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047 모르는 것 같으니 알려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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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든다.
끝을 모르고 하늘높이 치솟아 오른 거대한 빌딩이 눈에 들온다.
먼 옛적 오만한 인간들이 세웠다던 바벨탑을 현대에 옮겨놓는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고개를 내리자 해당 회사와 그룹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KUC 푸드.
KUC.
그런 그 때 울리는 진동.
누군가 하고 보니 링링이다.
- 현시간부로, 부탁한 건 모두 다 처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끊으려는데, 링링이 잠시 머뭇거리는 게 느껴졌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걸까.
그러나 그녀는 고민만 하다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맺었다.
- ...무운을 빕니다, 서후.
"스승님께 감사하다 전해주십시오."
- 네.
통화를 끊고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무언가 말하는 걸 주저하는 건 드문 일이기에 조금은 신경이 쓰였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직 복수, 그 생각뿐이다.
계단을 올라 회사의 정문으로 향한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듯 둑 터진 것 마냥 쉴 새 없이 나오는 인파와는 반대로, 난 천천히 거슬러 올라 거대한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자, 한 여직원이 상냥하게 웃으며 물어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곳 대표님과 미리 약속을 잡았습니다만."
"앗. 잠시만요."
여인은 몸을 돌리더니 뒤쪽에서 대기 중이던 한 여인을 불렀다.
아무래도 내가 올 시간에 맞춰 미리 사람을 내려 보낸 모양이었다.
'그 정도로 혹할 만한 걸 제시했으니까.'
투자 관련 상담.
금액은 1000억.
어찌 아니 혹할까.
교대해 다가온 여인이 공손히 허릴 숙였다.
그리곤 날 인도해 대표가 있는 곳까지 안내했다.
'33층인가.'
크긴 크군.
새삼 대기업이라는 걸 느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말 그대로 고급스런 향기가 날 맞이했다.
도향이랑 한동안 같이 다녔던 만큼, 시중에 파는 싸구려는 아니라는 게 확 느껴졌다.
바닥에 깔린 붉은 고급스런 카펫을 밟으며, 앞서 걷는 여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그녀는 내게 한쪽에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 한 뒤, 대표실이라 적혀있는 방 앞 데스크로 다가갔다.
"모셔왔다 말씀드려주세요."
"네."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하얀 백색 대리석과 그 사이사이를 붉은 빛깔이 도는 색을 입힌 강화유리 타일이 대신하고 있다.
고급스럽군.
이 한 마디면 충분할 만큼, 정말이지 고급스런 느낌이 물씬 났다.
새삼 내가 만날 인물이 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가진 인물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KUC회장의 딸이자, KUC 푸드의 대표 강설아.
현 회장에게는 세 명의 자식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뛰어나 회장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지금의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 외엔 그 어떤 자식들도 대표직을 얻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그 어떤 변변찮은 괜찮은 자리조차 얻지 못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내가 쥐고 있는 이 폭탄의 가치가 그만큼 엄청나다는 것이니까.
'만약 그 소문들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절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인간이란 힘을 손아귀에 쥐면 놓을 줄 모르는 그런 족속이니까.
그러니 그걸 이용해 철저히 괴롭혀주마.
내 것을 건드린 대가를 아주 혹독하게 치르도록 해 줄 것이다.
"들어가시지요."
문을 열어주는 여인에게 까딱 고갤 숙인 뒤, 난 대표가 있는 방 안으로 찬찬히 들어섰다.
복도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이 드는 공간이 날 맞이한다.
남자들 사무실에는 잘 보이지 않을 화분도 제법 많고, 무엇보다 상위 계층 여성에게서나 날 듯한 좋은 향이 방 안 가득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예전 몇 번 상위 계층을 작업 쳐 본 경험이 있었던 만큼... 이 향을 맡는 순간, 마음 속 남아 있던 일말의 긴장감은 곧바로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곤 가슴엔 뜨거운 분노가, 머리엔 차가운 이성만이 자리하게 되었다.
시선을 돌린다.
한 여인이 고요히 날 탐색하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생긋 웃으며 인사해오는 그녀.
"KUC 푸드 대표 강설아입니다. 반갑습니다."
"서후입니다."
손을 한 차례 맞잡은 난 그녀의 안내를 따라 테이블이 배치된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고 간단히 농담을 주고받은 뒤, 바로 본론 시작.
"그런데 무슨 계기로 저희 쪽 새 사업에 투자하실 생각을 하신 건지..."
"아, 그거 말입니까? 별거 아닙니다."
주머니에서 태블릿을 꺼낸다.
그리곤 겉으로 티 나지 않게, 속으로 가볍게 심호흡을 한다.
후우. 이제부터 시작이다.
일명 작전명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내 행동에 고갤 갸웃 거리는 여인.
상당히 예쁜 여자다.
지금 있는 위치가 위치인 만큼 스타일도 좋고.
가슴께까지 오는 긴 머리칼에 살짝 펌을 줘 단정하게 늘어뜨린 그녀는 나와 나이대가 정말로 비슷하나 싶을 만큼 상당히 동안이었다.
또한 몸매도 돈과 시간을 들여 오랜 시간 꾸준히 관리했는지, 나름 튀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그 매력을 전부 감출 수 없었다.
한창 빛을 뽐낼 20대들과 비벼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
그게 그녀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오늘 부로 창녀처럼 다릴 벌릴 년이기도 하지.'
난 미리 옮겨둔 그 문제의 동영상을 튼 뒤,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처음엔 뭔가 하고 보다가 이내 손을 덜덜 떨더니, 동공과 함께 볼이 크게 떨리기 시작한다.
마치 바지에 실례한 어린 아이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보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태블릿에서 눈과 손을 떼지 못하는 걸 보며,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어느새 끝이 난 동영상.
여인은 아무 말이 없다.
소위 요새 젊은 애들이 종종 말하는 멘붕이라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것이리라.
반응 좋고.
그럼 이제 슬슬 당겨보자고.
"다 보신 것도 같으니..."
여인의 고개가 마치 기름칠이 덜 된 기계 부위마냥 드드득 거리며 움직여 날 응시했다.
동영상이 야해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충격이었던 건지, 여인의 얼굴은 짧은 시간 만에 홍당무마냥 새빨개진 상태였다.
한 회사에 대표로 올라오기까지 벼리별 일을 다 겪어봤겠지만, 이번 일 같은 건 또 처음이겠지.
예상보다 좋은 반응에 난 입가에 씨익 미소를 담으며 말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강 대표님?"
"저, 저어... 그..."
말을 더듬는 여인.
그녀는 말을 온전히 잇지 못하고, 몇 차례나 입을 열었다 다물길 반복했다.
그래도 대표직을 꽁으로 먹은 건 아닌 모양이다.
채 1분이 지나기도 전에 금세 안정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곤 곧바로 생각에 잠긴 그녀.
'대단하군. 그 짧은 순간에 이성을 찾았단 말이지?'
무서운 여자다.
역시 상위 0.1%에 드는 인간은 달라도 뭔가 다르단 건가.
가만 보니 열심히 짱구를 굴리는 듯한데... 쿡쿡. 그래본들 소용없을 텐데.
난 팔짱을 끼곤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여유롭게 기다렸다.
그렇게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경우의 수란 수는 이제 다 생각해 보았는지, 여인이 뻣뻣이 굳은 얼굴로 물어왔다.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원하는 거라...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일 것 같습니까?"
"...힌트를 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부탁합니다. 사전에 당신에 대해 조사를 하긴 했습니다만, 시간이 촉박해 이렇다 할 정보가 없었습니다."
뭐 그럴 것이다.
그러나 설령 시간이 넉넉한들 뭐 쓸 만한 게 있었겠냐마는.
"그 이야긴 아직 제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흐음. 난 한 차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손을 깍지 껴 그 위에 턱을 괴었다.
그리곤 대기.
여인이 긴장 어린 태도로 내 대답을 기다림에도, 일부러 꾹 참고 기다렸다.
곧바로 대답해 줄 수도 있으나, 이런 작은 행동 하나가 이후 큰 결과로 돌아온다는 걸 수많은 여성을 상대하며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던 여인의 손이 조금씩 꼼지락 거린다.
그래도 아직은 아냐.
조금 지나니 꿈틀 거리는 다리.
그럼에도 가만히 기다린다.
그녀가 더욱 안달이 나도록.
그러자 이번엔 입 주변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더는 참기 힘들단 뜻이다.
결국 참다 참다 그녀가 입을 벌려 내 대답을 촉구하려는 그 때, 난 찬찬히 입을 움직였다.
"이 바닥 룰이... 무슨 제안을 하면 시간을 줘야 한다더군요."
여인이 작게 고갤 끄덕였다.
"그럼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말입니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곤 찬찬히, 그래 아주 찬찬히 문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마치 이 일에 대해 내가 갑의 입장이란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세 시간 드리지요."
"너, 너무 짧습니다...!"
"그럼 두 시간."
크읏. 여인이 마지못해 고갤 끄덕였다.
그것 참 고소하구만.
사회 지배계층께서 내게 질질 끌려오는 모습이라니.
난 작게 웃다, 이내 문손잡이를 잡으며 그녀에게 약속장소를 고지했다.
"전 지금 그랜드 호텔 1107호에 묵고 있습니다. 거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아직 물어볼 이야기가..."
그건 내 알바 아니고.
"그리고 미리 말씀 드리지만, 허튼 짓 할 생각은 마십시오. 이미 중국 쪽 애들에게 영상은 넘겼으니, 제 신상에 문제가 생긴다면 바로 움직일 겁니다."
여인이 고갤 주억였다.
알아들었다는 뜻이다.
뭐 똑똑한 여인이니 따끔하게 한 마디만 더 해주면 더는 이상한 생각 못할 것이다.
"아들 분이 워낙 괴팍하신 걸 본 터라... 제가 철저히 대비해 뒀다는 것만 알아두셨음 좋겠군요."
아들의 언급에 다시금 구겨지는 얼굴.
난 그녀를 비웃듯 작게 웃어주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귓가로 비명과 함께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짧은 시간나마 속에 걸 억누르느라 고생했습니다. 쿡쿡.
그럼 골머리 좀 썩히다 이따 다시 봅시다요, 강설아 대표님.
호텔 객실 넓디넓은 침대에 누워, 다가올 여인을 기다린다.
준비할 건 다 준비했고.
이제 연기만 잘하면 되는 상황.
'어떻게 나오려나...'
예상대로 움직여주면 제일 좋겠지만.
세상사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게 거의 없는 만큼, 편하게 누워 있는 것과는 달리 내 마음 속엔 거센 풍랑이 일고 있었다.
뭐 그래봤자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난 두 시간 전 그녀와의 만남을 가만히 떠올렸다.
처음 마주해 인사한 순간부터 그곳을 빠져나올 때까지를.
사실 어중간한 증거물이었다면 그리 안 했을 것이다.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밀어붙였을 거다.
그게 맞으니까.
아까 그 회장실에서 거사를 치르는 일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밀어붙였을 거였다.
그러나 그러지 않은 이유.
증거물이 너무 좋았다.
심지어 상황은 더 좋았고.
그랬기에, 시간 여유를 준 건 일부러 그런 거였다.
한번 마음껏 발악해보라고.
제 아무리 머리를 굴려본들 그 어떤 해답도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그러고 나올 수 있는 반응은 아마 완전히 확고해진 관계, 갑과 을.
- 띠리리리.
온 건가.
찬찬히 걸음을 옮겨 문을 연다.
고급스런 풍미가 물씬 풍기는 스타일 좋은 여인이 방 앞에 서있다.
'고민 꽤나 했나보군.'
아까완 다르게 입술이 좀 엉망인 걸 보면 말이다.
난 오른손을 크게 펼쳐 보이며 그녀를 맞이했다.
"어서오시죠. 혼자 오신 건가요?"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뭐 그럴 것 같긴 했다.
가만 보니 수행원도 안 데리고 온 것 같은데...
예상대로 흘러가는군.
그걸 노리고 일부러 제일 좋은 호텔 중 KUC와는 무관한 곳을 선택했다.
시간 또한 아직 대낮이고.
제 3자가 보기엔 그저 업무상 만날 만한 모양새.
경쟁자들의 눈도 없는 곳이니, 혼자 오기도 전혀 부담 없을 터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공.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는 한 쪽 소파로 다가가 앉으며, 그녀에게도 자릴 권한다.
그러나 소파 대신 바닥에 무릎 꿇고는 앉더니, 내게 엎드리는 여인.
"제발 그 동영상 파기해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좋은 반응에 내 입가엔 절로 미소가 진하게 걸렸다.
아무래도 소문이 거의 사실인 모양이군.
회장이 친족도 내칠 만큼 냉혈한이란 게 말이다.
이거 회사 가치 운운하며 떠들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그녈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엎드린 터에 육감적인 몸매가 내 눈길을 끈다.
잘록한 허리와 치마 사이로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엉덩이가.
'몸매도 몸매지만, 참으로 똑똑한 여인이네.'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 동영상을 가지고 있는 한 그 어떤 달콤한 제안도 의미가 없다는 걸.
내 기분을 더럽힌들 상황만 악화된다는 걸 아까 겪어보았던 만큼, 지금 그녀의 처신은 나름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정말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군.
그러나 넌 중대한 실수를 했어.
아들을 낳았으면 잘 관리를 했어야지.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제가 무얼 원하는지 아십니까?"
여인이 고갤 저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걸로 보아, 짐작조차 가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무언가는 준비해 온 게 있을 것 아닙니까?"
여인이 고갤 들었다.
절망으로 얼룩진 얼굴이 보인다.
여인의 손이 무릎 위 치맛자락을 한 차례 움켜줬다 펴고, 이내 입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혹시 돈을 원하시나요?"
"아뇨. 돈은 이미 충분히 많습니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저희 회사 임원이나 사장 자릴..."
"돈도 많은데 굳이 일할 필요는 없겠죠?"
여인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것 참 대박이네.
울상이 된 얼굴도 미모를 다 감추지 못해 예쁘게 보인다니.
그에 나도 모르게 물건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애써 그 욕망을 꾸욱 내리누르며 연기에 집중한다.
아직 내 본심을 드러낼 박자는 아니기에.
여인이 다시 엎드렸다.
이마를 바닥에 대고는 간곡히 부탁해왔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할 테니... 제발 자비를..."
대답 대신 가만히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엔 치욕스러운 듯 부들부들 떨었으나, 정작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 판단했는지 이젠 그저 목소리 높여 재차 간곡히 부탁해왔다.
그렇게 그녀의 목소리가 쉴 때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갸름한 턱에 검지를 대곤 들어올린다.
40대라고는 믿지 못할 잡티 하나 없는 피부와 오똑한 코, 그리고 매력 넘치는 두툼한 입술이 내 시선을 잡아끈다.
'역시 돈이 좋긴 좋다니깐.'
뭐든지 다 해결이 되니.
다만 그럼에도 유일하게 해결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눈.
핏줄이 서고 붉게 충혈된 그것은 물론 울어서 그런 걸 수도 있었지만, 내가 볼 땐 단순히 그 이유는 아니었다.
돈과 권력을 위해 미친 듯이 일하느라 이리 된 것이다.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 그 위에서 군림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
'그러니 넌 절대 도망 못가.'
그걸 포기하지 않는 한, 이제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난 그걸 이용해 철저히 복수하며 즐길 것이다.
이 맛있어 보이는 육체를...!
"그럼 모르는 것 같으니 알려주지."
내가 반말을 했음에도, 그녀는 조금도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현 위치를 자각하고 있단 뜻이었다.
그렇다면 나직이 말해준다.
마땅히 그녀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을.
"옷 벗어. 그리고 방 침대 위로 올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