하는 것이 맞다. 대대장님은 사적으로 내 언니다.”
황은아 대위는 황은정처럼 자세와 각만 봐도 육사를 나온 엘리트 군인이다. 나는 황씨 자매가 지배하는 특전사 부대로 오게 되었다.
“자네는 특전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잘 모르겠습니다.”
“오호. 잘 모르는데 여기로 왔다?”
“네 그렇습니다.”
네 언니 때문에 오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왔다.
“언니가 강제로 넣었나 보군. 하여튼 그 고집은....”
동생 황은아 대위는 언니 황은정 중령이 잠깐 나간 사이에 언니를 씹었다. 황은정과는 달리 대화가 좀 통하는 상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선 이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도록.”
황은아 대위는 나에게 계급장이 없는 낡은 군복을 건넸다.
“여긴 특전사를 위한 곳. 남자라고 해서 편의를 따로 제공되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갈아입도록.”
“네 알겠습니다.”
나는 상황실 옆에 있는 화장실로 가서 군복을 갈아입었다.
“특전사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왜 그런지 아는가?”
“실력만 보기 때문입니다.”
“맞다. 제대로 알고 있군.”
이건 너무 쉬운 질문이었다.
“우리 특전사는 개성이 넘친다. 지휘관은 개성이 넘치는 이 거친 부하들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금태양 소위는 앞으로 3일간 계급장을 떼고 실력으로 부대원들에게 인정을 받도록!”
“네 알겠습니다.”
시작부터 굴리겠다고 선언을 한다.
내가 이래서 행정을 하고 싶었다.
언제 다시 왔는지 아직 돌아가지 않고 이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황은정 중령도 보인다.
뺨을 갈기고 싶었으나 다음에 다른 걸로 때려주려고 한다.
연무장으로 가자 1중대 3개 소대의 모든 특전사들이 연무장에 모여 있었다.
“새로운 3소대장 금태양 소위다. 앞으로 3일간 너희와 함께 훈련에 들어갈 거다. 우리의 전통을 지켜 3일간 계급장을 뗐으니 상관이 아닌 동기처럼 대하기 바란다.”
“악!”
특수한 임무를 하기에 소대 인원은 대략 12명 정도이다.
악을 외치는 함성을 보면 훈련이 잘 되었음이 느껴졌다.
“금태양 소위. 1소대 가장 뒤로 간다.”
나는 남자라 키가 커서 가장 뒤가 자연스럽긴 했다.
“이제부터 체력 테스트를 시작하겠다.”
“악!”
“소리 봐라. 전부 대가리 박아.”
척.
모두들 빠르게 머리를 박았다. 나도 따라 박았다.
예상처럼 장교 훈련과 차원이 다르다. 10분 정도 머리를 박았으나 흔들리는 여자들이 없다.
나는 신체가 깡패라 태연하게 있었다.
“일어서.”
모두가 일어섰다.
“시작은 가볍게 전투 구보로 한다.”
전투 구보가 뭐지?
“출발!”
중대장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 달렸다. 물론 중대장도 내려와서 함께 달린다.
소대 구분도 없이 산길을 달린다. 뛰는 모습을 보니 선착순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길은 알려주고 뛰라고 해야지.’
나는 적당히 중간 지점에서 달렸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달리는 거라 일반 운동장을 달리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의 소모가 크다.
십 분 정도를 뛰었다. 주변을 살피면서 달린 나는 깨달았다.
여긴 부대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코스이다. 길을 따라 계속 달리면 다시 연병장이 나온다.
‘조금 더 앞으로 나가자.’
중간 지점에서 달리던 나는 속도를 올려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다. 목적지가 보일 때 속도를 올려 1등을 하기 위함이다.
내가 속도를 올리자 여군들이 폭주를 하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남자인 나에게 지기 싫은 모양이네. 미쳤군.’
여자가 남자에게 질 수 없다. 이건 특전사의 자존심이다.
오기가 발동한 여자들이 나를 따라 속도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명백한 오버 페이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뒤로 밀리는 군인들이 속출했다.
이건 상위권도 마찬가지.
다들 여길 처음 달리는 듯 헐떡거리고 있다.
어느덧 한 바퀴를 거의 다 달렸다.
가장 앞에는 단발머리의 여자와 검은 피부가 탄력적으로 보인 여군 그리고 나. 이렇게 셋만 남았다.
둘은 인상을 쓰며 사력을 다해 속도를 올렸다.
‘여기서 구보가 끝인가 보다.’
나도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힘차게 치고 나갔다. 체력에 여유가 많은 나라서 금방 다른 이들과 격차가 벌어졌다.
나는 여유롭게 처음 달렸던 연병장에 일등으로 도착했다.
내 뒤로 까무잡잡한 여군이 들어왔고, 그다음으로 단발머리 여군이 들어왔다.
다들 숨을 헐떡이느라 정신이 없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중대장 황은아도 들어왔다.
“헉. 헉. 너 육상 선수야?”
“아닙니다.”
“달리기가 가장 자신 있는 운동인가 보군.”
아니라고 말하면 너무 재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모든 훈련병이 다 들어왔고, 달리기 속도별로 줄을 섰다.
“지금 이 자리가 너희들의 현재 위치다. 오늘 처음 온 금태양 소위에게 지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
“악!”
여군들은 나에게 진 것이 정말로 부끄럽고 분한지 다들 눈빛이 매서웠다.
“가볍게 윗몸일으키기와 턱걸이를 측정한다. 윗몸은 1분에 60개, 턱걸이 정자세로 20개다. 이것도 못하는 계집들은 젖을 떼도록.”
빨간 모자를 쓴 부사관들이 보여주기 위해 먼저 윗몸일으키기와 턱걸이를 했다. 보니까 윗몸은 90개를 하고 턱걸이는 40개~ 50개 정도를 했다.
“금태양 소위 자리로.”
나는 매트 위에 누웠다.
“시~작!”
이런 곳은 실력이 위치다.
나는 내 능력을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기계처럼 빠르게 몸을 올렸다 내리는 걸 반복했다.
윗몸 1분은 무호흡으로 속도가 조금도 줄지 않고 가능하다.
나는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 흘렀을까?
누군가 내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1분 지났다. 금 소위.”
중대장 황은아 대위였다.
나는 전혀 힘들지 않아서 호흡도 그대로인 상태였다.
“윗몸 1분 212개.”
부사관이 말했다.
다들 충격적인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자리에 돌아왔고 다른 여군들이 하는 걸 지켜보았다.
오늘 한 거 다 1등이야. 남자 괴물 같은데?
윗몸은 유독 잘하는 애들이 있어.
맞아. 턱걸이가 진짜지.
다들 나에 대한 소리를 작게 주고받는다.
대체로 놀라고는 있으나 이걸로는 아직 부족한가 보다.
아무래도 힘을 보여주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서열은 정리는 힘이 가장 깔끔하지!
이제 힘의 상징 중 하나인 턱걸이 시간이 되었다.
나는 철봉을 잡기 전 조교를 바라보았다.
“특전사 최고 기록이 얼마인지 궁금합니다.”
“88개다.”
“얼마 되지 않는군요. 실망입니다.”
나의 말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나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철봉을 잡았고, 느리게 그렇지만 기계처럼 턱걸이를 해나갔다.
벌써 100개가 되었다.
다들 입을 벌리고 구경하고 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내려왔다.
더 대단한 걸 보여줄까 하다가 이것도 충분히 과하다 싶어서 여기서 멈췄다.
나의 압도적인 수행 능력에 모든 대원들이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점심이 찾아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