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7화 〉 #113 앞으로 10년 (117/200)

〈 117화 〉 #113 앞으로 10년

* * *

***

"건방진 년이. 똑바로 안 해?"

"죄, 죄송합니다. 제발 용서를..."

"죄송이고 나발이고 하라고."

다리를 부여잡고 애걸복걸 하는 여인을 발로 뻥 차 넘어뜨리고 백서희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자빠진 여인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랑이를 벌리고.

손을 내려 음부를 매만지며 자위를 시작한다.

"얼굴 표정. 똑바로 연기해라."

"네, 네에엣..."

그렇게 시작된 여인의 자위쇼.

주변의 남자들이 카메라로 그 모습을 낱낱이 촬영한다.

백서희 또한 그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담고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잘 촬영하고. 적당히 가지고 놀다 보내줘."

"에...? 사, 사모님?! 용서해주세요. 제발...!"

그러나 여인은 이내 남자들에게 둘러싸였고, 닫힌 문 사이로는 비명인지 교성인지 모를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녀는 그곳을 슬쩍 바라봤다 이내 발걸음을 놀렸다.

"그러게 적당히 깝쳤어야지. 퉤."

SAF 회장의 딸 백서희.

그녀는 자신의 힘과 권력을 누릴 줄 아는 인물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까지 일진으로 학교에서 여왕처럼 군림해온 만큼 경험도 풍부한.

어려서부터 그녀는 자신에게 까부는 남자는 집안까지 아주 아작을 내주었고, 여자의 경우는 돌림빵을 놓고 촬영. 그걸 가지고 두고두고 괴롭혔었다.

그리고 그런 습관은 졸업하고 결혼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방금 그 여자의 경우도 그러했다.

'한낱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주제에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쌍년이 건방지게.'

한동안은 계속 불러내, 집안 경호원들 성욕 배출도구로나 사용해야겠다.

기존에 쓰던 건 이미 헐렁헐렁 거리다고 말하곤 했으니.

그렇게 1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저 멀리 차량 앞에서 그녀의 딸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폰을 만지작거리다 그녀를 발견하고는 팔을 높이 들어 흔든다.

"어머어머. 우리 딸! 언제 왔어?"

"방금!"

"밥은? 배 안 고파?"

"마침 배고프던 참이었어!"

"그럼 우리 맛난 거 먹으러 가자."

백서희는 스스로를 잘 아는 여인이다.

자신보다 못난 인간은 짓밟고. 잘난 이의 것은 뛰어난 외모와 처세를 이용해 빼앗을 줄 아는.

그녀는 그걸 통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이 절대권력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불과 얼마 전, WSS 전자 사건이 터지기 전까진 말이다.

"서연 아빠. 해결될 기미는 있어?"

"모르겠어."

"그런 게 어딨어? 뭐라고 설명 좀 해줘 봐."

"아, 몰라! 씨발. 한성기업에서 아주 칼 갈고 들어온 걸 어떻게 해? 때가 되면 그들이 알아서 놔주겠지. 그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잡들이 겸 양털 깎기니까. 저들도 회사 무너뜨리는 게 목적은 아니니... 진짜 좆같아도 그 때까진 버텨보는 수밖에."

남편은 바로 검찰에 출석했다.

그러고 그녀를 찾아온 게 바로 이번 사건의 주범. 강태백이란 노인의 후계자로 유추되는 사내.

그는 그녀로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해왔고, 여인은 그걸 무시하기로 했다.

'어디서 서민 출신 새끼가 건방지게...'

회사만 멀쩡했어도, 아니 주위 눈치 안 보고 굴릴 수 있는 인력만 있었어도 바로 손 봐 주었을 텐데.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상자가 궁금해 열어본다.

뭐가 들어있나 하여.

그러나 여는 순간 할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그 안에 든 것은 창녀들이나 입을 법한 야한 옷가지였기 때문이다.

'하... 씨발.'

어쩌다 이 내가 이런 취급 받는 상황까지 온 것인지.

그녀는 그걸 그대로 가져가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

"이게 뭐야..."

SAF 전체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

그래도 뭐 이 정도는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

어제 찾아온 남자도 넌지시 가르쳐 주었으니. 다만 문제는...

­ WSS 전자 사건에 SAF 회장이 깊게 연루되어 있다는...

­ SAF 회장의 배임·횡령 의혹...

­ 과거 분식 회계 문제 재조명...

­ 정부, 이번엔 칼을 빼드나...

아무리 평소 이쪽 공부를 안 한 그녀라도 알 수 있을 만큼의 큰 이슈.

스마트폰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툭 떨어진다.

환한 빛이 거실에 들어와 비치고 있건만 그녀는 마치 세상이 온통 어두운 것 같다 느꼈다.

그리곤 곧 눈앞으로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동안 자신이 짓밟아온 수많은 중소기업 사모들이.

'아... 안 돼.'

이대로 무너진다면 그들은 그녀에게 찾아와 복수하러 들 것이다.

비웃음과 손가락질은 물론, 그녀가 했던 걸 그대로 되갚으려 할지도 모르지.

'그건 절대 안 돼!'

그 때 초인종이 울린다.

이어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도.

쿵쿵쿵.

"서연 엄마!"

"사모님!!"

그녀는 도망치듯 안방에 가 문을 잠갔다.

그리곤 스스로를 진정시키듯 계속 되뇌었다.

'걱정 마. 어차피 우리 회사가 무너져도 WSS는 멀쩡해. 난 아무 문제없어.'

남편도 그러지 않았던가?

양털 깎기라고.

다시 대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회사 지분 대부분을 뺏겨 경영권이 많이 축소되겠지만.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그러나 백서희는 똑똑한 여인이다.

상황파악이 빠르고 머리가 잘 굴러가는.

'그런데 만약 우리 집안이 별 볼일 없어져서 남편이 날 버리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문득 떠오른 순간 그녀의 사고는 정지됐다.

이미 한 번 아내를 버리고 새 여자로 갈아탄 인간이다. 그것도 자신의 회사를 대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그런데 그가 이번에는 안 그럴까?

"...씨발. 흑."

여인은 고뇌하며 그렇게 방안에 틀어박혔고.

다음날.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얼굴엔 더 이상 여유 따윈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

"여보세요."

­ 저어... 서후라는 분 번호 맞나요?

"제가 서후입니다만."

­ 아, 안녕하세요. 저 백서희에요.

"예,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 그... 저번에는 죄송했습니다. 그날 다른 사람들이 막 문을 두드리고 해서... 혹시나 그들이 들어올까 봐 문을 못 열었어요.

거짓말이다.

임호준과 그 부인이 사는 곳은 CCTV로 복도 전체를 다 볼 수 있는 시설이다.

이미 그 사람들이 내려가는 건 다 보았을 것이다.

설령 못 봤어도 없는 건 인지한 상태.

'차라리 그냥 무서웠다고 하지.'

애매하게 거짓말을 쳐 다 들통이 나는구만.

그렇게 날 보내고 이것저것 방도를 구상해기도 하고 시도해 보기도 했을 거다.

그러나 이미 저격수들이 쫙 깔려 정조준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 그래서 그런데 잠시 만나서 이야기를...

"안타깝게도 저는 더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 제, 제발 부탁드릴게요.

"기회는 잡을 때 잡으라고 있는 겁니다. 당신들 모두 그걸 발로 찬 것이고."

난 분명 임호준에게도, 그리고 그 부인에게도 기회를 줬다.

그러나 그들은 제안을 거부하기는커녕 화를 돋웠다.

­ 제발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진짜 하라는 거 다 할게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전화를 끊는다.

귀를 쫑긋 세운 채 내 자지를 가만히 물고 있던 설아가 고개를 들곤 묻는다.

"누구에요?"

"아무도 아냐."

"치이... 아닌 것 같은데요. 혹시 서희 년 아녜요?"

역시 여자는 눈치가 빠르다.

그러나 스피커 소리를 낮춰 그녀가 목소리를 들었을 리는 절대 없는 상황.

난 내게 돈을 빌리려 했던 사람 중 하나라고 둘러댔다.

그렇게 하던 걸 마무리 한 뒤, 대략 한 시간쯤 쉬다 회사를 나선다.

그리곤 대충 카페 한 군데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누구려나.'

아까부터 내 뒤를 따라붙는 차량들.

두 개 다 강회장의 사람들일 수도 있고, 그 중 하나는 백서희 것일 수도 있다.

난 구석진 자리에 앉아 두 차량을 예의주시했다.

일단 먼저 움직인 것은 검은 세단.

남녀 두 명이 내리더니 카페에 들어와 주문을 한다.

그리고는 내게서 어느 정도 떨어진 자리에 앉는다.

복식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중간중간 날 의식하는 행동들이 엿보인다.

'이 정도면 확실하군.'

스승과 연관된 뒤로 10년 넘게 추격당해본 나다.

내게 사람을 붙인 게 분명하다. 다만 아직은 그게 누구인지는 모를 뿐.

한 번 손을 봐야하긴 해야겠군.

그 때 다른 차에서도 움직임이 포착됐다.

시동이 꺼지는가 싶더니 차문이 열리곤 그 밖으로 나오는 사람을 보며 난 커피 잔으로 입을 가린 채 작게 웃었다.

드디어 올 게 온 것이다.

선글라스를 낀 채,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꼭꼭 껴입고 분장까지 한 여인.

그녀는 카페 안으로 들어와 주위를 슥슥 살피더니 조심스레 내 테이블에 다가와 앉았다.

그녀는 백서희였다.

누군가 하고 살펴보다 화들짝 놀란 연기를 제대로 해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덩달아 작은 비명도.

보는 눈이 있으니 이 정돈 해줘야 하지 않겠어?

"당신...!"

"쉿. 조용히 해 주세요."

"아니, 여긴 어떻게...?"

그녀가 내 팔을 잡아 도로 앉힌다.

그리고는 양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안고는 작은 목소리를 간절하게 부탁해왔다.

"정말 염치없지만 부탁드릴게요.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태도가 확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하고는.

그 땐 날 두려워하고는 있어도 어느 정도 고상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자존심일랑은 다 제쳐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슬쩍 아까 날 따라온 두 남녀를 바라본다.

아주 굳은 얼굴로 집중한 채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게 눈에 들어온다.

'흠. 어떻게 할까나.'

난 저들이 강 회장 쪽 사람인지, 아니면 임호준 쪽 졸개들인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 외 다른 세력일 수도 있고.

그러나 어느 쪽이건 이 여자와의 거래를 들려줄 이유는 없는 바...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하다 의도치 않게 한 번 더 거절당한 그녀의 얼굴엔 처량함이 올라왔다.

그러건 어쩌건 곧바로 밖으로 향하고.

백서희는 고민하다 이내 다시 내 뒤를 쫓아왔다.

'좋아좋아.'

순간 안 따라오면 어떡하나 했다.

"잠시만요!"

계속 무시하며 걸어 내 차 옆에 딱 선다.

추격하는 이들은 눈에 안 띄려 하는 습성이 있기에 그들의 차와 내 거리는 상당했고, 난 이유 없이 가까이 접근하려는 그들을 살짝 의심의 눈초리로 한 번 바라봐주었다.

멈칫.

내 표정을 읽은 그들이 주춤하고.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빠져 담소를 나누기 시작하는 두 사람.

나 또한 바로 표정을 풀고 눈앞에 여인을 내려다본다.

거리는 25미터 넘게 벌어져 있고 도시라 소음이 커, 이제 대화소리가 들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뭐든지 한다고요?"

"네. 그러니 제발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좋습니다. 대신 10년."

"네...?"

여인이 이해가 안 가는지 되묻는다.

난 그녀 가까이 다가가 아주 찬찬히 또박또박 설명을 해주었다.

"앞으로 10년간 제 노예가 된다면 도와드리죠."

흔들거리는 몸.

파들파들 떠는 입술.

여인이 살짝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10년은 너무 길..."

"싫음 말고요."

난 네가 있거나 말거나 크게 상관없어. 뭐 대략 그런 표정을 지어주자 여인이 고개를 푹 떨궜다.

입술이 꾹 다물어지고, 어깨가 살짝 들썩이는 게 보인다.

'풉. 지금 우는 척을 하는 건가?'

그러나 다른 남자들에겐 통했을지 몰라도 내겐 알짤 없다.

이미 여자들의 심리와 전략은 대략 꿰고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난 우는 여자를 싫어한다.

슬쩍 고개를 들었는데도 시큰둥한 내 얼굴을 보고는 바로 그 전략을 포기하는 여인.

선글라스에 가려 눈동자가 보이진 않지만, 아마 지금쯤 동공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넌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이제 그만 포기해.'

그녀에겐 선택지가 없다.

애초에 갑을 상대로 을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마른침을 삼키고.

이내 결정한 듯 주먹을 꾹 쥐며 대답.

"알겠어요... 10년."

빙고. 드디어 얻었다.

임호준 새끼를 괴롭힐 히든카드를.

'근데 아직은 할 만 한가 보구만.'

주먹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면 말이다.

이럴 땐 한 번 밀어내 줘야지. 아주 더 죽을 맛이 나게.

난 해맑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내일 다시 만나죠. 장소는 제가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그, 그럼 지금 회사 일들은..."

"그건 내일 하는 거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여인의 얼굴에 울상이 올라왔다.

이번 건 연기가 아닌 진짜 감정.

난 픽 한 번 웃어주고는 차에 올라탔다.

터덜터덜. 자신의 차량으로 돌아가는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그럼 내일부터 재미있게 놀아보자고.'

링링의 보고에 따르면 아주 썅년이던데... 그러니 아주 막 가지고 놀아도 될 것이다.

정말 노예답게.

'다만 그 전에 저것들부터 처리 해야겠지?'

난 서늘한 눈으로 내 뒤를 밟던 이들을 바라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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