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062 남쪽으로!
한 차례 폭우가 쏟아지고 난 이후로, 늦봄은 가고 어느덧 여름에 가까운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뙤약볕 아래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계절.
그래도 차 안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운전을 하면 꽤나 기분이 좋아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래서 잠깐 남쪽으로 갔다 오게 되었어. 오늘 내로 돌아올지는 나도 모르겠네. 미안."
- 아녜요. 일 잘 마치고 돌아오세요. 예림이랑 기다리고 있을게요.
"응. 정말 미안하고... 그리고 사랑해, 은주야."
- 저도요!
끊기 전 폰 너머로 쪽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우를 낳은 그 엄마답게 애교가 넘치는 정말 귀여운 여인이다.
난 통화를 끊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옆으로 아름다운 바닷가가 내다보인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푸른 물결.
그것은 주기적으로 지상으로 넘어와, 바위나 모래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다 도로 합쳐지길 반복했다.
인생도 저와 같을까.
만났다 헤어지길 반복하는 삶.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새 들어 계속 감상적인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나도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그래도 아직은 청춘이지.'
100세 시대에 아직 인생의 반도 안 살았는걸.
수명도 많이 남았고 돈도 많다.
심지어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으니... 자연을 보며 인생에 대한 감상에 젖는 건, 앞으로 수백 명의 여인과 더 뒹군 뒤에나 하도록 하자.
차를 쭉 몰아 도향이가 자리 잡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그동안 별다른 연락이 없는 걸로 봐선, 아마 마지막으로 살던 그곳에서 계속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연...
그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닷가가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파스텔 톤의 아기자기한 가게가 눈에 들왔다.
'좋은 곳이긴 좋은 곳이야.'
그리고 그녀가 좋아할 만한 곳이기도 했다.
차를 적당한 곳에 바치곤 찬찬히 걸음을 옮겨 건물 앞으로 다가간다.
에메랄드와 상아빛이 어우러진 흥미로운 건물.
그 주변은 화분에서 자란 식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그래서인지 다가가자 은은한 자연의 향기가 내게 인사를 해왔다.
이건 허브향이로군.
이게 한창 기를 쓸 시기이긴 하지.
이름은 모르겠으나 익숙한 향에 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손잡이를 잡았으나... 이내 도로 놓아주었다.
문 앞에 달린 작은 팻말.
거기엔 '자리 비움'이란 글씨가 홈이 파여 귀엽게 쓰여 있었다.
'이런. 이미 점심 먹으러 나갔나보네.'
현재 시간 11시 53분.
점심시간은 이제 막 시작이라, 여기서 기다리면 언제까지 기다릴 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연락하자니, 나 때문에 허겁지겁 돌아올까 봐 미안했다.
내 처라곤 해도 저마다 각기 생활이 있으니까.
맛난 음식을 먹으며 즐길 자유도,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수다 떨 권리도 응당 있었다.
난 그런 걸 제지하는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당장 나부터가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지 않는가.
특히나 도향이와 나는 서로 알 만큼 알만한 사이라, 서로의 사생활에 크게 터치하진 않았다.
그러니 나도 어디 적당한데서 밥을 먹고 돌아오도록 하자.
운 좋으면 같은 식당에서 만날 수도...
어찌됐든 이 뜨거운 태양 아래 계속 기다릴 이유는 없었기에, 왔던 걸음을 다시 되돌렸다.
그리곤 이곳에서 나름 유명한 맛집 중 하나로 운전대를 몰아갔다.
도향이와 종종 갔었던 뻘낙지집.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자, 건물 위로 높이 쳐들린 낙지 캐릭터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비록 오래되어 이곳저곳의 색이 많이 바랬으나...
건물 바깥으로 빼곡히 차 있는 자동차들이나 식당 안쪽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면, 겉만 늙었을 뿐 아직 한창 젊은 혈기가 왕성한 청년을 보는 것과 같았다.
'그래도 오늘은 좀 더 시끌벅적한 것 같은데?'
입구부터 왠지 부산스러운 것도 그렇고.
의문을 가지고 식당에 들어서자, 문득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귓가로 흘러 들어왔다.
"와아...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대박이다."
"그치? 여신들인데, 완전?"
방금 대화는 남자들의 것.
조금 있으니 들리는 또 다른 대화.
"나도 메이크업 받으면 저 정돈 된다니깐?"
"그러게. 화장 장난 아닌데?"
이건 여자들의 대화.
뭐 추론은 어렵지 않았다.
유명 인사가 이곳에 방문한 모양이다.
그것도 손님들 반응으로 봐선 여성들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연예인인가?
그에 안으로 들어서서 누군가 하고 보니...
'음? 다혜?'
그랬다.
한쪽 테이블에서 뭇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식사 중인 인물 중엔 다혜가 있었던 것.
그렇단 이야기는 쟤네가 요새 잘 나간다는 그 아이돌 그룹인건가?
내가 알기로 총 네 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이었지만, 그곳엔 다른 사람들도 뒤섞여 있어 그 외에 누가 아이돌인지는 쉽게 파악이 어려웠다.
뒤통수가 다 고만고만했기에.
아무래도 요 근처에서 방송 촬영을 위해 잠시 내려오지 않았나 싶었다.
그건 그렇고 대박이군.
스무 살 치곤 엄청난 걸 상체에 매단 덕분에, 다혜가 한 번 음식을 가져온다고 움직일 때마다 그 큰 덩어리가 크게 위아래로 출렁거렸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걸 지켜보던 주변 몇몇 남자들의 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참 뭐하게도 귓가로 뚜렷이 들려왔다.
'오늘 식사는 글렀다고 봐야겠군.'
그에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서빙을 하던 직원이 날 발견하고는 소리친다.
누군가 하고 보니, 이 집 주인 딸이었다.
"어? 서후 아저씨?"
"아... 오랜만이네, 아리야."
손님에게 음식을 마저 내려놓고는 쫑쫑 내게 다가오는 그녀.
매우 반갑다는 표정으로 방긋 웃는다.
"너어... 이제 완전 다 컸구나? 작년만 해도 좀 애기 같더니."
"애기라뇨! 지금도 애기 같나요?"
아이가 나름 폼을 잡는다고 고개를 젖히며 몸을 S자로 만들어 보였다.
물론 장난을 친다고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포즈를 취한 터라, 난 작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덩달아 웃다가 주위를 휙휙 둘러보더니,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그런데 향이 언니는요?"
"아아. 모르겠어. 갑자기 혼자 밥 먹으러 가서 혼자 나왔네."
"에에... 그럼 지금 혼자에요?"
아리가 악당들이나 지을 법한 음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쿡쿡.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구만.
항상 이곳을 올 때면 도향이와 함께 왔었고, 그런 이유로 이곳 사람들은 우리를 연인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항상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요 아이였다.
"그럼 밥 먹고 하실 일 있어요?"
"왜?"
"왜긴요! 허전한 빈자리를 제가 대신 채워드릴라 하는 거죠!"
난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곤 검지를 들어 그녀 뒤쪽을 가리켰다.
고개를 갸웃 하고는 돌아보는 아이.
그러나 채 다 돌리기 전, 우악스런 손이 날아와 그대로 그녀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린다.
짜악!
아악!!!
그 소리가 얼마나 큰 지 일순 사람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런 시선일랑 아랑곳 않고, 이곳의 주인인 여인이 아리의 귀를 부여잡고는 소리쳤다.
"지금 이 바쁜 타임에 뭘 하고 있는 걸까, 우리 딸님아?"
"아, 아악! 아, 아퍼어!! 엄마 이것 좀 놓고 말햇. 쫌...!!!"
"놓으면. 제대로 일 할 겨?"
"아, 알았어! 할게할게에!!!"
그제야 손을 놓고는, 딸 궁둥이를 짝 소리 나게 때리며 일터로 보낸다.
아리가 투덜투덜 거리며 밀카를 끌고 주방으로 향했다.
여인이 날 향해 몸을 돌렸다.
사십 중반쯤 되는 풍채 좋은 여인.
그녀는 남자답게 허허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네 왔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아니 근데 여자 친구 분은?"
"먼저 밥을 먹으러 갔길래, 부득이하게 혼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럼 앉으셔. 내 자리 마련해 드릴 테니까!"
왠지 민폐를 끼치는 듯하여 극구 거절했으나, 그녀는 날 기어코 한 쪽 자리에 앉히었다.
단골손님 관리 차원에서 하는 행동 같아 보이진 않았으나, 그 행동에 이곳이 꾸준히 손님이 많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언제나 먹는 볶음을 시키고, 구경꾼들로 이루어진 벽을 가만히 쳐다본다.
돌연 웅성웅성 거리는 걸로 봐선, 이곳을 장악했던 유명 인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듯했다.
그리고 과연... 하나둘 문밖으로 나선다.
그런 그 때, 공교롭게도 나와 눈이 딱 마주친 다혜.
고개가 스르륵 돌아가다 멈칫 하더니, 휙 다시 날 돌아본다.
"어어?!"
그러나 왠지 그녀와 지금 아는 체를 하면 피곤해질 것 같아, 작게 웃음만 지었는데...
아직 어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낯을 가리지 않는 그런 성격인 건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가 앉은 테이블 건너편에 떡 하니 앉으며 인사해 온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그래, 다혜야. 아니 유나라고 불러야 할까?"
"아뇨. 다혜라고 불러도 돼요! 방송이 아니니까 어떻게든 불러도 상관없어요."
그러면서 아이가 배시시 웃어보였다.
이런... 그것 참 곤란하구만.
웃는 얼굴이 예쁘고 시선을 확 사로잡는 가슴이 가까이 있는 건 좋은데, 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이 되었다.
마치 무슨 사이인지를 유추하는 듯한 눈빛.
그건 비단 구경꾼들만은 아니었고, 아이의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밖으로 나가던 스무 살 또래의 아이 세 명이 도로 들어와 다혜 옆으로 모여든다.
"누구야?"
"아는 사람?"
"우리도 소개시켜줘!"
끙... 좋긴 좋은데 얼굴 다 팔리겠구만.
그건 그렇고 정말 대박이다.
아이돌이라고 하더니 하나 같이 미녀들이었던 것.
체형도 얼굴도 각기 특색이 달랐지만, 하나 같이 따먹으면 맛있어 보이는 몸들이었다.
다혜 작업 치면서 사이드 메뉴로 넣어 먹으면 딱이겠네.
아니면 4대1도 괜찮을 것 같고...
뭐 어디까지나 상상과 바람일 뿐이다.
4대1을 하려면 어후... 그게 가능하긴 한가?
나중에 스승 만나면 물어봐야겠군.
그런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
뭐 그 노인네라면 왠지 있을 것 같지만...
아무튼 난 적당히 다혜와 그 동료들을 상대해 주며, 최대한 빠르게 돌려보냈다.
식사도 해야 하고 보는 눈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녀 네 명이 사라지고 1시가 넘어서자, 북적북적 거리던 식당은 어느덧 한산해졌다.
그로 인해 다가온 아리와 주고받으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데, 돌연 날아온 까똑.
누군가 하고 보니 다혜다.
- 저 내일까지 여기에 있거든요! 혹시 밤에 괜찮으시면... (부끄부끄 이모티콘)
쿡쿡. 하긴... 슬슬 내 좆맛이 그리울 때긴 하지.
자궁 안쪽까지 푹푹 쑤셔주었으니, 날 본 순간 그 날 일이 떠올랐을 거였다.
그럼 밤에 잠깐 시간을 내봐야나?
잘하면... 어쩌면 운 좋게 그 동료들도 맛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설령 못 먹어도 인연을 틀 기회는 만들 수 있으리라.
어디 계획 한 번 짜봐야겠군.
간만에 아이돌들 구멍이나 맛보도록 하자.
자궁 안에 좆물 부어줄 생각을 하니, 크윽... 벌써부터 꼴릿꼴릿 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