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046 복수 (47/200)



〈 47화 〉#046 복수

"일단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보렴."

난 두 모녀를 창고에 놔둔  밖으로 나와, 한 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통화 연결음이 6번을 넘어갈 때쯤에야 비로소 연결 될 수 있었다.
여성 치곤 특유한 중저음의 음색이 나지막이 들려온다.

"오랜만이네?  밤중에 내게 전화한 걸 보니, 내 아랫도리가 생각이 좀 났나봐?"

"미안. 그건 아니고, 도움이 좀 필요해서."

"...니가? 참 별일이구나. 그래, 어떻게 도와줄까?"


난 빠르게 상황 설명을 한 뒤, 이곳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채 1시간이 지나기 전에, 차량  대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떨어지는 빗줄기 사이로 내게 뛰어오는 여인.


어깨 위로 내려앉을 정도의 단발 컷펌을 한, 이제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내 네 번째 처인 윤새롬이었다.
나와는 동갑이라 서로 말을 놓는, 가끔은 투닥 거리는 그런 사이.
그러나 출신이 출신인 만큼 내가 말로 그녈 이긴 적은 거의 없었다.
왜냐고?


"왔어, 윤검사님?"


그래. 그녀는 대한민국의 검사였기에.
어느 남성이 그녀를 말로 이길까.
논리로 똘똘 뭉친 남자라는 생물은 그녀를 말로 이기긴 힘들다.

"어쭈. 오랜만에 보니까 아주... 비 맞은 생쥐라  불쌍하다, 야. 요새 살기 힘드냐?"


그녀는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다, 이내 온 이유를 떠올리곤 말을 아꼈다.
난 그런 그녀를 데려다 창고에 있는 모녀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일단 하나는 처리했고 이제 그 다음.


"새롬아, 그럼 내가 말한 선까진 부탁  하마."


"응? 그럼 넌 뭐하려고?"

"...복수."

그녀가 알만 하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그럼 난 적절한 조치랑 혹시 모를 증거와 연결고리 등만 해두면 되겠네?"


"부탁할게."


그녀가 고갤 끄덕였다.
그리곤 손을 휘휘 젓는다.
알아서 할 테니  이상 방해 말고 꺼지란 뜻이었다.
 은주와 예림이에게 다가가 한 번씩 꼬옥 안아주었다.


"서후씨... 저 두고 가지 말아요."

공포에 몸을 바르르 떨며 은주가 불쌍하게 애원했다.
그 모습을 보니 쉽사리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온기.

그러나 이런 일처리는 신속하게 하는 게 답이다.
그에   더 꼬옥 안아준다.
절대 버리는  아니라고. 놓고 가는 게 아니라고 꽈악 안아준다.
그제야 여인의 떨림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갔다 올게."

"...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는 새롬이 흐응~ 거리며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문란한  생활을 이미 잘 알고 있으므로.
나란 인간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어디까지가 연기고 어디까지가 진심인지를 궁금해 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 궁금증을 풀어줄 이유는 없다.
지금은 여유도 없고.

그렇게 가게에서 빠져나온 난, 내 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며 다시 스마트폰을 매만졌다.
아직 통화를 해야 할 인물이 한 명 더 남았기에.


상대가 그저 평범한 인물이라면 내 선에서 끝내고 말았겠지만, 이번 적은 거물이다.
혼자 움직인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는 미지수.
특히나 접점이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는 게 가장  문제였다.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바로 전화를 건다.
착식음이  차례 가고, 익숙한 목소리가 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링링이다.


"서후, 무슨 일입니까."


"스승님과 통화하고 싶습니다."

"미안하지만 안 됩니다."


여인이 거부했다.
그녀는 스승을 생각하는 마음이 하늘보다 높고 바다 보다 깊은 그런 인간이라 충분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이미 늦은 시간이니까.
그러나 그건  알바 아니었다.

"지금 주인님께선 막 주무시려 누우셨으니 내일 다시..."

"아니, 지금 당장 해야겠습니다."

링링의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이후 작은 대화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링링이 전화를 받았다.

"주인님께서 이리 전하시랍니다. 자고로 무슨 일이든 급히 해서 되는 건 없..."


"도움이 필요하다 전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제야 보통 전화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그녀의 톤이 바뀌었다.
그럴 것이다.
그녀와 안면을  이후로, 지금껏 내가 스승에게 무언가 도움을 요청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조금 있으니 돌아오는 대답.


"그래서 그에 대한 대가는? 이라고 물으십니다."

난 마른침을 삼키며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이 요 모양 요 꼴이라 하늘마저 돌아 버린 것인지... 자욱이  먹구름 사이로 대량의 폭우가 쏟아져 내려와, 내 안면을 사정없이 두들겨 댔다.

'그날도 이리 미친 듯 비가 왔었지.'

결국 피하고 피하다, 도로 그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게 될 줄이야.
하하하...!! 신이시여, 정말로 짓궂으십니다!


고개를 도로 내린다.
잠시, 아주 잠시 망설임이 들었다.
굳이 내가 저  모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아니, 아니야.'


...그래. 그게 아니다.
이건 저  모녀를 위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나를 위한 일이다.


 서후란 인간의 삶엔 오직 정복자의 길 뿐일지니...
뺏기는 건 없다.
오로지 뺏는 것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저  모녀는 내 것이다.
그런 내 것에 손을 댄 자는 그 백배로 갚아야 할 것이다.

'그래. 그 날, 그 자식처럼.'

스마트 폰을 다시 귓가에 가져다 댄다.
그리곤 나직이 말한다.

"예전에 스승님께서 하셨던 제안, 받아들이겠다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얼마 안 있자, 익숙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후한 음성 사이로 그의 기쁨이 느껴진다.

"그래. 그래서 지금 어디라고?"



***



KUC.
가전제품부터 화장품, 바이오, 카페 등등 이곳저곳 문어발식으로 세를 확장중인 대한민국의 대기업 중 하나다.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상위 기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상위권엔 드는 꽤나 이름 있는 그룹이었다.

으레 여느 회사가 그렇듯 원래부터 이리 잘 나간 것은 아니었고, 지금의 회장이 회사를 이끌어 가면서 이리 크게 확장하게 되었다.
그는 겨우 중견기업 끝자락에 해당하는 회사를 그 자신 특유의 리더십으로 거대 그룹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상 이치가 장점이 있으면 분명 단점도 있는 법이다.
차남의 신분으로 순수하게 실력으로 인정받아 회장이 된 그는, 성공이라는 족쇄에 스스로를 걸었다고 불릴 만큼 열정적이면서도 냉혈한인 인물이었다.

회사의 가치에 반한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 경우, 혈족이고 뭐고 가차 없이 쳐내곤 했고.
그런 이유로 그 밑에는 제법 유능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었으나, 하나 같이 살얼음 걷듯 행동 하나하나를 주의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계열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강설아는 언제나 고심이 많았다.
그동안은 조용히 감추어 두었던 터라 괜찮았으나, 슬슬 아들 녀석도 입사시켜 직책도 맡기고 해야 하는데... 수시로 사고를 쳐대는 통에 골머리만 싸게  것이다.

'저번 달에도 신림동 쪽 점포에서 문제가 생겼었지.'

혈기왕성한 나이인 건 이해하나, 어쩌려고 그러는지...
다행이 돈으로 적절히 합의를 보았으나 언제까지 그게 통할 진 알  없었다.
그 와중에 정말 천만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아버지가 재상이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 있었다면, 그 길로 가문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같이 벼락을 맞았을 거야.'

책상 위를 내려다보았다.
오늘 아침 비서가 가져다 놓은 신문들이 놓여 있다.
그 중 시선에 닿는 한 기사.

- KUC 강 회장의 본심은?

기자가 이래저래 장황하게 써 놨으나, 결론은 간단했다.
현 회장이 후임을 정하려 한다는 것.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저번 달,  소식을  먹는  당사자에게 직접 들었으니까.

'아슬아슬해.'


대표는 여럿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회장의 눈에 든 사람은 단 셋.
사실 셋도 많은 것이긴 하지만.
중요한   세 사람 중 그녀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셋 다 현재 수준이 아등바등 하단 것.

중요한 시기야.
그에 섣불리 아들 녀석을 회사 안에  넣고 있었다.
어떤 사고를 어떻게 쳐,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질지 몰라...

'일단은 조금 더 미루고, 성과를 내는데 집중하도록 하자.'

그게 아무래도 나을 것 같다.
일단 아들 녀석도 사고 못 치게 조금  단속하고.


그리 마음 먹었는데...
채 30분도 되지 않아, 여인의 얼굴은 구겨질 때로 크게 구겨지고 말았다.
아니, 울상이 되었단 표현이 어쩌면 옳으리라.


'흑. 왜... 어째서...'

KUC 푸드의 대표 강설아는 태블릿  영상을 보며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안에는 자신의 아들이 한 여인을 무참히 성폭행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어떻게든 저항하는 여인과 그런 그녀를 사정없이 때리며 짐승같이 허릴 흔드는 자신의 아들.

- 네깟 년이 감히 날 거부해?
- 짝.
이대로 안에 쌀 테니까 보지 조여!!
 되긴! 조이라고!!
- 짝. 짝. 짜악!

자신의 아들이라고  수 없었다.
영상 속 남자는 말 그대로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어떻게 저런 상스런 말과 행동을...

그러나 그런 생각은 정말 순식간에 사라지고, 눈앞에 닥친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영상이 드러난다면... 꿀꺽.
당장에 차기 회장 자리는 고사하고, 지금 지위는 물론 호적에서 파일 지도 몰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인물이었기에.


"다 보신 것도 같으니..."

건너편에 앉은 남자가 방긋 미소 지었다.
몸을 뒤로 크게 뉘여 소파에 푹 기대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곤 나직이 말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강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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