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045 인생의 전환점
해당화와 다음화에는 ntr요소가 존재합니다. (#045 인생의 전환점, #046 복수)
본 작품에 딱 한 번 나오는 고구마 구간임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
"하... 생각 할수록 어이가 없네."
한 남자가 짜증이 섞인 어투로 투덜대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검은빛의 의자가 요가를 하듯 뒤로 허리를 뉘이며 아슬아슬 균형을 잡고는 멈춰 선다.
이제 갓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
관리를 꽤나 잘했는지 얼굴엔 귀티가 나고, 입고 있는 옷 또한 꽤나 비싸 보인다.
그런 그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역시 그냥 내 식대로 했어야 했나."
평소와는 다르게 정중히 요청을 하니,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 마냥 거절해 오지 않는가 말이야.
청년은 설마 자신의 제안을 그 여인이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가 누군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카페 체인의 대표 아들 아닌가.
심지어 그의 할아버지는 이 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 중 하나인 KUC 그룹의 회장이었다.
이제껏 살아오며 목표로 한 것을 이루지 못한 게 없었던 만큼, 오늘 있었던 여인의 거절에 그의 자존심에는 스크래치가 난 상태였다.
"그냥 하던 대로 해야겠군."
일단 그 엄마부터 강제로 먹어치우고, 그 딸도 기회를 보자.
청년의 눈이 일순 먹이감을 앞에 둔 육식동물마냥 번뜩였다.
그의 얼굴엔 어느새 짜증 대신 흥분 어린 기색이 대신하고 있었다.
***
"으음..."
뭘까. 무언가 악몽이라도 꾼 듯 기분이 나쁘고 몸이 무겁다.
그에 눈을 뜨자, 내 배 위에 엎어져 있는 여우가 보였다.
무슨 좋은 꿈을 꾸는지는 몰라도, 입가에 침을 칠칠 흘리며 내 가슴에 볼을 비비고 있다.
'악몽을 꿀만 하군.'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억지로 옆으로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현재 시간 6시 15분.
아직은 이른 새벽이다.
음? 은주는 어딨지?
벌써 일어난 건가?
분명 같이 잠들었는데 없는 걸 보면 아마 그러하리라.
'아무래도 출근 준비를 하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나 또한 일어나는 게 좋겠지.
여우 머리맡에 베개 하나를 넣어주고, 그 위로는 이불을 덮어준다.
그리곤 깨지 않게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가자, 코끝을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가 날 맞이했다.
"일어났어요?"
요리를 하고 있던 참인지, 엄마 여우가 부엌에서 내게 인사를 해왔다.
이런... 아침부터 불끈 서게 만드는구만.
알몸 에이프런이라니.
그런 내 표정을 느낀 것인지, 은주가 엉덩이를 뒤로 슥 내밀곤 좌우로 흔들었다.
툭 튀어나온 빵빵한 엉덩이가 흔들거리며 날 유혹한다.
그에 나도 모르게 홀린 듯 걸어가, 그녀를 뒤에서 와락 껴안았다.
말랑말랑한 가슴이 손안 가득 느껴진다.
"아앙~ 아침부터 뭐하는 거예요?"
"해달라고 이리 입고 있었던 거 아냐?"
"그건... 부정할 수 없네요. 호호호."
역시 엄마 여우다.
딸하고는 다르게 남자의 혼을 빼놓을 줄 안다.
그녀의 볼에 볼을 비비며, 쉬지 않고 손을 주물럭댄다.
정말이지 작은 가슴이라도 가슴은 가슴이로군.
잠이 깨면서 의욕이 쭉쭉 생겨나는 걸 보면 말이다.
"피곤하진 않아요?"
"조금. 근데 나보단 은주 니가 더 피곤할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게, 어제 새벽 3시까지 셋이서 열심히 뒹굴었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걸로 봐선 못해도 새벽 5시 반에는 일어난 것 같은데...
내 걱정 어린 시선에 여인이 작게 웃으며 답했다.
"어제 서후씨가 도와줘서 낮까지 잠을 잤잖아요. 그래서 괜찮아요."
그랬었지.
그렇다면 참을 필욘 없겠구만.
뻣뻣이 선 물건을 여인의 다리 사이에 끼운다.
그리곤 그대로 고간에 대고는 슥슥.
"읏. 하, 하려구요?"
"응. 이렇게 예쁘게 입어줬는데, 그냥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정말. 잠시만요. 빨아드릴게요."
그렇게 우린 식사 전 가볍게 아침 운동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럴까.
오늘따라 아침밥이 맛있네.
"이제 출근할 거지?"
"네."
"그럼 데려다 줄게."
여인이 작게 눈을 흘겼다.
기본 좋은 미소가 입가에 진하게 걸린다.
"서후씨 피곤하잖아요."
"괜찮아."
노인네가 늘 외치던 후속조치.
귀찮고 피곤한 건 사실이지만, 이후 돌아올 피드백을 생각하면 그냥 감수하게 된다.
뭐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이젠 습관이 되어버린 탓도 있다.
그에 외투를 걸치고 은주를 따라 문 밖으로 나섰다.
시원한 공기가 피부에 맞닿아, 한 차례 움츠러들게 만든다.
역시 아침은 아침이군.
폐 속까지 시원해지는 감각에 머릿속까지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한 번 물어봐야겠네.'
올해 이 집 여름 계획은 어떤지.
이곳 저곳 물어봐서, 괜찮은 쪽과 여행이나 가볼까 생각 중이었다.
특히나 예림이는 평생 데려갈 집착녀인 만큼, 질문의 우선순위에 넣을 정도의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여름에 따로 계획이 있어?"
"아뇨. 어머... 혹시 지금 이거 데이트 신청인가요?"
은주가 눈웃음을 쳤다.
정말이지 나랑 나이대가 비슷한지 심히 의심이 되는군.
갓 스물 후반 정도나 되어 보이는 얼굴로 저러니, 가슴이 쿵쾅거리지 않을 수 없다.
"응. 어때? 물론, 가게 때문에 바쁜 거라면 어쩔 수..."
"그런 말 말아요. 지금 저깟 가게가 중요한가요? 호호호."
여인의 웃음에 나 또한 함께 웃었다.
왠지 어제보다 한 발 더 내게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어제만 해도 생업과 사랑 사이에 서 있는 느낌이라면, 지금은 내 쪽에 더 기울었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럼 한 번 언제 쉴지 생각해봐."
"알았어요. 기대할게요."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은주네 커피숍.
즐겁게 이야기하며 걷다보니, 15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것이다.
참 어떻게 보면 이런 여자랑 평생 살아야 할 텐데.
이렇게 잘 맞는 여인 찾기도...
'후우.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군.'
애써 빠르게 털어낸다.
어차피 의미 없는 생각이기에.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인가.
내가 걸음을 멈춰 서자, 여인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돌아봤다.
"가려고요?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시지..."
"아아. 처리할 일이 남아서."
그 처리할 일이란 건, 친구네 집에서 나올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나와야 마음에 평안이 찾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오늘 아침에 꾼 악몽은 여우의 몸무게가 아니라, 집착 3인방을 주의하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
그만큼이나 집착녀 3인방만큼은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인물들이었다.
대응 없이 가만있었다간, 언제 어디서 벼락 맞을지 알 수 없다.
"내일쯤 다시 올게."
"내일이요? 알았어요. 잘 다녀오세요, 서방님!"
여인이 내게 다가와 입에 쪽 키스를 하고 물러섰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나 할 법한 스킨십이었으나, 수줍어하는 모습이 꽤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은 여자야.'
은주가 몸을 돌려 가게로 향한다.
여인이 조금씩 내게서 멀어져 간다.
엄마라고는 하나 한없이 작은 뒷모습.
그런 여인의 조그만 뒷모습을 보자, 왠지 모르게 평생 챙겨주고 싶다는 마음이 물씬 들었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군.
고개를 들어 하늘은 바라본다.
하늘 위로 스멀스멀 먹구름이 모이고 있다.
'왠지... 오늘은 비가 올 것 같네.'
분위기를 보아하니, 한바탕 어마어마하게 쏟아 내릴 기세다.
이렇게 봄도 끝이 나는 모양이군.
봄 내내 있었던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정아를 작업 친 것부터 두 아이를 만난 일까지.
그리고 스승을 만난 뒤, 은주를 만나...
그렇게 하나 하나 떠올리며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돌연 싸한 느낌과 함께 불안감이 엄습했다.
"뭐지? 왜..."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히듯 답답하고, 기분이 더러워졌다.
언젠가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언제였더라?
그러나 떠올리는 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
스승과의 만남을 갖게 된 사건.
그리고 우리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전말.
그래. 그 때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그날, 그 때...!
왜 이 더러운 기분이 돌연 지금 떠오르는지는 모르겠으나, 덕분에 내 기분은 시궁창을 뒹굴기라도 한 것 마냥 착 가라앉게 되었다.
'설마...'
재빨리 고갤 돌려 은주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그녀 또한 날 돌아본 터라 우린 서로를 마주보게 되었다.
여우와 똑 닮은 여인이 손을 머리 위로 들곤 흔든다.
그러면서 토끼마냥 제자리에서 폴짝폴작 뛴다.
쿡. 하는 짓이 여우 못지않게 발랄하다니깐.
덕분에 가라앉던 감정이 좀 풀리었다.
'뭐... 기분 탓이겠지.'
난 애써 드는 불안함을 지우곤 똑같이 손을 크게 흔들어준 뒤, 발걸음을 옮기었다.
제발 이 불길한 느낌이 그저 기우로 끝나기를 바라며.
그러나 언제나 현실은 잔혹한 법이다.
안 좋은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는다.
인생이란 그런 것.
내 인생을 한 차례 뒤바꿀 그 사건은, 어둠이 나지막이 내려앉은 늦은 밤 찾아왔다.
추적추적 쏟아져 내려 창가를 두드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잠자기 전 평소처럼 스마트 폰을 열어본다.
난 섹스 도중 방해받는 걸 싫어하는 탓에 상시 무음으로 해놓았고, 이렇듯 일정 시간에 한 번씩 폰을 확인하곤 했다.
딱히 내게 중요한 전화가 올 리가 없었다는 게 주된 이유기도 했다.
어쨌든 늘 하던 대로 자기 전 누구누구에게 문자가 왔나 통화가 왔나 확인하던 그때였다.
- 부재중 통화 : 19통.
'19통?'
그걸 보는 순간,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애써 하루 종일 꾸욱꾸욱 내리 눌러 논 불안감이 빠르게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아침 내부터 저녁까지 내 머리와 마음속을 뒤흔들어 놓더니... 기어이 현실로 드러났구나.'
누군가 하여 본다.
예림이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난 아이에게서 온 문자들을 확인했다.
그 결과,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 아저씨 젭ㅂ라발 도와주세요
"야, 어디가?"
"급한 일. 아주 급한 일!"
심장이 뛴다.
미칠 듯이 쿵쿵 거린다.
머릿속에는 벼리별 상상이 난무하여 정상적인 사고를 불가능하게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평소라면 이성적으로 생각했겠으나, 그 날과 똑같이 느껴지는 불안감은 그런 내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엘리베이터로 헐레벌떡 뛰어가 버튼을 마구 누른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이 누르면 문이 빨리 열리기라도 하는 것 마냥, 쉬지 않고 두들긴다.
그러자 바로 열리는 문.
운이 좋았다.
불과 얼마 전 누군가가 이곳에서 내린 모양이다.
난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층을 누른 뒤, 이번엔 닫기 버튼을 연달아 두들겼다.
열렸던 문이 닫히며 서서히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빨리빨리...!'
초조한 마음과는 다르게 느릿느릿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진다.
왜 이렇게 느린 거지?
엘리베이터란 게 원래 이렇게 느린 거였나?
답답하다.
그러면서도 초조해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난 다시 스마트 폰을 열어 예림이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
- 아저씨
- 연락 좀 바다ㅂㅘ요
- 제발
- 아저씨 젭ㅂ라발 도와주세요
- 엄마가. 엄마가...
1층에 도착했는지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문이 온전히 열릴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난 몸을 비틀어 그 사이로 비집고 빠져나갔다.
그리곤 미친 듯이 내달렸다.
건물 밖으로.
은주네가 있는 쪽으로.
하늘은 커다란 구멍이라도 난듯 매섭게 물줄기를 쏟아내었고, 난 그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미친놈처럼 뛰며 통화를 걸었다.
어서 받아. 어서!
그런 내 바람을 이루듯, 착신음이 채 한 번 지나기도 전에 연결이 되었다.
"어디야?!!"
물음에도 그저 우는 목소리만 들려온다.
그로 인해 혹시나 여우가 장난을 친 건 아닐까 하는 내 일말의 희망은 그대로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젠장. 마음이 더욱 갑갑해져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한예림!!"
그제야 돌아오는 대답.
"가, 가게요. 엉엉."
가게란 말이지?
전속력으로 뜀박질을 가했다.
통화를 끊기 전에 들렸던 아이의 슬픔에 젖은 목소리가 계속해서 떠올라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 근육이 펌핑 돼 비명을 질러온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쉬지 않는다.
온 힘을 다해 뛰어 앞으로 나아간다.
불과 뛰어서 5분이면 갈 거리였는데,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거세게 떨어지는 장대비 속에서 문득 답답함에 하늘을 올려다보자, 온통 시커먼 먹구름이 온 하늘을 가득 메운 채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씨발..."
욕지거리를 한 차례 내뱉고 다시 전진.
그렇게 도착한 가게는 불빛 한 점 없이 어둡고 고요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당연한 거였건만, 마치 이곳에서 일어난 안 좋을 일을 암시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에 내 불안은 더욱 증폭되었다.
철컥.
문이 잠겨있다.
그러나 이내 그 소릴 듣고는 안에서 누군가 달려와 열어주었다.
예림이다.
그런데 얼마나 울었는지, 안 그래도 바보 같은 얼굴이 더욱 멍청해져 있었다.
"아저씨... 엉엉."
내게 울며 안기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며 달랜다.
등을 쓸어주며 아무 말 않고 그저 안아준다.
그리곤 마음먹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이 아이 눈에 눈물 뺀 놈은 가만두지 않으리라고.
"그 외에 다치거나 한 부분은 없는 거지?"
내 질문에 은주가 작게 고갤 끄덕였다.
그러나 그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정돈되지 않아 사방으로 나풀댄 채였고, 옷은 갈가리 찢긴 채 바닥 곳곳에 버려져 있었다.
그 중 제일 심한 곳은 볼.
시뻘겋게 붓고 입가엔 피가 흐르고 있다.
'씨발...'
엄마 여우가 당한 사건은 강간.
그것도 이 체인점 대표의 아들이란 녀석에게 당했다고 한다.
난 여우가 건네는 카메라를 받아 안의 내용을 확인했다.
- 내가 누군 줄 알아? 엉? 이 가게 체인 대표 아들이고, KUC회장이 우리 할아버지야!
- 네깟 년이 감히 날 거부해?
카메라 속 화면엔 한 청년이 여인 위로 올라타 짐승처럼 허릴 흔드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여인은 어떻게든 저항했으나, 남자는 그 때마다 손을 휘둘러 뺨을 갈겨 댔다.
그걸 볼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참지 못할 분노가 솟아 올라왔다.
"아저씨. 지금 바로 경찰서 가요."
예림이를 돌아보았다.
엄마를 꼬옥 안은 채, 독기 어린 얼굴로 놈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눈은 엄마가 청년에게 뺨을 맞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더욱 서늘해져 갔다.
아마 말로 표현 못할 정도의 분노를 느끼고 있을 거다.
제 3자인 내가 분노를 느낄 정도인데, 당사자 가족은 어찌 아니 그러겠는가.
다시 은주를 바라보았다.
너무도 처량한 모습에 난 그녀에게 다가가 꼬옥 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여인의 몸이 잘게 떨었다.
아직도 공포를 떨쳐내지 못한 듯했다.
"아저씨. 지금 바로 가요."
예림이가 다시 재촉했다.
물론, 그게 가장 일반적인 행동이다.
신고하는 것.
물증도 있으니 처벌을 면치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순 없어.
그러기엔 너무 가벼워.
난 카메라를 주머니에 챙겨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
"이 일은 내가 처리하마. 이대로 경찰에 신고해봤자 큰 의미 없을 테니."
"그럼 어떻게 하려고요?! 전 그 자식에게 꼭 복수를 해줘야겠어요! 그러니 카메라 돌려주세요!"
여우를 바라본다.
내 얼굴을 노려보던 여우는 흠칫 떨며 몸을 움츠렸다.
이런... 나도 모르게 내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 버린 걸까.
빠르게 없앤 뒤, 여우 모녀를 다시 꼬옥 안아준다.
"걱정 마라. 아저씨가 아주 100배로 갚아주마."
"흑흑. 정말이죠...? 정말이죠?"
끄덕.
이후 여우는 날 더 이상 보채지 않았다.
아까 마주한 내 눈빛에서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다.
상대방은 대기업 회장의 손주, 한 회사의 대표 사장 아들.
작업치려면 시간과 노력이 꽤 들어가겠으나, 지금 내겐 이게 있다.
바로 녹취 영상.
더구나 공교롭게도, 카메라 설치한 자리가 교묘해 청년의 얼굴이 훤히 그대로 드러난 상태라는 것.
'임재상이라고 했지? 각오해라. 내 여자를 건드린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도록 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