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세상은 망했다.
“야. 조이연. 석방이다. 나와.”
경찰서 유치장에 있던 조이연은 익숙한형사 언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최 반장 언니. 벌써 합의가 끝난 거야?!”
“너 내가 화가 나도 참으라고 몇 번이나 말하냐? 그 성질 좀 죽여.”
“흥. 언니가 똑바로 가르쳐 줬으면 이런 일도 없잖아.”
조이연은 유치장 밖으로 나오며 최 반장 언니에게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어? 똑바로 가르쳐?”
퍼억. 강력계 짬밥 15년의 최 반장은 체육관후배 조이연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아야. 이 형사라는 언니가 경찰서에서 시민을 때리네.”
“그래 쳤다. 어쩔래? 이년아.”
“어이구. 내가 말을 말자.”
조이연은 미안함에 성질부터 부렸으나 자신을 빼내려고 고생한 최 반장 언니가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런 반장언니의 노고를 잘 알기에 고작 뒤통수 한대 맞은 걸로 튀튀거릴 수는 없었다.
최반장 또한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조이연의 어깨에손을 올리며 어깨동무를 했다.
“너 내가 합의하기 쉽게 맞고 때리라고 했다고몇 대 맞아주기는 했더라?!”
“나는 그거 믿고 유치장도 안 들어오는 줄 알았잖아.”
“하여튼 이년은 대한민국 법을 개보지로 알아요.”
“대한민국 법은 보지나 벌리라고 그래 몰라? 유명한 대사잖아.”
“하여튼 입만 산 년이야. 언니가 밥을 살 테니까 가자.”
그렇게 조이연은 최 반장 언니와 함께 강남 경찰서 인근에 있는 유명한 국밥집에 향했다.
“언니는 이 ‘최강 할배 국밥’이 지겹지도 않아?”
“아버지가 해주는 고향의 국밥 맛 몰라?! 하긴. 성질만 더러운 년이 효도가 뭔지 알겠냐. 그래도 이번에는 참으려고 노력도 많이 한 거 같아서 특별히 빨리 빼 준거야.”
“뭐야? 그 말?! 전에는 일부러 늦게 빼줬다는 걸로 들린다?!”
“...”
‘이런 거 보면 눈치가 빠른 년이라니까.’
최 반장은 격투기 후배인 조이연의 날카로움에 이따금씩 놀라고는 했다.
“너 아직 서류상 문제는 없으니까 경찰이나 하자. 넌 딱 강력계가 체질이야.”
“뭐래?! 짭새년을 내가 왜 하냐?”
“말을 해도 꼭 저렇게 밉게 해요.”
‘조금만더 설득하면 넘어오겠어.’
처음에는 경찰을 하라는 말에 신경도 쓰지 않던 조이연인데 최근에는 경찰이라는 말에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 반장은 조이연과 함께 강력 범죄자를 잡으러 다니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성질이 더러워도 정의감이 넘치는 후배라 기대심이 컸다.
그런 최 반장의 마음을 읽었는지 조이연이 평소보다 진중하게 말했다.
“언니한테만 말하는데 내가 왜 경찰하는 걸 머뭇거리는 줄 알아?”
“시험 합격 못할까 봐?”
“이거 왜 이래? 나 격투기하기 전까지 전교5등 안에 들었어.”
“크크 미친년. 그런 식으로 하면 난 전교 일등이야. 이년아.”
“... 진짠데. 아무튼! 나는 나쁜 짓을 저지른 년들을 보면 뚝배기를 깨고 싶어. 그리고 말이야...”
“너답지 않게 왜 뜸을 처들이냐?”
몸을 앞으로 당기며 최 반장 앞에 머리를 들이미는 조이연. 그녀의 행동에 최 반장이 고개를 숙여주었다.
귀에 데고 작게 속삭이는 조이연.
“나는 매일 길에 보이는 잘 생긴 남자들 따먹는 상상을 너무 많이 하거든. 이런년이 어떻게 경찰을 하냐?”
“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좆뱀 새끼들 잡으면 보지가 얼마나 벌렁거리는지 아냐? 그건 여자면 당연한 거야. 경찰년은 보지 달린 여자 아니냐? 곱상한 놈보면 보지에 좆도 좀 넣고 싶고 한 거야. 넌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
‘아이 시발! 그 정도가 유독 지나치니까 그런다고.’
다 자기가 성욕이 최고라 생각하는 기질이 있다. 조이연은 자기의 내면에 있는 잔혹함과 성적 굶주림을 잘 알고 있지만 이걸 최 반장 언니에게 제대로 설명하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 언니 말처럼 내가 합격이나 하겠냐? 일단 공부나 좀 해보자.’
그녀가 유리턱으로 인하여 격투기를 그만두고 방황할때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선배 최 반장의 말을 따라서 까짓 거 경찰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국밥을 다 먹은 둘은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어어억. 컥. 컥 어어억.”
구석에 앉아서 국밥을 먹던 중년의 직장 남성하나가 자신의 목을 잡으며 괴로워했다.
조이연은 선배인 최 반장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둘은 같은생각을 했다.
설마! 국밥 값을 떼먹고 보상을 달라는 연기?
마치 못 먹을 음식을 먹고 난리가 난 것처럼 행동하는 사기꾼처럼보이는 남자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최강 할배 국밥’의 사장인 최강 할아버지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일단 119에 전화를 걸고 있다.
- 여. 여기 최강 할배 국밥인데 급한 환자가 생겼어. 빨리 와! 이놈에새끼들아. -
한때는 욕쟁이 할배 국밥이라 말로도 유명한 최강 할아버지. 입이 상당히 걸걸한 편인데 지금 정도면 많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이연은 우선 조용히 지켜보았다.
뭐지? 그녀는 격투기를 오래 했다. 그런 그녀가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언제나 눈이었다. 상대의 눈빛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만 봐도 그자가 어느 정도의 강자인지 그리고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보였다.
눈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게 파이터 조이연의 신념이다.
그런데... 지금 국밥을 먹다가 쓰러진 남자의 눈이 변했다.
그 눈은 조이연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가짜 광기가 아닌 진짜 광기.
가짜 살의가 아닌 진짜 순수한 살의.
미친놈도 저런 눈빛을 보일 수 있을까 싶은 섬뜩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조이연은 잔뜩 긴장했다.
“캬랴아악.”
이상한 소리를 내던 그는 옆에서 자신을 걱정하던 동료의 팔을 깨물었다.
“크아악!”
엄청난 비명을 내지르는 동료.
쩌억. 잠시 후 남자는 동료의 팔 살점을 뜯어버렸다.
그러고는 그걸 씹어서 삼켰다.
놀라서 난리가 난 사람들.
최 반장 언니가앞으로나서려고 했다.
조이연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최 반장 언니의 어깨를 잡았다.
“언니. 이거 아무래도 이상한데? 저 사람 마약 중독자보다 눈빛이 더 이상해. 이렇게 나서는 게 옳은 건지 모르겠어.”
“무섭고 이상하다고 확인하고 나서면 그만큼 피해가 커지는 거야. 그럼 경찰을 누가 믿겠냐? 내가 조금 다치는 건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잘 지켜봐. 이게 베테랑 경찰의 품격이야.”
함께 왔던 일행을 물어뜯는 남자에게 다가간 최 반장.
그녀는 이미 수갑을 꺼낸 상태였다.
계속해서 살점을 쥐어뜯는 자의 손을 잡고 뒤로 꺾더니 찰칵. 그리고 뒤로 손을 휘두르자 다시 그 손마저 움켜잡고 찰칵하며 뒤로 수갑을 채워버렸다.
최 반장 본인의 말처럼 베테랑의 품격이 느껴지는현란한솜씨임에 틀림없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조이연.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래서 점점 불안해지는 그녀.
“위험한 분이라 잠시 행동을 구속하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위험한 자를 체포한 최 반장은 환자의 상태를 체크했다.
“최강 아저씨. 수건 좀 가져다주세요. 이분 출혈이 너무 심해요.”
“아. 알았어.”
국밥집은 그야말로 난리가 난 상황.
그때 뉴스 화면을 보게 된 조이연.
- 긴급 속보. 국가비상사태 발생.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의하여 사람의 인육을 먹고 싶은 욕구가 발생하는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물린 사람도 감염자가 되어 다시 감염자를 만드는 이 바이러스는 전파 속도를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절대로 집 밖으로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
사람의 인육을 먹고 싶은 바이러스. 거기다 물린 사람도 감염자가 되어 지속적으로 감염자를 확산시키는 바이러스라고 한다.
혹시 여기서 가장 먼저 쓰러진 사람도 저 바이러스에 걸렸던 사람이 아닐까?!
조이연의 생각이 정리가 되어갈 무렵. 그녀는 무언가를 느꼈다.
최 반장이 저기에 있으면 위험하다.
“반장 언니. 그곳에 있으면 안 돼! 어서 이쪽으로 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아앗.”
최 반장 언니가 깜짝 놀라며 손가락을 들었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그녀는 응급처치를 해주던 사람에게 손가락을 물렸다.
맙소사.
“지. 진정하세요. 이러시면 안 돼요.”
아무것도 모르는 최 반장은 수갑을 채운 자는 몸으로 누르고 쓰러진 자는 손으로 억누르고 있는 중이었다.
최 반장과 함께 마셨던 국밥용 뚝배기를 한 손에 하나씩 든 조이연은 그곳으로 다가갔다.
“너 거기 있으라니까. 이거 손가락만 살짝 물린 것뿐이야. 그러니 신경 쓰지 마.”
조이연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최 반장을 물었던 자의 얼굴을 뚝배기 그릇으로 내려찍었다.
퍽. 퍽. 퍽.
“너. 뭐 하는 거야?”
퍽. 잠시 당황했던 최 반장이 조이연을 발로 찼다.
옆으로 쓰러진 조이연.
하지만 조이연에게 뚝배기로 얼굴을 맞은 남자는 안면이 심하게 함몰되었다.
“언니 어서 뉴스를 봐.”
최 반장은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 조이연이 지나치게 흥분하며 고함을 치자 티비가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그녀가 일어서자 수갑을 채워놓았던 자가 일어서서 누군가를 물려고 발악을 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건 국밥 뚝배기를 든 조이연.
퍽. 퍽. 퍽. 그대로 얼굴을 함몰시켜버리는 조이연이다.
둘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최 반장 앞에 선 조이연.
“이. 이연아. 나 어떻게 하냐?”
“어떻게 하긴. 할 말이 있으면 빨리 이야기해. 내가 들어줄 게.”
“크으으윽. 내 아들하고 우리 남편 좀 부탁할. 크으읏.”
조이연은 손을 들었다.
“최대한 노력할게. 반장 언니. 항상 고마웠고 마지막을 이렇게 보내야 해서 미안해. 그래도 내가 보내주는 게 옳은 거 같아.”
“캬아아악”
바이러스에 감염된 최 반장은 조이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퍽. 조이연의 뚝배기가 그녀의 안면을 강타했다.
퍽. 퍽. 결국 깨져버린 뚝배기.
조이연은 다른 뚝배기를 들더니 두 손으로 힘차게 최 반장의 얼굴을 내려찍었다.
남을 위하는 삶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 최 반장 언니.
그녀라면 죽어서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나쁜 행동을 하는 걸 원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조이연.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최 반장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만들며 그녀를 눈물로 떠나보냈다.
최 반장 언니의 피가 묻은 옷을 입은 상태로 국밥집 밖으로 나온 조이연.
그녀는 보았다.
세상은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