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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화 〉 다시 만난 조이연 (93/121)

〈 93화 〉 다시 만난 조이연

* * *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

나와 오혜수 그리고 마혜라가 대기하고 있던 곳으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저년들 이제 다 왔어. 긴장하자.”

망원경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있던 마혜라는 상당히 격앙된 표정이었다. 나는 망원경을 들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바이크 부대를 바라보았다.

‘이제 바이크가 최고의 이동수단이구나.’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세상이다. 정비가 된 깨끗한 도로는 이제 없다. 엉망이 된 도로의 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통과하는 바이크는 최고로 유용한 수단이다.

타격대의 바이크는 요란한 배기 사운드가 들리지 않고 조용하다. 마초적 감성으로 가득한 엔진 바이크가 아닌 전동 바이크라서 그렇다. 저들이 하는 임무를 생각하면 왜 조용한 전동을 타는지 짐작되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을 때 타격대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들의 수는 고작 열둘에 불과하다. 하지만 각자가 개화의 봉인을 푼 능력자로 구성된 집단이다. 우리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한 명이 늘었어.”

마혜라의 말에 숫자를 세었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가 지닌 정보보다 하나가 더 있는 열셋이다.

“이게 변수가 될까?”

“아니! 난 서른 명은 온다고 가정하고 함정을 준비했어. 그래서 설치하느라 더 힘들었어. 근데 생각할수록 열이 받네!!! 니들은 내가 고상할 때 떡만 쳤잖아.”

“...”

“...”

나와 오혜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럴 땐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군부대의 내부로 들어와 연무장에 멈춰선 타격대.

“니들은 이제 뒤졌다.”

마혜라는 자신이 준비한 함정의 가운데에 타격대가 멈추자 이번 계획이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연무장에 도착한 가디언의 타격대는 헬멧을 벗고 우리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실루엣만 보이기에 우리를 박윤주와 그녀의 일행으로 알고 있을 거다.

예정에 없던 약속을 잡고 만나자고 한 주제에 나오지 않고 안에 있자 다들 화가 난 표정이다. 한같이 험악하고 무섭게 생긴 여자들이 우리가 있는 건물을 향해 걸어왔다.

‘무덤에 온 걸 환영한다.’

우리는 그녀들이 바이크에서 내리길 기다렸었다. 그래야 도주의 위험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이럴 수가!’

헬멧을 벗고 다가오는 자들 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여자가 둘이나 있었다.

하나는 타격대의 가장 앞에 서있는 마혜라와 너무도 닮은 여자이다. 나는 이 여자가 마혜라의 언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대장으로 보이는 여자 말이야.”

“아무것도 묻지 마.”

차갑게 대답하는 마혜라. 단호한 그녀의 반응에 나는 질문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장을 제외하고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다른 하나. 놀랍게도! 그녀는 나와 헤어진 조이연이다.

‘이연 누나가 왜 저기에 있지?’

함께 사당으로 오다가 헤어진 조이연이 타격대의 무리와 함께 있다. 그녀를 만난 건 반갑지만 상황이 참 나빴다.

‘어떻게 하지?’

이곳은 죽음의 함정이 설치된 곳이다. 실종이 된 그녀를 만나 반갑지만 지금 조이연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잘 가라. 이 망할 년들아!”

마혜라가 자신의 손에 들린 리모컨을 누르려한다.

나는 조이연이 안타까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부디 살아만 남아!’

나는 그녀가 살아남길 바라며 마혜라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녀가 버튼을 누른다. 요란한 폭발이 시작되었다.

퍼엉. 퍼엉. 퍼엉.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저들의 무력을 생각하면 크게 당황할 거라 예상하지 않았다. 저런 능력을 보유한 자들은 죽을 때까지 어떻게든 무언가를 도모할 거라 여겨서다.

나의 예상처럼 타격대는 차분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대장을 보호하기 위해 다 함께 달려들었다. 대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며 폭발을 감당하는 가디언의 타격대이다.

“이런 상황도 계획에 있던 거 맞지?”

나는 마혜라를 바라보았다.

“당연하지. 잘 봐!”

마혜라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 걸 보았다. 나는 타격대의 대장에 관한 질문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다음 버튼을 누르는 마혜라.

그녀가 버튼을 누르자 연무장을 둘러싸고 있던 자동으로 개조된 기관총이 일제히 총구를 연무장으로 겨누더니 발포를 시작했다.

타다다당. 타다다당.

가공할 폭발과 무자비한 난사. 이런 상황에서 생존이 가능한 사람은 없을 거다.

뚫어지게 앞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마혜라. 타격대의 대장은 그녀의 언니가 확실한 모양이다.

나는 조이연이 제발 살아있기를 바라며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시간이 흘러간다. 폭발로 인한 화마가 지나가고 무선으로 발사되던 사격도 이제 끝났다.

연기가 가라앉자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불에 타서 죽어버린 시체들의 무덤이 보였다.

“생존자가 있다면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거 다들 명심하자.”

마혜라는 감정의 정리가 끝났는지 눈물이 말랐다. 그녀는 생존자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혜라야. 타격대의 대장은 강해?”

생존자가 있다면 가장 유력한 존재는 타격대의 대장이다. 나는 그녀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박윤주 정도의 실력은 될 거야.”

박윤주는 수검을 가진 능력자다. 그런 실력자가 이런 폭발에서 살아남는 상황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타격대의 무덤으로 보이는 시체더미를 향해 움직였다.

그때였다.

퍼억. 시체들의 무덤이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 명의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몸은 불에 탔고 피부는 화염의 상처로 가득했으나 그녀는 살아 있었고, 거동이 가능했다.

“마혜리 저년은 결국 내 손으로 죽여야 할 운명이구나. 가자!”

중무장을 한 마혜라는 대장 마혜리를 노려보며 그녀에게 향했다.

‘누구보다 잘 아니까 이렇게 살아남을 것도 예상했을 수도 있겠네.’

“자신 있지?”

나와 오혜수는 저 여자를 죽일 능력이 없었다. 우리 셋 중 가장 전투력이 강한 마혜라가 부상당한 여자를 제압해야 한다.

“없어. 근데 해봐야지.”

우리 중 전력이 제일 강한 마혜라가 자신이 없다고 하니 불안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마혜라의 말처럼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싸워야 한다.

“좀비들아. 가자!”

내가 지난 며칠간 열심히 박으며 자지로 길들인 노말 좀비들이 나의 뒤를 따라 마혜리를 향해 다가갔다.

비틀비틀 거리며 서있는 타격대의 대장 마혜리.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함정인가?”

“그래! 함정이다.”

“이.. 이 목소리는...”

헬멧을 쓴 마혜라의 음성을 듣자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리는 마혜리. 둘은 이름처럼 자매가 분명한가 보다.

“시끄러워. 넌 그냥 죽어!”

마혜라가 힘차게 달려든다. 비틀거리던 마혜리의 몸에서 붉은색의 기운이 나오더니 그녀의 몸이 점점 악마처럼 변해갔다.

‘이건 수라잖아!’

개화의 봉인을 풀었을 때 얻는 능력 중 가장 잔인한 힘이 바로 ‘수라’이다. 오직 살육만을 추구하는 살인귀의 힘을 가진다는 수라.

마혜라의 언니인 마혜리는 수라의 능력을 지닌 강자였다.

‘만나기 싫은 능력을 가진 여자들만 골라서 만나는 상황이잖아.’

악마로 변한 마혜리는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임에도 강했다. 비틀거리면서도 마혜라의 공격을 다 피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수라의 복원력으로 몸을 회복한다면 우리가 위험해질 상황이다.

나는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마혜라 붙잡고 늘어져라.”

“그게 말이 돼?”

“네가 말이 되게 할 게. 불사조다.”

지금은 내가 불사조를 품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불사조를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 마혜라의 몸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수라의 몸 주변에는 얇은 강기가 형성이 된다. 그것에 닿으면 피부가 타들어가지만 마혜라는 갑옷을 입고 있고, 내가 보낸 불사조마저 있다.

몸으로 마혜리의 수라를 감당할 수 있다는 걸 느꼈는지 마혜라는 방어를 무시하고 마혜리에게 들러붙었다.

상대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달라붙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마혜라는 그 일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좀비들아. 들러붙어!”

나의 명령에 좀비들이 마혜리에게 들러붙었다.

치지직. 좀비들의 몸이 녹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존재. 각자 달라붙어 마혜리를 물고 뜯었다.

“잘 가라. 타격대의 대장.”

나를 바라보는 마혜리. 그녀는 나의 말에 긴장했는지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태양아. 너 뭐 아는 거 있어?

“내가 아는 건 수라의 약점이 오른쪽 발바닥이라는 거야.”

내가 마혜리 혼자 알고 있을 비밀을 이야기하자 그녀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몸이 떨리는 걸 보니 사실인가 보네. 넌 뒤졌어. 이 부모를 죽인 패륜아 년아.”

나는 마혜라가 준 총으로 그녀의 오른발을 겨냥했다.

“잘 가라. 굿바이!”

탕.

내가 방아쇠를 당기자 수라로 변했던 마혜리가 움직임을 멈췄다.

시체가 된 마혜리.

그녀의 주검을 말없이 바라보는 마혜리.

나는 그녀를 두고 시체들 속으로 달려갔다. 조이연이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안쪽에는 다 죽어가지만 숨이 남아있는 여자들이 더러 있었다.

쑤욱. 쑤욱.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여자들의 심장과 목을 찔렀다.

둘을 죽였다. 이제 호흡을 하는 여인은 하나가 전부다.

“제발! 제발!”

간절한 마음으로 그 여인을 보았다. 얼굴고 온몸이 화상으로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여자가 조이연임을 알고 있었다.

“살아있었구나. 다행이다.”

온몸이 다 터버린 조이연은 말을 할 힘도 없는지 그저 나를 바라만 본다. 내가 누구인지 확인한 그녀의 눈은 떨리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살려줄 거야.”

나는 마혜라의 몸에 넣었던 불사조를 불러 조이연의 몸에 넣었다.

조이연의 몸은 나의 스킬인 불사조의 능력에 의해 회복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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