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진짜 입학준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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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진짜 입학준비 (3)
불꽃이 반으로 갈라진다.
“…아, 아악!”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 손끝에서 구현된 심연의 벼락은, 그대로 세레니아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쾅!
역사의 기둥 하나가 빗나간 벼락을 맞고 무너져내린다.
“아직 뭘 모르는 모양인데.”
나는 손가락을 꺾어 빠드득 소리를 내곤, 다시 세레니아를 정통으로 겨누었다. 단숨에 격살할 수 있는 위력의 벼락. 새빨간 머리카락의 썅년은 확실히 공포에 압도되어있었다.
정교한 술식? 필요없다.
섬세한 마력 조작? 좆까라 그래.
상대방에게 목숨이 곧 달아날 것만 같은 공포를 심어주기에 가장 좋은 건 역시 위력이다. 어차피 악마는 체내에 마력을 가공해서 쌓아둬야 하는 마법사나 마녀 따위와 다르다.
선언만으로 주변의 마력이 모여들어 마법을 이룬다.
악마는 마법사나 마녀들 따위보다 더 높은 섭리를 깨우친 영혼들이었고, 그들의 육신이 바로 마력에 명령을 내리는 열쇠이므로.
나는 비록 악마는 아니었지만….
이 세계의 마법 원리를 창시한 인물이었다.
“저번에 에스테야에게 꽤나 성대한 입학 준비 기념행사를 열어줬더군.”
“내, 내, 내가…?”
한 발짝 앞으로 걸을 때마다 세레니아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쓸데없이 커다란 가슴팍의 지방덩어리가 거슬리게 출렁였다.
저거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지져버릴까?
“그래. 에스테야 체라서스의 목덜미에 날달걀을 던졌었지. 기억나나?”
세레니아의 고개가 경련하듯 끄덕여졌다.
나는 느릿하게 허공을 손으로 그었다. 내가 그린 일자를 따라 새까만 벼락이 맺히고, 이내 하나의 창이 되었다.
부정형으로 일그러진 채 날카롭게 검은 광택을 내뿜는 벼락의 창.
내가 세세하게 설정해놓은 마법들 중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마법.
악마 군주 니싱겐을 제외하곤 칼리지의 석좌교수들이나 쓸 법한 최고위 주문, 심연의 벼락창이다.
“어, 어떻게, 어떻게….”
“네가 천재라고 믿고 있나본데, 홍염.”
검게 빛나는 벼락의 창을 나는 높게 들었고, 그대로 세레니아의 정수리를 향해 집어던졌다.
“이게 ‘진짜 입학준비’다.”
쾅!!!!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렸다.
물론, 내가 세레니아를 죽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열차의 문 안에서 이쪽을 흘긋거리는 금발의 미청년. 그 망토의 끝자락에 달린 황금까마귀의 휘장을 언듯 보았기 때문이다.
세드릭 기스테르.
라스푸틴 칼리지의 학생회장.
그가 내 마법을 막아냈다.
“…심연의 벼락창은 역시 버겁군.”
그의 망토에는 시커먼 구멍이 나 있었다. 게다가, 목에 걸고 있던 푸른 보석 목걸이는 정확히 두동강으로 나뉘어선 바닥에 떨어졌다.
아마 망토에 걸린 방어 주문과 목걸이에 걸린 방어 주문까지 겹겹이 깨져나간 거겠지.
무엇보다 나는 위력을 어느정도 조절했다. 섬세하게는 못해도, 에스테야가 전력으로 보호 주문을 펼치면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정도 위력을 세드릭이 못 막을 리 없겠지.
“그 정도로 버겁다라.”
세드릭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권속 주제에 너무 건방진 거 아닌가? 네 주인이 칼리지 시계탑에 거꾸로 매달린 채 농락당하는 처벌을 받아도 좋다는 거지?”
나는 코웃음을 쳤다.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이 세계가 이렇게 힘의 시대가 된 데에는 물론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결투 재판 때문이다.
선이 악을 이긴다. 고로, 재판에서 이기는 자는 늘 옳은 자이다. 왜냐햐면 옳은 자가 그른 자를 이기는 것이 섭리이기 때문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순환논법으로 만들어진 법령.
그게 결투 재판이다.
“칼리지 소속원인 주제에 학생회의 처벌을 거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권속?”
나는 다시 오른팔에 새까만 벼락을 둘렀다.
“어.”
“…뭐라고?”
“나는 꼬우면 학장 불러서 결투 재판을 걸 거거든.”
이내, 출력을 한껏 높인 벼락이 주변의 바닥을 세차게 내리치며 튀기 시작했다. 나는 에스테야를 왼팔로 끌어당겨 품에 안곤, 그녀가 선물해 준 야수처럼 샛노란 눈동자로 세드릭을 노려보았다.
“나를 제외한 누구도 에스테야를 건드릴 수는 없다. 죽고 싶지 않으면, 더 이상 벚꽃에게 시비를 털지 마.”
팽팽한 대치상태.
‘빙결’의 기스테르 가문답게, 세드릭의 손에서도 새하얀 한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마 이 자리에서 이길 수 있을지, 그것이 과연 도움이 될지, 그리고 지금 자신이 맡은 바 직무를 무리없이 해내는 것이 더 나은지 치밀하게 저울질하고 있겠지.
놀랍게도, 세드릭이 먼저 손을 거두었다.
“…그거 기대되는군.”
이죽거림이 그 뒤를 따랐지만, 나 또한 벼락을 거두었다. 에스테야는 내 품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덜덜 떨고 있었다. 하기사, 당장 누가 누구 머리에 구멍을 뚫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험악한 분위기였다.
“그보다, 너는 인간이 아니라 마법사인데도 벚꽃의 권속으로 들어간거냐?”
세드릭의 물음.
이건 대답해야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세계의 설정을 꿰고 있는 나에게는 준비된 답변이 있었다.
“나는 망자였고, 에스테야 체라서스가 나를 고유권속으로서 되살렸다. 나는 그녀와의 맹약에 따라 권속으로서 충실할 필요가 있지. 더 할 말 있나?”
“…죽은 마법사였군.”
아마 함부로 나를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오십세가 채 안되는 이 중세의 세상에서도 마녀와 마법사의 수명은 백 년이 넘어간다.
고로, 죽었다 되살아난 마법사의 강력함은 개체별로 다르지만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일 수도 있었다. 막말로 죽기 직전에 무슨 미친 연구를 하다 갔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지금은 살아있지.”
세드릭은 이를 악물고, 세레니아를 부축한 채 열차로 먼저 들어갔다. 고요하던 역사는 다시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고, 에스테야는 나를 이끌고 무너진 기둥 쪽으로 쪼르르 이끌었다.
“…서운. 어쩌려고 그런 거야?”
불공평한 시대.
마법사는 스스로 마력을 모을 수 있지만, 마녀는 그러지 못해 인간 권속을 데리고 다니던가, 마법사를 꼬드겨서 섹스를 해야 하는 세상.
내가 만들었지만 참 좆같다.
처음 만들었을때는 정말 꼴린다고 생각했었고, 중세의 인간사를 고려해 볼 때 교회와 대치되고 악마를 숭배했던 집단으로서 적절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속에 에스테야가 떨어져있다면 다르다.
적절하지 않다.
불쾌하다.
에스테야는 내 거니까.
“왜.”
“그렇게…그렇게 눈길을 끌면, 오히려 네가 더 괴롭힘당해. 다들 봐. 나에게서 너로 눈길이 옮겨갔잖아.”
그녀의 말이 옳았다. 에스테야는…솔직히 말해서, 너무 괴롭히기에 재밌는 아이다. 집단따돌림과 왕따를 당해봐서 알았다. 눈물 찔끔 흘리며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처절하게 괴롭힘당한다.
하지만 누군가 어그로를 끌어준다면 다르다.
누군가 그 왕따를 위해 대신 나서주고, 그들의 저열한 말을 빌리자면 ‘나대’준다면, 순식간에 가해자들의 우두머리와 그 졸개들은 ‘감히 자신에게 나댄’ 녀석을 우선적으로 패려 든다.
자신의 권위를 해쳤으니까.
누구든지 해칠 수 있고, 누구든지 짓밟을 수 있는 자신들의 권리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라고 한 거야.”
나는 에스테야가 그 꼴을 당하는 것은 두고 못 본다.
“…뭐?”
“그러라고 한 거라니까.”
“…그렇게까지 나한테 왜…?”
나는 누가 보든 말든 에스테야를 답삭 안아들곤, 열차 안에 올랐다. 내 눈빛을 받고도 길을 비켜주지 않을 용기 있는 예비대학생은 한 명도 없었고, 나와 에스테야는 그렇게 네 명이 앉을 좌석 하나를 통째로 차지할 수 있었다.
아무도 우리 앞좌석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너는 내 거라고 했잖아.”
옆자리에 앉은 에스테야가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다, 내 손을 슬쩍 잡았다. 그리곤 제 허벅지 위에 올려뒀다.
장갑 덕분에 에스테야가 또다시 달아오를 일은 없었다. 아마 그녀도 그 덕분에 스킨십을 할 수 있는 거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읏. 가, 가만히 좀 있어, 차서운.”
손가락으로, 에스테야의 허벅지를 가볍게 주물렀다. 바짝 몸을 떨던 에스테야가 내 손등을 내리친다.
도리어 좋았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열차의 칸은, 호그와트 급행열차처럼 네 개 좌석식 묶여 부스처럼 문을 닫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잠글 수도 있고, 안에서 커튼을 닫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에스테야의 허벅지를 만지고 있었다.
이건 못참지.
“…아니, 그, 서운…? 다리에서 손부터 좀…아니, 흣, 그러라고 올려준 게 아닌….”
“방음 주문, 쓸 줄 알지?”
에스테야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열차는 출발했고, 마차처럼 덜컹거렸다. 에스테야는 내 손목을 잡은 채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너, 서, 설마.”
나는 장갑에서 손을 뺐다.
“네가 원하게 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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