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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화 〉#039 민아의 고민 (40/200)



〈 40화 〉#039 민아의 고민

정사가 끝난 후 창고에서 같이 나왔을 때, 나와 은주는  알바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피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좀 티가 많이 낫지 않은가?
다행이도 소리까진 안 들린 모양인데... 아무튼 스킨십 정도는 하지 않았나 추측 받고 있었다.
아무튼 주인장도 깨웠겠다, 이만 떠날 시간.


"그럼 나중에 봐."


"잘 가요. 쪽."


숨기는 걸 포기했는지 아니면 자기 거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은주가 내게 작별 인사를 하며 가볍게 뽀뽀를 해왔다.
 일로 인해  알바가 꺅꺅 비명을 지르는 건 당연한 현상.


'나중에 여우가 알면 기절초풍하겠군.'

부디 그 아이 귀에 들어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차를 끌고 갈까 하다 그냥 찬찬히 발걸음을 옮겼다.
은주네 커피숍은 흥미롭게도 그녀의 집과 친구 녀석의 집 사이 쯤 있었기에, 걸어서 10-15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였다.

그건 그렇고 민아가 한 소리 할지도 모르겠네.
이제야 전날 밤 일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친구 놈을 떠맡긴 뒤 나 혼자 후다닥 도망쳐 나온 일이.


'맛난 거라도 사가야겠어.'

그런 조금 조금이 모여 서운한 감정이 되고, 이후 여자의 마음을 떠나게 만들곤 한다.
그러니 언제든 관리는 필수다.

무얼 사갈까 하다가, 중간에 한 가게에 들러 마카롱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왠지 이게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렇게 집안으로 들어섰는데...
뭘까. 뭔가 조용하다.

'음. 딱히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80% 확률로 뛰쳐나올 줄 알았는데... 아직 자고 있는 건가?'


의문을 가지고 들어서서 일단 친구 방문을 연다.
없다. 그러고 보니 아까 신발도 안 보였지.
아무래도 밖에 나간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민아의 방문을 연다.
있다. 그런데? 상태가  이상하다.

"아, 아저씨? 왔어요?"


"어... 이거 선물. 받아."

"고마워요. 헷."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내가 주는 마카롱을 꼬옥 안는 아이.
눈에 피곤이 가득하고 머리가  푸석푸석하다.
뭐지. 설마 밤새 시달린 건가?


"어제 아빠가 밤새 괴롭히든?"

"에? 아, 아니에요. 쿡쿡."

음. 그렇다면 하나밖에 없네.
난 볼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 날이구나?"


"넵. 오늘 아침에 터졌어요."

여인들은 피할 수 없는 그것, 생리.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보통 첫날 혹은 둘째 날이 많이 힘들다.
민아의 경우엔 첫날인가?

"약은?"

"다 떨어져서 아직..."

"그래? 잠시만."

난 외투 주머니에서  하나를 꺼냈다.
두통약으로 가끔 눈을 많이 써 피로하거나 수면이 부족해 그것이 두통까지 올라올 때면 먹는 약이었다.
그리고 이 약의 기능엔 생리통 또한 들어있다.

"헷. 고마워요, 아저씨!"

"뭘. 물 가져다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온수와 냉수를 적절히 섞어, 미온수를 만들어 가져다준다.
민아가 방긋 웃으며 그걸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이런. 빈속에 먹음 안 좋은데.

"좀만 기다려. 죽 하나 사올게."


괜찮다는 아이를 놔둔 채 빠르게 마트에 들러 죽 하나를 사온다.
사실 직접 만들거나 가게에서 만든 걸 사다주고 싶었지만, 이미 약을 먹었으니 늦지 않게 뱃속을 채우는 게 중요했다.
시간이 지체되면 속 꽤나 쓰릴 것이기에.

그건 그렇고, 이번 달 민아는 임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군.
지금 나온 피가 생리혈인지 착상혈인지는 알  없다.
다만 민아랑 내가 관계를 가진 게 이제 일주일 정도 되었으니, 가임기 기간은 얼추 피했을 거란 것.

뭐 잘된 거지.
나로선 임신 전의 아가씨가 가지는 쫄깃한 보지 맛을 한 달간 더 즐길  있으니까.


"먹고 더 쉬어. 이따 깨워줄게."

죽을 한 입 입에 쏙 넣고는  흘끗거리는 민아.
뭔지는 몰라도 할 말이 있는 듯 보인다.
그에 어서 말해보라며 방긋 웃어주자, 먹던 걸 내려놓고 조심스레 말한다.

"저어... 아저씨랑 같이 자도 되요?"

"음?  그건 상관없긴 하다만. 아빠도 아직 있잖니?"

그랬다.
야영할 때야 어쩔 수 없다 쳐도, 멀쩡히 각 방과 침대가 따로 있는데 굳이 붙어서 함께 잔다?
아무리 둔감한 친구라도 이상하게 볼  뻔했다.


그러나 우리 민아.
손을 꼼지락대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래두우... 아저씨랑 자면  아픈 것도 잊고 편히 잘  있을 것 같은데..."

날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아이.
동그랗고 귀여운 눈에서 수많은 별빛이 반짝이며 날아와  안면을 강타한다.
윽... 잠깐. 이건 반칙이잖아!
내 이성아 정신을 좀 차렷...!!!

그러나 이미 글렀다.
민아의 필살기를 맞은 내 이성은, 한 여름 뙤약볕 아래 놓인 초콜릿마냥 어느새 흐물흐물 녹아 그 의지조차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그래..."

"얏호!!!"


아이가 신나 덩실덩실 어깨춤을 춘다.
정말 아픈  맞아...?
아니, 어쩌면 고도의 술수에 내가 걸려든 걸지도. 끙.

그렇게 밥을 다 먹고 이까지 닦은 뒤, 어미를 따르는 병아리처럼 쪼르르 따라오는 아이를 보며  한숨과 함께 침대 이불을 들어올렸다.


'그냥 자는 걸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그 사이로 쏙 들어가며 헤헤 웃는 민아를 보자, 왠지 그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어서 그런가, 뭔가 힘이 넘치는  같은데?
조금 불안하지만 나 또한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러고 보니 나도 잠을 자긴 해야 하는군.'

 마리 여우와 신나게 정사를 치르느라 수면이 부족하긴 했다.
이불과 함께 고요히 내려앉은 적막.
꼬무락꼬무락 이불 아래에서 민아가 움직여  품안으로 파고든다.

그리곤 이불 밖으로 고개만 쏙 내민다.
해맑고 귀여운 아이가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를 매단 채.

"아저씨."


"응?"

"아저씨 저 정말 사랑해요?"

당연한 대답을 바라는군.


"그래."

손을 천천히 움직여, 머리를 아주 느리게 그리고 조심스레 쓰다듬어 준다.
그게 기분이 좋은지 아이가 볼을 내 상체에 비비었다.

때로는 키스보단 이렇게 머리를 만져주는  좋다.
여자에게 머리란 심리적으로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바, 막말로 엔간히 마음을 주지 않는  남자가 머리를 마음대로 손대는 걸 허락하지 않을 정도다.


그런 머리를 쓰다듬어 줌으로써 남자는 무한한 신뢰를, 여자는 마음에 평안과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굳이 말로 주절주절 떠들 필요도 없는 이 매우 간단한 행동으로 말이다.
아이가 다시 고갤 든다.
크고 동그란 눈이 밑에서  올려다본다.


"아저씨."

"듣고 있으니 말하렴."


"저 고민이 있어요..."

고민? 나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뭇 진지해지는 민아의 얼굴에 나 또한 표정을 굳히며 조용히 경청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나직이 내뱉는다.
그런데 그 고민이라는 것이...


"저 아저씨랑 결혼하고 싶은데... 왠지 그 사실을 말하면 아빠가 슬퍼할  같아."

쿨럭. 고민이라는 게 그거였어?
뭐 슬슬 나올 수도 있긴 한 주제였지만, 진심 너무 빨랐다.
이제 겨우 일주일 됐는데 벌써...?

보통 여자는 마음이 달아오르는데 한  이상은 걸린다.
짧은 순간에 빠르게 치솟는 남자와는 상당히 다른, 완만한 호감 곡선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언제나 있다.

'그러나 그 예외란 것이 대부분 며칠을  가고 꺼져버린다는 게 문제지.'

말 그대로 짧게 불타고 끝.
민아도 그런 타입인 건가?

아직은 모를 일이다.
조금 더 지켜보면 알 게 되겠지만.
그건 그렇고, 아빠한테 말할까 말까 고민 중이라...
말하기 전 내게 물어본 게 천만 다행이다.
덕분에 막아 세울 수 있게 되었으니.


"물론, 응원도 해 줄 것 같긴 해요."

아니. 전혀 아닌데.
어느 누가 자기 딸이 스무  넘게 차이나는 남자와 결혼하길 바라겠는가.
돌연 친구 놈에게 들은 말이 생각난다.
본인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공감 잘 못한다 했었지.


민아가 굳은 얼굴을 풀고 다시 방긋 웃었다.
해맑은 미소에 무거운 분위기가 빠르게 사그라든다.


“그래서 고민 중이에요!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흠.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그래. 그게 좋겠다.
 생각을 정리한 뒤, 아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엄마가 사라진 뒤로, 아빠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알지?”

“네.”

내 첫사랑을 닮은 아이.
 아이를 보노라면, 친구 녀석과 결혼했던... 이제는 저 멀리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녀석이 떠오른다.
아마 친구 놈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테지.

“그런데 너까지 떠난다면 어떡하겠니.”

곰곰이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다.

“결혼하고 아저씨랑 나랑 아빠랑, 이렇게 다 같이 살면 되지 않아요?”


...진심으로 하는 소린 아니겠지?
그러나 눈빛은 상당히 진지하다.
일단 설명을 구체적으로 좀 해줘야겠군.


"아빠들은... 딸이 결혼하면 뺏긴다 생각한단다."


"에엑?"

민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말도  된다는 듯.
거짓말 하지 말라며.


"끙. 그런  하지 마렴. 사실이니까."

"그렇...구나."


"그러니 벌써부터 결혼한다고 말하면... 꽤나 충격이 클 거다. 지금보다 더  많이 마실 지도 몰라."


"그러면  되는데..."


민아의 얼굴에 고민이 크게 어렸다.
제 아무리 자기 생각만 한다고 해도, 무려 자기 부모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안 남은 유일한 가족이고.
아마 쉽게 버리진 못할 테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걸까.
굳어 있던 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음... 그럼 언제쯤 이야기 하는  나을까요?"

"다른 사람들이랑 비슷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평균 결혼 연령을 한 번 확인해 보렴. 아빠는 엄마가 없어 외로우니까, 그보다 조금 더 늦게 하면  거란다."

민아가 스마트폰을 빠르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크게 실망.


"히잉. 그러기엔 너무 늦어요!!"

"몇이라는데?"

"서른이요. 앞으로 9년은  기다려야 한다니!"

그건 정말 싫다는 듯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그런 아이를 살살 달래며 말한다.


"천천히 하면 되지. 왜? 그 9년 동안 아저씨 사랑하는 마음 변할  같아서 그래?"

그러자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하는 아이.


"전 안 그래요! 대신 아저씨가 걱정 되서 그렇죠!"


뜨끔.
찔리는 게 있는 터라  말이 없네.
민아가 눈으로 날 흘기며 말을 잇는다.

"솔직히 아저씨는 믿긴 하는데, 주변에서 아저씨를 가만  둘 것 같아요. 요새 여시들이 얼마나 많은데!"


여시라니... 쿡쿡.
귀여운 아가씨가 나이든 사람이나 쓸 말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뭐 그래도 이제 해결은 된 듯하다.
입술로 입에 쪽 키스를 해주며  마디 해 주자.
수많은 남자들이 여인들을 속였던 그 대사로!

"그 때까지 장가 안 가고 기다리고 있으마. 아저씨 믿지?"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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