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007 방해꾼
"그럼 이제부터 뭐 할 거예요?"
저녁 요리 준비까지는 한참 시간이 남은 상황.
쇼핑이 끝난 시점에 이대로 집에 들어가긴 싫단 뜻이리라.
그렇다면 간단히 주변을 걸어볼까.
그에 물어보려는데, 돌연 수신음이 울린다.
"어? 예림이네."
예림? 한예림?
문득 어제 나에게 다가와 자신을 소개한 아이가 떠올랐다.
날 바라보는 끈덕진 눈빛.
왠지 방해를 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만, 하필 이 순간에...
"응. 응응. 아, 정말? 알았어! 오늘 늦지 않게 갈게!"
끙. 오늘 찾으러 간다고 대충 얼버무려 놓은 게 실수였을지도.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다르게 말을 해둘 걸 그랬다.
어찌됐든 이미 엎질러진 물.
통화가 끝났는지 민아가 날 돌아보며 말했다.
"아저씨. 저 친구 집에 갔다 와봐야 할 것 같아요."
"어제 들었다. 산 옷들 다 두고 왔다며?"
"앗!! 네. 다 알고 계셨구나."
어제 쓰러질 정도로 마셨다는 사실이 부끄러운지 볼을 긁적이며 헤헤 웃는다.
거 참.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귀엽네.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 내로 간다고 했으니 지금 가든지 밥 먹고 가든지, 선택지는 둘이다.
지금 가면 이 흐름이 깨질 위험이 있다.
특히 그 년... 어떻게 방해하려할지 종 잡히질 않는다.
그러나 밥 먹고 가도 큰 차이는 없다.
진도를 뺄 수는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침대까지 끌고 가기엔 흐름이 끊긴다.
어찌 해야...
그에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데, 그런 날 바라보던 민아가 말한다.
"먼저 집에 들어가 계세요! 금방 갔다 올게요."
이런 실수를...
아무래도 데려다주기 싫어 고민한 것으로 비춰졌나보다.
표정을 보니 살짝 서운함이 비친다.
'급하게 변명할 경우 오히려 확증만 줄 수 있어.'
이럴 땐, 일부러 느리게 반응하는 거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듯, 침착하고 느리게.
"음? 지금 가겠다고?"
"넵."
표정이... 바뀌었다.
다행이도 처음처럼 해맑은 미소로 변모한다.
일단은 세이프.
그럼 어서 실수한 걸 마무리 지어야지.
쇼핑한 걸 들어 올리며 말한다.
"그럼 이거 집에 놓고 같이 갔다 오자. 내가 데려다 주마."
민아 반색.
"정말이죠?! 아저씨 집에 들어가서 피곤하다 어쩐다 딴 소리 하기 없기에욧!"
"그래그래."
내가 그런 소릴 왜 하니.
니 점수 따기도 바쁜데.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는 아이.
예의 탐스런 가슴도 봄향기를 물씬 풍기며 같이 뛰논다.
'아... 참으로 좋은 계절이야, 봄은.'
어서 저 나비를 맛 봤으면.
물건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예림의 집은, 흥미롭게도 민아의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차를 타고 약 15분 거리.
걸어서라도 언제든 도착할 수 있는 곳.
그러나 그것이 못내 내 신경에 거슬렸다.
'좋지 않은 조건이군.'
내 직감이 말을 하고 있다.
그녀는 이번 사냥에 있어 방해꾼이라고.
타겟을 사냥하는 도중 방해꾼이 난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일을 꽤 오래 해왔기에, 지금껏 수차례 겪어보았다.
다만 신경이 거슬리는 이유는, 그것들이 난입할 때면 언제나 난이도가 배로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제발 내 직감이 틀렸으면 좋겠는데...'
어제 보았던 눈동자가 떠오른다.
탐욕에 번들거리는 눈.
그런 눈을 가진 인간들은 위험하다.
불과 얼마 전 공항에서 급하게 피했던 여인도 딱 그런 눈이었다.
'마주치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만...'
차에서 내리자, 날 향해 손을 흔들며 민아가 외친다.
"어서와요, 아저씨! 늦게 오면 놓고 갑니닷~!"
"그래. 지금 가마!"
아이의 부름에 뛰는 듯 걸어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민아가 옆으로 바짝 붙어 헤헤 웃는다.
'피하기 위해 점수를 깎는 건 바보짓이지.'
특히 사냥감이 이런 최상품이라면 더!
난 한쪽 팔을 들어 민아를 크게 안았다.
옆으로 아이의 말랑한 가슴이 느껴진다.
움찔. 먼저 붙어올 땐 언제고 지금은 살짝 긴장하다니.
쿡. 여자란 이런 생물이지.
본인이 다가서는 건 괜찮으나, 상대방이 다가오면 도리어 불안해하는 것.
그러나 그 불안은 덮어주면 그만이다.
해칠 생각이 없다는 듯, 팔을 천천히 토닥여준다.
괜찮아. 난 널 해칠 생각이 없는, 여전히 니가 알던 그 아저씨야.
그렇게 대여섯 번 해주자, 민아의 긴장이 사르륵 사라졌다.
오히려 내 상체를 팔을 둘러 안는다.
"아저씨."
"응?"
"아저씨, 정말 이상한 거 알아요?"
무슨 의미인지는 알지만, 모른 척 되묻는다.
지금 저 말을 하는 민아 또한 자신의 감정이 무엇 인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
"뭐가?"
"그... 아니에요."
고갤 숙여,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아이.
손을 들어 부드럽게 머릴 쓸어준다.
아무 말 않고.
그래야 혼자 더욱 고뇌를 하고 혼란스러워 할 테니까.
이성이 자리 잡지 못하게.
감성적으로 생각하고, 감성적으로 움직이게.
모든 걸 집어삼키려는 불꽃처럼 앞뒤 재지 않고 내게 달려들도록.
...코끝으로 향긋한 샴푸 냄새가 느껴진다.
'거의 다 왔어.'
예의 말랑한 가슴을 움켜쥐고, 사정없이 박아줄 날이... 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민아는 나보고 기다려 달라 한 뒤 예림이에게 연락했다.
몇 마디 나누더니, 이내 문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린다.
"민! 어서와!"
"응!!"
"혼자 온 거야?"
그리 묻더니 고개를 쏙 내밀곤 좌우로 둘러보는 여인.
그러다 엘리베이터 옆에서 대기 중이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 온다.
"안녕하세요!"
"...그래."
여우로군.
인간의 간을 셀 수도 없이 먹어치운 엉큼한 여우.
민아와 같은 해맑은 미소에, 어제 내가 착각한 걸까 싶었으나, 눈웃음이 풀리는 순간에 비친 끈적함이 내게 확신을 주었다.
이번 사냥에 있어 방해꾼은 이 아이라고.
"자자, 들어와 민아야! 아저씨도 들어오세요! 집에 아무도 없어요!"
노골적이네.
마치 이 시간대엔 혼자만 있으니, 언제든 찾아와도 된다는 듯.
이럴 땐 응당 거절해줘야지.
그게 민아에게 점수를 타는 길이기도 하다.
오해 소지도 없고.
"난 여기서 기다리마. 갔다오렴."
그리 말하곤 민아에게 싱긋 웃어주자, 아이가 네!! 를 외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녀를 싸한 눈으로 쳐다보는 예림.
이런. 실수로군.
이번 방해꾼의 난이도는 상중하 중에서 아무래도 상급인 것 같다.
민아의 동기이자 친구.
일단은 민아와 얼마나 가까운지 부터 확인을 해봐야겠군.
어중간한 관계면 걷어치우면 그만이지만.
몇 없는 베프 중 하나라면... 진심 골치 아파진다.
아무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가만히 벽에 기대어 기다리는데... 의외다.
못해도 20분은 걸릴 줄 알았더니, 금방 나온다.
양손에 두 개씩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민아.
재빨리 다가가 그걸 빼앗듯 가져왔다.
"내가 들어주마. 볼 일은 끝난 거니?"
"앗. 감사합니다! 근데..."
빙긋 웃기를 잠시, 살짝 곤란하단 표정을 짓는다.
지금 이 아이가 이런 표정을 지을 일이 전혀 없는데.
그런 그 때, 불현듯 스쳐지나가는 불안감. 설마...?
"예림이가 오늘 우리 집에서 꼭 놀러 오고 싶다고 해서..."
이런 ㅆ..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꾹 참아 얼굴 가죽위로는 전혀 티내지 않았다.
다만 약간은 섭섭하단 표정을 지어준다.
지금 민아에겐 이런 감정을 드러내줘도 되기에.
"아..."
내 표정을 읽고는 숨겨왔던 감정을 살짝 내비치는 아이.
민아 또한 방해꾼이 들어서는 게 싫단 의미다.
그러나 거절을 못했다는 건...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로군.'
어쩌면 지금껏 해온 사냥들 중, 열 손가락에 들지도 모르겠다. 난이도가.
그렇게 민아와 내가 아쉬움을 갖고 대면하는 사이, 뒤늦게 예림이가 후다닥 튀어 나왔다.
미소가 귀 끝까지 걸려있다.
"미안! 나 늦은 거 아니지?"
"아냐. 별로 안 기다렸어."
완전 신났구만.
이를 어찌한다.
일단 당장 오늘 민아를 침대로 이끌긴 그른 것 같고.
이건 오히려 내가 먹힐 지도 모르겠는데?
날 돌아보며 생긋 웃는 녀석의 능글맞은 웃음을 보니, 사태의 심각성이 꽤나 크게 느껴졌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림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럼 잘 부탁해요, 아저씨!"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아 갔다.
민아를 끌고 뒷자리로 가 앉는가 하면, 수시로 이야기를 주도해 나와 민아 둘 만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공감대를 부숴버린다.
'미치겠군.'
단순히 욕심만 많아 나를 탐내는 거라면, 대응하기가 쉽다.
적당이 내가 줄을 줄였다 놨다 하면 되니까.
그런데 예림... 이 년은 눈치가 보통이 아니다.
'심지어 내가 자기를 밀어낸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런데도 끈질기게 달라붙다니.
안 좋군. 안 좋아.
민아에게 집중해야 하는 이 순간에...
지금 당장만 봐도, 난 민아보단 저 애를 더 신경 쓰고 있다.
이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 신경을 예림이란 아이가 다 가져간다는 게 지금 가장 큰 문제였다.
이대로 가다간, 잘못하면 사냥감을 놓치고 만다.
정신 바짝 차리자.
"자, 들어와!"
민아가 문을 열고는 예림이를 맞았다.
이미 몇 차례 놀러온 적이 있는지, 들어와 소파에 앉는 자세가 아주 자연스럽다.
능숙하게 리모컨을 찾아 티비까지 켜는 방해꾼.
"민아야, 빨리 일로와! 이거 이제 막 시작했어!"
"으, 응."
그러면서 민아와 거리를 벌리더니, 생긋 웃으며 나도 부른다.
"아저씨도 여기로 오세요!"
"앗. 그래요! 이쪽으로 오세요... 아저씨.."
뒤늦게 날 부르며 미안해 하는 민아.
넌 잘못 없다.
저 뱀 같은 년이 문제지.
찬찬히 다가가 예의 내 자리에 착석한다.
후우.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예림이 요 년이 아직은 내가 민아를 어떻게 해보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알았다면 아마 절대로 요 사이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 이런 년들이 눈치는 빠르고 얍삽해도, 다른 여자랑 나눌 만큼의 포용력은 갖추지 못한 게 특징이니까.
오른쪽에서 내게 살짝 붙는 민아.
아무래도 방해꾼 눈치를 보느라 정말 살짝만 붙는다.
그러나 그완 반대로, 왼편에서 내게 바짝 늘러 붙는 여우년.
의도적으로 가슴을 팔에 대고는 비빈다.
그런데 그 감촉에 난 작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여우야. 넌 민아보다 머리는 좋은데, 가슴은 안 되겠구나.'
보아하니 작은 A컵이다.
숨기려고 뽕을 찬 것 같은데, 내 촉은 못 피하지.
아... 빨리 민아랑 하고 싶다.
저 큰 양 젖을 붙잡고, 흔들고 빨고 싶다.
감질맛 나는 감촉이 왼편에서 자꾸만 느껴지니, 더욱이 입맛만 당기는구나.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