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024 스승의 여자
빵을 살 때도, 군것질 거리를 살 때도.
라면, 음료 등등 마트를 돌아다니며 내 손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아마 제 3자가 보았다면, 내가 민아 애인이라도 되는 줄 알 것이다.
얼마나 주물럭댔는지 민아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 몇 방울.
친구 녀석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음? 우리 딸 더워?"
"아...아하하. 그러게. 왜케 마트 안인데 덥지이~?"
쿡쿡쿡. 재미있어, 정말로.
여자들이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는 게 왜 이리 재미있는지.
정말이지 나도 꽤 사악한 것 같다.
뭐 이 정도면 충분히 즐겼겠다, 더 했다가 민아가 울 것 같아 손을 떼었다.
그리곤 담배나 한 대 태우고 오겠다며 나서는데... 돌연 눈에 들어오는 한 인물로 인해 내 몸은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어...?'
듬성듬성 백발이 섞인 머리칼을 뒤로 넘긴, 세련되면서도 인자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중년 남자.
이목구비가 확실하면서도 웃을 때면 하회탈이 떠오르는 작은 눈을 가진 인물.
설마... 긴가민가해 자세히 보니, 그 남자가 확실했다.
아니 이 사람이 왜 여기에?
내가 그를 발견하듯, 그 또한 날 발견하고는 예의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에 까딱. 고갤 한 차례 숙여 인사를 한 뒤, 난 도망치듯 그대로 걸음을 옮겨 마트 밖으로 나섰다.
'후우... 설마 여기서 스승을 만나게 될 줄이야.'
강태백.
나이는 49. 스승이라고는 하지만, 나와의 나이 차이는 불과 6살밖에 나지 않는 인물.
그래도 그는 스승이라고 불릴 만한 존재였다.
그만큼 이 분야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의 전문가였으니까.
약 25년 전...
그래. 그 쯤 되었을 거다. 그를 처음 만난 게.
또한 공교롭게도 당시 처음 마주친 장소 또한 이곳이었다.
물론, 그 땐 이 마트가 없었지만... 요 읍내를 방황하던 내게 다가와 물었었지.
'얘야, 무슨 일인데 그리 서럽게 울고 있니?'
당시 내가 울고 있던 이유. 그것은...
'젠장. 기분만 배렸군.'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다.
스승과의 만난 자체는 상관없었으나, 쓸데없이 함께 떠오르는 기억이 매번 내 기분을 더럽게 만든다.
그에 애꿎은 담배에게 화풀이를 했다.
바닥에 툭 던지고 발로 지지기.
아무튼 그가 이곳에 있다니...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안 그래도 싱숭생숭한 기분이 더욱 크게 요동쳤다.
딱히 날 따라온 것 같진 않고.
그렇다면 뭔가 일이 있어 온 건가?
'뭐... 내 알바 아니지.'
그가 뭘 하고 다니든 내가 신경 쓸 이유는 없다.
그에 친구 녀석에게 다시 돌아가려는데... 아씨, 깜짝이야. 바로 옆에 한 여인이 서서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진짜 여전 하구만, 이 여자.
"오랜만입니다, 링링."
"예. 간만입니다, 서후."
검은 머리칼을 양갈래로 땋아 내린 아름다운 미녀.
키 170에 잘 빠진, 흔히 말하는 슬렌더라 불리는 몸을 가진 그녀는 스승의 수행원인 링링이다.
내가 알기로 올해 서른둘로 알고 있는데...
허. 정말 대단하군. 이제 갓 스무 살쯤 되어 보인다.
민아랑 같이 세워 놓으면 친구로 보일 정도.
그녀를 보자 새삼 스승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스승을 목숨 걸고 따라다니는 미친년 중의 미친년이 바로 이 여자였으니까.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고향 방문은 기피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전히 변함이 없군.
서늘하기 그지없는 톤도 그렇고 태도도 예전 그대로다.
하긴. 사람 성격이 불과 몇 년 만에 변할 리가 없지.
난 고갤 끄덕이며 대답해주었다.
"알았다면 안 왔을 건데, 친구 녀석에게 속아서 그만."
"그렇군요."
알아들었다며 고갤 한 번 끄덕인다.
그리곤 그걸로 용무가 끝났는지 몸을 돌려 마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진짜 옛날 그대로구만.
딱 용무가 끝나면 가차 없이 돌아서는 것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저 성격만 고치면 꽤나 인기가 있을 터인데...
그래도 다른 사람에 비해, 나에게는 꽤 살갑게 대하는 편이었다.
내가 스승을 싫어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에게도 질투를 느끼는 건 참으로 이해가 가질 않지만, 집착녀를 어찌 머리로 이해할 수 있으리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마트로 들어가려다, 다시 몸을 돌려 차 옆으로 가 대기한다.
그냥 왠지 스승을 마주치기 싫어서.
정확히 표현하면 스승도 그렇지만, 어서 방해 말고 떠나라고 노려볼 링링 때문이다.
스승과의 시간을 방해하면... 농담 아니고 정.말.로. 싫어하기에.
그런 이유로 담배 한 대를 더 피우며 가만 기다리자, 민아와 친구 녀석이 쇼핑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왜 스승하고 같이 나오는 거지?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살짝 귀를 기울여 보니, 날 불안하게 만들 대화 내용이 오간다.
"아 정말요? 그럼 어르신 저희와 같이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오오... 나야 좋네만, 혹여 일행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구먼. 괜히 나이 들어 눈치 없다는 소릴 들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
"괜찮습니다. 제 친구 녀석은 그런 거 전혀 신경 안 쓰거든요."
어이. 신경 많이 쓰거든?
저 새끼가 진짜...
난 어서 안 말리고 뭐하냐는 식으로 민아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민아는 정신없이 바쁘다. 웬 여인으로 인해.
저건 또 뭐야...?
분홍머리로 염색을 한 이십 대 초반의 여인.
풍성한 머리를 웨이브 넣어 늘어뜨린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 머리만큼이나 풍성한 가슴과 엉덩이도.
'민아보다도 큰 것 같은데...'
아무튼. 그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어, 친구의 계략을 막아줄 상황이 못 되었다.
그에 난 마지막으로 링링을 쳐다보았다.
'안 막고 뭐합니까?'
그러자 링링 왈. 물론 무언으로.
- 당신이 좀 어떻게 해 보세요! 쓸모없는 인간.
하... 늘 이런 식이지.
저 여자도 진짜 도움이 안 된다.
그에 사태를 수습해볼까 했더니, 엥? 민아가 저쪽 차를 타버린다?
그리고 반대로 친구 차로 다가오는 노인네.
떨떠름한 내 표정을 보고도 마치 처음 보는 척 인사를 건네 온다.
"반갑네. 자네가 그 멋쟁이 친구로구먼?"
"아, 네. 반갑습니다. 서후입니다."
"나도 반갑네. 태백. 강태백일세."
망할 늙은이.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민아가 저쪽에 타버렸으니 파토내긴 글렀다.
그에 난 친절히 차 문을 열어주며, 애써 웃어보였다.
아, 볼 개 땡기네 진짜...
그걸 즐기듯 허허 웃으며 올라타는 스승.
그 모습에 친구 또한 하하 웃으며 운전석에 올라탄다.
하아. 어쩌다 이리 되어버린 건지.
차에 올라타기 전 문득 링링의 얼굴이 보인다.
날 노려보고 있는데 그 표정이 매우 섬뜩하다. 마치 이리 말하는 듯.
- 쓸모없는 인간. 나가 죽으세요.
...젠장. 나도 불편하다고.
약 10년 만에 만난 스승.
그리고 약 25년 만에 돌아온 고향.
내 인생에 오늘 무슨 날인 걸까.
친구 녀석은 차를 몰아 어느 탁 트인 강가에 멈춰 섰다.
강이라고 하기보단 천에 가까운 곳.
굽이치는 물줄기가 제법 멋스럽게 보이는 곳이다.
이곳... 와본 기억이 있다 싶더라니.
기억난다. 재민이 녀석과 이제는 영원히 사라져버린 또 다른 소꿉친구, 이렇게 셋이서 종종 놀았던 곳.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 친구 녀석이 능숙하게 자리를 잡아 텐트를 친다.
그리고는 약 10미터 옆, 한 곳을 가리키며 말하는 녀석.
"저쪽이 괜찮으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링링이 고갤 끄덕이더니, 날 확 째려보며 따라오라 눈치를 준다.
저 년 진짜. 오랜만에 참교육 시전 해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꾹 참았다.
안 그래도 스승 때문에 많이 힘들 테니까.
그에 대타 없나 찾아보니...
민아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인은 신나게 뛰어 벌써 물가에 가 있고, 스승은 친구 놈과 즐겁게 이야기 중이다.
...별 수 없네.
난 그녈 따라나서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상당히 큰 사이즈.
그러나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지, 링링의 움직임엔 거침이 없다.
'능력이 좋은 여자지.'
성격만 빼면 정말 부족한 게 없는 여인이다.
머리도 좋은데다 스펙도 뛰어나다.
무엇보다 젊고.
홍콩에 그냥 가만있지, 어쩌다 스승에게 한 눈에 반해버려서...
참으로 여러모로 아까운 인물이다.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 꼴리는 몸뚱어리를 볼 때면 한 번씩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텐트를 친다고 움직일 때마다 예의 가슴과 엉덩이가 보기 좋게 흔들거린다.
좀 꼴리는데...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한 마디 툭 던지는 그녀.
"뒈지고 싶으시면 그렇게 계속 쳐다보셔도 됩니다."
"뭐, 보는 건 괜찮지 않습니까?"
"...알아서 하세요."
잘 생각해보니 그 정돈 괜찮다고 여겼는지, 빠르게 수긍한다.
이미 나와 몸도 섞어봤으니 보는 것 정돈 상관없다 생각한 듯했다.
제법 박는 맛이 있는 여자였지.
혐오하는 얼굴로 묵묵히 받아들일 때의 그 표정이란...
당시의 일을 떠올리자, 돌연 아래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그런 내 물건을 보고는 지나가듯 한 마디 하는 링링.
"후회하기 전에 가라앉히는 게 좋을 겁니다."
어후. 눈빛보소. 섬뜩하네.
마치 물건을 잡아 뜯어버리기라도 할 기세다.
그러나 말은 저리 해도 딱히 행동을 취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그녀 자신 또한 잘 알고 있으니.
'그래도 간만에 보니 먹고 싶긴 하군.'
냉기 풀풀 날리는 여인을 사정없이 박아대는 것도 꽤나 별미기에.
더구나 그녀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상류층이 아니던가.
아, 안되겠다. 급 꼴린다.
지인의 여인을 뺏어먹는 맛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던 삶.
그것이 스승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지.
그리 마음먹자, 힘드니까 건들지 말자 했던 아까의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예의 잡아먹을 그녀의 엉덩이만 보였다.
때마침 텐트도 완성되고.
물건을 가지러 차 트렁크로 가는 링링.
계속 기회를 노리던 난 드디어 때가 왔음을 인지했다.
안에 침대도 설치할 수 있을 만큼 상당히 큰 텐트.
그녀가 저항한들 밖에선 딱히 티 나진 않으리라.
물건을 든 링링이 먼저 그 안으로 들어가고, 나 또한 조심스레 따라 들어갔다.
허리를 숙인 채 물건을 정리하는 여인.
예의 툭 튀어나온 빵빵한 엉덩이가 내 시야를 사로잡는다.
마치 어서 따먹어 달라는 듯 흔들거리는 그것.
슬쩍 텐트 밖을 살펴본다.
애들 두 명을 물장구치며 놀고 있고, 두 어른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간이 충분할진 모르겠으나 상황은 충분히 여유롭군.
그렇다면...!
'그럼 간만에 엘리트 맛 좀 봐 볼까?'
난 거침없이 다가가, 내 좆두덩을 그녀의 치골에 가져다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