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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화 〉 #144 여우의 선택과 속셈 (148/200)

〈 148화 〉 #144 여우의 선택과 속셈

* * *

***

도향의 집에 갔다 온 이후로 부쩍 말이 없어진 예림.

그런 그녀를 민아와 은주가 걱정스레 바라본다.

"예림아, 무슨 일 있었어?"

"림, 무슨 일이야?"

두 사람이 물어도 대답도 않고 그저 가만히 창밖만 바라본다.

그러나 예림이는 지금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아저씨를 따라 나서야 할까, 말아야 할까.

따라 나서면 어떻게 되고, 그러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

생각이 서로 끊임없이 충돌한다.

'뭘 어떡하긴 어떡해. 일단 확인부터 해야지, 한예림!'

그렇다. 어떤 선택을 하던 일단 확인부터 해야만 한다.

도향언니에게 들은 것들이 모두 사실인지를 당사자에게 들어야만 한다.

그 때 그녀를 걱정스레 지켜보던 친구가 활짝 웃으며 어깨를 마구 흔든다.

"림! 아저씨, 지금 여기 오신데!"

"정말?"

"참네. 베프가 말을 걸어도 꿈쩍도 안 하더니, 아저씨 온다는 게 그렇게 좋냐!"

"아하핫... 미, 미안..."

진심을 담아 미안한 연기를 표현하자, 민아가 방긋 웃는다.

친구는 예림이를 꼬옥 껴안으며 말했다.

"림~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털어놔. 내가 그 고통 나누어 줄게."

"응. 고마워, 민."

절대 말할 수 있을 리 없지만 그 한마디에 그녀는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유리벽 밖을 내다보았다.

익숙한 차 한 대가 들어온다. 아저씨 차다.

"후우."

예림이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민아와 함께 아저씨 맞을 준비를 했다.

***

­ 여우에게 다 말해뒀어. 하나하나 생각나는 건 전부.

"수고했어."

­ 별 말씀을. 그럼 교육은 내 마음대로 한다?

"그래."

그렇게 도향하고의 통화는 끝이 났다.

스승과 뛰어본 경력이나 보조하는 실력이 나보다 월등히 나은 그녀가 가르치는 게 아마 더 나을 것이리라.

'그럼 여우에게 가볼까나.'

다른 여인들 같으면 좀 생각할 시간을 줄 테지만, 집착녀는 시간을 끌어본들 절대 좋은 쪽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기에 바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때마침 민아에게 문자가 오고.

여우의 위치를 파악한 난 차를 천천히 몰아 은주네 가게로 향했다.

유리벽 안쪽으로 나와 몸을 섞은 세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아저씨, 어서오세요!"

"서후씨, 어서와요!"

날 맞이해주는 엄마 여우와 민아.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뒤에서 우물쭈물 있는 한 아이로 인해 두 여인이 의아한 얼굴을 한다.

"우리 딸이 오늘 진짜 별 일이네."

"그러니까요. 컨디션 안 좋아?"

"아, 아냥...!"

여우가 고개를 젓고는 내 얼굴을 잠시보다 한 손을 들어 올려 살짝 흔든다.

아마 내 정체를 알고는 혼란스러운 걸 테지.

그 와중에 자신의 감정 노선을 확고히 하지 못해 더 어지러울 테고.

난 일단 자리에 앉고는 대충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민아가 잠깐 화장실로 자리를 비운 사이, 엄마가 일하는 걸 확인한 여우가 재빨리 내게 물었다.

"아저씨, 도향 언니가 말 한 거 전부 사실이에요?"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준다.

"응."

"저, 정말... 아저씨가 그런 사람이라고요? 다른 사람의 여자를 빼앗고 그런...?"

"왜 안 믿기니?"

내 질문에 여우가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게,

"아저씨는 우릴 도와주셨잖아요.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랬다.

처음이자 마지막이긴 하지만, 난 여우 모녀를 빚더미에 앉은 위험한 시기에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고 사라진 적이 있었다.

그 인연은 몇 년이 지나 올해 다시 연결이 되었고, 당시의 고마움을 간직한 여우 모녀에게 지금 난 매우 소중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아저씨가 그, 그, 그런 일을 한다는 게... 흑. 도저히 안 믿겨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

배신감... 이려나. 믿었던 이에 대한 환상이 깨지며 오는 슬픔...?

어쩌면 내 입에서 사실 확인이 되기 전까지는 아닐 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상당했는지도 모르겠다.

여우는 무언가 더 말을 하려다 말을 잇고 못하고 작게 훌쩍였다.

그 사이 화장실에서 나온 민아.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여우가 재빨리 한 바퀴 뱅 돌아 화장실로 들어간다.

민아가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고는 묻는다.

"엥? 아저씨 예림이는요?"

"화장실. 중간에 못 봤어?"

"앗. 넵."

오늘 안에 대답을 들을 수 있으려나.

어쩌면 내일 다시 만나야 할지도.

제 아무리 욕심 많은 집착녀라 해도 혼란스러운 건 혼란스러운 것일 테니까.

"민아, 넌 이번에 복학 하던가?"

"음... 글쎄요. 아마 그럴 것 같아요. 뭐 아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지만요."

친구 녀석은 공부를 중시하긴 하지만, 그보단 딸아이의 행복을 더 생각한다.

공부하라 잔소리해도 아마 좀 더 놀고 싶다 하면 그러라 할 것이다.

"근데 아저씨는 이제 뭐 하실 거예요?"

"난 외국에 한 번 더 나갈 것 같아."

"외국에요?"

"약속이 생겼거든."

민아가 입을 삐죽 내밀고는 날 쳐다본다.

흘끗 주변을 살펴보다 내게 작은 목소리로 왈.

"얼마나 있다 오시는데요?"

"오래 걸리면 한두 달은 더 걸릴 수도?"

"에엑? 너무 길어요!"

그렇긴 하지.

그러나 작업이 쉬우면 모르겠으나, 어려운 건 두 달이 뭐야. 반년이 걸릴 때도 있었다.

그에 대한 대가는 톡톡히 받아서 상관이야 없지만, 아무튼 딱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

흐음. 고심에 잠긴 아이.

이내 조심스레 묻는다.

"아저씨, 혹시... 저도 따라가도 되요?"

"너? 아빠한테는 뭐라고 하려고?"

"끙... 그니까요. 뭐라고 하징. 혹시 아저씨 혼자 가세요?"

뭐라고 할까 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혼자 간다하면 어떻게든 따라올 것 같았고, 그러면 함께하는 도향 때문에 한 번 더 거짓말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제 아무리 사랑에 빠져있는 사냥감이라도 말을 번복하는 건 좋지 않다.

믿음이 떨어지는 언행은 애초에 하질 말자.

거기다 잘 하면 여우를 꼬드기는데 좋은 덫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난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도향 누님이랑 같이 가."

"앗. 흠... 그렇다면..."

둥글둥글한 눈을 굴리며 민아가 미간을 좁힌다.

시골 아이마냥 순박한 스타일이 그러고 있으니, 제법 모양새가 귀엽다.

'뭐 민아 정도는 데려가도 괜찮겠지.'

그래도 명색이 현재 내 메인 사냥감이고, 의뢰 작업이 얼마나 걸릴 지도 모르니.

난 의자에 푹 기대며 민아의 고민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건 그렇고 여우가 늦네.

***

화장실 안쪽.

한 아이가 펑펑 울고 있다.

스스로도 왜 우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저 아닐 거라 생각한 부분이 진실로 드러나자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난 어떡해야... 어떡해야...'

사실 속으로 그리 묻고 있으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아저씨를 포기할 생각도 조금도 없음을.

다만 그녀가 망설이는 것은 도향에게서 들은 일에 대한 부분이었다.

'내 아저씨가 다른 여자와 떡치는 걸 보고, 심지어 도와줘야 한다고...?'

아직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나,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러나 단칼에 거절하기도 그랬다.

도향은 이번에 그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바로 자신들 때문이었다고 했기에.

"착각하지 마. 서후가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어? 너 때문이야. 너랑 네 엄마 때문이라고."

"그게 무슨..."

"너희 둘에게 해코지 한 그 개새끼를 중국 골방에 20년간 처박아 두는 조건으로 하게 된 일이야. 그러니까 어린애처럼 떼쓰지 마."

미움의 타깃을 서후의 스승에게 돌리고, 적당히 거짓말을 섞어 진실인 양 만들어낸다.

도향은 이 일을 통해 여우가 서후 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할 생각이었다.

인간은 한 번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그 이후로는 저항 없이 술술 넘어가곤 하는 생물이니.

그리고 그 전략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당사자가 그걸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역시 좀 생각을 해봐야겠어.'

예림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안쪽에서 나온다.

그리고는 세수를 한 뒤 울었다는 걸 숨기기 위해 새 화장을 한다.

매장으로 돌아가자, 사뭇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친구 민아.

옆에 앉아도 꿈쩍 않는 모습에, 여우는 고개를 돌려 예의 잘생긴 남자를 바라보았다.

정말 40대가 맞긴 한 건지, 20대 후반? 아니면 30초반의 얼굴을 가진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생긋 웃는다.

작은 미소만으로도 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남자는 훈훈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누님이 너도 해외 같이 가자고 물어봤다면서?"

그 한마디에 눈이 번쩍 뜨이는 두 사람.

"림?! 정말이야?"

"에... 아니 그게..."

아니아니, 아저씨. 그걸 민아에게 말해도 되요?

여우가 얼굴 표정으로 추궁하자, 남자가 어깨를 으쓱한다.

"림?"

"어어? 아, 사실이야. 그런데 고민 중이야. 엄마가 허락을 안 해 줄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학교를..."

그러자 그 순간 민아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을 한다.

"힝... 그러면 어쩔 수 없네. 나 혼자라도 아저씨를 따라..."

쾅.

"잠깐."

단발머리 아이가 테이블을 세게 내려친다.

그 소음에 민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렇지, 자신을 제외하고 아저씨와 동행?

여우는 순간 울컥했다.

그리곤 그녀는 고민이고 뭐고 머릿속에서 다 날려버렸다.

지금 고민이 중요한가? 단 며칠, 아니 단 몇 분이라도 아저씨 옆에 있는 게 더 중요하지.

그 와중에 들러붙을 여시 같은 년들을 처리하는 건 덤이다.

머릿속으로 아저씨에게 매달리는 외국년들을 상상하자, 예림이는 더 이상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저도 갈게요, 아저씨."

남자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진다.

"림! 잘됐다!"

"응, 민!"

신나 웃으며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는 아이들.

예림이는 생각했다.

도향 언니가 아저씨의 서포트 겸 비서 일을 맡긴다고 했는데... 지금이야 순순히 작업 도와주는 척 하며 배우고, 나중에는 내 마음대로 하자고.

'분명 내가 다 배우고 나면 언니는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했어.'

그러니 후다닥 배워서 아저씨의 비서 자리를 꿰차자.

빨리 배우면 배울수록 아저씨를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 것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여우.

그리고 외국에 따라가서 아저씨와 단둘이 섹스를 할 생각에 신이 난 민아.

둘 다 의욕이 넘치나, 이내 검지를 치켜들며 하는 남자의 말에 금세 수그러드니...

"그럼 이제 부모님 허락만 맡으면 되겠네?"

"윽..."

"에..."

그랬다.

둘에게는 아주 큰 난관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부모님의 허락을 맡는 것이었다.

두 아이의 얼굴에 난감함이 그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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