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7화 〉#066 밑작업 (67/200)



〈 67화 〉#066 밑작업

"그런데 저희 너무 눈에 띠어서 식당에서  먹긴 힘들걸요."

보미라 했던가?
갈색 머리칼을 한쪽으로 늘어뜨린 아이의 말에 나 또한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두 머리색부터가 톡톡 튀는데다가, 그걸 가린다고 후드나 모자를 쓰면 오히려 더 이상했다.

무엇보다 밥 얻어먹는데 무슨 간첩이나 범죄자도 아니고... 그리 불편하게 먹는 건 대접하는 내 입장에서도 원치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하지?'

그런 그 때 울리는 진동.
누군가 하고 보니 도향이다.


그리고 그녈 보는 순간 난 직감했다.
이 문제가 알아서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애들한테 잠시만 양해를 구하곤 전화를 받는다.


"어.  다 본거야?"


- 응. 넌 어딘데?


"나 지금 아는 애들 만나서  좀 먹이려고 하는 중... 그런데 애들이  유명인사라 마땅히 데려갈 만한 데가 없네. 어디 추천  해줄래?"

그러자 아주 잠깐의 침묵 이후, 질문 하나가 날아온다.


- 잠깐, 그 전에 나부터 좀 도와줘. 옷들이 다 예쁜데 뭘 고를지 모르겠어. 1번, 2번, 3번 중 하나 골라주면 돼.


역시... 척하면 척이다.
도향이가 내게 건넨 질문, 옷들이 다 예쁜데 나보고 선택해 달라고 물은 건 지금 내가 만나는 애들이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인지 묻는 것이다.


1번은 작업을 걸 혹은 거는 중인 여자.
2번은 작업을 끝마친 여자.
3번은 작업과는 관련이 없는 여자.

이중에 당연히 내가 해야 할 말은...

"1번으로 선택할게."

- 알았어. 그럼... 음. 우리 집으로 올래? 우리  꽤 넓거든.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일단 도향은 여자.
같은 여자 집으로 끌어들인다면 아무래도 긴장감을 풀기도 쉽고, 그로 인해 작업하기도 매우 간편해진다.


더구나 저리 제안한다는 건 상황에 따라 그녀가 나서서 도와주겠단 뜻.
나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는 매우 좋은 방법이었다.
그에 그러한 제안을 아이들에게 하자 모두가 좋다며 받아들인다.


"그런데  분하곤 무슨 관계에요?"

아무래도 도향이와의 친분감이 느껴지는 대화가 신경이 쓰였던 걸까?
다혜가 슬쩍 물어온다.
흘끗 내 눈치를 보는 걸로 보아...
스승에게서 내게로 마음이 조금씩 넘어오고 있구만.

"아... 나랑 친한 누님."

"아, 언니에요? 혹시 친언니?"


"그건 아니고... 그래도 거의 친누나 정도는 되는 것 같네. 만날 때마다 이게 뭐냐고 구박하면서 이거저거 잔뜩 챙겨주거든."

"헤에..."

애인이나 그런 관계는 아니라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다혜의 얼굴이 밝게 피었다.
그리고 그걸 같이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다른 멤버들.

니들은 왜 그러고 있냐...
이유는 알  없지만, 얘네들 뭔가 새로운 것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온종일 학교에서 공부만 한 여학생들에게서나 나올 법한 반응들이었기에.

'음... 그런 면에서 도향이를 본다면, 여러모로 신나겠구만.'


도향이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가 봐도 놀랄 만큼, 매력적이면서 파격적인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비단 그녀의 외모만 이야기 하는 건 아니었고.
성격이나 행동,  등등 그 모든  포함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과연... 그녀의 집에 들어서자, 네 아이의 눈이 완전 동그랗게 뜨였다.

집  곳곳으로 각종 식물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그것들은 좌우 그리고 천정으로 뻗어 올라가 벽면을 가득 메우었고, 그러면서도 지저분하단 느낌보다는 오히려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참 묘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도향은  중심에  있었다.
손님이 온다고 미리 준비라도 한 듯, 검은 원피스를 차려 입고 있었다.
 모습에 꼬마 네 명은 넋을 잃고 바라보다 갑자기 서로 모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하나 가만 들어본즉...


"혹시 유명한 영화배우 분 아니실까?"


"전 모르는 얼굴이에요. 보미 넌?"

"나도. 그런데 진짜 대박이다."

"음. 언니들, 제가 대표로 물어볼까요?"

즉, 도향이를 그쪽 관련 선배이지 않을까 유추하고 있었던 것.
슬쩍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썩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오직 나만이 알아볼 정도로 기분 좋은 티를 내고 있다.

여자란... 참으로 칭찬에 약하다니깐.
특히나 남자들에게 대시 좀 받아온 여자들은 같은 여자에게 받는 칭찬을 은근  좋아한다.
그것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기분이 좋아진 도향이 양손을 활짝 펼치며 우릴 맞이한다.


"어서 와요! 서후에겐 미리 들었어요. 제가 괜찮은 집에 주문해서 퀵을 보내놨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감사합니다!


도향은 능숙하게 네 아이를 이끌고는 자신의  안 곳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녀의 집은 아파트였으나, 58평짜리라 그런지 전혀 아파트 같지 않아 보였다.


특히 혼자 사는 만큼 가구랄 게 거의 없었고.
 빈자리를 온통 식물식물식물이 메우고 있는... 후우. 정말이지 여전하구만.
온통 식물뿐이었다.
중간중간 자리한 가습기로 인해 거의 화원 혹은 수목원에 온 기분이 물씬 풍긴다.

'참 여자들에게 인기 좋단 말이지.'

어떻게 보면 다혜 입장에선 좀 경계를 할만도 했는데...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뭐 이해는 가지만.


도향은 솔직히 여성스럽게 예쁜 스타일은 아니었다.
스타일은 오히려 보이쉬 혹은 중성미에 가까웠으며, 언제나 늘  화장을 강하게 해 걸크러쉬의 오오라가 나는 그런 여인이었다.


더구나 취미도 독특.
성격도 개성 넘치는 그녀는 어느 여자건 쉽게 친해지곤 했다.
물론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게  되는 인물도 한 명 있다.
바로 링링.

그래서인지 만나기만 하면 도향은 웃는 얼굴로 이를 바득바득 갈곤 하였다.
반대로 링링은 싸늘한 얼굴로 마주했고.
둘은  그대로 견원지간이었다.


어쩌다 그런 사이가 됐는지는 나도 구체적으론 모른다.
그저 링링 쪽에서 빌미를 제공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아무래도 스승의 집착녀였던 만큼, 아직 스승의 여자였던 도향에게 날을 세우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당시의 링링은 매우 어려 냉정하기보단 저돌적이었다.
그런 탓에 둘은 만나는 순간부터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인가.'


그런데도 그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니...
역시 여자란 무서운 생물이다.
누군가 그랬던 것 같은데.
여자는 남편이 젊었을 적 잘못한 것 하나하나도 죽는 순간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후우. 앞으로 도향이에게 잘하자.
물론 그녀와 나의 관계는 어느 누구보다도 가깝고 친밀하지만... 조금 더 잘해 주도록 하자.
미리 말하지만 이건 절대 그녀가 무서워서 그러는  아니다.
그저 내게 제일 가까운 인물이니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것뿐이다. 흠흠.


그 사이 퀵이 도착했는지 한 차례 벨소리가 울리고.
우린 즐거이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 도중 네 아이돌에게 묻는 도향.

"그러고 보니 너희들 잠은 어디서 자니?"


"저희 미리 숙소 구해놨어요. 근데 왜요?"

"흐응~ 만약 괜찮다면 여기서 자고 가도 된다고 말하려고 했징."


뜻밖의 제안에 머리를 뭉친  아이.
무엇을 고민하는 진 어렵지 않게 유추 가능했다.

미리 잡아놨다는 숙소, 사실 숙소라 해도 흔하디흔한 숙소겠지.
그러나 도향의 집은 뭔가 다르다.
남자인 내가 봐도, 아니 꽤 이집 저집 심지어 숙박시설을 수시로 들락날락한 내가 봐도 뭔가 특별했다.


여자라면 응당 그런 곳보단 이런 곳에서 자고 싶어 할 게 뻔했다.
심지어 도향이란 매력적인 집주인 캐릭터는 아이들의 호감을 사고 있는 상황.
그녀는 아이를 다루는데 도사였고, 아직 사회 초년생 축에도 못 드는 스무 살짜리들은 그녀 앞에선 그냥 한 끼 식사거리도 되지 않는 난이도였다.

"난 좋아!"


"나도!"


일단 린과 다혜는 통과.
린은 이 집이 완전 마음에 든 모양이었고, 다혜는 나 때문에 그런 선택을   같았다.
이제 남은 건  아이.


"으음... 그래도 쉴 때는 편히 쉬어야지 않을까?"

"전 모르겠어요. 그냥 언니들 선택 따를 게요!"

보미는 다른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는 타입인가 보군.
막내인 은지는 이래저래 언니들 선택을 따르는 성격이고 말이야.
그러면 보미만 설득하면 되는 상황.

도향이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듯, 식탁 밑에서 내 똘똘이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싱긋 웃으며 나선다.


"걱정마렴! 아까도 봤겠지만 여긴 방마다 침대가 하나씩 있거든. 2인용 침대니까 두 명씩 들어가서 자면, 나랑 서후는 남은 빈방에 들어가서 자도록 할게."

그래도 망설이는 보미.
그러나 상대가 좋지 않았다.
도향은 뱀 같은 여자였다.
그녀는 한눈에 보미라는 아이의 성격을 파악했고, 반 강제적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도향의 언변에 꿰인 그녀는 허우적대다 그대로 승낙하고 말았다.

그렇게 무대는 완성되었고.
이젠 어떻게 할 것이냐 인데...
내가 무얼 원하는지 알고는 도향이 알아서 움직여준다.
우선 시간 확인.


"그러고 보니 너희들 여기 촬영하러 왔다면서? 내일 일찍 나가니?"

"아뇨. 저희 2시쯤이라 늦게 일어나도 돼요! 그런데 왜요?"

"간만에 언니가 실력 발휘해서 아침 맛나게 차려주려고! 모처럼 요새 제일 잘 나간다는 아이돌 귀염둥이들을 만났는데... 어때? 먹고 갈래?"


"와아...! 정말요?"

남자인 내가 했다면 의심을 받았을 만한 제안과 대사들이, 도향을 통해 전개되면서 모든 게 쉽게쉽게 해결된다.
이래서 작업 칠 때는 도와주는 여자 하나가 있는 게 편하다.
힘들게 머리 굴려가면서 상대 둑을 허물기 위해 구멍을 조금씩 파지 않아도 되니깐.

그렇게 식사하던 중 잠시 화장실에 들르자, 기다렸다는 듯 울리는 진동.
누군가하고 보니 도향이다.


도향 : 누구부터 먹을 진 정했어?
 : 아니. 일단 다혜는 한 번 한  있어. 다혜 먼저 하고 오늘은 다른 애   작업하려고.
도향 : 그렇단 말이지... 그럼 내가 알아서 한다?
 : (오케이 이모티콘)


그러고 나오자, 돌연 도향이 부엌으로 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믹서기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무언가 음료를 만드는 건가?
그리고 그런  예상은 정확했다.
컵 다섯 개를 들고 와 각 사람 앞에 하나씩 올려놓는 그녀.

"도향표 해독 주스야! 한 번 맛 들 봐봐. 달달하니까 먹을 만 할 거야."

그녀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우리는 하나둘 잔을 입가로 가져다 댔다.
붉으스름한 액체가 보이고, 코끝으로 기분 좋은 향이 느껴진다.
그리고 입을 대는 순간.
음....! 좋군. 실력 여전하네.


달달하다 말한  치곤 살짝 약했으나, 야채와 과일에 허브를 첨가해 만든 만큼 전체적인 조화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맛이 꽤 괜찮았는지 네 아이 모두 좋아라 했다.

"우와...! 정말 맛있어요, 언니!!"


"대박...!"

대체로 이런 감탄사.
그런데 무슨 생각이지.
아까 문자 내용으로 봐선 무언가 일을 벌이기 위해 이걸 만든 것 같은데.


그런데 조금 있으니 바로 그 결과가 나타났다.
갑자기 보미와 은지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것.
설마...

때마침 울리는 스마트폰.
도향이를 바라본다.
날 향해 싱긋 웃으며 고갤 끄덕인다.
즉 톡을 보낸 게 그녀라는 것.
대체 무슨 일을 벌인지 궁금해 바로 확인하니...

- 마지막  잔에만 수면제를 넣었어. 남는  작업 치면 될 거야. 무대는 깔아줄게. 나머진 알아서 잘  수 있지?


당근. 한 명 정도라면 작업치는 건 일도 아니다.
도향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졸고 있는 두 아이를 일으키며 말한다.


"아무래도 피곤한가보다. 시간도 벌써 늦었네. 어서 자자, 애들아."

린과 다혜, 두 동료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끄덕.
보미와 은지에게 다가가  명씩 업고 이동한다.
 일부러 두 아이를 한 방에 집어넣었다.
그래야만 일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한 침대에 고이 눕히고.
린과 다혜에게 잘 자라 인사 한 뒤, 곧바로 톡을 넣는다.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기다리고 있을 아이에게.


나 : 이따 린 잠들면 몰래 내 방으로 와.
다혜 : 네! (하트 뿅뿅 이모티콘)

이제 시작이군.
보라색 머리칼을 포니테일로 묶어 허리까지 내린, 속눈썹과  화장이 예쁘장한 슬렌더 체형의 아이, 린.
어떤 맛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자, 빨리 와라 다혜야! 군침이 돌아 아저씨 참기 힘들다. 크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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