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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화 〉 #121 백서희의 딸 임서연 (125/200)

〈 125화 〉 #121 백서희의 딸 임서연

* * *

수아 : 저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로 했어요!

수아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해준 그 다음날 저녁.

당사자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가만 들어본즉, 역시 그 날 현관에서 섹스 하는 소리를 남자친구가 다 들었던 모양이다.

수아 : 자꾸 짜증나게 하길래 그냥 헤어지자 했어요! 저 잘했죠? (칭찬해주세요 이모티콘)

나 : 그래. (쓰담쓰담 이모티콘)

'뭐 굳이 들키지 않았어도 곧 헤어졌을 테지만.'

당시 남자친구가 선물을 들고 온다고 했는데도, 나랑 있는 게 즐거워 그게 뭔지도 물어보지 않았던 그녀다.

선물이라면 환장하는 여자라는 족속이기에 정말 한 번쯤은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볼 만하건만... 그런 행동을 취했다는 건, 이미 벌써 마음이 떠나고 있었단 뜻이었다.

수아 : 내일부터는 주인님하고 즐거운♥ (하트뿅뿅 이모티콘)

그에 나 또한 하트 몇 개 보내주었다.

그 뒤로 답장이 없는 걸 보면, 낮 타임에 뛰는 채연과 교대하기 위해 씻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울리는 스마트폰.

누군가 하여 보니 한 실장이다.

­ 서후님.

"예. 듣고 있습니다."

­ 지금 당장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살짝은 다급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 저희 타깃을 먼저 노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난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바로 몸을 움직였다.

차에 몸을 싣고는 방향을 한성 대학으로 향한다.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모녀로군.

***

부전자전이라 했던가.

그 말이 생긴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전적으로 그러한 성격과 기질을 이어받은 탓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게 원인이었을 수도 있고.

결과론적으로 부모가 하던 짓을 자식이 똑같이 하는 행위. 부전자전.

그러나 이 경우엔 모전여전이라 하는 게 옳으리라.

한 여인이 동급생으로 보이는 이의 얼굴을 발로 꾹꾹 짓밟는다.

바닥에 널브러진 여인은 옷 한 올 입지 않은 채 남자의 체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고간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핏자국이 안 그래도 어두운 공간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어디서 네 까짓게 나대고 지랄이야 지랄은! 확 너희 회사 부도나게 해줄까? 엉?"

"미, 미안..."

"미안은 무슨. 엎드려 절하면서 죄송합니다 해봐. 얼마나 잘 하나 보고 결정할 테니까."

여인이 비틀비틀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이마를 바닥에 대며 사죄를 구한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네..."

"좋아. 그럼 그 성의를 봐서 용서해 줄게. 대신 애들 한 번 더 빼줘."

"네? 그, 그런..."

그러나 그녀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주위에 서 있던 남자들이 뻣뻣이 세운 자지를 들고는 다가온다.

그 너머에선 여자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을 해대고. 그걸 본 여인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 황홀해. 이 기분이지!'

상대를 무참히 짓밟는 정복감!

올해 20살 대학생인 임서연은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대기업인 WSS 차기 회장 임호준을 아버지로, SAF 회장을 외할아버지로 둔 그녀가 두려울 게 뭐가 있을까?

그런 그녀의 행보는 정말 거침이 없어서, 그 어머니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들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회사까지 처참히 밟아 누르는.

"나이 먹고 이게 미쳤나? 가족 얼굴 보기 싫어?"

자신보다 20살은 더 많은 어른에게도 협박과 조롱을 일삼고 다니는 그녀는 앞으로도 그 권력을 계속 누릴 줄만 알았다.

그만큼 그녀의 뒷배는 대단하기 그지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아비가 검찰에 불려가면서 모든 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젠장."

욕설이 입에서 끊이질 않는다.

임서연은 애꿎은 입술을 짓씹었다.

'정말 우리 회사 망하는 거야?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믿던 아버지도, 외할아버지도 둘 다 검찰에 소환됐다.

아직 어리다 해도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그녀는 어리숙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요샌 스마트폰으로 조금만 검색해도 어떻게 될 진 다 나오니까.

그렇게 빈 강의실에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며 불안에 떠는 그녀에게 한 남자가 다가온다.

"여어. 뭐해?"

고개를 든다.

평소 그녀에게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던 동갑내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이... 정찬이었나? 대기업에 간신히 발을 걸친 회사 회장의 손자인 녀석.

기분 나쁜 눈빛이 전신을 휘감는다.

평소에도 이런 눈빛을 보내왔지만 오늘 따라 더 심하다.

그에 무시하고는 자리를 뜨려는데, 웬 남자애들이 나타나 그녀를 둘러쌌다.

"하아? 너희들 미쳤어? 안 비켜? 어디서 개새끼들이 길을 막아?"

그러나 꼼짝도 안 하는 남자들.

그 때 뒤에서 손이 훅 튀어나와 그녀의 가슴을 붙잡는다.

"이야. 우리 서연이 가슴 꽤 크네? 너네 엄마하고 비교해도 되겠는데? 킥킥."

"무슨... 이거 안 놔?!"

"가만히 좀 있어봐. 어후. 감촉 죽이는 것 봐!"

"이런 좆같은 새끼가...!"

그러나 의지를 벗어나 떨리기 시작하는 몸.

남자의 강한 힘에 한낱 여인이 그녀가 무슨 수로 저항을 할까?

그동안 수백 번 주도하며 보아왔던 여인들의 겁탈 장면. 그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 그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남자들은 그 때의 그 배우들이었고, 그녀를 도와줄 이라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놔! 이거 놔아!"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여기저기서 팔다리를 하나씩 붙잡아 움직임을 봉쇄한다.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버지가..."

"그래 알지. 근데 둘 다 검찰에 불려갔잖아? 회사도 쫄딱 망할 것 같던데. 너도 그동안 한 짓이 있으니 이리 될 거 어느 정도 예상했을 거고. 큭큭. 안 그래?"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그녀가 괴롭힌 여인들에게 복수를 당할 거라고.

근데 그녀 자신이 부리던 개들에게 물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곳저곳을 만지기 시작하는 그녀의 동갑내기.

바지를 벗으며 마치 적선을 베풀어준다는 듯 주위에 말한다.

"내가 잘 즐기고 너희들도 하게 해줄 테니까 반항 못하게 꽉 잡아."

"오오. 정말로?"

"씨발년. 드디어 한 번 따먹어 보는구나!"

좌우로 훅훅 둘러본다.

블라인드도 다 쳐져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강의실이 보인다.

순간 살려달라며 소리를 칠까도 했으나 그로 인해 이놈들이 더 즐거워할 걸 떠올리니 그러지도 못했다.

곧 죽어도 자존심만큼은 절대 굽히기 싫은 그녀였다.

그렇게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이 사라져 버린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단 한 번도 본 적 없고 믿은 적 없는 신이란 존재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 뿐.

'제발 살려주세요.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이전과는 다르게 앞으론 착하게 살게요!'

그런데 정말 신이 존재라도 하는 것일까?

그 기도가 끝나는 순간, 갑자기 바깥에서 소란이 일었다.

퍽. 퍽퍽.

"무, 뭐야?"

"밖에 무슨 일이야?"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분명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4명을 망 세워두었는데.

끼익.

대답 대신 천천히 열리는 강의실 문.

두 사람이 들어온다.

굉장히 훤칠하고 잘 생겨 배우로 착각할 만한 외모를 가진 인물과 키가 살짝 작지만 상당히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

"다, 당신들 누구야?"

강의실 내로 악당 같은 대사가 울려 퍼지고.

"글쎄 그게 중요할까? 너흰 좆 됐다는 게 중요한 거지."

잘생긴 이가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있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이며 웃는다.

그의 행동에 주위 남자들이 허겁지겁 달려들었으나, 십여 명의 학생들은 작은 사내 한 명에게 금세 제압당해 바닥을 나뒹굴게 되었다.

그 뒤 바로 경찰을 부르고.

그녀에게 다가와 따뜻하게 웃으며 손을 건네는 남자.

"괜찮니? 많이 놀랐겠다."

그 미소를 보며 임서연은 직감했다.

이 순간 이후로 그녀 자신의 인생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질 것 같다고.

***

"정말 괜찮니?"

내 질문에 아이가 더욱 품에 안기며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그녀는 마치 아기캥거루에 빙의라도 한 듯 내 품속에 자꾸만 파고들었다.

'뭔가... 내 생각하고는 다르게 돌아가는군.'

난 그저 내 사냥감을 노리는 이리들을 쫓아내고 겸사겸사 이 아이에게 눈도장을 찍어 호감을 올려두려 했지, 이렇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내 품에 안긴 아이가 누군가.

악녀 백서희의 딸. 그녀의 판박이.

그 엄마의 도플갱어나 마찬가지인 애 아니던가?

여왕처럼 군림하려는 본능을 가진 여인이 갑자기 어리광을 부리는 상황이라니?

처음에는 연기인가 싶었으나... 내 20년 여자 경력으로 볼 땐 아니었다.

만약 이게 연기라면 세계급 배우로 대성할 수 있으리라.

"다 왔습니다."

한 실장의 보고에 고개를 돌린다.

아파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백서희가 지내는 곳과는 제법 거리가 되는 곳.

이야기를 들어본즉, 요 근래 찾아오는 기자들이나 그런 것 때문에 부모와 따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평소라면 모르겠지만, 오늘은 좀 힘들겠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와 떨어져 혼자 자취하고 싶어진다.

그녀 또한 대학생.

그러나 오늘 같은 일을 겪고 혼자 지낸다는 건... 쉽지 않으리라.

'본래 이럴 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어른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나 또한 그러지 않았던가.

그 일을 겪고 집에서 뛰쳐나와 혼자 울고 있을 때, 스승이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가.

그것 참... 옛 생각하니 스승에게 좀 미안해지네.

정말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셨는데, 난 단물만 쪽쪽 빼먹고 도망을 치고 있으니...

"저기..."

"응? 말하렴. 듣고 있으니."

아이가 손을 꼼지락꼼지락 하다 날 올려다본다.

생긴 게 지 엄마를 똑 닮았다.

얼굴에 주름만 조금 추가하면 착각할 수도 있으리라.

내 얼굴 이곳저곳을 살피며 눈치를 보는 그녀.

그에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자, 자신감을 얻었는지 주먹을 불끈 쥐고는 조심스레 입을 연다.

"오늘 밤... 저랑 같이 있어주시면 안 돼요...?"

"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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