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 #176 정체를 들키다
* * *
***
"하하핫."
"마이클. 뭐 좋은 일 있어? 왜 그리 웃어대?"
"아니. 별 건 아니고···. 사라 있잖아."
"응. 보스 동생이 왜?"
사라의 이름이 나오자, TV를 보고 있던 우락부락한 사내 넷이 다들 관심을 보인다.
마이클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시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동양인과 보스가 이어준 것 기억하지?"
"어어. 그 키 크고 잘생긴 양반?"
"어. 사라가 푹 빠진 모양이더라고. 야외에서 그 짓을 하고 있지 뭐야?"
"정말로? 푸하하핫. 그 사라가? 그것 참 잘 된 일이구만!"
"진짜 잘 됐네. 솔직히 전 남편 일로 보스 동생이 많이 힘들어했지 않아? 그걸 해결했다니 다행이군."
"이거 얼마 안 있어 우리들도 근무지가 둘로 나뉘는 거 아닌가 몰라? 크하하."
네 남자가 크게 웃어젖히며 기뻐한다.
그들은 보스인 찰스와 그 동생 사라와는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
모두 제 일처럼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한 사람만은 미소 뒤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여어. 잭. 근데 넌 왜 얼굴이 그 모양이야?"
"아아. 그냥···. 이 친구 말대로 그 둘이 결혼하고 나면 술 마실 친구들 숫자가 반으로 줄어드는 건 아닌가 싶어서 그래."
"짜식. 거 참 감상적이긴."
"그럼 그 기념으로 오늘은 조금 일찍 술파티를 해 볼까?"
"그거 좋군!"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 먹을 것과 술을 가지러 이동했다.
혼자 남은 잭의 얼굴이 뻣뻣이 굳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사라네 집 쪽을 바라보더니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
"사라, 아깐 정말 너무 좋았어."
"나도 좋았어. 후훗."
"그럼 앞으로도 오늘처럼 하는 거다."
"응!"
사라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곤 내게 찰싹 달라붙는다.
그녀의 나에 대한 진한 애정이 느껴진다.
엘리스는 제 방으로 올라가고, 사라와 난 거실 소파에 딱 붙어 술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체로 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호응해 주는 포지션을 맡았다.
"난 바다가 좋아. 해변 근처에서 살면 좋겠어. 섬이면 더 좋고!"
"의외네. 보통 여자들은 도시 같은 위생적인 데를 좋아하지 않아?"
"뭐 그렇긴 한데. 내가 좀 특이하잖아? 서후는 어때?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나도 바다. 산 쪽은 그다지···."
보통 산에서 태어난 사람은 산을 좋아하게 된다는데, 난 그 반대였다.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이 깃든 고향을 아직 떠올리기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서후. 그럼 우리 결혼하면 바다로 이사 갈래?"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묻는 진갈색 머리의 유부녀.
난 그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며 방긋 웃어주었다.
"그래. 그러자."
"정말? 아! 기대된다!"
"그렇게 좋아?"
"응. 솔직히 지금 이곳은 좀 갑갑하거든. 나도 슬슬 한계라고 해야 할까? 사실 그래서 오빠가 안 된다고 해도 하와이로 무작정 놀라간 거였어."
"그러다 날 만난 거고?"
"빙고! 뭐 지금은 서후 너랑 같이 있으니 그런 답답함은 안 느껴지지만···. 함께 바다에서 살게 된다면 내 인생은 최고로 행복할 것 같아."
그러고는 백마가 웃으며 말한다.
"난 만약 죽으면 내 시체도 바다에 뿌려 달라 할 거야."
"쿡쿡. 아니, 벌써부터 유언을 남기는 거야?"
"뭐 어때? 평생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사람이 지금 여기에 있는데?"
조금은··· 그 한마디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 여인은 알까?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남자는 그녀를 그 오빠에게 다리 벌리게 만들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가 꿈꾸는 장밋빛 미래는 그저 친오빠의 밑에 깔려 헉헉 대야만 한다는 것을?
난 내 불편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그녀에게 질문했다.
임무에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한 그런 질문.
"그런데 사라는 어떤 남자가 이상형이야?"
"나?"
배시시 웃으며 날 검지로 가리킨다.
그에 나 또한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런 대답 말고. 사라의 진짜 이상형."
"왜 그게 궁금해?"
"그냥. 오래 함께 하려면 상대가 싫어하는 모습은 줄이고 좋아하는 모습을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서후는 정말 대단해. 진짜 남자야. 내가 사람을 정말 잘 봤어."
그러고는 사라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난 음···. 딱히 이상형은 없어."
"그래?"
"응. 서후 넌 잘 모르겠지만, 나랑 오빠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거든. 부모님 없이 크느라 막 음지 이런 데에서 생활해야 했고, 의도치 않게 안 좋은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볼 수밖에 없었어."
사라는 술을 한 모금 입에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상형이라는 표현은 좀 잘 안 맞고. 그냥··· 어떤 종류의 성격만 아니면 된다 라는 게 맞을 지도."
"예를 들면?"
"본인만 생각하는 사람. 가족과 주위에 피해를 주는 사람. 말과 행동에 조심이 없는 사람."
"···어?"
방금 뭐라고···?
듣는 순간, 마치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응? 서후?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냐."
"그런 것 치고는 얼굴이 좀 굳었는데?"
"그··· 나랑 이상형이 비슷해서 그랬어. 나도 너랑 똑같거든. 본인 생각만 안 하고, 가족과 주위에 피해 안 주고, 말과 행동에 조심이 없는 거. 하나 차이가 있다면 쉽게 눈물을 보이는 거?"
"헤에. 사람 사는 데는 어디든 똑같은 가봐. 이상형이 똑같은 경우도 다 있네. 후훗."
"그러게."
그러나 대답은 그리해도 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내가 하고 다니는 일의 특성상 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봤고 그들의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지금껏 나와 이상형이 똑같은 이를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사라, 그녀가 처음이었다.
나와 생각이 맞고, 행동 또한 잘 맞는 여자는.
"서후. 우리 혹시 천생연분 아닐까?"
"그럴···수도···."
"흐응~ 반응이 시큰둥한데?"
"아하핫. 아냐. 그냥 이상형이 똑같은 게 너무 놀라서, 아직도 어안이 벙벙해서 그런 것뿐이야."
"그러면 증거를 보여줘."
"어떻게?"
사라가 소파에 누워 윙크를 한다.
난 그런 그녀 위에 몸을 포개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그녀의 팬티를 옆으로 젖혀, 내 자지를 보지에 끼워 넣었다.
찔꺽.
"흣···. 여, 역시 척하면 척 알아듣는 게 천생연분 맞네. 그럼 이 다음에 해야 할 것도 알지?"
"뭐···. 엘리스의 동생 만들기?"
"후훗. 역시···! 어서 해줘. 서후의 씨 뿌려줘."
난 사라의 위에 올라타, 허리를 들썩들썩 움직여 자지를 뿌리까지 처박았다.
그리고는 그녀와 진한 키스를 하며 자궁 안에 씨를 뿌릴 준비를 했다.
"앙. 아앙···. 오늘도 밤새 해줄 거지?"
"안 재울 거니 각오해."
나와 사라는 그렇게 거실서 큰 교성을 내지르며 새벽까지 허리를 흔들어댔다.
***
"그럼 나 잠깐 갔다 올게."
"응, 갔다 와!"
서후에게 직장에 제대로 이야기하고 돌아오라 한 사라는 밀린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 성격상 일을 절대 미루는 법이 없었으나, 밤낮으로 사랑의 꽃을 피워대느라 정신이 없던 탓에 일거리는 꽤 쌓여 있었다.
"흐응흐응~"
콧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하는 그녀.
그때 초인종이 울린다.
'누구지? 서후가 벌써 갔다 왔나?'
띵동. 띵동.
"네. 나가요~"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연다.
그곳에는 짧은 금발을 가진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사라가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잭. 오랜만이에요."
"네. 사라 씨도 잘 지내셨죠?"
"그럼요. 그런데 무슨 일로?"
"잠깐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래요. 들어오세요."
남자가 거실 소파에 앉고, 사라는 그에게 커피 한 잔을 내어주었다.
그가 누군가를 찾듯 이곳저곳 둘러보더니 사라에게 묻는다.
"엘리스는요?"
"아, 딸은 지금 자기 방에서 놀고 있어요."
"그렇군요."
갑자기 무게를 잡는 남자.
사라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한다.
"잭 씨.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그게···. 하아. 이걸 어떻게 말씀 드려야 할지···."
"뭔데 그리 망설이시는 거죠? 편하게 말씀하세요. 후훗."
사라의 부탁에 남자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심호흡을 해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은 그는 입을 열어 미리 준비해온 말을 꺼냈다.
"서후라는 남자 있죠? 사라가 그 남자에 대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서후···에 대해서요?"
"예. 아무래도 모르시는 것 같은 마음에···. 꼭 이야기 해 드려야 할 것 같아 이리 방문했습니다."
꿀꺽. 사라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울린다.
그 앞에서 잭은 서후에 대한 모든 걸 이야기했다.
그가 어떤 목적으로 접근 했는지를 포함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그 와중에 보스에 대한 사실은 쏙 빼는 걸 잊지 않았다.
"그, 그러니까 지금 서후가 제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이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사라 씨."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것도, 장난감 가게에서 만난 여자애도, 그 이전 만남도 모두 계획된 것이고요?"
그 이전 만남?
잭은 순간 의문이 들었으나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그렇습니다."
사라가 들고 있던 쟁반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걸 보며 남자는 자신의 생각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확신했다.
"죄송합니다. 불편한 이야기를 해서···. 그래도 꼭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았기에 그랬습니다."
"······."
"그리고 이건 보스가 집에 가져다 놓으라 한 물건입니다."
"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현관으로 향하고, 사라는 반사적으로 그를 배웅하러 나섰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여인의 얼굴. 그 모습을 본 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는 이야기했다.
"사라 씨."
"네, 네?"
"털어내세요. 동양인하고 친하게 지내서 좋을 것 하나 없습니다."
"···예."
"만약 그 동양인이 문제를 일으킬 것 같으면 바로 연락주세요. 무슨 뜻인지 아셨죠?"
사라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금 제가 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다닌 거라 보스에게 걸리면 농땡이 피웠다는 소리를 들을까 해서···."
사라는 알겠다고 하고는 그를 내보냈다.
그리고는 소파로 다가가 털썩 주저앉은 뒤, 서후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무래도 직접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