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 #152 타깃과 그 딸아이로부터 호감 사기
* * *
***
평범한 가정집.
그러나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자리하고 있는 특이한 공간.
그곳으로 한 사내가 들어오며 소파에 누워있던 남자에게 묻는다.
"마이클. 저것들 대체 뭐야?"
"뭐가?"
"보스 댁에 얼쩡대는 동양인들 말이야."
"아, 그 사람들? 보고 못 들었어?"
듣긴 들었다.
다만 정말인가 싶어 의문이 들어 그렇다.
"보스가 여동생일이라면 완전 팔불출이잖아. 동생이 남편의 일로 상심이 크니까, 괜찮은 남자 하나 이어서 빨리 그 우울한 감정을 잊게 해주려는 거겠지."
"난 그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가."
TV를 보고 있는 마이클 옆으로 백인 남성이 다가와 앉는다.
마이클은 그를 가만 돌아보더니 묻는다.
"잭. 뭐가 문제야?"
"아니, 사랑하고 결합하는 건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이잖아?"
"그건 그렇지. 그런데 난 네가 그리 성을 내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건 어찌됐든 보스 가정사야. 우리가 끼어들고 왈가불가할 일은 더 아니라는 거지."
말문이 막힌 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고는 마이클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TV를 보았다.
***
타깃과의 약속일인 금요일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그녀의 대한 걸 파악도 하고. 이것저것 준비와 브레인스토밍을 하다 보니,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버린 것.
이젠 준비를 잘 했으니 무대에서 그 결과를 이끌어 낼 시간이다.
난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타깃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한 손에 들려있는 선물들을 바라보았다.
블록 장난감, 향수, 그리고 와인.
일단 애 있는 가정의 유부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의 마음 또한 함께 사로잡아야 한다.
아이가 간간히 던지는 나에 대한 우호적인 말 한마디 한마디가 결국 여인의 불을 더욱 활활 타오르게 해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작업을 안 해두면 나중에 굉장히 골치 아파지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자는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아이와 나 사이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 아이까지 내 편으로 만들어두면? 그런 굴곡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현재 타깃의 딸아이는 블록 장난감에 푹 빠져있다 했지.'
지금 손에 들린 건, 이제 막 나온 신상으로 내일 가게에 가서나 볼 수 있는 거다.
금요일 저녁이 약속인 게 어떤 면에선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었다.
난 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서후입니다."
"아! 잠시만요...! 지금 나가요!"
건물 내로 부산스런 움직임이 느껴진다.
난 가만 기다리며 또 다른 선물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아이에게 줄 선물이 블록 장난감이라면, 타깃에게 줄 건 향수.
외국인들은 향수를 많이 쓴다.
그들 특유의 체향 때문이기도 하고, 본래 여자들이 그런 쪽으로 매력을 어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첫 만남에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줄 수 있는 선물 중 하나지.'
타깃 주변을 맴돌며 도향이 직접 만든 것이니, 성능은 확실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문이 벌컥 열리고.
한 번 가까이서 본적 있는, 사진으로는 질리도록 본 여인이 웃으며 날 맞이한다.
진한 갈색 머리에 20초반 즈음 되어 보이는 뛰어난 외모.
175cm 쯤 되는 큰 키.
그리고 능히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 만큼 커다란 가슴과 골반.
요리를 하고 있었는지, 싱그러운 향 사이로 고소한 냄새가 풍겨져 나와 코끝을 자극한다.
"어서오세요! 그... 사라예요...!"
"네, 반갑습니다. 서후입니다. 이거 제가 너무 일찍 온 건 아닌가 모르겠군요."
여인이 고개를 내젓는다.
그리곤 안으로 인도하며 말한다.
"후훗. 약속 시간에 늦는 것 보다는 훨씬 낫지요. 엘리스?"
"네, 엄마!"
"인사하렴. 예전에 우리 하와이 놀러갔을 때, 너 위험할 뻔한 거 구해준 아저씨 있지? 그분이야."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날 올려다본다.
그에 난 쭈그리고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이에게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위협적이기 보단 같은 눈높이에서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이 좋다.
"안녕하세요. 전 엘리스입니당. 그날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래그래. 이것 받아라. 선물이다."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이 더욱 동그래진다.
그리곤 포장지를 뜯어보더니, 이내 소리를 지르며 그것을 들고는 순식간의 자신의 방으로 도망갔다.
꽤 귀여운 면이 있는 아가씨구만.
"엘리스? 엘리스! 서후, 미안해요. 우리 애가 좀 쑥스러운가 봐요."
"괜찮습니다. 여기 이것."
타깃에게도 선물들을 건네준다.
일단 와인을 꺼내드는 여인.
"어멋. 뭘 이런 걸 다... 그냥 몸만 오셔도 되는데요."
"그래도요. 맨 손으로 오긴 그래서 들고 왔습니다."
"후훗. 고마워요. 그리고 이건..."
여인이 와인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향수를 꺼내든다.
그리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왈.
"이것도 제 것인가요?"
"그럼요. 한 번 써보세요. 향이 잘 맞을지 모르겠네요."
솔직히 향수를 써보라 권하는 건 그다지 좋은 판단이 아니다.
맞지 않는 향일 경우 도리어 점수를 깎아먹을 수 있기에.
이미 선물을 받은 시점에서 충분히 호감을 얻었고. 그걸 이용해 오늘 저녁을 공략하면 큰 문제없을 것이나, 무려 도향의 향수다.
그녀의 전문성과 눈썰미를 믿는 난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권유받은 여인이 허공에 향을 뿌려 그 냄새를 맡아본다.
과연 결과는?
눈이 번쩍 뜨이는 타깃.
입가에 호선이 절로 그려지는 게...
'성공이로군.'
그리고 과연 여인이 바로 찬사를 내뱉는다.
"아니... 이건 대체 어디 거죠? 이 비슷한 향수는 많이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선명하고 기분 좋은 향은 처음이에요!"
상표를 슥슥 찾아보기에, 난 방긋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제 친구 중에 그 분야에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똑 소리 나는 애가 하나 있습니다. 그에 찾아가서, 잘 보일 이가 있다고 사정사정해서 하나 얻어왔습니다. 하핫."
"어멋. 그 잘 보일 이가 누굴까요?"
"오늘 제 입과 배를 즐겁게 해주실 셰프님 이시죠?"
여인이 손으로 입을 가리곤 기분 좋게 웃어 보인다.
그녀는 내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 하고는 다시 음식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난 그 사이 이 집 꼬마 아가씨에게 조용히 접근했다.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 내가 준 선물을 가지고 정신없이 놀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한 번 슥 돌아보더니 다시 장난감에 집중한다.
난 별다른 말없이 곁에 가만히 있으며 간간히 아이가 원하는 블록만 찾아 건네주었다.
'일단 익숙해지는데 집중한다.'
아이들은 단순하다.
어떤 면에선 동물과 같다.
일반적으로 처음 보는 어른을 향해 강한 경계를 표출하나, 먹을 것과 선물, 만화 캐릭터 등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 그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곁에 가만히 있으면서 익숙해지는 것.
그럼 아이들은 내가 따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본인들이 먼저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온다.
"아저씨. 저 그거 좀 주세요."
"그래. 여기 있다."
급할 필요 전혀 없다.
아이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는 건, 아직 마음에 경계심이 남아 있단 뜻이니까.
아이들은 그 대부분이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생명체이기 때문에, 안전하다 판단되고 경계심이 허물어지면 본인들이 스스로 먼저 다가온다.
그러니 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바로 이렇게.
"아저씨, 그런데 굉장히 잘 생기신 것 같아요. 혹시 TV에 나오시는 분이에요?"
"하하. 아니다. 그렇게 봐주니 굉장히 고마운데?"
그러고 다시금 내려앉은 침묵.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그래도 간간히 내 존재를 기억하고는 말을 걸어온다.
"그런데 아저씨."
"응?"
"엄마랑 따로 만난 적 있어요?"
"아니. 왜?"
블록 하나가 잘 안 끼워지는지 아이가 끙끙대며 말을 잇는다.
"그냥요. 엄마가 오늘 하루 종일 뭔가 들떠있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특별한 일이라곤 아저씨 만나는 것밖에 없으니 두 분 사이에 뭔가 있나 해서요."
외국 애들은 뭔가 좀 조숙하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아이가 날 바라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아저씨, 혹시 우리 엄마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음. 글쎄. 굉장히 예쁘고, 아름답고, 성격도 좋고 그런 것 같아."
"그쵸? 저도 우리 엄마가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우리 엄마에게 데이트 신청을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웃집 낸시네 엄마보다 몇 배는 예쁜데."
"그건 무슨 말이야?"
내 질문에 아이가 어깨를 으쓱한다.
"이웃집 아줌마는 얼굴도 몸매도 별론데 이 남자 저 남자 바람피우느라 바쁘거든요. 그것 때문에 요새 낸시가 고민이 많아요. 아빠한테 말하기엔 너무 늦었다나 뭐라나."
맙소사.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맹이가 뭐 이리 빠삭해.
새삼 요즘 사회가 뭔가 빠르다는 게 절로 깨달아진다.
뭐 어찌됐든 덕분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네.
이 아이의 엄마가 내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러나 살짝은 의문이 든다.
"왜 아저씨에게 그런 걸 말해주는 거야?"
"뭐... 엄마도 아저씨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고. 이렇게 보니 저도 아저씨가 나빠 보이진 않아서요. 옆집 낸시네 찾아오는 아저씨들 눈을 봤는데, 막 다들 이런 식으로 엉큼하더라고요. 그런데 아저씨는 그런 게 전혀 안 보이니 믿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러면서 한마디 더 붙인다.
"요약하면, 음... 우리 외로운 엄마 잘 부탁한다는 의미?"
하핫. 정말이지.
타깃의 딸아이가 응원해주니 아주 잘 풀릴 각이로구만.
그에 난 방긋 웃어주며 말했다.
"네 기대에 부응해 한 번 노력해 보마. 그건 그렇고 아직도 안 믿기네. 네 엄마 같은 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사람이 없다니."
"그러니까요. 다들 눈이 삔 거죠."
그러나 난 왠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의뢰자인 찰스 밀러가 다른 남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관리 했을 것이다.
이 주변에 있는 무장 세력은 자신의 생명 보호 목적도 있겠지만,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타깃에게 다른 수컷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용도 또한 있을 게 분명했다.
'아무리 애가 있는 유부녀라도, 저런 쭉쭉빵빵 미스 진급 미녀를 가만 놔두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난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타깃의 정보를 하나하나 확인해 나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가장 취약점인 딸아이의 호감을 빠르게 쌓아올렸다.
그렇게 장난감이 1/3 정도 완성되었을까.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미성의 목소리.
"식사하러 내려오세요!"
자, 그럼 이제 타깃을 구워삶으러 가보자고.
호감이 전무한 상태에서도 유부녀를 잘만 따먹었던 나다. 호감이 있다면 아주 식은 죽 먹기다.
그리고...
"아저씨, 파이팅!"
내 옆에서 걸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는 금발의 꼬마 아이.
이런 든든한 서포터까지 있으면 그냥 거저먹기지.
그에 나 또한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들어보였다.
그러고 1층으로 내려가자, 예쁜 옷으로 갈아입은 진갈색 머리의 미녀가 웃으며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