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 #184 각자의 선택에 따른 결과들 (비극적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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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화의 스토리는 비극적 결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독자님들의 의견을 받아 해당 에피소드는 수정되었고, 보지 않고 바로 다음 편으로 넘어가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서후."
"응?"
침대 위. 정사의 여운을 느끼고 있는 사내에게 도향이 물을 건넨다.
그녀는 물을 마시고 있는 남자 위에 젖가슴을 올린 채, 검지로 남자의 볼을 콕콕 찌르며 물었다.
"넌 혹시 결혼할 생각 없어?"
"결혼?"
"어. 결혼."
"글쎄. 딱히…. 그다지 하고픈 마음이 없네."
"과거 상처 때문에?"
"뭐 그런 것도 있고. 그냥… 별로 하고 싶지 않아."
도향이 흥미롭다는 듯, 남자의 가슴에 턱을 괴었다.
"희한하네. 그래도 살면서… 아. 이 사람이랑은 진짜 평생 함께 하고 싶다. 이 사람이랑 아침에 같은 침대에서 눈 뜨고 싶다. 뭐 그런 기분이 드는 여자가 한 명 정도는 있었을 거 아냐?"
"음. 굳이 따지자면 지금까지 두 명 정도 있긴 했는데…."
"오오? 한 명은 네 첫사랑이겠고, 다른 한 명은 누구지? 내가 놓친 여자가 있었나?"
서후가 빤히 도향을 내려다본다.
도향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 시선을 마주보았다.
"서후, 왜 날 그렇게 쳐다봐?"
"…아무것도 아냐."
"그래서 그게 누군데? 누군지 나한테만 말해주라~"
"몰라. 안 가르쳐줄 거야."
"아, 왜! 내가 예상치도 못할 인물인가? 그래서 말 못하는 건가?"
"응. 도향 넌 아마 평생토록 상상도 못할 거야."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 여자가 누구인지.
그래서 도향은 지금의 상황을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죽여 버리겠어."
도향은 핸드백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호신용 전기충격기였다. 납치 사건 이후로 그녀 또한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챙겨둔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한 여인이 보인다.
진갈색 머리칼을 나풀대며 움직이는 백인 여성이.
'난 네가 미워. 서후를 망친 네가 미워!'
내게서 내 아이를 빼앗아간 네가 미워!!
도향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목에 물건을 가져다댔다.
사라는 이렇다 할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쓰러졌다.
도향은 식칼을 들고 그 위에 올라탔다.
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만나서 반가워, 꼬마야. 난 도향이야.
응? 나 애인 있냐고? 후후후. 그게 왜 궁금할까 우리 꼬맹이?
지금 나랑 한 번 했다고 애인 행세라도 하고 싶은 거야?
우리 서후. 이제 많이 늘었네. 누나를 헐떡거리게 만들 줄도 알고.
결혼? 글쎄. 그냥 평생 혼자 살까 생각 중.
혼잡스런 상념으로 인해 도향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아악!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고는 비명을 질러댔다.
'도향. 지금이라도 멈추면 돼. 그러면 최소한이라도 서후에게 미움을 받진 않을 거야.'
이성이 도향의 손목을 붙든다.
필사적으로 그녀의 행동을 막아선다.
"하지만…."
도향은 그걸 뿌리쳤다.
흔들거리던 두 눈동자는 조금씩 표독스러워졌다.
'그 아인 내 거야. 내 거라고!'
너만 없었어도. 너만 없었어도!
언젠가는 이 감정의 정체를 깨달아, 내 것이 될 거였어. 다른 누구에게도 물려주지 않고 내 것이 됐을 거였다고!
"그런데 네가! 네가아아아!"
손이 점점 위로 들린다.
칼을 높이 쳐든 손이 파르르 떨린다.
"서후는 아름답게 자라야 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하지만 서후가 이 일을 원하지 않는다면?
도향은 입술을 짓씹었다.
과연 내가 하는 이 행동이 옳은 걸까?
"……."
서서히 손이 내려온다.
수직으로 서 있던 칼날이 비스듬하게 눕는다.
"서후는 내 건데. 내 것인데…. 흑흑."
도향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껏 살면서 울음이란 걸 터뜨려본 적 없는 그녀였으나, 부모의 죽음에도 흘러나오지 않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도향이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 순간, 한 소음이 그녀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우우웅. 우우우웅.
스마트폰 진동이 울린다.
액정 화면에는 서후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도향은 자신의 가방 안쪽에 손을 집어 넣어보았다.
슥 바깥으로 나오는 그녀의 스마트폰.
"……."
자신의 스마트폰은 시커먼 화면일 뿐이다.
그에 반해 사라의 폰에는 그녀가 아끼고 아낀 아이의 이름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
그걸 보는 순간, 거의 고장이 나 삐꺽거리던 도향의 이성이 뚝 끊어졌다.
내려갔던 양 손이 머리 위로 다시 들린 것도 이때였다.
'이것은 거름을 주는 행위일 뿐이야. 계집에게 푹 빠지는 멍청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보호자인 내가…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희생…!'
도향이 팔이 움직였다.
한 번 내려갔다 올라갈 때마다 붉은 물줄기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핏방울이 자욱한 그녀의 얼굴 위로, 투명한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
헉. 허억.
택시를 타고 서후가 사라의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게 끝난 뒤였다.
거리에는 사이렌 기계의 붉고 푸른 등이 매달린 차량들이 즐비했고, 사람들은 두 사람을 건물 안에서부터 끄집어내었다.
그들은 모두 들것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으나, 서후의 머릿속은 새하얗기만 했다.
"대체 왜…."
서후는 그중 한 사람에게 다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그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여인이었다.
"대체 왜!!"
"비키십시오."
"대체 왜 그런 거야! 대체 왜 이런 선택을 한 거냐고!"
그러나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여인에게선 그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지나가겠습니다."
구급대원이 서후를 밀치고 그녀를 이끌었다.
그녀는 그대로 앰뷸런스에 실려 들어갔다.
"도향!"
서서히 움직이는 차량.
서후의 외침은 사이렌 소리에 묻혀 그대로 흩어졌다.
"도향! 도향!!"
***
…주택가에서 두 사람이 사망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사라 밀러는 살해됐다.
그 딸인 엘리스는 잠시 다른 곳에 맡겨두어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아이가 있었다고 해서 도향이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적어도 예림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도향 언니. 저 왔어요."
해안가에 서서, 예림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요. 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렀어요."
이곳에 와서 힘들어하던 자신을 늘 위로해주었던 언니.
얼마 전 마지막으로 나눴던 그녀와의 통화내용이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간다.
여우야. 나 그 때 말한 좋아하는 사람 다시 만났다?
그런데 다른 여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려고 하고 있더라. 그 모습을 보니… 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이젠 네 자리야.
앞으로는 내가 하던 일을 네가 해야 해. 늘 서후 곁에 붙어 다니면서 도와주고 관리해주고. 무슨 의미인지 알지?
예림이는 말없이, 들고 온 푸른 꽃을 바닷물 위에 동동 띄워 보냈다.
그러며 생각했다.
왜 언니는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나를 대신해 서후에게 꽃 하나만 가져다 줘.
기억해. 물망초야. 물망초.
"후우."
답답함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선선하기만 하다.
***
'좋았어. 모든 건 계획대로.'
그에게 모든 걸 이야기해 주었다.
과거 은거 노인이 했던 그 악덕한 행위의 진실을.
그로 인해 두 사람은 갈라섰고, 이제 노인에게… 아니, 아버지에게 내가 혈육임을 밝히기만 하면 되었다.
그에 차지욱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그의 얼굴에는 들뜬 감정이 역력했다.
'일단 숙소에 들러서 옷 좀 갈아입고….'
그러나 그런 그에게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
"컥. 너, 너흰 뭐야?"
"차지욱씨. 엄청난 일을 벌이셨더군요."
"다, 당신들은 설마…."
차지욱이 발악을 한다.
그러나 그의 숙소에서 매복하고 있던 그들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는지, 곧바로 그를 그의 교수대로 이끌었다.
"제 주인님은 진즉에 당신의 존재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다.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가만 놔두려고도 했죠."
"자, 잠깐. 회장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해줘!"
"그러나 당신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습니다. 제 주인님께서는 그런 당신이 사라지길 원하십니다."
"컥. 커헉…. 제, 제발 살려…."
"그래도 배려차원에서, 당신의 어머니와 같은 방법으로 보내 드립니다. 잘 가십시오."
차지욱은 허공에 매달린 채 버둥거렸다.
그러나 그의 목을 옭죄는 그것은 절대 풀리지 않았다.
'아…. 아버지…. 어머니….'
***
"아저씨. 짐 다 챙겼어요. 이제 가요!"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번 임무를 위해 다 같이 모여 토의도 하고 했던 호텔 지휘통제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전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이곳에서 있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건너편에 앉은 이를 놀리던 도향 언니와.
그 도발에 옅은 인상을 쓰며 맞받아치는 링링 언니.
그런 그들을 웃으며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저씨까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
결국 미국에까지 건너와서 아저씨에게 남은 거라곤 기억뿐이 없었다.
옛사랑들과 함께 나눈 소중한 추억들과 그들을 떠나보내며 얻게 된 아픈 상처.
"예림아, 가자."
"네에!"
아저씨의 옆에 딱 붙어 발걸음을 옮긴다.
아직 미숙한 내가 도향 언니의 빈자리를 얼마나 채워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신한다.
적어도 난 언니와 같은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아저씨 곁에 붙어있을 것이다.
문이 닫힙니다.
그런데 문득 언니의 마지막 한마디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예림아, 민아 조심해라.'
(2부 끝. 이후 3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