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194 생각이 바뀌었다
* * *
"자, 약속 지켜야지. 민아?"
"넵. 요기요!"
배시시 웃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운 아이가 내 옆으로 다가와 스마트폰을 건넸다.
화면 액정엔 난생 처음 보는 게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난 슥 그 제목들을 훑어보았다.
따라만해도 남자를 뿅 가게 하는 10가지 비법!
낮이밤져. 내 남자가 요즘 힘이 없다면?
백언니의 SM 따라하기 7편!
하나하나 제목을 눌러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뭔가 정신이 아득해질 내용들이 가득 수록되어 있다.
심지어 동영상까지도 링크가 달려있어, 우리 맹한 민아가 어쩜 그리 채찍을 잘 휘둘렀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헤헷. 이거 보니까 그날 생각나네요."
남자를 눕혀놓고 찰싹찰싹 때리는 걸 보고는 해죽해죽 웃는 아이.
난 재빨리 동영상을 끄고는 민아를 쳐다보았다.
민아가 날 보고는 생긋 웃는다.
"아저씨 또 할래요? 아직 그거 집에 있는데!"
아니. 난 그날을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러나 내 속마음을 듣지 못한 민아는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려 밑을 뒤졌다.
스포츠 가방 하나가 나오고, 지퍼를 열자 한 번 본적 있던 문제의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 민아야. 아저씬 괜찮아. 그냥 넣어둬."
"아녜요. 그날 아저씨 아팠잖아요."
민아가 후다닥 물건들을 뒤져 채찍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살포시 내 손에 쥐어주는 아이.
내가 뭐하냐며 쳐다보자, 민아가 벽에 손을 짚고는 엉덩이를 슥 내밀었다.
"자, 때려주세요."
"……."
"아저씨?"
"…넌 이거 압수다."
아무래도 평범한 소녀로 다시 개화 시켜야겠다.
민아를 친구 녀석에게 데려다주고, 나는 오수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건물로 차를 몰고 나아갔다.
도착한 그곳은 오수정네 집이 아니었다.
나는 눈을 크게 끔벅였다.
"뭐지. 왜…."
익숙한 도로. 익숙한 건물.
고개를 들자 거대한 휘트니스 센터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익은 남자의 사진도.
'우연인가?'
우연치고는 너무도 절묘한 상황.
아니, 많고 많은 곳 중에 왜 여길?
그때 건물 안에서 기다리던 이가 나타났다.
"어멋. 서후 미안. 오래 기다렸어?"
"아냐. 방금 왔어. 그런데 여기 다니는 거야?"
"응. 나 요새 몸 관리한다고 했잖아."
과거에 비해 몸이 좋아졌다했더니… 그런 거였나?
"왜? 서후도 관심 있어? 여기 원장님 실력 좋아. 한번 받아봐."
"아냐. 난 됐어."
"하긴. 서후는 몸 관리 따로 안 받아도 되겠더라. 내가 숱한 남자들 봤는데, 이런 몸 어디서 못 찾는다니깐."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하고 실력 좋기로 소문난 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거니까.
어느 정도인고 하니, 몸을 보여주며 그 부인을 꼬드기자 덜컥 넘어와 내 밑에서 교태를 부리며 앙앙 거렸다.
그걸로 만족하지 않고 수시로 오는 연락.
'얼마 전에도 문자 왔었지. 왜 관리 받으러 안 오냐고.'
관리를 받고 난 이후엔 꼭 그녀 집에 들러 따먹는 게 일상이 되다보니, 늘 그런 식으로 문자를 보내오는 그녀였다.
아무튼 나는 잘 모르지만, 지금 내 몸은 여자들에게는 뭔가 성적으로 자극이 되는 그런 게 있는 모양이다.
당장 눈앞의 오수정부터가 입술을 혀로 핥으며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몸을 배배 꼬며 허벅지를 비비는 건 덤이다.
괜스레 변태 여의사의 파트너로 오해받기 싫은 난 그녀를 이끌고 차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서후 씨?"
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뭔가 철렁 내려앉는 기분.
뻣뻣이 굳은 목을 애써 돌려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그러자 날 알아보고는 표정이 밝아지는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어멋. 주희 언니?"
"어머멋. 수정이도 있었네?"
서로 손을 마주치고는 아는 체를 하는 두 사람.
짧게 인사를 끝낸 여인들의 시선이 곧바로 내게 향했다.
"근데 두 사람이 왜 같이 있는 거야?"
"언니 내가 말했잖아. 나 요새 괜찮은 남자 찾았다고."
식은땀이 났다.
나도 모르게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여인.
그녀가 바로 내가 말한 헬스 트레이너의 아내, 홍주희였던 것이다.
내가 좆물을 자궁 가득 싸질러줘서 애를 둘씩이나 낳게 된.
"근데 언니도 아는 사람이야?"
"응. 우리 남편이 맨날 자랑하는 그 남자 있잖아. 그게 바로 서후 씨야."
"어멋. 정말로?"
홍주희가 내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날 보기만 해도 자궁이 큥큥 거리는지, 같이 서 있는 오수정과 같이 허벅지를 오므려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에 마저 이야기해, 언니."
"그래."
그러고 차로 향하려는데 오수정이 우뚝 멈춰 섰다.
뭔가 진동이 울린다 싶더니, 그녀가 손가방에서 폰을 꺼내 받았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네. 네? 지금요?"
오수정의 시선이 날 향한다.
잠시 입술을 짓씹던 그녀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예.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무슨 일이야?"
전화를 끊은 그녀가 볼을 잔뜩 부풀리며 투덜댔다.
"후우. 급히 도움이 필요하다고 빨리 좀 와달라네."
"병원에서?"
"응."
굉장히 시무륵해 하는 표정이 오수정 얼굴 위에 올라왔다.
뭐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마치 선물을 열기 직전에 제지당한 것과 같은 기분이겠지. 혹은 금요일 퇴근 직전에 당직 대타를 맡은 상황이거나.
가겠다고 대답을 해놓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오수정이 울상이 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내가 뭔가 해결책이라도 제시해줄 것처럼.
근데 미안. 내가 뭘 해줄 수 있겠니.
그냥 한마디 해준다.
"그럼 다음에 보자."
"…의사 때려치울까?"
그렇게 오수정은 자신의 차를 끌고 병원으로 가고, 난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 내 차에 올라탔다.
의도치 않게 얻은 자유에 뭐할까 고민하며.
근데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벌컥. 조수석이 열리고 홍주희가 올라탄 것이다.
"뭐야?"
"서후 씨 수정이랑 오늘 그거 할 생각이었지?"
내가 침묵하자,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여인이 내게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내 물건을 손으로 슥슥 훑으며 말했다.
"그 욕정 내가 대신 풀어줄게. 우리 집으로 가자♥"
홍주희가 내 입에 쪽 키스를 하고는 눈웃음을 쳤다.
매력적인 웃음. 활력이 넘치는 외모.
헬스 트레이너의 부인답게 그녀 또한 몸 관리엔 관심이 많았다.
당장 나와 몸이 맞닿은 부분에서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고, 시선을 슥 내리니 애를 둘 낳고도 전혀 쳐지지 않은 몸이 눈에 들어왔다.
난 몸을 일으키는 주니어를 애써 진정시키며 그녀를 설득시켰다.
"주희야. 네가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나 이제 그런 일 안 한다. 다 끊었어."
"에이. 서후 씨 농담은…! 아까 수정이 아쉬워하는 얼굴만 봐도 알겠더만."
"그건 네 오해야. 진짜 나 끊었어. 이젠 조용히 살려고."
홍주희의 눈동자가 날 가만 응시했다.
그러고 조금 있자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어쩌다가?"
"나도 언제까지 그러고 살 수는 없잖아."
"하긴. 겉으로 보기엔 이래도 서후 씨 나이가 좀 있었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는 여인.
후우. 그래도 얜 말이 좀 통하는군.
오수정은 그냥 다짜고짜 옷 벗고 달려들어 자지를 집어삼키는 바람에 방법이 없었는데, 애를 둘이나 낳은 유부녀답게 나름 마인드 컨트롤이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데 앞으로는 연락하는 일 없었으ㅁ…."
그러나 말을 하던 난 도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날 바라보는 여인의 눈에 탐욕이 엿보였다.
"후후후. 그건 안 되지. 지금까지 좋을 대로 박아대고 싸지르고 해놓고 이제 와서 그만 하자고?"
"그건… 미안하게 됐다. 너에겐 몹쓸 짓을 했어, 내가."
"그럼 더욱 내게 잘해야지!"
순간 소리를 빽 지른 여인이 멈칫 했다.
시선을 좌우로 불안정하게 살핀 그녀는 이내 말을 바꾸었다.
"아니, 아니지. 서후 씨는 잘못 없어. 이건 우리 둘 다 즐기고 사랑한 결과잖아. 안 그래?"
"……."
"그러니 지금 나랑 우리 집으로 가자. 어서. 우리 못한지 꽤 됐잖아? 내가 이참에 서후 씨 애 하나 더 낳아줄게♥"
이대로 가만있다가는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난 달라붙는 그녀를 살짝 밀어냈다.
그리고는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미안하다. 그만하자, 주희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만 하자니?"
"부탁이다. 좀 들어주라."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홍주희의 눈이 끔벅거렸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
그러고 나온 그녀의 첫 마디는 이거였다.
"설마 오수정 때문이야?"
"뭐?"
"걔랑 살기로 한 거냐고."
"야. 내가 조금 전 말하지 않았냐. 네가 생각하는 그런 쪽은 아니라고."
"그럼 뭐가 뭔젠데. 난 이해가 안 가!"
이해가 안 가긴 할 것이다.
그동안의 내 행보를 떠올려보면 나조차도 이해가 안 가긴했다.
발정난 개새끼마냥 열심히 싸지르고 다녔으니까.
그러나 사라를 떠올린 난 다시 마음을 잡았다.
"이쯤에서 우리 관계 끝을 내자."
그러자 홍주희의 눈이 표독스러웠다.
"싫어. 만약 날 거절하면 당장 남편을 찾아가서 다 말할 거야."
…미치겠네.
내가 입을 다물자, 그 협박이 통했다고 여겼는지 홍주희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더욱 날뛰었다.
"지금 당장 우리 집으로 함께 가지 않으면, 다 말.할.거.야."
승자의 미소가 흘러나왔다.
홍주희가 턱을 치켜들고는 날 내려다봤다.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바람피운 게 자랑도 아니고 말이야.
그걸 말하면 본인이 제일 좆되는 걸 모르는 건가?
성욕에 불붙은 유부녀는 못 말리는 법이다.
별다른 방도가 없음을 깨달은 난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럼 오늘만이야."
"누구 맘대로? 앞으로 매달 한 번씩은 꼭 나랑 해. 아니다. 그러지 말고, 앞으로 내가 전화하면 바로바로 튀어와. 그래. 그게 좋겠어."
난 가만 고개를 들어 홍주희를 살폈다.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그녀는 신이 나 떠들었다.
"일단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이번 주는 풀로 하자. 잘하면 바로 셋째를 가질 수도 있을 거야. 후훗. 그때까진 어디 갈 생각 하지 마."
"싫다면?"
"서후 씨. 내가 장난 하는 걸로 보여? 내가 남편에게 말 못할 것 같아? 어? 지금 당장 보여줘?"
"……."
"자, 일단 내게 키스부터 해봐. 어서♥"
하아. 진짜 좀 똑바로 살아보려는데 왜 이리들 도와주질 않는지.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적당히 방생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극약처방이 필요해 보인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보다 약하다는 생각이 들면 올라서려는 기질이 있다.
보통은 부부 사이에 많이 나오는 사고다.
남자는 제 딴에 애교를 부리고 부인에 한해서는 약해 보이려는 한 것인데, 호의가 지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막 나가는 것이다.
물론 그게 여자 잘못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남자의 잘못이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강한 이에게 끌리는 바, 스스로의 가치와 매력을 떨어뜨린 본인의 잘못인 것이다.
난 눈앞의 기고만장해진 년을 단단히 정신 차리게 해줘야 함을 직감했다.
누가 위고, 아래인지를 말이다.
"그래. 가자, 네 집으로."
"후훗. 잘 생각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