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비극의 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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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비극의 딸 (1)
“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세레니아 아드로프, ‘홍염의 마녀’. 그 이름은 헛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오른팔에 무시무시할 정도의 마력이 집약되기 시작했다.
마법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확실히 위험할 정도로.
전혀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열량 때문에 고통은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조그마한 미소녀를 방패삼을 수는 없다.
그 때였다.
에스테야가 내 품에서 내 가슴팍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에스테야?”
“지금이라면…안 져.”
그 분홍색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박해 받는 자의 비통함을 난 안다. 군대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는 그리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쓸데없이 원리원칙을 지키다 눈치없다는 소리나 들었고, 개폐급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었다.
그래서 여기서는 모든 규범과 규칙을 생까고 살리라 결심했던 거고.
그녀 또한 이제 그러려는 것이다.
자신의 혈통과 핏줄을 따라 내려오는 핍박을 그만두고, 한 사람의 마녀로 거듭나려한다.
나는 에스테야를 내려주었다.
“지면 밤에 혼난다.”
“…지켜보기나 해, 서운.”
에스테야는 비틀거리면서도 대지 위에 똑바로 섰고, 곧게 뻗은 꽃나무처럼 허리를 세웠다.
“세레니아 아드로프. 너 그거 알아?”
“어디다 대고 말을 낮—!”
치맛자락을 가볍게 잡고, 앞으로 내려찍듯 내딛는 한 번의 발걸음. 그것만으로도 촘촘하게 짜여진 바닥에서 갑자기 없던 물이 분수처럼 뿜어졌다.
세레니아의 발 밑이었다.
“—꺄아아악!!!”
치마가 뒤집어지는 건 예삿일이고, 모아놓은 불길도 케이크에 처박은 성냥불마냥 볼품없이 꺼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나려는 세레니아의 머리 위로, 솟구쳐올랐던 물이 다시 흠뻑 끼얹어졌으니.
이건 망신이었다.
에스테야는 또각거리며 주저앉아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세레니아에게 다가갔다. 세레니아는 확실히 겁먹고 있었다. 아마 자기가 알던 이전의 에스테야 체라서스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이, 이, 너, 이, 이건, 아드로프 일가에 대한…!”
“말 해. 나도 정식으로 발푸르기스 의회에 문제를 제기할테니까.”
“네, 네까짓 게!”
“서운은 내가 각인을 베푼 나의 고유권속이야. 마녀에게 고유권속을 건드린다는 의미가 뭔지는…나보다 네가 더 잘 알겠지? 너는 나에게 방금 법리적으로 명료한 결투신청을 한 거야, 세레니아.”
작고 가냘픈 에스테야가 크고 늘씬한 세레니아를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모양새는…제법 보기에 뿌듯했다.
아, 하룻밤 예뻐해줬다고 저만큼이나 강해지는구나.
좀 더 자주 예뻐해줘야겠다.
“큿….”
“너도 칼리지에 입학하는 걸로 아는데. 억울하면 거기서 증명해보던가.”
에스테야는 부들부들 떠는 세레니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가…나보다 우수하다는 걸.”
그리곤, 마치 나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조막만한 몸을 홱 돌렸다. 찬란하게 흩어지는 머리칼…뒤돌 때 예쁘다는 말은 헛말 이 아니다.
“서운.”
에스테야가 나를 부른다. 나를 고유권속이라고 불렀던 거 같은데, 사실 반대다. 각인이란 소유물의 증표라서, 이미 우주는 그녀가 나의 권속인 것으로 인지하고 있을 터다.
하지만 어울려주는게 싫지 않았다.
“잘 끝냈나보네, 에스테야.”
“덕분에.”
에스테야는 가냘픈 두 팔을 쭉 뻗었다. 안아달라는 소리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기꺼이 안아들었고, 그런 우리를 보며 세레니아가 악을 썼다.
“…증명해!”
뭘 증명해, 씨발년아. 슬슬 화가 나려고 하네.
“걔가 네 고유권속인 걸 증명하라고!”
그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대한 에스테야의 반응은 하나였다. 세레니아에게 자신의 꽃을 한 송이 따다 던져주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 멱살을 잡고 나와 입을 맞추는 것.
놀랍게도 에스테야의 벚꽃은 그것만으로도 빠르게 생장했다. 미약한 스킨십이지만, 나와의 체액 교환으로 얻는 마력을 저 조그마한 벚꽃에 죄다 밀어넣었다는 뜻이겠지.
“…흐으.”
입술을 뗀 에스테야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세레니아는 입을 다물었고, 나는 에스테야를 끌어안고 조용히 어두운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인적이 한산한 곳으로.
*
“그래서, 고유권속이라는 게 뭔데?”
일단 그게 구라인지 아닌지부터 알아야 했다. 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지식이 너무 많다. 책 한 권을 통독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닐 정도로.
“그러니까…그 마녀에게만 봉사하기로 맹세한 권속을 말하는거야. 맹세긴 한데, 기본적으로 마녀가 덮어씌우는거라….”
자발적으로 된 게 아닐수도 있다는 거군.
“대신 마녀는 좀 더 많은 힘을 얻고?”
“응. 정기에서 마력으로의 변환 효율이 늘어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는 여자 여럿을 안고 싶어하는 타입의 취향은 아니다. 완벽한 이상형 단 한 명. 그 단 한 명을 영원히 도망치지 못하게 내 품에 묶어두는 것으로 족하다.
도망치고 싶어도 발목이 묶여있고, 싫다고 말해도 나를 거부할 수 없는 강제력.
내가 원하는 건 그거다.
뷔페 따위는 좋아하지 않는다. 나만을 위해 차려진 시그니처 메뉴. 그게 바로 내 이상향이다.
고로, 내가 에스테야만 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생길 뿐이었다.
“저번에는 악마의 육신에 마법을 걸 수 없다면서?”
“바보야. 네 육신에 건 게 아니야.”
에스테야의 조그마한 손가락이 내 이마를 꾹 눌렀다.
“네 영혼에 건 거잖아. 물론, 사람이 입은 옷에 따라 변한다고 너도…네 육신에 따라 점점 영혼도 악마와 같이 변질되겠지만.”
“그럼 언젠가는 풀린다는 소리야?”
내 질문에 그녀의 눈이 가느다랗게 변한다.
“왜? 너도 방금 세레니아한테 꼴렸어? 벌써 나한테 질린 거야? 다른 마녀를 안기라도 하려고?”
이 여자애…버려지는 거에 트라우마가 있구나. 고작 그 정도 질문으로 눈물이 맺힐 정도는 아닐텐데. 아픈 과거가 있는게 분명하다.
약점이다.
약점을 잡는 것이 바로 사람을 휘어잡는 방법이다.
“왜. 그러면 안 돼?”
에스테야의 말문이 턱 막혔다. 새하얀 뺨을 타고 눈물이 투둑 흘러내린다. 말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다, 내 가슴팍에 고개를 힘없이 떨구며 기댔다.
“…아니야. 해도 돼.”
정말 된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내가 다른 마녀를 잡아 그녀의 품을 떠난다면, 에스테야는 영원한 마력고갈로 마녀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
“무섭냐?”
대답 대신, 에스테야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내 셔츠 앞섶을 잡곤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있다. 품에 안긴 자그맣고 가냘픈 몸이, 멋대로 들썩였다.
“그, 거…알아? 흑, 나, 나는…아무도 없어. 아무도….”
“너만 아무도 없는 거 아니다.”
나도 아무도 없어. 느닷없이 뒤지고, 느닷없이 여기로 끌려오는 바람에.
“내가 떠나는 게 무서우면.”
말을 늘인 탓에 에스테야의 눈물 가득 고인 눈동자가 나를 다시 올려다본다. 그 모습은 마치 버리지 말라고 애원하는 작은 새 같아서, 기어코 길들여 내 곁에 묶어두고 싶었다.
“네가 잘 해.”
에스테야를 내려놓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30센티는 더 큰 내가 품에 그녀를 가둔 채 내려다보자, 에스테야의 어깨가 한껏 오므라들었다.
“내가…뭘, 뭘 잘 하면 되는데…?”
손을 뻗어 에스테야의 아랫배를 꾹 누른다. 옷 위라 아무 감흥은 없겠지만, 그 의미는 명료하게 전달될 것이다. 바르르 떠는 에스테야의 몸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 또한 알아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배우지 못했나봐, 에스테야.”
“그, 그, 서, 서운…여긴 밖이야….”
나는 개의치 않고 에스테야의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그녀의 조그마한 몸을 지배했는지, 에스테야는 꼼짝도 못한 채 그저 내 손에 단추를 모두 내주었다.
분홍색의 브래지어 안쪽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기의 가슴이 균형미 있게 드러난다.
아. 선언컨대, 아름다움은 균형에 있다.
“밖이고 안이고가 뭐가 중요하지?”
에스테야의 가슴을 꽤 거칠게 움켜잡았다. 아팠는지, 그녀의 어깨가 바짝 떨기 시작한다. 하지만 고통 사이로 배어든 쾌락이 에스테야를 가만두지 않았다.
“…흐으, 하, 서, 서운….”
“너는 ‘내 마녀’라니까, 에스테야?”
악마처럼 웃으며 에스테야의 브래지어를 끌어올린다. 바들바들 떨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내 멋대로 할 수 있다.
“아, 알아, 알고 있…흐아, 응, 는데….”
“그럼 나에게 고마워해야지.”
다른 손으로 에스테야의 블라우스를 어깨 너머로 끌어내리자, 밤새 내가 남겨놓았던 키스마크로 얼룩진 하얀 어깨가 드러났다.
이게 진짜지.
내 것이라는 표식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매일 밤 갱신시켜주는 것.
“네가 어설프게 굴어도, 내가 알아서 네 뱃속에 마력을 채워주잖아. 안 그래, 에스테야?”
무릎으로, 에스테야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치맛자락 안쪽으로 내 무릎뼈가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꾹꾹 누른다.
“흑, 앙, 하윽…으, 응, 아, 아니, 흐으…!”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밑가슴 바로 아래까지 끌어올린 하이웨스트 스커트에 숨겨진 각인을 꾹 눌렀다.
에스테야는 조그마한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파르르 떤다.
다시, 포식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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