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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화 〉 #087 이번 여름 백마는 너로 정했다 (91/200)

〈 91화 〉 #087 이번 여름 백마는 너로 정했다

* * *

"그럼 출발!"

여우와 민아의 외침과 함께 모두가 밖으로 나선다.

우리는 일단 첫날이니 만큼, 가까운 관광지 위주로 움직이기로 했다.

차량 안을 시끌시끌 울리는 여인들의 수다.

이른 아침 참새 떼가 따로 없다.

"꺄악. 저기 봐봥!"

"대박. 사진사진! 서후 천천히 좀 운전해!"

뭐 두 초딩이 떠드는 거야 상시 그러니 이해를 하지만, 평소보다 조금 더 시끄러운 상황에 왜 그런가 하고 보니 새롬이도 하와이엔 와 본적이 없었던 것.

세 여자가 빽빽 소리치니, 이건 시장 한복판인지 야밤축제 거리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 옆에서 입을 가리고 웃는 엄마 여우와 다리를 꼰 채 추임새를 넣어주는 도향까지.

다들 잘 즐기고 있는 것 같으니 나 또한 그러도록 하자.

그에 난 여인들과 함께 다니며, 두 손으로 엉덩이 만지는 걸 즐겼다.

다섯 명이다 보니 번갈아 가며 만지는 재미가 은근 쏠쏠했고.

특히나 다들 궁둥이들이 개성이 넘쳐, 무슨 아이스크림 골라먹는 기분이 났다.

심지어 마구 주물럭대며 고간까지 슥 훑어주면...

"읏. 아, 아저씨...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랫!"

"아앙. 좋아요, 아저씨♥"

이렇게 대사도 반응도 천차만별이라, 더욱 색다르다.

섞어먹으면 더 신박하고.

"하응. 서, 서후씨... 정말...♥"

"야아! 너,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흐응~ 서후 다 컸네. 대놓고 누나 엉덩이도 만질 줄 알고?"

각각 은주와 새롬, 도향의 반응.

이런 여행도 은근 다닐 만 하구만.

사실 하와이는 이미 싹 다 둘러본 적이 있는 만큼, 이곳엔 내 호기심을 이끌만한 것들이 전혀 없었다.

그저 미모와 몸매가 뛰어난 여인들이 지나가면 오오하며 바라볼 뿐.

그러나 그것도 일행이 있어 대놓고 볼 순 없는 바...

이렇게 엉덩이를 만지며, 내 여인들이 무슨 사고를 당하진 않을까 살펴보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그녀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지루할 관광 여행이었으나, 일행들이 궁둥이를 희생해 준 덕분에 나 또한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도향은 좀 지루하지 않을까 싶네.

나처럼 하와이에 와 본 적 있는데다가, 그녀의 관심은 온통 식물들뿐이었으니까.

도향은 네 여인이 사진 찍는다며 자리 비운 틈을 타, 내게 슥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긴 간만이네."

"그러게."

도향과 나는 스승 따라 다니며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하와이에는 일이 끝나고 두 달 정도 머문 전적이 있었다.

그녀는 과거를 회상하듯 말했다.

"그 땐 서후가 참 귀여웠는데. 누나누나 하면서~"

그런 적이 있었지.

당시엔 많이 어렸고, 도향을 정말 누나처럼 의지하고 따라다녔다.

"원하면 지금도 불러 주고."

"에이~ 농담도 못하니? 호호호."

도향이 손사래를 친다.

기분 좋게 웃으며.

도향을 찬찬히 훑어본다.

턱 끝에 오는 단발과 큰 눈, 자신감 넘치는 표정.

예전과 변함없는 모습이다.

외모는 그 때에 비해 성숙해졌지만... 허리에 손을 올리고, 등과 목을 일자로 세운 모습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그 때는 정말 넘볼 수 없는 하늘과 같은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이젠 몸도 섞고 내 여자도 되고.

세상일이란 한치 앞도 예측이 안 되는 것 같다.

"타깃에 대해선 좀 들었어?"

"응. 새댁이라네?"

"영감탱이, 하여튼 사악하다니깐. 그 외에 특이사항은?"

"시간제한이 있어. 일주일."

"흐응~ 재미있겠네."

햇빛이 살짝 눈이 부신지 도향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선글라스.

알이 큰 탓에 더욱 걸크러쉬 느낌이 강해진 여인이 방긋 미소 지었다.

그녀의 얼굴엔 걱정 따윈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뭐 어디까지나 내 일이니 그녀가 무슨 걱정을 하긴 하겠냐마는... 도향은 자기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여인.

날 도와주기로 했으니, 자신의 일처럼 움직일 것이고.

얼굴에 보이는 저 미소는 이번 일에 대한 순수한 자신감이리라.

"걱정 안 돼?"

"전혀. 서후 넌 스스로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네가 스승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넌 스승이 가지지 못한 것들이 있으니 그걸 적극 이용하면 돼."

스승이 가지지 못한 것이라...

"그래봤자 외모랑 좆뿐인데?"

"사실 그게 가장 중요한 거야. 남녀 관계에서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그거에 의해 결정되는 게 현실이고, 사실이며, 역사지. 만약 네가 좆이 요만했다면, 난 가차 없이 널 뻥 찼을 거야!"

참으로 솔직하다니깐.

그럼 반대로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얼굴이 별로였다면?"

"말도 안 걸었지? 호호호."

하여튼. 저리 웃어도 진심이라는 사실에 쓴웃음밖에 안 나온다.

다른 여인들 같으면 내숭이라도 한 번 떨 텐데.

그래도 그 대상이 나와 스승 한정이라는 것에 이내 만족감이 떠올랐다.

도향은 매력적인 여인이다.

남자와 여자의 심리를 가지고 놀 줄 아는.

그런 그 때, 돌연 스마트 폰이 울렸다.

누군가 하고 보니 링링이다.

"예, 링링."

­ 오늘 저녁은 들어와서 식사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혹시 다른 팀도 오는 겁니까?"

그 다른 팀이란 바로 타깃들.

­ 예.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링링."

­ 이따 뵙겠습니다, 서후.

그렇게 통화가 끊기고.

통화 내용을 엿들은 도향이 양팔을 하늘 위로 쭉 펴 보였다.

그에 따라 그녀의 탄력 있는 가슴이 서너 차례 위아래로 출렁였다.

"으자자...! 그럼 한 탕 신~나게 뛰어보자구!"

그날 저녁.

일행들과 함께 해변과 도시를 구경하고.

저녁을 준비했으니 들어와서 먹는 게 어떠냐는 스승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시간에 맞춰 별장으로 복귀했다.

시끌시끌 떠드는 다섯 여인들.

출발할 때는 그냥 웃고 말았는데, 흐음... 정말 장난이 아니네.

골이 살짝 울리는 기분이다.

그나마 나이 차가 나는 걸 천만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그것마저 비슷했다면, 아마 지금쯤 난 두통약을 먹고 있을 지도 모를 것이다.

아무튼 씻고 식사를 위해 다 같이 내려가는데, 선두에서 떠들던 두 아이가 조용해진다.

왜 그런가 하고 확인해본즉, 식탁 한쪽에 한 쌍의 커플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 누가 와 있당."

"안녕하세요...!"

민아와 여우의 인사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두 남녀.

보는 순간, 난 직감적으로 그들이 테스트를 위한 목표물들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함께 있던 스승이 수신호를 보내왔다.

그걸 알아들은 도향이 자연스레 그 부인 옆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식탁 테이블은 사각형이었고, 상석에 스승이 앉아있는 관계로 응당 난 남편 옆으로 가 앉았다.

자연스럽게 남은 네 여인은 반대편으로 앉고.

그렇게 처음 무대는 완성이 되었다.

스승이 허허 웃으며 일단 소개까지는 해준다.

"둘 다 초면이지? 이쪽은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알게 된 친구 서후와 그 일행들. 여기는 스미스 부부. 인사들 하지. (영어)"

"서후입니다. 반갑습니다. (영어)"

"난 카터 스미스. 이쪽은 내 아내 그레이스. 만나서 반갑다! 하하핫! (영어) "

"반가워요, 서후. (영어)"

남자와는 한 차례 악수를 나누고, 여자 쪽에는 가볍게 고개만 숙인다.

카터는 덩치가 제법 있는 남자였는데, 잠깐 일어났을 때 나보다 더 키가 큰 거로 봐서는 190정도 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스타일은 전형적인 미군 스타일.

황금빛 머리칼은 단정하고 행동과 성격은 호탕하다.

그러나 욱 하는 성질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카터 스미스입니다. (영어)"

그리곤 곧바로 우리 일행에게 가서 악수를 청하는 남자.

표정이 좀 끈덕지고 젊은 혈기가 도는 게... 음. 여성편력이 좀 심해보이는군.

그러면서도 좀 단순해 걱정은 덜었다.

여인들을 바라보는 탐욕이 음흉하면 모를까, 상대에게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도향을 제외하고는 다들 좀 불편해했다.

'일단 남자만 보면 난이도는 좀 쉬운 편인가?'

뭐 찬찬히 살펴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이정도면 다 살펴본 듯하니, 남자가 돌아오기 전 여자 쪽을 가볍게 훑어본다.

여자 쪽은 흠... 내성적이군.

일단 첫인상은 조용한 스타일.

외모는 한 마디로 미녀다.

금발과 오뚝 솟은 코, 푸른 눈은 전형적인 서구 미인의 것이고.

그러면서도 반대로 피부는 좀 타고난 것인지 주근깨나 그런 잡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분홍빛이 감돌지 않은 우유 피부.

'이런 맛난 육체가 자동으로 걸리다니. 운이 좋군.'

백인들 중 저런 피부 찾는 건 정말 손에 꼽는데.

아마 그들 종족 특유의 체취 또한 거의 나지 아니하리라.

심지어 그 아래로 자리한, 움직일 때마다 출렁이는 거대한 유방은 내 마음을 급속도로 흡족하게 만들었다.

좋아, 이번 여름 백마는 너로 정했다!

난 그리 다짐하며 시선을 다시 테이블로 돌렸다.

지금 이 자리서 남의 여자를 오래 봐서 좋은 건 하나 없기에.

카터가 한 차례 악수 순회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오고.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언니.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 좀 해주세요! (영어)"

"잠깐잠깐. 그건 저한테 들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레이스와 저는 말이죠... (영어)"

수시로 여인들 쪽 대화로 끼어드는 카터.

우리 일행들이 상당히 불편해 함에도...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외국인이다 보니 동양인의 표정 변화를 세밀히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그의 무모한 질주는 계속되었다.

"아, 그건 말입니다. 제가 대신... (영어)"

"당시에 제가... (영어)"

어떻게 보면 부인으로서 그 모습이 상당히 부끄러울 만도 한데...

그런 모습조차도 멋지게 보는 것인지 방긋방긋 미소 짓는 여인을 보며, 난 이번 난이도가 생각보다 쉽지 않겠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콩깍지가 낀 여인이라.

뭐 그래도 찍어 넘어가지 않는 여자는 거의 없으니까.

집착녀만 아니라면야 걱정 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그런 말도 안 되는 타깃을 스승이 정했을 리도 없고.

'아무래도 사건들을 만들어야겠군.'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접점을 만들고, 그것들을 통해 남편을 까 내리고 날 돋보이게 하도록 하자.

비교돼 보이게 하면서, 도향의 말처럼 내 외모와 몸으로 지속적으로 호감도를 올리면 길이 보일 것이다.

그런 그 때, 때마침 찾아온 기회.

링링이 식사를 들고 온 것을 보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그녀를 도와 음식을 하나둘 내려놓았다.

내 일행들과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는 남편과 하나라도 돕기 위해 움직이는 나.

날 바라보는 여인의 입이 살짝 벌어지고, 시선엔 호기심이 동한다.

중간에 일어나려는 다른 여인들을 눈치껏 제지하고.

그 와중에 그녀 또한 남편의 옆구리를 툭 때려 링링을 도우라며 주의를 주었지만, 그 순간 도향이 그에게 말을 걸며 그런 시도는 무산이 되었다.

자연스레 입이 살짝 삐져나온 그레이스.

호감도 플러스 1점 추가요!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면 마냥 기분 탓은 아니니라.

"서후,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제가 언제 링링 말 듣는 거 봤습니까?"

픽. 작게 웃는 그녀.

링링으로부터 보너스 점수까지!

크으... 일단 시작이 좋구만.

이 기세를 몰아 빠르게 호감도를 쌓아 올리도록 하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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