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 #189 여우가 달라졌다
* * *
***
여보세요.
"도향. 접니다."
어, 그래. 우리 귀여운 양 씨. 어떻게 결정 했어?
양이라는 단어에 링링의 눈 꼬리가 순간 올라갔으나 그녀는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는 말했다.
"당신이 내놓는 계획이라 영 탐탁지 않지만, 하겠습니다. 그것이 제 주인님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면요."
잘 생각했어. 그럼 간만에 둘이서 힘을 내 보자고.
뚝. 연락이 끊겼다.
링링은 스마트폰을 잠시 물끄러미 내려다 보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 모든 건 나와 주인님을 위해서…."
***
차량이 멈추어 선 것을 느낀 링링이 눈을 떴다.
마카오 공항에서 출발한 차량은 어느 음침한 골목에 들어서 있었다.
"언니. 여기 맞아요?"
"예."
링링이 차에서 내리자, 따라 내리는 예림.
링링은 그런 그녀를 데리고 한 허름한 건물로 나아갔다.
수행원들이 문을 두드리고, 조그마한 구멍으로 누군가의 눈동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철컥. 거친 소음과 함께 열리는 문.
사십 중반의 남자가 나아와 꾸벅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에 오셨군요."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왕웨이."
"늘 신경 써 주시니 저도 저희 가족들도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혹여나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허헛.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남자가 앞장서 그들을 인도했다.
수행원들을 잠시 대기시킨 링링은 예림이를 데리고 건물 위로 올라갔다.
끼익 끼익
오래된 탓인지 발을 올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계단.
피아노 건반을 밟고 올라서듯 그들은 한 계단 한 계단 소음을 연주하며 계단을 올라섰다.
다행히 계단 외에는 모두 시멘트 바닥으로 되어 있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삭막한 공간에 세 사람의 구둣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예림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링링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복도 양쪽으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문들이 자리했다.
쇠로 된 문. 그 아래쪽에 사각 구멍이 있었는데, 식사를 넣고 빼기 위한 용도인지 마치 수감소를 연상케 했다.
실제로 귀를 기울이자 곳곳에서 미약한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갇혀 있는 건가요?"
"다양한 이유입니다. 그래도 굳이 공통점을 뽑아보자면, 이 세상에 내놓기엔 너무 말종들이라 가둬 두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말종…."
그때 앞서 가던 남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입니다."
그는 잠금을 풀고 문을 열어젖혔다.
두 사람은 남자 옆으로 가, 그 내부를 들여 보았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시멘트 바닥과 벽돌의 사각 형태가 고스란히 보이는 벽으로 이루어진 그 공간엔 아무 것도 없었다.
침대는 물론, 이불이나 베개조차도.
오로지 변기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악취는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듯했다.
청결이 보장되지 않은 좁은 공간이 사람이 살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걸 단번에 깨닫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그 안에 한 남자가 누워있었다.
그는 열리지 않아야 할 문이 열린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새끼라고? 우리 엄마를 그렇게 만든 게?'
더러워진 얼굴을 봐선 잘 모르겠다.
카페에 간간이 나타나 느끼한 얼굴로 재수 없는 말을 퍼붓던 그 녀석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탁 틔워주는 한마디.
"너, 너, 너 이 쌍년! 네 년이었냐?!"
음?
"너 그 카페 딸 년 맞지? 한예림! 이런 쌍년이 감히 날 여기가 가둬? 엉?"
남자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는 검지를 치켜 든 채 흔들며 고성을 질렀다.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임재상이야. 우리 할아버지가 KUC 회장이라고!"
예림의 얼굴 근육이 꿈틀댔다.
녀석은 그런 예림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넌 진짜 뒤졌다. 내가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너랑 네 어미랑 납치해서 아주 보지가 허벌되도록 밑에 것들에게 돌려버릴 거야. 알겠어? 이 개년아!"
그리고는 달려드는 녀석.
그러나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가 발로 차자, 놈은 배를 부여잡고는 뒤로 나뒹굴었다.
"이런…. 거기 젊은 아가씨 많이 놀라셨을라. 문제없는 걸 확인했으니 그만 돌아가시는 건 어떠신지요?"
그러나 링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예림이 입을 열었다.
"언니."
"네, 예림."
"이 새끼, 제가 마음대로 해도 될까요?"
"서후가 알면 싫어할 겁니다."
"그런 가요…?"
예림의 얼굴에 고심이 올라왔다.
재상의 고성은 계속 이어졌다.
"두고 봐라! 네 년이랑 네 에미랑 아주 둘 다 이런 데 가둬놓고 죽을 때까지 내 애를 싸지르게 만들어줄 테니까!"
링링이 예림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는 바깥으로 이끌었다.
발걸음이 잘 안 떨어지나 예림은 링링의 인도를 따랐다.
"어디 가! 씨발 이리 안 돌아오냐! 엉?"
열렸던 문이 도로 닫혔다.
육중한 쇠문이 쿵쿵 흔들렸다.
"좆 같은 년이! 일로 오라고!"
"그만 가요, 예림."
"네, 언니."
그러나 그런 그녀의 다리를 붙드는 녀석의 발언.
"하. 씨발. 그때 네 에미년을 그 자리서 따먹었어야 했는데."
우뚝.
"막 울면서 버티는 년을 싸대기 때리는데, 그 맛이 아주 죽였지. 그 가랑이에 내 좆을 박아 넣으면서 궁둥이를 그리 때려댔어야 했는데. 하, 하지 마세요~ 그만 하세요~ 킥킥킥."
임재상이 당시의 상황을 재현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동영상으로 보았던 엄마의 모습이 예림의 눈에 생생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바닥에 웅크리고 우는 엄마의 모습 또한 겹쳐 보였다.
그래. 그날.
하늘이 먹구름으로 가득하고 비가 쏟아지는 그날.
옷이 모두 찢어진 채로 우는 엄마의… 모습.
"언니."
"네, 예림."
"저 저 새끼 손봐주고 싶어요."
"예림…."
"언니가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링링의 시선이 예림에게 닿았다.
감정을 잃은 인형마냥,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이 링링을 보며 요구하고 있었다.
"제가 도와줘도 언젠가는 서후에게 걸릴 겁니다."
"아…. 그러면 안 되는데. 아저씨가 날 싫어하면 안 되는데…."
땅바닥을 보며 중얼거리는 예림.
"꺄악. 하, 하지 마세요. 제발. 흑흑. 큭큭큭큭큭. 그때 손님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내 새끼를 배고 있었을 것을!"
멍하니 바닥을 쳐다보던 예림의 시선이 다시 링링을 응시했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
링링의 입이 움직인 건 바로 이때였다.
"그래도… 서후는 예림을 이해해 줄 겁니다. 이젠 알잖아요? 서후가 어떤 사람인지."
링링이 가까이 다가와 예림의 귓가에 속삭였다.
"예림이가 무슨 일을 하든 미워하지 않을 겁니다. 설령 사람을 죽이더라도 예림을 이해해 줄 겁니다. 서후와 예림, 둘 다 서로를 사랑하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아저씨랑 저, 둘 다 서로 사랑해요."
"그러니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예림."
"고마워요, 언니."
링링이 남자에게 고갯짓했다.
돌아가 잠금을 풀고는 문을 열어젖히는 남자.
예림이 그 방 안으로 사라졌다.
"하! 이 쌍년이…! 이제…야…. 어…어?"
링링은 조금 전 예림의 표정을 가만 떠올렸다.
'눈웃음이 참으로 매력적이었지요.'
그러면서도 환한 미소.
참으로 아름다웠다.
마치 아침 햇살에 빛나는 풀잎 마냥 싱그러웠다.
"자, 잠깐. 무, 뭐야…. 너 지금 눈 돌아갔어. 눈 돌아갔다고…! 멈춰. 머, 머, 멈추…. 끄아아아악!"
***
쯉. 쮸우웁.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황홀한 감촉에 눈이 번쩍 뜨였다.
고개를 내리자, 내 자지를 사탕 빨 듯 맛나게 빨아대는 유부녀가 눈에 들어왔다.
임신해 자세가 좀 불편한지 베개 하나를 끼고 있는 그녀.
결국 난 간밤에 부장 앞에서 정아와 뜨거운 정사를 치르고 말았다.
그래. 그것까진 좋다. 그런데 뻔뻔하게 여기서 잠까지 잤다는 사실에 난 어이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 일에 손 떼겠다고 마음을 먹었더니 긴장이 풀린 건가? 미치겠네.'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려본다.
옛 상사의 얼굴이 보인다.
지금 정아는 남편과 한 침대에 누워있는 옛 부하 직원에게 모닝콜 펠라를 시전 중이었다.
"으음…."
잠에서 깨어났는지 부장의 눈이 서서히 뜨였다.
귓가로는 야릇한 음색이 들려왔다.
쮸뿝쮸뿝. 쮸뿝쮸뿝.
누가 봐도 좆 빠는 소리.
난 손을 휘저으며 그만 하고 가라 손짓했다. 그러나 오히려 움직임이 더욱 맹렬해졌다.
어쩔 수 없이 난 이불을 덮었다.
"서후?"
"아, 예. 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좋은 아침! 하아암. 아직 술이 안 깼나? 알딸딸하네."
하복부의 이불이 들썩들썩 움직인다.
다행히 침대는 좋은 걸 샀는지, 부장님은 별다른 기색을 못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문제는 소리.
난 손을 이불 위에 올려 정아의 머리를 짓눌렀다.
그러자 혀를 낼름낼름 움직인다.
마치 미꾸라지마냥 입 안에 들어찬 내 귀두 뒤쪽을 정아의 혀가 음란하게 뒤훑는다.
"으음. 근데 자네도 방금 일어났나보군? 얼굴에 베개 자국이 선명한데?"
"예. 저도 이제 막 일어났습니다. 아직 나른하네요."
"하핫. 자네 얼굴이 망가진 건 또 첨 보는구만. 그럼 우리 조금만 더 자도록 하지. 아직 준이 엄마가 깨우러 오지 않은 걸로 봐선 더 자도 될 것이네."
그러고는 부장이 베개를 바로 했다.
조금 있으니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장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다시 이어지는 쮸뿝쮸뿝 좆 빠는 소리.
결국 정아는 내가 한 발 싼 이후에야 만족스런 얼굴로 이불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입술 주변에 내 좆털 두 개를 매단 채로 나와 부장을 깨웠다.
"꿀꺽…. 자, 두 분 다 일어나세요!"
그러나 수난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아침 식사 전, 샤워를 하기 위해 각기 다른 화장실로 들어간 부장과 나.
그런데 씻으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린다.
"응? 정아야. 너 왜 알몸으로…."
"주인님. 씻는 김에 저도 좀 도와줄래요? 혼자서는 힘들어서요."
"아니… 그런 거라면 부장님에게 가지, 왜?"
"에이. 우리 아기가 아빠와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대요. 호호호♥"
아, 예…. 그러십니까?
"앙. 하아앙…!"
딱 봐도 작정하고 들왔기에, 나도 설전을 벌이는 대신 작정하고 실력을 발휘해 주었다.
최대한 신속하고 빠르게. 구석구석 반들반들.
"흐아아아앙♥"
츄아악. 츄아아악.
"자, 끝. 이제 나가 봐."
"네헤에엣…."
"준이 엄마, 어딨어?"
"지금 가요오오."
후우. 진짜 죽겠네.
그래도 이젠 진짜 끝났겠지?
그러나 그 뒤로도 난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려야 했고, 점심 즈음이 되어서야 그 집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세!"
"예, 다음에 뵙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십시오."
"또 봐요, 서후 씨♥"
"예에…."
후우. 기 빨린다, 기 빨려.
부장과 정아의 인사를 받으며 엘리베이터를 탄 난 문이 닫히자마자 쓰러지듯 벽에 등을 기댔다.
굶주린 유부녀를 잘못 만나면 감당 안 된다더니, 어제 병원에 오수정도 그렇고 부장 네 사모 정아도 그렇고… 아주 혼까지 쏙 빨리는 줄 알았다.
"대체 왜 다들 이렇게 변태가 되어 버린 거지?"
그래도 천만 다행인 점은 부장님이 간밤의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으레 그렇듯 술 먹은 사람들의 필름 끊김 현상이 발휘된 것이다.
'앞으로는 조심해야지.'
더 이상의 바람은 안 된다.
내겐 사라뿐이다.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여우였다.
"어, 예림아. 그래. 어디니?"
"저 지금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어용!"
"그래? 그럼 병원 입구서 만나자구나."
통화를 끊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어제일로 퉁퉁거리고 있을 여우의 기분을 어떻게 풀어줄까 고민하며.
'아무래도 정아와의 일은 숨기는 게 낫겠지.'
대신 어제 함께 못해준 만큼, 오늘 하루는 최대한 여우가 좋아하는 일을 해주도록 하자.
가능하다면 둘 만의 시간도 갖도록 노력하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입구로 나아가는 그때였다.
"아저씨 여기에용!"
"어?"
여우를 보는 순간, 난 위화감을 느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달라졌다.
단 하루 만에 무슨 일이 일어난지는 몰라도, 내 앞에 서 있는 초딩은 어제의 그 초딩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원인 제공자는 그 뒤에 서 있는 년이 분명했다.
"…왜 둘이 함께 있는 거지?"
"오랜만이군요, 서후. 잠깐 단둘이 이야기 가능할까요?"
링링의 제안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