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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화 〉 #123 아저씨 저랑 할래요? (127/200)

〈 127화 〉 #123 아저씨 저랑 할래요?

* * *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어려울 때 도움을 주면 마치 평생 잊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이후 상황이 나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한다.

즉, 뒷간 들어갈 때랑 나올 때가 마음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말하면, 그 힘들 때 도움을 준다면 그 순간엔 뭐든지 받을 수 있단 뜻이기도 했다.

지금 백서희의 딸 임서연의 상황이 그러했다.

난 가볍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초인종을 눌렀다.

그렇게 두 번을 눌렀을까.

문 너머로 들려오는 외침.

"누구세요?"

"아저씨다."

"잠시만요!"

도어락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열리는 문.

난 내 사냥감을 보며 방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

권력자 밑에 사는 이들 중엔 충신도 있지만 그 대부분이 철새.

나이가 적건 많건, 어디에 있건 동일하게 일어난다.

그건 그들이 잘못됐다고 하기보단 그저 살고자 움직이다보니 그리 되는 것이다.

WSS 사건으로 직격타를 맞은 가정의 독녀 임서연은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그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SNS로 알랑방귀를 끼다 못해 구두라도 핥아줄 것처럼 굴던 녀석들이 이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 중 몇몇은 오히려 악성안티가 되어 그녀를 괴롭혔다.

­ 평소 준내 나대더니 꼴좋다 씨발년ㅋㅋㅋ

­ 부모님 평안하시냐?ㅋ

악성 글들을 보며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하나 사진으로 저장하며 손톱을 깨무는 것뿐.

언젠가를 되갚아줄 거라는 마음과 함께.

'근데 그 날이... 올까...?'

액정을 움직이던 손이 우뚝 멈추었다.

그리곤 절로 오므린 다리 사이로 고개가 푹 숙여졌다.

높이 있을 때는 몰랐다.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 눈치 보는 것 없이 살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왔다.

그런데 후회가 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짜 친구 하나둘은 사귀어둘걸...'

그랬다면 이 어두운 밤. 홀로 외로울 때, 모두가 날 욕할 때 한 명쯤은 내 편이 되어 주었을 텐데.

욕을 너무 들으니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눈은 당기고 입술은 바짝 마른다.

그러면서도 계속 액정 속 글들을 보게 된다. 너무도 피곤한데도 도리어 심장은 쿵쿵 뛰어 정신은 날이 서 있다.

'피곤해... 외로워. 괴로워...'

어느 기사를 봐도 WSS와 SAF의 희망적인 면보단 부정적인 견해와 극단적인 글만 나오고.

그걸 읽다보니 문득 죽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더 살아본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베란다로 가 선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머릿속의 상념을 다 앗아간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이 시원함에 몸을 내던지면 참 좋겠다는 기분만 들 뿐.

'그래, 가자...'

지금 같은 무상념의 상태라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그에 난간에 다리를 들어 올리는데...

딩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멍한 머릿속으로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개새끼들에게 큰일을 당할 뻔 했을 때 멋지게 등장해 구원해준... 도저히 40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동안의 미남.

당시 그를 보는 순간, 어둡고 컴컴하기만 하던 세상이 확 밝아졌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굳게 닫혀있던 강의실 문이 열려서일까? 그래서 바깥에서 빛이 들어와서?

확실치 않다.

다만 한 가지. 지금 이 순간도 그 당시와 동일하단 것.

어두컴컴한 밤하늘임에도 갑자기 환한 대낮처럼 밝게 느껴진다는 것.

딩동.

초인종 소리가 다시 울린다.

임서연은 곧바로 난간에서 발을 떼고는 무언가에 홀린 듯 후다닥 문으로 향했다.

그리곤 큰 소리로 외쳤다.

"누구세요?"

"아저씨다."

여인의 입가에 바로 진한 미소가 걸린다.

도어락 잠금 해체를 누르며 왈.

"잠시만요!"

***

문이 열리고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둑어둑한 거실이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며 그제야 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

눈 위로는 쌍커풀이 껴 퀭하고, 입술은 터 있다.

그나마 생글생글 웃고 있어서 다행이지, 아마 표정 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면 죽을병에 걸린 말기 환자를 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야. 너 괜찮아?"

"넵!"

"밥은?"

"아... 먹, 먹었어요!"

안 먹었구만.

일평생 지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꿇릴 것 없이 살아온 만큼 거짓말이 익숙하지 않은지 티가 팍팍 난다.

"뭐라도 먹어야지. 치킨 시켜 먹을래?"

"아녜요. 저 진짜 먹었...어요...! 헷."

하긴. 입맛이 없겠지.

모른 척 속아준다.

"그래."

신발을 벗는다. 그리곤 안으로 한 발짝 발을 올린다.

그런데 아이가 내게 폴짝 뛰어 안겨온다. 그러더니 내 옷 냄새를 킁킁 맡고는 왈.

"아저씨 근데 굉장히 기분 좋은 냄새 나네요?"

"그냐?"

"네. 뭔가... 냄새만 맡아도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

씻고 오길 잘했구만.

기분 좋은 냄새란 아마 도향의 향수는 말하는 것이리라.

아이가 내 손을 잡고는 쪼르르 자기 방으로 인도했다.

아파트는 크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곳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크기의.

방 또한 매한가지.

단조로운 걸론 기숙사 뺨칠 만한 방 안엔 그저 침대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이는 날 그곳으로 인도했다.

내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자, 갑자기 누워 내 허벅지 위에 머리를 기댄다.

"어이... 너 말이야."

"넵?"

"처음 보는 아저씨한테 너무 막 행동하는 거 아냐?"

"왜요? 아, 혹시 제가 이러니까 혹시 가슴이 두근거리세요? 콩닥콩닥? 사실 저도 그런데...!"

얘 뭐지.

뭔가 상당히 마이페이스다.

상대편에 대한 뭐 눈치를 보거나 그런 게 전혀 없는 느낌.

'살다살다 이런 애도 만나보네.'

물론, 상류층에 사는 여자애들이 상당히 제멋대로인 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몇 번 작업도 쳐 보았으니까.

그런데 얜 그 중에서도 상당히 심했다. 과연 오늘 큰일을 겪었던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어쩌면 그 충격을 해소하려는 방식일지도.'

내가 말없이 바라만 보자, 아이가 방긋 웃는다.

그리곤 내 손바닥을 매만지며 왈.

"아저씨. 혹시 아저씨는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이상형이라...

"왜 그런 게 궁금한데?"

"그냥요. 어서 말해주세요!"

이건 뭐 작업을 치기도 전에 이미 호감도 최대치인 기분이라 살짝 힘이 빠진 난 눈을 감고는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하나하나 말해주었다.

"울지 않고, 본인만 생각하지 않고, 가족과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으며, 언제 어디 있건 누군가 본다 생각하고 말조심 행동조심 하는 사람."

"울지 않고, 본인만 생각 않고... 말조심 행동조심 하는 사람... 그렇구나. 그런데 아저씨 뭔가 이상형이 독특하네요."

"뭐가?"

"아니 그렇잖아요. 보통은 좋아하는 포인트를 이야기 하는데, 아저씨는 아닌 부분을 이야기 하셔서요."

음. 듣고 보니 그렇다.

좋아하는 부분을 말한다고 했는데 정작 싫어하는 걸 나열해 버렸네.

그런데 뭐 내가 성격을 까다롭게 보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어떤 면에선 맞는 이야기 아닐까?

"뭐 그 기준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는 거예요?"

내 허벅지를 베개 삼아 날 올려다보며 묻는 질문에, 난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말한 것들... 그날 그 사건 이후로 생긴 기준들이었기에.

당시 어머니가 했던 행동들이었기에.

"아저씨?"

"아, 아냐. 특별한 사연은 무슨. 그건 그렇고 이제 자야지?"

대충 얼버무린 뒤 아이의 머리를 침대에 내려놓고 일어나자, 서연이가 내 바지를 덥석 움켜쥔다.

그리곤 잡아당기며 말한다.

"가지 마요. 저랑 있어 준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그래도 일단 한 번은 튕겨줘야 하는 게 예의 아니겠어? 그래야 합법적으로 한 침대에 누울 수 있으니.

난 아이의 손을 강제로 떼 내며 말했다.

"나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다. 너 괜히 같이 잤다간 밤에 큰일 나."

그러자 침대에 엎드리더니 양손을 모아 턱을 올리곤 묻는다.

생글생글 해맑게 웃으며.

"어떻게 큰일 나는데요? 모 이런 거?"

그러면서 상의를 슥 밑으로 내리는 아이.

목선 아래로 깊은 계곡이 눈에 들어온다. 브라를 차지 않아 동그란 유륜과 젖꼭지도 고스란히.

'엄마와는 다르게 가슴은 꽤나 커지겠구만.'

아직 애도 낳지 않았는데 크기가 비슷한 걸 보면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 년 진짜 특이한 케이스일세.

날 언제 봤다고 작업 치지도 않았는데 벌써 가슴을 내놓지?

순간 여우같은 경우인가 생각해 보았으나... 절대 아니다. 내 평생에 누군가를 도운 건 여우 모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즉 이 아인 두 가지의 상황 중 하나였다.

첫째, 그냥 섹스를 즐기는 년일 가능성.

그냥 이 남자는 어떨까, 저 남자는 어떨까 하고 다니는 발랑 까진 여자란 뜻이다.

최근 내 주위에 그런 아이가 하나 있다. 아직 직접 만나보진 못했고 보고로만 들은 설아의 딸 임하나.

'정말 매일 같이 클럽에 드나드는 클럽 죽순이라 했었지.'

집에 안 들어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노느라 정신이 없다는 모양이다.

지금 내 눈앞에 이 아이도 그런 케이스일 수도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런 경우다.

말 그대로 날 보고 첫눈에 반해 본인의 모든 걸 가져다 바치는...

'...에이. 말도 안 되지.'

시대가 어느 땐데. 그것도 다 옛말이다.

요새는 드라마나 영화 보면서 다 미리미리 배우고 머리가 커지기 때문에, 스무 살이 될 즈음에는 첫눈에 반한 상대에게 모든 걸 다 가져다 바치는 그런 경우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첫 번째 이유에 포함된다.

'뭐 얼마 전 은지 같은 경우일 수도 있지만...'

걘 이미 같은 멤버들이 떡 치는 걸 알고 있지 않았던가?

두 동료가 나랑 하지 못해 안달인 걸 보고,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흥미와 욕심이 생긴 걸 배재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지금 눈앞에 아이는 다르다.

오늘 나랑 처음 만났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이 애 입장에선 나와 아무런 연도 없다.

'그럼 얜 대체 어떤 경우인 거지?'

혼란하다, 혼란해.

내가 아무 말 못하고 가만 쳐다만 보자 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내 팔을 잡아끌어 침대로 이끈다.

그렇게 합법적으로 한 침대에 같이 누워 천정을 바라보게 된 나.

등의 환한 빛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그게 눈이 부셔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아이가 내 볼을 양손으로 덥석 잡고는 입을 열었다.

"아저씨."

"어. 왜?"

"저랑... 할래요?"

나야 땡큐지.

그러나 너무 직접적으로 물어보니 덜컥 삼키기가 뭔가 찜찜하네.

난 상대가 이리 적극적으로 나오면 일단 의심을 해보는 타입이기에, 일단 그 이유를 묻기로 했다.

"하다니. 뭘?"

"당연히 섹스죠! 알면서 왜 그래요?"

"어... 그래...? 그게 왜 하고 싶은데?"

아이가 검지를 입에 대며 한 차례 위를 올려다본다.

마치 그것에 대한 답이 천정에 달려 있기라도 하다는 듯.

"섹스를 하면 엄청 기분이 좋다고 들었어요. 그거면 뭐... 지금 이 상황을 좀 잊을 수 있을까 해서요."

"아직 한 번도 안 해본 거야?"

"넵."

그렇군. 일종의 도피인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취하는 도피 행동엔 여러 가지가 있다.

얜 그 중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러면서도 어디선가 보고 들은 건 있는 성관계의 판타지를 통해 이 힘든 상황을 극복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면 다른 비슷한 나이대 친구를 불러서 하지. 왜 이 나이 차 많이 나는 아저씨랑 하려는 거야?"

그러자 아이가 살짝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없어서요."

"응?"

"지금 제게 아무도 없어서요. 친구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

어... 뭔가 할 말이 없게 만드네.

생긴 건 백서희인데, 뭘까... 좀 다르다.

용서해달라고 말하며 손을 싹싹 비는 엄마하곤 달리, 가만히 있는데도 그냥 불쌍해 보이고 연민이 간다.

'모전여전이라도 역시 사람은 제각각이라는 건가.'

어쩌면 상황이나 나이 어린 부분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마음이 약해진 건지도 모르지.

난 약하게 나오는 이들에겐 모질게 굴지 못하는 타입이니까.

"아저씨 부탁할게요. 네?"

아이가 두 손을 꼬옥 모은 채 부탁해온다.

난 그걸 보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해야 한다.'

그래야 백서희와 같이 엮어 임호준 새끼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일 수 있다.

겸사겸사 좋은 몸뚱어리 먹는 건 서비스!

"정말 괜찮겠어? 아저씨랑 해도?"

"그럼요! 아저씨와 할 수 있음 정말 좋겠어요...!"

몸을 일으켜 아이의 위에 올라탄다.

그 엄마와 똑같은, 한 쪽으로 늘어뜨린 웨이브진 머리칼을 쓸며 그 얼굴에 조심스레 다가간다.

살짝은 긴장한 표정이 날 맞이한다.

동공은 아주 잘게 흔들리고, 미소를 머금은 입 끝은 귀를 향해 올라갔다 내려오길 반복한다.

그 상황에서 조금 더 다가가자 서서히 감기는 눈.

덩달아 살짝 벌어지는 입술.

그곳에 내 입을 맞춘다.

보드랍고 말랑거리는 감촉이 내 입술 위에서 느껴진다.

"쪽. 쪼옥. 쪽... 쪽..."

그렇게 얼마나 입술을 서로 비볐을까.

다시 떨어질 즈음엔 아이의 얼굴은 황홀함. 마치 약이라도 한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거참. 키스도 처음이었나 보네.

그에 작게 미소 지으며 질문.

"한 번 더?"

대답 대신 손이 확 날 끌어안는다.

방금 전보다 더욱 거칠고 강한 자극이 입술 위를 맴돈다.

큿... 좋구만. 어떤 면에선 제 엄마보다 훨씬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서연아, 좋아?"

"츄츕... 네헤엣...♥"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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