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파이트 클럽
오혜수가 서둘러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인근에 있는 고등학교 대학반의 정문 앞이었다.
여러 성인 남자와 여자들이 하교를 하며 교문 밖을 나오고 있었다.
“박아영!”
딱 달라붙는 교복과 짧은 치마. 거기에 노랗게 물이든 헤어와 검게 그을린 피부.
뭐랄까? 지금 내가 하고 다니는 몰골과 비슷한 감성을 지닌 여자 하나가 하교를 하다가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이게 누구?! 오혜수 아니야.”
“썩을 년아. 잘 지냈냐?”
“나야 늘 그렇지 뭐. 옆에 남자는 누구? 금발에 태닝이라니 뭘 좀 아는 남자잖아!”
박아영이라 불린 여자가 호감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다.
“내 남자 친구야. 그딴 눈빛 치워.”
“이런 훈남이 너랑 사귀다니 말이 돼? // 너 솔직히 이야기해. 진짜 오혜수랑 사귀는 거 맞아?”
박아영이 질문을 하며 나를 노려보자 오혜수가 간절한 눈빛을 나에게 보내왔다. 딱 봐도 제발 사귄다고 해달라는 간곡한 염원이 느껴진다.
“어. 내가 남친이야.”
“좀 이상하지만 본인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믿어야지. 가자!”
박아영이 어딘가로 가자고 한다. 나는 오혜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모르는 척 나의 손을 잡더니 은근슬쩍 잡아당겼다.
도대체 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모르겠다. 나는 그냥 따라나섰다.
우리가 향한 곳은 박아영의 학교 주변에 있는 어느 빌딩의 지하였다.
평범한 빌딩의 지하로 들어가자 새로운 세상이 나왔다.
초저녁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술을 마시며 놀고 있는 클럽 느낌이 물씬 풍겼다.
간판도 없었다는 걸 고려하면 여긴 아마도 불법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닐까 한다.
나는 오혜수에게 잘 어울리는 클럽이라 여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상당히 인상적인 무언가를 말이다.
경기장.
이곳 클럽의 가운데에는 격투기를 위한 경기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여기 격투기 하는 곳이야?”
“너 아무것도 모르고 온 거야?”
나는 오혜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딴청을 피우고 있다.
“하여튼 저 미친년은 가만히 보면 혀가 더럽게 짧아.”
“어차피 오면 니가 다 설명하는데 귀찮게 왜 내가 이야기해.”
“잘 들어 태양아. 내가 설명할 게.”
박아영이 이곳에 대하여 설명을 시작했다.
간단하게 줄이면 이곳은 어두운 세계의 지하 격투기 대회가 열리는 곳이라 하겠다. 파이트머니가 상당하여 많은 격투기 애호가들이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여기는 입장 조건이 하나가 이성 친구를 데리고 와야 한다고 했다. 한쪽이 사고를 칠 경우 함께 온 상대방이 같이 처벌을 받는 방식이라 그런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니가 사고를 치면 내가 처벌을 받는다고 하는데?”
“내. 내가 사고 칠 사람은 아니잖아.”
“어딜 봐서?!”
“어쨌든! 나는 너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이곳에 온 거야. 내가 얼마나 강한지 말이야.”
오혜수는 격투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채수지에게 진 주제에 주둥아리는.”
“그래서 졌다. 근데 말이야. 그래서 여기로 온 거야. 나는 싸우면서 더 강해지고 싶거든.”
대결을 기다리며 경기장을 바라보는 오혜수의 눈빛은 뜨겁게 불타고 있다.
“나 참가 신청할 거야. 박아영.”
“뒤지게 맞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닥쳐. 내 실력을 제대로 보일 거야.”
이윽고 경기 무대에만 불이 켜지고 주변은 모두 어두워졌다. 사람들의 이목이 격투기가 일어나는 스테이지로 향한다.
링 위에 올라간 중년의 아줌마.
그녀는 능숙하게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반가워요. 저는 파이트 클럽의 운영을 담당하는 박아진이에요.”
그러고 보니 박아진 아줌마는 박아영과 닮았다. 검은 피부에 금발까지 둘이 자매인가 고민이 될 때.
“친언니 맞아.”
“그렇구나.”
눈치가 빠른 박아영이내 궁금증을 바로 해소하여 주었다.
“근데 너 파이트 클럽의 룰에 대해서 알고 온 거야?”
“모르는데?”
“하여튼 오혜수 저 꼴통 년! 그럴 거 같더라. 잘 들어. 우리 파이트 클럽은 뭐든지 다 거는 게 가능하고 다 걸라고 요구할 수도 있어.”
“그래?”
나는 이 방식에 무척이나 커다란흥미를 느꼈다.
“그 대상에는 남자 친구도 당연히 포함이야.”
“뭐?”
“여기 오는 순간 너도 걸 수가 있게 되었다는 거야.”
“헐. 그럼 오혜수는 나를 다른 여자에게 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데리고 온 거야?”
“내 생각인데, 저 꼴통은 본인이 진다고 생각도 하지 않을 거야.”
박아영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금방 납득이 되었다. 채수지는 플레이어 킬러로 능력이 워낙 특별하니까 오혜수가 패배를 받아들이지만 다른 년들에게는 자신이 질 리가 없다고 여기고 있을 성경이 분명하기는 하다.
“너 자세히 보니까 몸이 상당히 괜찮은데, 남자부 싸움에 도전하지 않을래?”
“남자부?”
“여자들 끝나면 재미로 하는 건데 개싸움이라 좋아하는 여자들이 아주 많아. 너가 나간다고 하면 내가 특별히 신경을 써 줄게.”
“일단은 지켜보도록 할 게.”
몇 번의 안내가 이어지고 난 이후 드디어 첫 번째 대결에 임하는 두 선수가 링 위로 올라왔다.
“파이트 클럽 전적 32전 31승 1무, 누구보다 화려한 불꽃 주먹의 그녀. 강력한 주먹으로 모든 년들을 다 두들겨 패겠다. 우리 파이트 클럽이 자랑하는 최강의 인파이터 챔피언 함소희.”
첫 파이터에 대한 소개와 함께 선수가 들어왔다.
“이에 대항하는 새로운 도전자! 파이트 클럽 통산 전적 5전 5승, 내가 파이트 클럽을 정복하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 최강의 레슬러. 서주연.”
와아아아.
오늘은 시작부터 메인 매치라고 했다. 파이터들의 요청 시간이 중요하기에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챔피언이라 하는 함소희는 딱 봐도 몸이 단단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외모는 여성스러움이 거의 없다시피 한다. 딱봐도그냥 강하게만 보이는 그런 여자다.
그와 달리 서주연은 몸의 라인도 예뻐서 상당히 곱상하다. 이곳에서 인기가 많을 그런 스타일이 분명했다.
“서주연은신인이라도 인물이 곱상하니까 조금만 잘해도 인기가 많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제 퇴출시키려고 일부러 함소희랑 붙인 거야.”
“퇴출? 격투기 하는 애가 저렇게 예쁘게 생기면 좋은 거 아니야?”
“여자가 남자들 따먹고 싶어 안달이 난 꽃뱀처럼 보이잖아. 저런 애들은 인기가 없어, 함소희같은 깍두기 스타일이 언제나 인기가 좋아.”
아. 여긴 남녀역전 세상이지. 내가 너무 간과했다.
“그럼 오혜수도 인기는 없겠네?”
“당연하지!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를 극혐오하는 년들이 엄청 많아. 거기다...”
“거기다 뭐?”
“태양이 너처럼 잘 생긴 남자를 데려온 오혜수라 도전하는 애들이 존나 많을 거야.”
“그래서 나를 데리고 온 거구나. 하여튼 썩을 년이야.”
조만간에 오혜수를 제대로 따먹으며 확실하게 혼을 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경기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그전에 포토타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박아진이 포토타임이라는 말을 하자 화장을 한 게이처럼 보이는 남자 둘이 올라와 파이터들 옆에 섰다.
깍두기처럼 거칠게 생긴 함소희가 자신의 파트너 남자의 엉덩이를주무르더니 공개적인 장소에서 키스를 했다.
“와아아. 역시 함소희. 니가 최고야.”
여기저기에서 여자들의 함성이 쏟아진다. 그런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서주연은 차분했다.
“너도 오혜수 차례가 되면 저 위로 올라가야 해.”
“뭐어?”
“그게 파이트 클럽의 룰이야.”
- 라운드 원. 이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몸에 딱 달라붙는 티와 돌핀 팬츠를 입은 재수 없게 생긴 남자 하나가 숫자 1이 적힌 팻말을 들고 엉덩이를 요란하게 움직이며 경기장 위를 지나다니고 있다.
무척 역겨운 순간인데 이곳의 여자들이 환장하고 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파이트 보이를 노려본다.
그렇게 1라운드가 시작되었다.
함소희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방어태세를 갖추는 서주연.
레슬링의 잡기 기술은 반드시 힘이 동반되어야 한다. 서주연은 레슬러라 힘에서 밀린다면 함소희가 무난하게 승리하지 않을까 싶다.
인파이터라는 설명처럼 굉장히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함소희.
탁 탁
로우킥을 연거푸 날리며 상대가 입식 타격에어느 정도의 저항력이 있는지에 감을 잡더니,
퍽 퍽
펀치를 휘두르며 상대의 팔 길이와 자신의 주먹이 안면에 도달하는 거리에 대한 감도 빠르게 잡았다.
깍두기처럼 생긴 얼굴값을 제대로 하는 함소희는 엄청난 실력을 보이고 있다.
서주연은 고작 로우킥에 인상을 심하게 구긴다.
아무래도 함소희가 무난하게 이길 거 같다.
“누가 이길 거 같아?”
“함소희가 아닐까?!”
“너 남자 주제에 보는 눈이 좀 있다?!”
박아영은 함소희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 듯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이때 서주연이 빠르게 달려들며 함소희의 허리를 잡았다.
테이크 다운은 시도하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함소희의 힘이 더 강했다.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고 부드럽게 상대가 몸을 풀도록 만들었다.
파워가 밀리는 레슬러는 기술을 쓰기가너무 어렵다. 이러면 경기의 결과는 확정이 아닐까 한다.
강력한 기술을 구사하던지 잡고 늘어지면서 기술을 시도하던지 해야만 하는데 어느 것도 할 수가 없는 서주연의 상황.
퍽. 퍽.
상대에 대한 분석이 끝나고 이긴다는 확신이 생겼는지 함소희가 본격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서주연은 함소희에게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깍두기처럼 생겨조폭처럼 보이는 함소희와 곱상하게 생겨 격투기와 거리가 멀 것 같은 서주연.
외모만큼의 실력 차이가 발생한다.
“지금 경기 끝난 거 아니야?”
“후후. 잘 들어. 금태양. 우리는 지하 세계의 격투기 대회야. 졌다고 수건 던지고 하는 그런 곳이 아니야. 그래서 링 위에 심판도 없어.”
그러고 보니 경기를 중지하라는 판정을 내릴 심판이 없었다.
“설마 상대를 죽이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죽이는 건 그렇고, 우리 파이트 클럽만의 쇼 타임은 있어.”
“쇼 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