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고립
“사람을 죽인다고?”
나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의 이연 누나를 바라보며물었다.
“응.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누나 자세히 이야기해.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도울 게.”
“나를 돕는다고?”
“이런 세상에 좀비보다 못한 인간도 당연히 나올 거 아니야. 들어보고 도와야 하면 도와야지. 우리는 팀이잖아. 벌써 잊었어?”
“너는 참 나랑 잘 맞는 거 같아. 태양아. 으이그 너무 귀여워.”
이연 누나는 내 대답에 마음에 드는지 나의 고개를 잡아당겨 자신의 가슴에 파묻으며 힘차게 비볐다.
누나! 조금 전에 좀비를 잡는다고 옷에 묻은 피 때문에 이렇게 안아주면 기분이 더럽다고.
“그러니까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야.”
이연 누나는 얼마 전 자신에게 있었던 짧은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
“아 시발! 존나 꼴려.”
조이연은 매일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보던 야동을 보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게 되자 할배라도 따먹고 싶을 정도로 자신이 성적으로 예민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쳤구나. 미쳤어.”
그녀는 자신의망상을 자책하며 밖으로 나갔다.
잡생각이 들 때에는 뭐라도 하자.
그게 조이연.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때론 열정과 승리의 결과를 부르기도 했지만 때로는 사고를 부르기도 했었다.
아파트 단지가 아닌 주택 단지를 돌면서 빈집을 살피고 식량이 있는지 여부를 살펴나가던 그녀.
“아아악. 사. 살려줘.”
주변 어딘가에서 몹시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세상의 더 많은 수가 좀비가 되었거나 좀비에게 죽어버린 세상.
사람 하나 더 죽고 덜 죽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상대가 다급하다고 하여 내가 함께 다급하게 행동할 필요는없다.
조이연은 천천히 주변을 살펴가며 소리가 들려오는곳으로 이동하였다.
한 때는 미용실이었던 어느 1층 상가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살폈다.
좀비로 변해버린 40대의 아줌마가 M자 탈모가 진행 중인 40대의 아저씨를 물려고 이빨을 들이밀고 있다.
주변에 죽은 좀비들의 시체 2구가 있다는 것과 아줌마의 외형 상태가 말끔한 걸로 볼 때 그녀가 좀비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물리게 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었다.
“저. 저리 가.”
아저씨는 손으로 좀비 아줌마의 얼굴을 잡고서 물리지 않기 위해 처절한 노력하고 있는 중.
악.악. 좀비가 이빨을 들이밀며 발악을 하지만좀처럼 아저씨가 물리지 않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조용히 미용실의 내부로 들어온 조이연은 좀비의 어깨를 강하게 발로 찼다.
팍. 옆으로 자빠져버린 좀비.
퍽. 퍽. 퍽.
조이연은 침착하게 자신이 애용하는 절단기로 좀비의 머리를 터트렸다.
“아저씨 괜찮아요?”
“구해줘서 고마워요. 아가씨.”
조이연은 M자 탈모로 고생할 것 같은 아저씨를 구하고 난 이후에야 깨달았다.
‘휴우. 내가 진짜 최악의 쓰레기 년은 아니구나. 다행이야.’
할배라도 따먹고 싶을 것 같았던 미친 성욕이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할배보다 더 젊은 40대의 아저씨를 구해놓고 보니 꼴리는 게아니라 오히려 차갑게 식는 감정으로 가득했다.
아저씨를 구해준 그녀는 미련 없이 이 자리를떠나려고 했다.
그녀가 몸을 돌릴 때.
“아. 아가씨. 잠깐만요.”
M자 탈모 아저씨가 멋쩍게 웃으며 일어나더니 그녀에게 다가왔다.
늘어난 티가 어깨에 살짝 걸쳐진 게 아저씨가 자신을 유혹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조이연.
“뭐죠?”
“이제 밤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오늘 하루만 저를 재워주세요.”
아저씨는 무척이나 끈적거리는 눈빛으로 조이연을 뜨겁게 바라보았다.
짜증이 나는 상황이지만 어릴 때 자신에게 용돈도 많이 주던 머리에 숱이 없는 착한 삼촌의 말이 생각났다.
- 탈모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것의 하나야. 이연아. 그러니까 너는 머머리를 만나면 너무 괄시하지 마.
차갑게 외면하려 했으나 하필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 딱하루만이에요. 귀찮게 식량을 달라고 달라붙거나 피곤하게 하지 마세요. 저는 분명히 경고했어요.”
“알았어. 아가씨. 하루야 하루. 딱 하루.”
아저씨는 뭔가 자신이 있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아저씨를 자신의 아지트로 데리고 온 조이연.
아저씨는 그녀의 아지트에 오던 순간부터 그녀가 식량을 보관한 창고부터 집의 여기저기를 하나하나 유심히 파악했다. 뭔가 기분이 나빴으나 어차피 하루 뒤면 떠나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참았다.
그렇게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다.
그녀는 아저씨에게 냉동 만두를 꺼내 주었다.
냉장고가 고장이 난 상태로 유통기한을 며칠이나 넘긴 상태라 빨리 처분해야 하는 음식을 적선하듯이 주었다. 분명 조금 상한 냄새가 나고 있음에도 허겁지겁 잘도 먹는 아저씨. 참 먹성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 좀 씻고 싶은데 물 좀 끓여줘. 내가 깨끗하면 서로 좋으니까 그러는 거 잘 알지?!”
뭔가 기분 나쁜 대사와 미소였으나 삼촌의 말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그렇게 샤워까지 끝낸 아저씨에게 작은 방에서 자라고 데려다준 조이연은 안방으로 와서 잠을 자려고 했다.
오늘은평소보다 많이 움직여 피곤했던 그녀.
침대에 누워 잠에 들기 직전이었다.
끼이익.
안방의 문이 열리더니 아저씨가 그녀의 방으로 들어왔다.
이런 시발! 탈모 아저씨는 다 벗은 상태로 방에 들어왔다.
배가 튀어나온 주제에 홀라당 벗고서 그녀를 끈적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아저씨.
“아가씨. 한참 좋을 때인데. 너무 외롭지 않아? 지금 아가씨 나이면 나 같은 아저씨를 따먹고 싶을 나이잖아. 내가 잘해줄 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나랑 같이 살지 않을래? 내가 자지는 꽤 튼튼해.”
나신의 아저씨가 느끼한 표정을 지으며 조이연에게 다가왔다.
젊은 여자 중에는 발정이 지나쳐 아무 남자나 다 따먹는 여자도 상당했다.
그렇지만 조이연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 아저씨에게 화가 났다. 지금까지 섹스를 하지 않았던 게 남자가 없어서도 이유가 분명하지만 이딴 놈이랑 하려고 참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 말로 할 때 당장 나가세요. 저는 분명히 이야기했어요.”
그녀는 차가운 눈빛을 하고서 아저씨에게 확실하게 경고를 했다고 여겼다.
“괜찮아. 괜찮아. 아가씨! 나 같은 미남 아저씨를 보고 이렇게 자제력 있게 행동하는 참한 여자라는 건 내가 잘 알겠으니까이제부터는 내가 하라는 것에 몸을 맡겨. 아가씨가 나를 지켜주면 내가 밤마다 즐겁게 만들어 줄 거야. 아가씨도 좋잖아.”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조이연에게 점점 더 다가오는 아저씨.
그녀의 어깨는 심하게 들썩 거리고 있었다.
아저씨가 자신의 작은 고추를 달랑거리며 다가와 조이연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고 할 때였다.
퍽. 몸을 돌린 조이연이 발로 아저씨를 찾다.
불알이 터질 것 같은 강력한 충격을 받은 아저씨. 그는 그대로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너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 죽여 버리기 전에 나가는 게 좋을 거야.”
조이연은 아저씨의 불알을 찬 이후 생각했다.
삼촌 미안해요. 이 탈모인은 아니에요.
퍽. 퍽. 퍽. 화가 난 조이연은 결국 아저씨를 밟아야 직성이 풀렸다.
실컷 두들겨 패버린 아저씨를 밤에 쫒아버린 그녀.
이제 편하게 잠을 자려고 할 때.
밖으로 나간 아저씨가 밖에서 시끄럽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넌 평생 아다 년으로 살다 뒤져라. 이 매정한 년아. 나 같은 아저씨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넌 벌을 받을 거야. 이 보지가 썩을 년아. 후회하지 마.”
자신을 향하여 욕을잔뜩 내뱉고 사라진 아저씨.
*****
“그러니까 그 탈모 아저씨와 처음 보는 뚱뚱한 아줌마 하나가 이곳으로 좀비를 몰고 온다는 말이지?”
“맞아. 바로 그 말이야. 내가 망원경으로 확인했어. 소리를 이용해서 이곳으로 좀비를 계속 부르고 있어.”
저들이 좀비를 불러 모으고 있다는 건.
아주 악의적인 감정을 조이연에게품고있음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사람을죽이겠다는 살인의 의사를 지녔다고 봐야만 한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이런 행동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응은 조이연의 판단처럼 죽이는 거다. 그녀가 옳은 판단을 했다고 여겨졌다.
“심하게 때렸어도 지금 행동은 선을 넘었지. 살려둘 가치가 없네. 누나! 나와 함께 처치하자.”
“너 진짜 너무 마음에 들어. 김태양.”
나는 누나에게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어깨를 으쓱거리게 되었다.
“근데 어떻게 처치할 거야?”
“일단 집에 들어가서 좀 쉬자. 오늘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갑자기 피곤하네.”
뭔가 계획이 있어 보이는 이연 누나. 나는 가만히 누나가 하자는 걸 따르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 조용히 고민에 빠진 이연 누나.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더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누나와 함께 인스턴트 음식을 꺼내 저녁을 해결했다.
밖에 있는 것들이 부지런히도 좀비를 모으는지 저녁이 되는 동안 건물 주변으로 좀비들이 더욱더 많이 몰려와 있었다.
좀비들이 건물을 삥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 되었다. 원룸 밑의 복도에도 좀비가없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
여기를 나간다면 작은 방에 있는 탈출용 로프를 이용하여 내려가야 하는데 그곳에도 이미 좀비가 있다.
아무래도 나와 이연 누나는 고립이 된 것 같다.
“저 새끼들 지독하게 좀비를 불러 모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