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181 민아의 활약
* * *
사라가 날 꼬옥 껴안는다.
그건 그녀의 기쁨과 행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포옹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진실을 말하게 된 이유가 뭐야?"
"그건···."
"사실대로 말해줘. 내게 일말이라도 미안한 감정이 있다면···."
난 한숨을 내쉬고는 상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예림이 알지?"
"아, 그 귀여운 아가씨?"
"응. 그 아이가 잭에게 인질로 잡혀 있어."
"···농담이지?"
난 고개를 저었다.
기쁨이 맴돌던 사라의 얼굴이 곧바로 진지해진다.
"그런데 왜 스마트폰 화면을 내게 보여주는 거야?"
"그건··· 어? 왜 통화가 꺼져있지?"
잠금을 풀고 통화내역을 확인한다.
약 3분 전 통화가 끊긴 것으로 되어 있다.
혹시나 내가 실수로 끈 건가 싶어 연락을 넣어보았으나, 착신음이 몇 번 갈 뿐 전화가 꺼져 있단 음성만 들려왔다.
"이게 대체···?"
그런 내게 다가와 질문하는 사라.
"잭이 그 아이를 붙잡고 협박한 거야?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그래. 맞아."
"이런 나쁜 놈···!"
사라가 화를 주체 못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난 그런 그녀를 끓고 있는 냄비 앞으로 보내며 말했다.
"이거 마무리부터 해. 난 일단 예림이가 있는 곳으로 가볼게."
"나도 갈래!"
"아냐.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엘리스랑 같이 있어. 혹시 모르니 문 꼭꼭 잠그고 있고."
"응…. 알겠어."
재빨리 외투를 챙기고 문 밖으로 나선다.
그리고는 링링에게 바로 전화한다.
"지금 예림이랑 도향 어딨습니까?!"
***
"잭이라고 했나? 심호흡 좀 하고 진정하는 게 어때?"
보조석에 앉은 도향의 말에, 잭이 콧방귀를 뀐다.
"걱정 마라. 내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우니까."
"당신 지금 눈이 어떤 줄 알아? 사고치기 직전의 사람처럼 광기가 맴돌고 있어. 당신 말마따나 그 여자에게 점수를 타려면 지금보다 조금 더 진정할 필요가 있다고."
그러자 잭이 총구를 도향의 머리에 가져다댄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만 신경 끄셔. 확 쏴버리기 전에."
"말은 그리 해도 못 쏠 거 알고 있어."
"하? 지금 도발하는 건가?"
"그럴 리가. 그저 당신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야. 그 여자와 어떻게든 잘 되고 싶잖아? 그런데 지금 우릴 쐈다간 이어지기는커녕 평생 쫓기는 몸이 될 테니, 절대 쏠 수 있을 리가 없지."
"하하핫. 너 아주 얄미워? 얼굴값이 아깝진 않은 년이네."
그때 폰으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서후? 거기서 뭐해?
'드디어 시작인가?'
잭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는 마치 선물을 뜯기 직전의 아이처럼 들뜬 표정을 지어보였다.
잭은 차를 한쪽에 주차하고는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실은 말이야. 나 너에게 거짓말 했어. 널 속였어.
그게… 무슨 말이야?
흥미진진하구만!
자, 어서 실망해. 사라 그 녀석에게 잔뜩 실망하고 나에 대한 신뢰는 회복하는 거야!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누군가 자동차 창문을 두드렸다.
똑똑.
고개를 돌려 인도 쪽을 바라보는 세 사람.
한 여자 아이가 그들을 보며 해맑게 웃고 있다.
"림! 도향 언니! 거기서 뭐해요?"
"에? 민아?"
"민?!"
"누군데? 아는 애야?"
잭이 눈동자를 얇게 만들어 여자애를 가만 살펴본다.
보스로부터 받은 기록엔 없었던 인물이다. 즉 이들과 같이 일하는 이는 아니라는 뜻이리라.
"그… 민아라고 제 친구에요. 한국에서 같이 놀러왔는데, 정말 얜 아무것도 몰라요. 이번 일하고는 상관없으니 그냥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림! 안에서 뭐라고 하는 거야. 잘 안 들려? 뭐?"
굳이 관련 없는 이를 끌어들일 필욘 없는 만큼, 잭은 저 민아란 아이를 그냥 보내주기로 마음먹었다.
확실히 다시 떠올려 봐도 기록엔 없던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얼굴이 순진한 게 가장 이유가 컸다.
용병 등 이쪽에 꽤 뛰어본 만큼, 저런 인물은 위험성이 0%에 가깝다는 걸 경험상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쫓아 보내."
그러고 창문을 열어주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
"림! 나 쇼핑하느라 짐 많아서 그런데, 나도 같이 태워주면 안 돼?"
"민. 그게… 우리 놀러 다니는 게 아니라서…."
"제발 부탁해. 저기 잘생긴 오빠! 저 좀 태워주시면 안돼요?"
"흠흠. 안 돼."
그러나 끈질기게 부탁한다.
양손으로 6개의 가득 찬 쇼핑백을 들어 보이며.
"제발요. 잘생긴 오빠아~"
무려 5분을 그러고 있는 여인.
도향의 말에도, 친구 예림이의 말에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통에 지쳐버린 잭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그래. 타라."
이런 백치미 넘치는 년은 대체로 고집이 세니 별 수 없지.
무엇보다 폰 너머로 상황이 거의 다 끝나고 있었다.
서후란 남자는 여기 두 여인을 살리기 위해 모든 걸 이야기하고 있었고, 잭의 입장에선 이제 이들을 내려다 주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둘 다 사고치지 말고 가만히들 있어. 너희들 숙소 근처까지는 태워다 줄 테니."
잭이 품 안으로 총을 숨긴다.
예림이 문을 열자, 민아가 안으로 탑승한다.
"하아…. 살았다. 진짜 무거워 죽는 줄 알았네."
"서연이랑 하나는 어쩌고 너 혼자야, 민?"
"몰라…. 쇼핑하다 엇갈렸는지 나 혼자 짐만 한 가득이네."
민아가 차 문을 닫고는 이마의 땀을 닦는다. 그리고는 그녀는 잭을 향해 밝게 웃어보였다.
"고마워요, 오빠! 제가 딱히 감사를 표할만한 건 없고, 포옹 한 번 해줄 게요!"
"아니, 됐다."
그러나 기어이 운전좌석 뒤쪽으로 와 꼬옥 안아주려 하는 민아.
"아잉. 받아주세요~"
"하아…. 그래그래."
민아의 황소고집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잭.
근데 잠깐 한숨을 내쉰다고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때, 그는 볼 수 있었다.
차 전면 유리창에 비친 한 동양인 여자아이를.
그녀는 해맑게 웃고 있었으나, 그 손에는 들려있지 말아야 할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어? 자, 잠까아아아악!!"
잭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른다.
민아는 오른손에 든 전기충격기로 그의 목에 사정없이 지져댔다.
"이야…! 역시 미국산이 더 좋네요! 어때요, 오빠? 찌릿찌릿한 게 천국이 좀 보이시나요?"
"끄아아아악!!"
"빨리 좀 기절하세요. 자세 불편하니까 팔 아프다아~"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비명이 멈춘 잭.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두 여인을 바라보며 민아가 생긋 웃는다.
"헤헷. 민아의 구출 임무 완료! 둘 다 다친데 없죠? 이제 집에 돌아가요."
"아, 아니…. 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사건 발생 5분 전.
민아는 서연, 하나와 함께 경호원들의 차를 타고 두 사람을 추격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멈춘다?
"이건 기회야."
"응? 무슨 말이야, 민?"
임하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민아가 쇼핑백들을 한데 모아들고는 말한다.
"언니랑 친구를 구할 수 있는 기회!"
"민! 진정해. 경호 아저씨들 말 못 들었어? 저 사람 총 들고 있데!"
"맞습니다, 아가씨. 저 차에 다가가는 건 절대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는 막아서는데, 민아가 갑자기 쇼핑백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파지직. 강력한 스파크가 이는 물건.
그건 전기충격기였다.
"어? 자, 자, 잠깐만요! 민아 아가씨!! 닿아요. 몸에 닿는다고요!"
"도와줄 거 아니면 비켜요."
"아니, 아가씨. 말로…. 제발 말로 해요, 우리…!"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이는 황당하단 얼굴로 뒤를 돌아보고, 뒷좌석에 앉아 있는 이는 양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리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그러고 보니 이거 효과가 있나 없나 테스트가 좀 필요한데…. 아저씨가 해줄래요?"
"죄, 죄송합니다! 시키는 건 뭐든지 할 테니 제발…."
"이거 아파요?"
"그… 미국산은 좀 많이 아픕니다…."
"헤에…."
민아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오른다.
개구쟁이와 같은 얼굴을 한 아이는 전기충격기로 위협하며 경호원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럼 빨리 내려요. 저도 내리게."
"아가씨…! 제발…."
"훔. 이게 잘 작동 되나?"
파지직.
"열겠습니다! 열어요!"
어쩔 수 없이 차량에서 내리는 경호원.
그래도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는 듯 민아가 내리는 사이 제압하려 했으나….
"헤헷. 아저씨 손 느리네요?"
실패한 경호원의 이마로 삐질삐질 땀이 흘러내린다.
"좋은 말로 할 때 얌전히 타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기 충격기를 쇼핑백 중 하나에 숨기고는 두 사람이 인질로 잡혀 있는 차량에 접근한 민아였다.
그러고는 포옹하는 척 하면서 슬쩍 빼내 잭을 제압한 것.
"일단 내리고 나서 이야기 하자, 림. 밖에 경호아저씨들 똥줄 타겠다. 언니도 어서 내려요!"
"응…."
"그래…."
그런데 그 순간, 번쩍 뜨이는 잭의 눈.
"으 개짜븐이 으어 가으! (이런 개잡년들이 어디를 가려고!)"
바로 총으로 손을 가져다댄다.
그리고는 방아쇠를 당기려 하나….
"으어…?"
손가락이 굳어 움직이질 않는다.
방아쇠 홈에 손가락이 들어가질 않는다.
"헷♥"
뭔가 섬뜩한 소리에 잭은 고개를 나직이 들었다.
스무 살 남짓의 젊은 동양 여자 아이가 그를 향해 해맑게 웃고 있다.
한 손에 파지직. 푸른 스파크가 이는 기계를 들고서.
"확인 사살 안했다가 뒤통수 맞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이번엔 제대로 보내드릴게요."
"아으으. 아으으으…! (아냐. 안 그래도 돼…!)"
"그럼 갑니다앗! 에잇!"
"끄오오오옷!!"
민아의 팔이 남자의 고간으로 향한다.
잭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으나 그녀의 손은 이미 고간에 닿았고, 잭은 발을 동동 구르며 비명을 지르다 그대로 쓰러졌다.
"한 방에 보내는 데에는 급소가 최고지! 앗…! 이 오빠 스마트폰 고장 났다. 그러게 왜 그런 걸 가랑이 사이에 끼고 있어요? 이건 내 책임 아니에요~"
그러고는 두 여인을 향해 활짝 웃는 그녀.
"림, 도향 언니. 이제 안전은 확보됐어요. 나가요!"
"으응."
"그, 그래."
사건의 주동자인 잭은 그렇게 민아의 활약으로 단숨에 제압되었다.
그러나 그가 뿌린 불씨는 아직 남아 있었으니.
속보입니다. 방금 전 폭발 사고가 있었는데요. 차량이 거센 폭발을 일으키면서, 그 안에 타고 있던 찰스 밀러 상원의원이 현장에서 사망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