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군소 집단화
백준호가 머무는 고시원 건물의 앞으로 그를 끌고 온 우리.
“괜히 서로 피곤한 일은 만들지 말자.”
“무. 물론이죠.”
가장 먼저 이연 누나가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갔다. 그다음으로 두 팔을 묶어 놓은 백준호에게 위로 올라가라고 했다. 이곳을 한두 번 타본 솜씨가 아니라 그런지 두 팔이 묶인 상태로도 상당히 잘 올라간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 비록 이곳에서 능력치 너프를 먹어 스탯 20이 줄었으나 평균 스탯 30도 충분히 약하지 않다.
힘차게 위로 올라가 고시원 건물의 내부로 들어갔다.
고시원 3층은 남자들이 머물던 곳인지 홀아비 특유의 냄새와 분위기가 있었다.
이동하는 동안 무엇이 있나 궁금하여 방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옷과 침구를 모아둔 방.
다양 공구가 쌓여 있는 방.
훔쳐온 식량을 보관하는 방. 등등
3층에 있는 많은 방들의 대부분이 무언가로 들어찼다.
“너 진짜 온 동네를 제대로 털어먹었구나.”
“저. 저는 그저 오래 살고 싶었을 뿐이에요.”
여기 있는 음식은 털린 것보다 더 많았다.
“어쨌든 누나의 분산 저장은 성공인 느낌인데?!”
“그러게.역시 투자는 파트너가 중요한가 봐.”
이연 누나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이곳저곳을 계속살폈다.
오래된 낡은 건물. 몇 군데를 살피자 특별히 더 나올 무언가는 없을 듯 보였다.
유일하게 짐이 없어 백준호의 방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저놈의 처분에 관하여 이연 누나와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 이때 방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열쇠들이 눈에 들어왔다.
좀비 세상에서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이동하는 놈이 이렇게 많은 열쇠를 왜 가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 여기 총무였냐?”
“... 예”
“남자 새끼가 여자들이 주로 하는 고시원의 총무를 했다는데 왜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네.”
이연 누나가 조금 퀭한 느낌을 풍기는 백준호를 바라보며 본인의 평가를 말했다.
“누나! 여기 열쇠가 유독 많은데 아래층도 내려가 보자.”
“그럴까?”
“이. 이층부터는 좀비가 있어요.”
팍. 뒤통수를 때린 나.
“너 거짓말 잘못한다는 소리를 친구에게 듣지?”
“... 네”
“지금 자백하면 봐줄 수도 있어. 상식적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열쇠가 이렇게 많다는 게 말이 되지 않잖아.”
“그. 그게. 사실은... ......”
백준호가 자신이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여자 좀비를 잡아서 가두고 섹스를 하는 놈이라니.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나는 무척 쇼킹한데 이연 누나는 생각보다는 그렇게 많이 화가 나지 않은 느낌이다.
아무래도 여자라 그런가?
“처녀귀신들 성불하라고 여. 영혼결혼식도 하잖아요. 저도 그냥 좀비라도 여자니까 남자인 제가 도와준다는 마...”
“닥쳐 이 개새끼야.”
“죄송합니다.”
“어차피 이건 바로 확인이 가능했던 거라 너를 살려주기는 좀 그렇다. 그냥 쿨하게 세상 뜨자.”
나는 세상에 남아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백준호를 죽이려고 마음먹었다.
전자기기도 다루고 카메라 같은 걸 설치도 하는 등 신체능력도 나쁘지 않고 재주도 있다. 전반적으로 나의 하위 호환 수준인 놈. 잘 가라.
그렇게 놈을 죽이려고 알루미늄 방망이를 위로 들 때였다.
“사. 살려준다면 고급 정보를 드릴게요.”
“고급 정보?”
“예. 고. 고급 정보요.”
“일단 이야기해봐.”
“꼭 살려주세요. 그럼 바로 이야기할게요.”
“그냥 죽여도 되니까 일단 이야기나 해.”
“아. 알겠습니다. 하얀색 집에 사는 한승연이라는 아줌마 말이에요. 그 아줌마 지명 수배자에요.”
“뭐어?! 지명 수배자?”
“예. 고시원에는 지명 수배자들이 도망을 오는 경우가 많아서 간혹 경찰서에서 전단지를 주고 가든요. 제 서랍 상단 우측을 열어보시면 종이가 있을 겁니다.”
나는 백준호가 말한 서랍장을 열었다.
그곳에서 나온 전단지 하나. 얼마 전에 봤던 여자의 사진이 떡하니 있다.
- 한승연(38세) 강간 및 폭행, 살인 용의자
뭔가 딱 봐도 죄목이 화려해 보이는 여자. 그걸 입증하기라도 하듯 현상금이무려 오천만원이다.
“저는 CCTV로 그 아줌마가 동네에서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도 봤어요.좀비도 죽이고 사람도 죽이는 아주 무서운 여자에요.”
“아아. 그 눈빛이 사람을 죽여 본 눈빛이라 그렇게 기분이 나빴구나. 어쩐지 찝찝하더라.”
이연 누나가 무언가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고맙다. 백준호! 우리에게 아주 좋은 정보야.”
상대에 대하여 어느 정도까지 대비해야 옳은지는 무척 중요하다.
한승연이 이렇게 위험한 존재라면 백준호의 말은 나와 이연 누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정보가 확실하다.
“그. 그럼 저를 살려주시는 거죠? 저 여길 떠나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게요.”
나는 이연 누나를 바라보았다.
내시선을 따라 백준호도 이연 누나를 바라본다.
“내가 결정하는 건데. 왜 누나를 봐?”
“예에?”
다시 고개를 내가 있는 쪽으로 돌린 백준호.
“나는 누나에게 너를 죽이겠다고 신호를 준 것뿐이야.”
“이. 이러지 마세요.”
“이러지 말기는 개뿔. 잘 가라.”
나는 못이 박힌 알루미늄 방망이를 힘차게 휘둘렀다.
퍽. 그대로 백준호의 얼굴을 후려친 나.
퍽. 퍽. 퍽.
“사. 살려준다며?”
“나는 사람하고 한 약속만 지키거든.”
“이 개에..새에기이이.”
툭. 나에게 공격을 당한 백준호가 죽었다.
여자 좀비를 잡아서 따먹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미 살려줄 마음은 없었다.
거기다 사람이 이렇게 집요하면 여길 나가는 과정에서 한승연에게 우리에 대하여 일러바칠 확률도 높을 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저 세상으로 보내주는 게 가장 최선이다.
“너 나보다 더 단호해서 너무 멋있어. 태양아. 남자가 이렇게 터프하다니. 나 미치겠어.”
“사람을 죽여서 기분도 더러운데 여기서 한 번 어때?”
“나. 나야 너무 좋지.”
나는 이연 누나를 고시원의 아무 침대로 끌고 가서 눕혔다.
그렇게 백준호의 아지트에서 이연 누나와 뜨거운 시간을 보낸 후 2층으로 내려가 묶여 있는 성노예? 좀비들을 모두 죽였다.
백준호 이 미친 새끼는 여자에 대한 취향과 장르도 없는지 온갖 다양한 여자 좀비들이 방마다 하나씩 나왔다.
이걸 봤다면 더더욱 살려 줄 마음이 들지 않았을 터. 결국 죽일 놈을 죽였을 뿐이다.
*****
백준호에게 한승연이 지명 수배자라는 정보를 얻은 후 이연 누나와 나는 그들 무리의 행동을 살피며 최대한 조심히 행동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백준호가 있던 고시원도 우리의 아지트 중 하나로 삼아 두 곳을 번갈아가며 행동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이렇게 파악하는 사이 한승연은 빠르게 동네를 돌아다니며 생존자들을 모아 하나의집단을 만들어가고 있다.
분명 얼마 전까지 저들의 인원은 넷이었는데 본격적으로 활동하자 지금은 인원이 열 명도 넘어버렸다.
원래도 우리가 수적으로 불리했는데 이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태양아. 우리 여기를 떠나야 하는 거 아닐까?”
“근데 어디 가도 저런 놈들은 하나씩 있지 않을까?”
“그건 그렇다.”
작은 군소 집단화. 이건 어쩌면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까 싶다.
사람마다 잘하는 게 다르니 합쳐서 하나의 결과를 만들자는 것.
어쩔 수 없었다.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있는 이연 누나.
덜. 덜. 덜.
그녀의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는 걸 목격한 나.
누나가 왜 저렇게 놀라지?
“왜 그래?”
“전에 나를 도와주던 형사 언니가 있다고 했지?”
“아아. 그 최 반장이라는 분?”
“어.”
“그분은 왜?”
본인이 보내줬다며 이야기를 할 때 눈물마저 보이던 조이연.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궁금했다.
“최 반장 언니가 여기 주변에 살아서 내가 사고 터지고 언니 집에 갔거든. 그때는 형부와 조카가 없었어.근데 지금 여기에 나타났어.”
“그래?”
나는 백준호가 사용하던 망원경을 꺼내 이연 누나가 바라보던 곳을 살폈다.
아버지와 아들 하나가 이곳으로 오고있었다.
“조. 조카의 나이가 생각보다 많네.”
“최 반장 언니가 사고를 조금 세게쳤거든.”
“그렇구나. 남자 둘이서 이곳까지 오려고 고생 좀 했겠다.”
“그러게 말이야. 여자도 아니고 남자의 힘으로 이렇게 움직이다니.”
서로 말은 하지 않고 있으나 혹시 최 반장을 찾아온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러지 말고 당장 나가자.”
이연 누나와 나는 그렇게 최 반장이라는 사람의 남편과 아들이 보이던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여기로 오는 사이 그들 둘이 갑자기 사라진 상황.
주변을 찬찬히 살폈으나 특별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다.
“잠깐만.”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백준호가 이곳 일대에 설치하여 둔 CCTV의 확인에 나섰다.
“누나 이걸 봐?!”
나는 이연 누나에게 CCTV에 녹화된 영상의 일부분을 보여주었다.
“이런 시발! 완전 보지된 느낌인데?”
핸드폰의 액정으로 우리가 찾는 아빠와 아들이 한승연이 머무는 하얀색 집으로 끌려가는 장면이 나왔다.
“태양아. 너는 집에 가 있어. 나는 아무래도 저길 가야만 할 것 같아.”
“무슨소리야. 우리는 팀이잖아. 저기에 갈 거면 나도 함께 가야지.”
“너는 남자인데 괜찮겠어?”
“팀인데 그런 말은 하지 마. 누나.”
“고. 고마워 태양아.”
감동한 이연 누나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한승연이 머무는 하얀색 집 앞으로 이동한 나와 이연 누나.
우리가 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는지 한승연 아줌마가 미리 밖으로 나와 있었다.
저 여자도 우리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 느낌이 계속해서 좋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