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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화 〉 #143 진실을 알게 된 집착녀 한예림 (147/200)

〈 147화 〉 #143 진실을 알게 된 집착녀 한예림

* * *

***

"안녕하세용!"

"그래. 어서와. 민아는?"

현관에 들어서며 예림이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언니가 제게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 하셨잖아용. 그래서 혼자 왔죠."

눈치가 빠르네.

아니면 질투를 하는 걸까나. 견제나. 개인적으로 부를 일이라면 응당 서후의 일이니.

도향은 잘했다며 머리를 한 번 슥 쓰다듬어 주고는 그녀를 식탁으로 인도했다.

예림이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눈을 크게 뜬다.

"언니 집 어때?"

"...이거 설마 언니가 직접 다 하신 거예요?"

"그렇지?"

"대박. 언니 이런 거 잘 하실 줄은 전혀 몰랐어요. 몸 관리, 피부 관리하거나 사람 만나고 다니실 줄 알았는데."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있잖니. 난 식물을 좋아하거든. 어떤 면에선 사람보다 더."

이해한다는 듯 예림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그녀에게 식탁 의자를 내어주며, 도향 왈.

"차 한 잔 할래?"

"넵! 저야 땡큐죵!"

두 여인이 향기로운 허브 티를 마시며 마주 앉는다.

도향은 잠깐 생각을 하다 이내 운을 뗐다.

"예림아."

"넹?"

"너 서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뜨겁기에 살짝살짝 홀짝이며 차를 즐거이 음미하던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후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바로 차에 관심을 끊고는 그녀에게 집중하는 아이.

역시나 집착녀인가.

도향은 픽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설명을 너무 짧게 했구나?"

"네, 넵. 대체 무슨 의미로 물어보시는지 잘 몰라서용. 헤헷."

"말 그대로다. 서후를 남자로서, 한 명의 애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뜻이야."

아이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녀 앞에 있는 도향이란 사람은 바로 서후의 친언니와 다름없는 사람.

그녀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의도는 모르겠으나, 이건 아저씨에게 한 발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에 예림이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 아저씨 좋아해요. 사랑하고요."

"얼마나?"

얼마나라... 아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제 목숨보다 더?"

"그럼 언니가 질문 하나 할 테니,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진지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넵."

도향이 시선이 찻잔을 향한다.

손을 움직여 잔속의 물길을 휘저으며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약에 말이야. 아저씨가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그럼 넌 어떻게 할 거니?"

"엣...? 그, 그건..."

아이의 눈이 크게 흔들린다.

마치 그것의 무게가 상당한 듯 이내 몸 전체가 좌우로 잘게 떨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예림이는 가장 먼저 그 후보자들을 빠르게 추렸다.

아저씨 근처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도향 언니? 민아? 우리 엄마? 아니면... 아이돌 걔네들 중 하나?'

그러자 갑자기 아저씨의 행적들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아저씨와의 만남이 뜸해지긴 했어. 아마 요 근래 그 년을 만나느라 엄마와 날 만날 시간이 없어진 거야. 그게 대체 누구지? 누구?'

살의가 점점 올라온다.

어느 년인지는 몰라도 발견하는 즉시 죽여 버릴...

짝!

그 때 박수치는 소리에 예림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도향이 입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착 가라앉은 눈동자의 검은 어둠을 직시하는 순간, 예림이는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맹수 앞에 선 나약한 사냥감이 취할 수 있는 하나의 본능적 행동이었다.

"한예림."

"네, 넷?"

"얼른 대답하렴. 아직 내 질문에 대답 안 했어."

"그... 지, 질문이 뭐였죠?"

여인이 한숨을 탁 쉬고는 다시 묻는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죽음을 이행하는 사신 같이 차가웠다.

"서후가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그럼 넌 어떻게 할 거니?"

예림이는 그녀가 너무도 무서웠으나, 같은 질문을 다시 받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에 본능적으로 본심을 끄집어냈다.

"...릴 거야."

"응?"

"죽여 버릴 거야. 그 년..."

도향에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올라온다.

그녀는 다시금 찻잔에 담긴 액체를 휘적휘적 저으며 물었다.

"만약 아저씨가 그걸 원치 않는다 해도?"

"에...?"

"네 앞에 서서, 너한테 콕 짚어 그러지 말라 해도 죽일 거야?"

"그건..."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도향은 알고 있었다. 아이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 지를.

그녀는 눈앞에 아이를 조금씩 구석으로 내몰았다.

"아저씨 말을 무시하고 그 년을 죽이는 순간, 넌 아저씨에게 평생 죽을 때까지 미움을 받을 거야. 그래도 할 수 있어? 죽일 수 있겠어?"

아이가 고개를 젓는다.

집착의 대상이 바람피우는 것보다(?) 그로부터 미움을 받는 게 더 싫은 것.

그게 집착녀들의 심리.

물론 정작 실제 행동은 그것에 반해 타깃을 죽이고 후회를 할 테지만,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지금부터 도향 그녀가 할 일이었다.

도향은 차를 들어 한 모금 음미하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눈앞으로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아이가 보인다.

'소질은 있네.'

아직 덜 성숙하긴 해도, 감정 조절을 잘 하는 게 투자가치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해줘야지.

내 새끼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서포트해 줄 관리자를 만들어 봐야지.

"한예림. 지금부터 언니가 하는 이야기 잘 들으렴."

도향은 찬찬히 입을 열어, 서후가 어떤 사람이고, 그가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으며,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다니는지를 하나하나 낱낱이 설명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아이의 눈은 도향의 입에서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

"여기서 오른쪽이요!"

"오른쪽."

자동차의 방향을 우로 튼다.

그러자 아파트 단지 하나가 나타났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서연이는 심호흡을 하고는 내릴 준비를 하였다.

"지금 뭐하는 거야?"

"심호흡이요."

"그건 나도 알아. 내 말은 뭐 하러 가는데 그러느냐는 거지. 잠깐 친구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고는 말했다.

"맞아요. 그... 혹시 저번에 제가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세요? 아침에. 제가 바뀌고 싶다고."

"응. 기억하지."

왜 기억이 안 날까.

나름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 걸.

사람은 큰일을 겪고 나면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변화한다.

나 같은 경우엔 안 좋은 쪽으로 변한 것이고, 이 아이 같은 경우엔 좋은 쪽으로 변하려는 것이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다.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변하려는 결심에.

"저 때문에 상처받은 애들... 찾아가서 사과하고 있어요. 같은 대학에 다니던 친구들은 다 했고, 오늘은 이 친구에요. 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그러고는 잠깐 고민하는 아이.

이내 조심스레 내게 묻는다.

"아저씨도 같이 가실래요?"

"음... 그래."

그렇게 난 아이를 따라 차에서 내려 만남의 장소로 이동했다.

"내가 이런다고 용서할 줄 알아!"

"미안..."

한 여학생이 쩌렁쩌렁 소리친다.

다들 출근해 있을 시간이라 단지 밑으로 지나다니는 이들은 거의 없었으나, 그 몇몇 사람 모두가 고개를 돌릴 정도로 여자의 목소리는 컸다.

"마음 같아서는 뺨이라도 갈기고 싶은 걸 참고 있는 거야! 어? 혹시나 치료비 요구할까봐!"

"미안. 정말 미안해. 그 때 그 일 정말 내가 잘못했어. 용서받지 못할 건 알지만 그래도 꼭 찾아와서 한 번은 사과하고 싶었어."

"......."

"정말 미안해, 승희야."

서연이 정중하게 허리 숙여 사과를 한다.

그 모습을 두 주먹 불끈 쥐고 바라보던 여자는 이내 몸을 홱 돌려 걸어가며 소리쳤다.

"꺼져! 그리곤 다신 나타나지 마! 네 말대로 난 널 평생 용서할 일 없으니까!"

서연이 잠시 떠나가는 여인의 뒤를 가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천천히 내게로 걸어왔다.

"수고했어."

"후우... 네, 아저씨."

"매번 이런 식이야?"

"아뇨. 오늘은 좀 낫네요."

이게 나은 거라고?

솔직히 언제라도 뺨을 맞을 만하긴 했다만...

아이가 터덜터덜 내 옆을 걸으며 말을 잇는다.

"WSS 사태가 진정되기 전에는 진짜 깐족대는 애들이 많았어요. 몇몇은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내뱉고, 일부는 때리기도..."

"때려?"

"네. 뭐... 근데 이빨 빠진 호랑이라도 무섭긴 무서운지, 바로 도망가더라구요. 후훗."

이거이거 안 되겠는데.

아무래도 호위를 따로 붙이던지 해야 할 것 같다.

그에 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백서희에게 슬쩍 문자를 넣어두었다.

이러면 WSS에서 호위 인력을 붙여 주리라.

"그럼 다음으로 갈까요, 아저씨?"

"...그래."

차를 다시 운전한다.

그런 내 마음은 꽤 착잡했다.

그도 그럴 게, 작업을 계속 쳐야하나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창 작업을 치다 포기하는 경우가 몇 있다.

바로 이런 케이스.

새 사람이 되어보려고 하는 경우엔 난 그 사냥을 포기한다.

그것은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거나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새 출발을 하는데 있어 그것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혹자는 이런 날 보고 위선자라 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위선 맞다.

이러면서 언젠가 나도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맞이해 새 사람으로 시작하는 기회가 왔을 때, 지금껏 베푼 선행이 되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물론, 그런 기회가 올까 싶지만.

'아무래도 포기해야겠지.'

새 출발 하는데 있어, 임신은 좀 가혹할지도.

그에 난 현 시간부로 이 아이 안에 싸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이미 임신을 해버렸다면 어쩔 수야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떡잎... 싹은 밟는 게 아니다.'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정성스레 쓰다듬어준다.

그러자 아이가 날 향해 방긋 웃는다.

해맑게 미소를 한 가득 지으며.

"고마워요, 아저씨!"

그래.그러면 되는 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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