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006 손 (7/200)



〈 7화 〉#006 손

***




으음.

여기는 어디지?
어제 동기들 만나서 쇼핑하고.
우연찮게 선배들 만나 술을 마신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손을 꼼지락대며 바닥을 움켜쥐자, 예의 푹신한 침대보의 감촉이 느껴졌다.
몸을 덮고 있는 익숙한 따스함과 언제나 잠잘 때면 끼고 자는 베개까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긴 한 모양이네.

'으응~ 조금만 더 잘까.'

햄버거 안에 든 페티마냥 이불 사이에  따스한 온기를 느끼자, 아직은 그다지 일어나고픈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벌떡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으니...


'아, 오줌 매려.'

이놈의 오줌은 꼭 이럴 때만 마렵지.
정신이 든 순간부터 서서히 옭죄어 오더니, 이내 오줌보가 터질 것 마냥 아래를 자극한다.


더 버티다간 이대로 지릴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뭔가  불편하다.


'아... 어제 나갈 때 입고 있던  그대로네.'

심지어 냄새도 난다.
아무래도 볼 일보고 바로 씻어야겠다.
그에 흐느적거리며 문으로 다가가길 잠시.
어? 일어날  몰랐는데, 침대 옆으로  의자 하나가 놓여있다.

설마 아저씨가 밤새 날 보살펴준 걸까.
가슴 뭉클 묘한 감동이 밀려온다.
가족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것인데...


'하긴. 술 먹고 간호 받는 짓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지.'

아무튼, 어기적 걸어가 살며시 문을 열었다.
혹시나 새벽 시간,  여는 소리에 아저씨가 깰 수도 있을까 하여.
그러나 환한 빛이 눈을 때리는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늦잠을 잤네.

"민아야, 일어났니?"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빠르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코를 자극하는 엄청난 냄새.
단거리 선수마냥 단숨에 튀어나가 식탁 앞에 선다.


"우와아... 이게  뭐에요?"

"뭐긴."


국자를 한 번 떠, 간을 슬쩍 보며 대답해주는 아저씨.
새하얀 와이셔츠와  위에 입은 앞치마.
뽀얀 피부에, 날 향한 눈웃음이 매력적이시다.

"해장하라고 실력  발휘했지. 이거 간 한번만 봐줄래?"


그에 호다닥 뛰어가 살짝 맛을 보니, 우아아!!
요리까지 잘하신다니! 대박!
뛰어난 요리 실력에, 잘생긴 남자가  위해 요리를 해주었다는 사실이 합쳐지자, 늦봄바람을 타듯  마음에 꽃이 피었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그럼  씻고 오렴. 밥 먹자."

"네!!!"





***





"아저씨, 아저씨!"

"응. 말하렴."

왜 저렇게 신이 난 거지?
아무튼 저 웃음을 보니, 어제보다 더욱 호감이 올라간 것을 느낄  있었다.

"아저씨가 저 밤새 보살펴준 거예요?"


역시. 작업 쳐둔 게 효과적으로 나타난 모양이다.
어제 의자를 곁에 둔 것.
그건 바로 저걸 의도해두고 해놓은 장치였다.


천상 민아는 술이 완전 떡이 되었던 상태라, 중간에 일어날 리 없는 상황이었기에.
의자만 가져다 놓고 방으로 돌아와 편히 쉰 것이다.
혹여나 들킬 수도 있지만, 반응을 보니 그런  같진 않다.

"그래. 어제  술 많이 마셨는지, 들고 오는데도 꿈쩍도 안 하길래... 걱정이 돼서 곁에 있었다."

그러자 감동의 찬 눈빛이 내게 날아와 박혔다.
아, 따갑네. 시선이 이리 따가운 건 또 처음이고만.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연락하니까 옆에 친구가 대신 받아서 가르쳐주던 걸?"


"아하."


그랬구나 하며 다시 식사를 하는 아이.
음식이 꽤나  맞는 것 같다.


해장 겸 음식을 준비한 것.
 또한 민아의 호감을 올리기 위한  번째 장치다.
사람은 몸이 힘들  도움을 받으면 크게 감동하는 법.
숙취로 어려울 때 해주는 이런 작은 배려가 의외로 점수를 높게 딴다.

"그런데 아저씨, 오늘따라 뭐랄까... 좀 달라보여요."

"그래?"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
간만에 얼굴에 옅은 화장을 하고 옷은 때깔 나게 입었다.
최대한 티가 안 나게, 그렇지만 나를 돋보일 수 있게.
분명 이리 한다면...

"뭔가...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 모르지만. 멋있어요, 아저씨."


끝. 제대로 들어갔군.
민아가 고개를  숙인 채 음식을 깨작이며 나를 흘끔 흘끔 쳐다본다.
볼이... 꽤 빨갛다.

'쿡. 귀엽네.'


벌써부터 섹스 할 때가 기대되는군.
오늘로써 3일째.
일단 민아의 가슴에 불꽃을 터뜨리긴 했으나, 이걸 침대 위까지 끌고 가려면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오늘  할  있니?"


"아뇨! 완전 프리해요!"

"그럼 아직 머리가 띵할 테니, 한숨 자고 같이 마트나 갈래?"

많고 많은  중, 마트를 고른 이유.
응당 진도를 빼려면 카페든 놀이공원이든 혹은 저 멀리 바다든, 그런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할지 모르나...
그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다.

물론, 여자는 마음에 만족감이 차오르면, 다른 모든 부분이 관대해지고 사랑도 쉽게 베풀곤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민아가 나에 대한 급호감을 이루는 때에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마음을 사로잡는 대자연의 광경, 안 된다.
눈을 현혹하는 놀이공원이나 영화, 이런 것도 안 된다.
시선을 뺏기면 그만큼 효율이 줄어들게 된다.

최대한 그녀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새롭게 나타난 나라는 존재를 부각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평소 걸었던 그곳을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웃으며 나에 대한 감정을 키워 가게 하는 것.
이것이 오늘의 내 목표다.

"잘 먹었습니다!!"

다 먹고 감사 인사를 하는 아이.
그에 빙긋 웃어주며 의례상  번 말해준다.

"그럼 이만 방으로 들어가렴. 내가 치우마."

"아녜요! 저도 같이 치울게요!"


그러곤 같이 그릇을 치운다.
왠지 민아라면 이럴  같았다.




"다 준비됐어?"


"네! 이제 나가요!"


여자란, 한낱 마트에 갈 때에도 같이 동행하는 이가 있다면 꾸미는 생물이다.
그걸 예상하고 일부러 천천히 준비했는데, 무려 30분이나 기다리다니.
나도 아직은 멀었군.


벌컥.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정말 끝난 모양이다.
호다닥 나오다, 소파에 앉은  보고는 사뿐사뿐 걷는 민아.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게, 마음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게 다시금 확인된다.


"그럼 갈까?"


"네!!"


아파트 밖으로 나오자, 따스한 봄날의 햇빛이 우릴 감싸 안았다.
봄도 봄이지만, 오늘 따라 따뜻하다 느끼는 건  옆에 함께 걷고 있는 한 아이 때문이리라.


꽃이 화사하게 수놓아져 있는 노란 원피스.
마치 한 마리의 나비를 연상케 하는 그 색감에, 문득 고향집 담벼락에 피던 노란 개나리가 떠올랐다.

'봄은 봄이구나.'


마음이 감성적으로 변하는 걸 보면 말이다.

"어디로 가실 거예요?"

"너 자주 가는 곳으로 가자구나."

"좋아요!"


민아가 자주 다니는 마트는 아파트에서 멀지 않았다.
걸어서 약 10분 거리.
그녀는 수십 수백  오고갔을 거리를 자연스레 걸으며, 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살짝은 들뜬 듯한 얼굴.
젊음을 나타내듯 방방 뛰는 몸.
확실히 그녀는 어리다.
계절로 치면 지금과 같은 늦은 봄이요, 생물로 치면 막 봉오리를 핀 꽃과 같았다.


"정말이죠? 방금  요리 가르쳐 주신다 했어요! 음.. 그럼 뭘로 배우지. 파스타?"

오늘 아침  요리 실력을 보고는, 갑자기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아이.
그러나 눈빛으로 보건대, 나와 어울리고 싶어 댄 핑계라는 걸 느낄  있었다.
그렇다면 간단하면서도 성공률이 높은 게 좋겠지.


"좋은 생각인데? 처음 시도하는 거니까, 익숙한 면이 낫겠지."

"좋아요! 그럼 오늘 저녁은 파스타에요! 음... 크림으로!"

"그래. 그렇게 하자."


민아가 양손을 움켜쥐고는 가슴 앞으로 당기며 예쓰를 외쳤다.
하핫. 활기차서 참 좋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우린 곧 예의 마트에 도착할  있었다.
조금은 시원하면서 습한 공기를 우릴 맞이한다.

익숙하게 카트를 잡고는 앞장서는 민아.
그녀의 손 위로 내 손을 얹으며 말한다.


"내가 끌게. 넌 앞장서렴."


손바닥 아래로 아기자기한 손이 느껴진다.
처음 만났을 때 시도했더라면 아마 곧장 뺏을 텐데... 지금은 가만히 있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자, 살짝 볼이 빨개져 있을  거부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호감이 엿보이는군.


"앗. 그래도 가르쳐 주시는 분이 고르셔야죠!"

"하핫. 내가 이곳은 처음이라 물건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른단다. 그러니 앞장서렴!"

"음!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좋아요!"

하지만 손은 가만히 둔 채 카트 옆에서 걷는 아이.
아주 살짝, 티 나지 않게 이쪽을 흘끔거린다.
음. 이러면 장난 치고 싶어지는걸.

그에 모르는 척 손을 움직여 손바닥으로 민아의 손등을 비볐다.
움찔. 아주 작게 떤다. 어깨가.


'이거 재미있네.'

그래도 끝까지 앞만 보고 걸어간다.
그에 이번에는 조금 더 과감하게 손을 좀 내려, 손가락 사이를 깍지 끼듯 잡았다.
손가락 사이 자리한 부드러운 속살이 느껴진다.


움찔움찔.
이번 건 좀 강했던 걸까.
체온계마냥 목 아래부터 귀까지 서서히 빨갛게 달아오른다.


'이거 이 이상 하면 위험하겠군.'


민아는 상관이 없으나 괜스레 주위 오해를 살까 하여.
그에 손을 놓자, 아이가 스르륵 팔을 당겨 가슴에 꼬옥 안았다.


'오늘 저녁이 기대되는군.'

잘 하면 맛 볼 수 있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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