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구해줘서 고마워요.
저 반사되는 빛이 있는 곳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있으면 죽는다는 건 분명한 사실. 얼마나 숨이 차는지 그대로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니 현재 내 상황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나는빛이 보이는 곳을 향하여 달렸다.
“캬르아악”
갑자기 내 옆에서 달려드는 좀비.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마지막 힘을 써가며 몸을 앞으로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좀비를 피하게 된 나는 억지로 일어나며 앞으로 뛰어갔다.
몸이 살짝 까였지만 목숨 앞에서 이런 소소한 상처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헉-. 헉-. 숨을 헐떡이며 빛이 보이던 어느 원룸건물의 옆으로 왔다.
뒤로 가는 작은 문이 있는 틈새와 높은 담벼락. 분명 여기 이곳에서 빛이 나왔었다.
느린 좀비이지만 수가 많아졌고 이미 나와의 거리도 상당히 가까워진 상황.
내가 이곳에 도착하여 당황하고 있을 때.
반대쪽 담벼락에서 온몸을 다 가린 누군가가 나타났다.
시위를 진압할때 입을 것 같은 진압 복장을 베이스로 몸 여기저기를 보호할 수 있는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복장을 한 누군가.
거울로 빛을 보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가 담벼락 위에서 쪼그려 앉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힘을 쥐어짜면서 점프를 하여 내밀어진 손을 겨우 잡았다.
악력이 상당히 좋은 자다. 상당한 완력으로 나를 힘차게 들어 올렸다.
내 몸이 위로 올려 지기 시작할 때 디에서 좀비들이 달려왔다.
놈들이 내 다리를 잡으려고 팔을 내밀 때. 아슬아슬하게 나는 위로 올라왔다.
휴우. 심장을 쓰러 내리고 있을 때였다.
“옆은 보지 말고 빨리 따라와. 수가 많아지면 자기들 머리를 밟고 위로 올라오는 놈들이야.”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의 목소리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서 움직였다.
자세히 보니 옆구리에 절단기로 보이는 커다란 쇠몽둥이가 걸려있다. 피가굳은 걸로 보이는 걸로 봐서 저걸로 뚝배기를 여러 차례 깬 느낌이다.
두꺼운 복장에다 무게가 나가는 무기마저 보유한 여자는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능수능란하게 원룸건물들 사이의 담벼락을 타고 움직였다.
이렇게 방향을 틀면서 움직이면 좀비들의 시야에서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게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그렇게 정신없이 담벼락을 타고 움직이던 그녀는 갑자기 옆으로 뛰어내렸다.
“이제부터 전력질주야.너 여기서 좀비에게 발각되면 내가 죽여 버릴 거니까.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단호함이 느껴지는 말투.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담벼락에서 뛰어내린 후. 그녀의 말처럼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면서 빠르게 달렸다.
어느 원룸 건물로 들어간 그녀. 가장 탑 층인 4층을 내가 통과하자 그녀는 계단에 있는 문을 닫으며 안에서 열쇠를 걸어 잠가버렸다.
“하아. 하아. 성공이야. 성공. 너 남자치고는 운동 신경이 좋다?!”
내가 올 스탯 max인 남자...였었지. 지금은 스탯 30으로 일반인보다 나쁘지 않은 정도고.
뭐 당장은 배가 고파서 비실비실하지만 말이야.
“살려면 뛰어야죠. 구해줘서 고마워요.”
“그래! 고마운 건 꼭 알아야 그게 사람이지. 너의 목숨을 내가 살려준 거 절대로 잊지 마.”
보통 이런 경우에는 생색보다는 겸손한 척을 먼저 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여자는 뭔가 다르다.
아무렴 어때. 일단 살아남았음에 감사하자.
“따라와. 여기가 내 하우스야.”
원룸의 탑 층에 주인이 살기 위하여 지어진 집.
그녀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끼이익.현관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간 그녀는 헬멧을 벗었다.
그녀가 헬멧을 벗자 긴 생머리가 땀과 함께 흩날렸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을 향하여 고개를 돌린 그녀.
헉! 조이연이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다 나의 유혹에 넘어가 나와 결혼하고 싶어 재벌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조이연 누나.
나도 모르게 이연 누나라고 외칠 뻔했으나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말을 삼켰다.
이곳은 다른 세상이다. 저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 나는 모른다.
괜히 아는 척해서 실수를 하면 나만 곤란해진다는 걸 항상 명심해야 한다.
터억. 잔뜩 긴장했던 나는 거실에 있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 몸이 푹 깔아지면서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잊어버리고 있던 피로가 슬슬 몰려오려고 한다.
“누가 거기 앉으라고 했어?”
흠칫. 몰려오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분.
흡사 야생동물 앞에 놓인 애완동물의 기분이 이러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농담이야. 농담. 편하게 있어.”
“가. 감사합니다. 저는 김태양이라고 합니다.”
“그래?! 나는 조이연.”
일단 이름은 얼마 전까지의 삶과 똑같구나.
“호. 혹시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던 적이 있나요? 이상하게 본 기억이 있어서요.”
“나 알바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휴우. 괜히 아는 척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외모와 이름만 같은 존재일 뿐. 전혀 별개의 존재이다.
“그렇구나. 집이 참 깔끔하니 좋네요.”
잘정돈되어 있는 집이라며 멋쩍게 칭찬을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원래 주인 부부를 죽인 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예에?”
“좀비를 죽인 거야. 좀비를! 누가 남자 아니랄까 봐. 너무 겁을 먹네.”
“하하. 제가 농담에 좀 약해서요.
성격을 종잡을 수 없는 그녀.
안전한 곳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곳에 있다는 게 마냥 편하다는 생각은 들지가 않는다.
“... 저.”
“응. 부담 없이 말해.”
“보시다시피 제가 병원에 있다가 오늘 깨어나서 밖으로 나왔는데, 세상이 어떻게 된 겁니까?”
“좀비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진지 4주 가까이 되는데. 너 병원에 4주 정도 기절해 있었던 거야?”
“그. 그게 그렇게 되나요?”
사람이 기절 상태로 4주를 있을 수 있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이곳 세상이라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내가 여기 있겠지.
“너도 봤잖아. 저것들은 인간이 아니라 좀비야. 좀비. 물리면 감염이되고, 감염자는 또 감염을 퍼트리려고 발광하는 그런 존재들 말이야.”
“아아. 그렇군요.”
“근데 너 진짜 운이 엄청 좋은가 보다?”
“운이요?”
“병원에서 운이 좋게 살아난 것도 기적인데 도망 다닐때에도 노말 좀비도 하나가 없어서 이렇게 살아남은 거야.”
“노말 좀비요?”
“잘 들어. 현재까지 알려진 좀비는 두 부류야. 조금 전에 본 느려 터진 놈들. 여기 사람들은 그것들을 슬로우 좀비라고 불러. 그리고 사람처럼 움직이는 게 가능한 일부의 좀비들이 있어. 그런 것들은 노말 좀비라고 불러.”
“좀비 바이러스도 종류가 있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물렸다 좀비가 될 때 사람마다 발현 정도가 다른 걸로 알고 있어.”
“아아. 그렇구나.”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답하며 조용히 있었다. 조이연의 기세는 그만큼 날카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꼬르륵. 꼬르륵.
배의 가죽이 등에달라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굶주린 나.
꼬르륵 소리도 나왔으니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상당히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조이연을 바라보았다.
“너 설마 먹을 거 달라는 거야?”
“아. 네. 제가 배가 너무 고파서요.”
나는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살짝 위축이 된다.
배가고파 힘이라고는 없는 상황에서 이곳 세상에 대한 개념도 아직 없다.
좀비와 관련한 영상은 조금 본 기억이 있지만 그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신중할 수밖에 없다.
내가 조이연의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하면 사람의정에 호소하는 빈대에 불과한 존재가 바로 나다.
그래도 나를 살려준 걸 보면 잔정이 있어 야박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거기에 기대게 된다.
“너내가 먹을 것도 주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도 주면 너는 나에게 뭘 줄 수 있어?”
“이왕이면 원하는 걸 주는 게 최고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적극 도울게요.”
“할 수 있는 거라면 돕겠다는 말 정말로 믿어도 될까?”
“물론이죠. 믿으세요.”
지금 배가 고파서 노예를 하라고 해도 거절이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상황을 향해가는 나다. 일단 그녀의 비위를 맞추며 그녀가 원하는 걸 도와주기로 했다.
그러니 제발 먹을 것을 달라고.
“좋았어. 협상 타결. 그 약속 잊지 마. 나는 남자도 여자처럼 한 입으로 두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알겠어요. 이연씨.”
“이연씨가 뭐야! 딱 봐도 나보다어리구만. 이제 누나라고 불러.”
“네 누나.”
흥흥흥~ 흥흥흥~
혼자 콧노래를 부르며 무언가를 찾는 소리를 내는 조이연.
나는 그녀가 음식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얌전하게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통조림 두 개를 가지고 거실로 왔다.
스팸과 런X미트가 내 눈에 들어온다.
“넌 어떤 거 먹을래?”
이건 나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맞는지 궁금하다.
어떤 놈이 런X미트를 먹어! 당연히 스팸을 먹지.
“저는 런X미트요.”
마치 나의 센스를 확인하는 거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스팸을 포기했다.
끼이익. 캔을 딴 그녀.
탁. 나무로 된 접시 위를 때리자 런X미트가 통으로 빠졌다.
“센스는 있네. 맛있게 먹어.”
역시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했었나 보다.
나는 조금 큰 사이즈의 런X미트를 들고 한입을 물어서 그대로 삼켰다.
시븅! 이게 그 맛이 없다고 선물로 주면 성질부터 부리는 런X미트가 맞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존맛탱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꿀맛이다.
허겁지겁 순식간에 다 먹어버린 나.
빈속에 음식이 들어가자 공복이 채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먹고 싶어 진다.
그러자 아직 그대로 있는 조이연의 스팸으로 계속해서 눈이 갔다.
“너 엄청 배가 고픈가 보네. 식량이 정말 중요해서 그렇게 막 먹으면 안 되는데...”
말끝을 흐리는 그녀. 나는 차분하게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특별히 줄까? 대신 내가 하라는 걸 더 잘 따라와야 하는데...”
“우리는 한 팀이잖아요. 하하.”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내 공복은 모든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기에 이런저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한 팀? 그래 한 팀이지. 먹어. 태양아.”
턱. 그녀는 친절하게 스팸을 까더니 런X미트처럼 통째로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스팸을 든 나는 혹시 말이 바뀔까 무서워 그대로 들고 삼키기 시작했다.
시븅! 두 개를 다 먹어보니까 이번에도 확실히 알겠다. 스팸이 그냥 더 맛있다.
사실 이건 애초에 고민거리도 아니었지.
두 번째 통조림 음식도 허겁지겁 먹고 있는 나.
조이연은 그런 나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