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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화 〉 #133 반지의 주인 (137/200)

〈 137화 〉 #133 반지의 주인

* * *

***

"여기요. 말씀하신 음료 나왔어요."

"사장이 직접 이렇게 가져다 줘도 돼?"

내가 잘 마시겠다며 잔을 한 차례 시선 위로 들어 올리자, 여우와 똑 닮은 엄마 여우가 입을 손으로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뭐 어때요. 서후 씨가 평범한 손님도 아닌데."

"고마워. 잘 마실게."

"네. 아마 애들은 곧 나타날 거예요."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여인이 매장 문을 벌컥 열고는 나타났다.

그로 인해 손님들의 시선이 싹 집중되었으나, 우리 두 초딩은 그런 거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도리어 은주가 손님들께 어색하게 웃어 보인다.

"정말 죄송합니다. 너희들! 엄마가 문 그렇게 열지 말라 그랬지?"

그러나 오로지 두 아이 눈에는 나만 담겨 있으니, 여우 왈.

"엄마, 난 맨날 먹는 시원한 거로!"

"어머니, 저도요!"

결국 혼을 내려다가 두 손 두 발 드는 건 도리어 은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아이들의 음료를 만들기 위해 발걸음을 뗀다.

그리고 그렇게 비켜서자, 두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 내 양옆으로 앉았다.

"너희들 말이야. 꼭 비좁게 이렇게 앉아야겠니?"

"뭐 어때용? 일체형 의자인뎅!"

"맞아맞아."

그렇긴 하다.

벽에 붙어있는 일체형 의자.

몇 명이 앉든 상관이 없었다. 다만...

"내 이야긴 꼭 이렇게 딱 붙어야하냐는 거지."

"왜용? 두 예쁜 아가씨가 딱 붙어주면 어허. 그것 참 고맙구나! 하면 돼죵!"

"맞아요. 아저씨는 모르나본데, 예림이랑 저 학교에서 인기 완전 많다구요!"

그래 보이긴 한다.

민아는 좀 애가 맹해 보여서 그렇지, 일단 청순미 넘치는 미인이었다.

거기다가 내 첫사랑과 똑 닮지 않았던가?

그리고 왼편의 여우같은 경우는 말 그대로 전형적인 서울 미녀.

팔다리가 좀 삐쩍 마른 게 흠이긴 하지만, 단발을 소화할 만큼 얼굴형부터가 갸름한 형인 그녀는 요새 애들이 딱 좋아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음.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럼 앞으로도 어디가지 말고 이렇게 딱 붙어 있어야 한다. 알겠어?"

"네에~"

그렇게 아이들과 수다를 떨기를 잠시... 난 두 아이의 환기를 집중시켰다.

이곳에 온 것은 정기적으로 내 사냥감을 점검하러 온 것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뭣 좀 물어볼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애들아. 내가 말이야. 이번에 아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줘야 하는데, 실수로 하나밖에 준비 못했지 뭐니."

"무슨 선물인데용?"

"보석. 매우 비싼 거야."

그러자 민아가 눈을 크게 뜬다.

여우도 마찬가지.

"헐. 저는요?"

"아저씨, 제껀용...?"

두 아이가 정신 사납게 내 시야를 가득 차지하고는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난 두 아이를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 거 아냐. 선물용이야. 내가 말했잖아. 엄청 비싼 거라고."

"치이..."

"흥..."

어째 둘 다 굉장히 비협조적인데.

팔짱을 끼고는 두 볼을 부욱 부풀리는 게 딱 봐도 삐졌단 의미다.

에휴. 그래. 애들에게 물어서 뭐하겠어. 역시 은주나 도향을 찾아가야...

그에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나, 잡아당기는 손길에 도로 자리에 착석했으니...

두 꼬맹이가 다시 내 시야로 들어와 매섭게 노려보며 묻는다.

"일단 하던 말씀 계속 하세요."

"...그래도 돼?"

끄덕끄덕.

뭐 그렇다면야.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하던 설명을 마저 한다.

"내가 원래는 어느 사모님에게 드릴 반지를 샀는데 말이야. 알고 보니 그 집에 딸이 하나 있더라고. 근데 문제는 내가 그 집에 잘 보여야 하는데, 딸에게 선물을 주는 게 나은지 그 엄마에게 선물을 줘야 하는지를 모르겠어."

흠... 고민에 잠긴 아이들.

여우가 먼저 내게 묻는다.

"정확히 누구한테 잘 보여야 하는데용?"

"음... 아무래도 설명을 조금 더할 필요가 있구나. 뭐 이런 거지. 앞으로 10년은 그 엄마가 실세인데, 그 이후로는 딸이 그 집에 실세야."

"아항. 그러니까 어느 쪽에 더 잘 보여야 할지가 문제인 거네요. 그 반대쪽은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질투를 하게 되겠구용."

"그런 거지."

그제야 초딩들의 뾰로통한 표정들이 풀어졌다.

혹시 내가 새로운 여자를 만들려는 건 아닌가 의심했다가 푼 것이다.

"역시 딸 쪽에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림? 10년이면 엎어지는데."

"그렇긴 한뎅... 우리 여자들이 기분 상한 건 평생 기억해도, 받은 건 금세 까먹잖아 또."

"앗. 그것도 그러네."

나이도 어린 두 아이가 미간을 좁히며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 게 자못 웃음이 나온다.

특히나 권력 운운할 때에는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픽 작게 소리 내어 웃을 정도였다.

물론, 그 즉시 두 아이가 홱 돌아보는 통에 안 웃은 척 연기해야 했지만 말이다.

"역시... 그럼 그게 낫겠지."

"응."

드디어 결론이 도출된 건가.

내가 고개를 들자, 내 시야 중앙에 모여 있던 꼬맹이들의 고개가 내게로 돌아왔다.

그리곤 합의된 결과를 발표했다.

"어머니 쪽에 줘야 돼요."

"왜?"

내 물음에 여우와 민아가 번갈아 가며 대답했다.

"나이가 있는 여성들은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거든요. 말로 때우는 게 안 돼용."

"근데 아직 어리면, 굳이 비싼 물건이 아니라도 말이나 행동만으로도 호감을 살 수 있어요. 뭐든지 처음이라 그... 로망이 있다고 해야 하나? 맞지, 림?"

"응."

"그러니까 종합을 해보면... 어머니 쪽엔 선물을 줘서 호감을 사고, 딸 쪽은 몰래 만나 말과 행동으로 환심을 사라. 뭐 이 뜻인가?"

내가 정확히 알아들은 건지 물어보자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흠... 그렇단 말이지?'

확실히. 어린 애들은 말과 행동에 쉽게쉽게 넘어오는 경향이 있다.

말 몇 마디에 입술을 내주고. 작은 선물에 가랑이를 벌리고.

그러나 나이가 있는 여성... 특히 안정적인 집안의 여인들은 다르다.

확실히 꿰어 잡는 덴 값비싼 선물만한 게 없다.

그걸 알기에 나도 종종 보석들로 유혹하는 것이고.

'선물을 그 엄마에게 줘서 환심을 사고. 딸을 유도해 질투시킨 뒤, 서로 경쟁... 뭐 그런 그림인 건가 그럼.'

눈을 감자 어떻게 해야 할지가 하나하나 그려진다.

"고맙다. 정말 큰 도움이 됐어. 예림이도. 그리고 민아도."

"헤헷."

좋아죽는 아이들.

내 칭찬 한마디가 그렇게 좋은가 보다.

이렇게 보면 그 엄마 쪽에 선물을 주는 게 맞긴 맞네.

난 아이들과 조금 더 수다를 나누다 저녁 시간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약속이 있다 말한 뒤, 그곳을 나섰다.

차를 운전하며 한 여인에게 전화를 건다.

­ 여보세요.

"응. 어디야?"

­ 나 집. 애들 아직 신경을 좀 써줘야 해서.

여전하구만. 그놈의 식물 사랑.

"나 지금 너희 집에 가는 중인데. 저녁 같이 먹을래?"

­ 응, 좋아! 기다릴게.

***

"흐응~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날 찾아오는 걸까나."

서후는 절대 시간이 한가해서 여자를 찾아오는 인물이 아니다.

본래 남자들 성격이 그러하지만, 서후 같은 경우는 더욱 그리하도록 지금껏 그렇게 키워왔다.

그러니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요 근래 여자 복이 터졌으니, 내 몸 생각나서 오는 건 아닐 테고...'

어쩌면 지금 작업 치는 WSS쪽 여자들이 생각보다 잘 해결이 안 돼서 일지도 모르겠다.

뭐 그건 직접 물어보면 알겠지.

도향은 도구를 들고는 하던 일을 마저 했다.

방 한 쪽에 자리한 식물들의 줄기가 자라날 길을 하나하나 잡아주고, 쭉쭉 사방으로 펼쳐준다.

최대한 아름답고 화려하게 자라도록.

이파리 방향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써.

'이쪽은 이렇게. 여기는 이렇게 하는 게 더 예쁘겠네.'

세심하고 관찰하고.

앞으로 이 아이가 자라날 방향을 예측한다.

'후훗. 넌 한 달 후가 기대되는구나.'

아마 그 즈음 되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짓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식물들과 씨름을 할 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네. 나가요~"

문을 열자 잘생긴 미남자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다가와 쪽 키스를 한다.

그녀의 입맛대로 꾸미고,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자라도록 열심히 보듬어준 아이.

도향은 그를 기쁜 마음으로 거실 테이블로 인도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응. 웬일로 차가 안 밀리더라."

"밥은? 우리 뭐 먹을까?"

"네가 해주는 거 먹고 싶다고 하면 혼나려나?"

남자의 팔이 여인의 허리를 슥 휘감는다.

도향은 그의 품에 반쯤 안겨 진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서후가 먹고 싶다면 해줘야지."

그렇게 하게 된 식사.

남자가 김치찌개를 먹으며 고개를 주억인다.

마치 이 맛이야! 라고 하는 듯했다.

도향은 그런 그의 볼을 손으로 꾹꾹 잡아당기며 말했다.

"두부는 꼭 먹고. 국물은 많이 마시지 말고. 몸에 안 좋아."

"예이예이."

"그런데 왜 매번 김치찌개야? 나 잘하는 거 많은데?"

남자가 한 차례 천정 위를 바라본다.

마치 천정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기라도 하듯.

"그냥. 이걸 먹으면 어릴 적 네가 나 밥 차려주던 게 생각나서."

"참네. 누가 들으면 죽을 날 몇 날 안 남은 늙은이인 줄 알겠네."

그리 말하는 도향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그녀 또한 그가 김치찌개를 해 달라 할 때마다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년도 더 된 머나먼 과거.

비록 김치찌개 하나가 눈앞에 놓여있는 것이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두 사람은 살짝 옅어졌던 유대감이 다시금 형성되는 걸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뭐 잘 안 풀리는 과제라도 있어?"

"원래는 있었는데, 꼬맹이들이 괜찮은 이야기를 해주길래 그림이 잘 그려졌어."

"그거 잘됐네. 안 그래도 예림이 걔 센스나 사고방식이 나쁘지 않더라고. 가르치면 금방 자라겠더라."

종종 하는 짓이 유치하긴 하지만, 연기력도 나쁘지 않고 눈치가 기가 막히다.

앞으로 내 아이를 잘 서포트 해줄 좋은 비서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스승 따라 나설 때 같이 데려가는 게 어때?"

"여우를?"

"여우? 쿡쿡. 그것 참 어울리는 별명이네. 그래, 그 여우."

"괜찮을까?"

그도 그럴 게, 집착녀다.

링링을 꽤 오랜 기간 옆에서 지켜본 만큼, 두 사람은 집착하는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섣불리 진실을 드러냈다간 이것저것 엉망으로 꼬일 수 있다.

그러나 도향은 지금쯤이면 괜찮다 생각하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적정한 시기라 확신하고 있었다.

"걔 엄마랑 너를 두고 경쟁 관계라 했지?"

"응."

"그럼 괜찮아. 적절히 완충이 되어줄 거야. 그리고 이래나 저래나 추가 각성은 필요해. 무엇보다 이번 기회가 너무 괜찮잖아? 네가 스승의 일을 잇던 안 잇던, 널 서포트할 그 아인 한 번쯤은 그걸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뛰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그건 그렇다.

서후는 그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뛰어보고 보는 것.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한 번이라도 큰 무대에서 직접 뛰어본다면, 분명 이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진실은..."

"내가 밝힐게. 앞으로 내가 데리고 다니며 교육을 해야 하니까. 현재 네 비서이자 사수인 내가 하는 게 맞겠지."

"고마워."

"고마우면 이따 마사지라도 해줘. 오늘은 끝까지 달리고 싶으니까."

"얼마든지."

남자의 빙그레 웃는 얼굴에 도향 또한 미소 짓는다.

그리고는 반찬으로 놓인 샐러드를 입에 넣는데, 남자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네모난 상자였다.

양손으로 열자 조개 마냥 딱 입을 벌리는.

그는 벌어진 그것을 그녀의 눈앞에 딱 내려놓았다.

그걸 보는 순간 도향은 가슴이 쿵쿵 뛰는 걸 느꼈다.

"어...? 서후...?"

"보는 순간 너 생각나서 샀어."

"너무... 예쁘잖아..."

다이아몬드가 가운데 장식된 꽃 모양의 반지.

그것에 뻗는 여인의 손은 사시나무 떨듯 잘게 떨었다.

그에 남자는 그것을 직접 집어, 여인에게 손을 펴 보이며 말했다.

"손 줘봐. 직접 껴 줄게."

"뭐야... 딱 맞아. 정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는 도향이 웃었다 울길 반복한다.

그걸 보며 서후는 사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스승과 함께 그 자신을 이끌어준 진짜 어머니와 같은 존재.

이렇게 기뻐할 거라면 진즉에 자주 선물을 할 걸.

"참... 밥 먹다 이게 뭐야. 운치도 없이... 훌쩍. 하여튼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네."

"아, 그러고 보니 그 때도 내가 밥 먹다 프로포즈 했었나?"

"그래. 이 바부팅아!"

사실 알고 그런 거지만.

그 당시에도 조그마한 식탁에 그녀가 끓여준 김치찌개가 놓여 있었다. 난 그걸 먹다 말고 그녀에게 고백을 했었고.

"고마워, 서후."

"그래그래. 밥부터 마저 먹자."

그러나 그런 그를 확 잡아끌어 침대로 이끄는 여인.

"지금 밥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하핫. 그러게 말이다.

서후는 작게 웃으며 도향과 함께 침대 위로 뒹굴었다.

그녀는 아주 잡아먹을 기세로 그의 위에 올라타 눈을 빛냈다.

"오늘 밤 돌아갈 생각 마."

"그래그래."

여인의 입술이 짓쳐들어와 남자의 입을 탐한다.

그는 그 움직임에 호응하듯 입을 벌려 혀를 내밀었다.

'다른 이는 몰라도 이 여자만은 행복하길.'

남자는 속으로 작게 되뇌며 여인의 혀에 자신의 혀를 섞었다.

그런 그들의 움직임은 매우 격정적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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