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의 마녀, 에스테야-7화 (7/42)

〈 7화 〉 입학준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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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입학준비 (3)

“…스운? 서은?”

“서­운. 아니, 어떻게 발음 하나를 똑바로 못 하냐?”

내 타박에, 에스테야가 자그맣게 울상을 짓는다. 또 넘어질 까봐 품에 안은 그녀의 몸무게는 깃털처럼 가볍다.

“…시끄러워. 발음이…이상하단 말이야.”

그야 내 이름은 한국어고. 여기는 한국어가 공용어가 아니니까. 나는 어설프게 내 이름을 따라 부르려는 에스테야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여기서…왼쪽? 오른쪽?”

에스독 앨리는 지독하게도 복잡했다. 특히 큰길가인 메인 스트리트로 가는데 어지간한 미로 뺨치는 무시무시한 난이도를 자랑했다.

“바보야. 왼쪽이라고.”

에스테야는 용케 그걸 다 외우고 있었다.

“아니…몇 번 안 가본 거 맞아?”

“나는 한 번 본건 안 잊어.”

삐죽 내민 조그마한 입술 끝에 자부심이 보였다. 그 정도 천재니 일족 중에 처음으로 태어난 마녀임에도 홀로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몰랐다.

최악의 경우에는 일족의 절멸.

지금 리스크를 짊어지고 묻기에는 조금 그렇다. 좀 더 에스테야를 길들여야했다. 물론 그녀의 목줄은 내가 잡고 있었지만…마력이 필요없어도 내 품에 안기고 싶게끔 손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한 번 겪은 건?”

하지만 내 입에서는 벌써 에스테야를 놀리기 위한 음담패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야. 너 진짜.”

에스테야가 그래봤자 이미 내 손에 목줄을 잡힌 마녀에 불과하다. 힘으로도, 체격으로도, 그리고 밤일으로도 날 이길 수 없다.

“뭐.”

퉁명스러운 내 대답에 에스테야가 입술을 다시 삐죽인다. 탐스러웠다. 가볍게, 에스테야의 입술을 훔쳤다.

“…읏. 이, 이러라는 게 아니야, 바보야.”

입술을 슥슥 닦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아, 야외플 하고 싶다.

“불러낸 권속 이름 하나도 제대로 못 부르면서 누가 누구더러 바보라냐? 다시 발음해 봐. 서—운.”

에스테야는 내 입술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번에야말로 정확하게 내 이름을 발음해줬다.

“서—운.”

“좋아.”

문제는, 우리가 도달한 길이 막다른 골목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씨발.

안 까먹는다며?

“…에스테야.”

“어?”

“지금 당장 저 벽에 등 붙이고 박히고 싶지 않으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라.”

자그마치 이십 분 동안 에스테야를 품에 안고 좁디 좁은 골목을 돌아다녔다. 물론 힘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가 안 나는 건 아니다.

“…이상한 소리 말고 내려주기나 해, 서운. 여기서부터는 비밀과 주문의 공간이니까.”

몇 걸음 못 가서 주저앉는 주제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곤, 에스테야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그녀는 제 조그마한 손가락 끝을 가볍게 깨물어 피를 냈고, 그걸로 눈앞의 벽에 역십자가를 그렸다.

“의회의 장부에 이름을 올린 마녀, 벚꽃의 이름으로 신비스러운 전통의 거리에 발 들일 것을 선언한다. 하나의 권속이 나와 함께 할 것이며, 유서깊은 비밀은 지켜질 것이다.”

주문이라기보단 그녀의 말마따나 선언이었다. 벽은, 마치 유체처럼 출렁였다. 그리곤 거대한 얼굴의 모습을 띄웠다.

그 입이 움직이며 낮은 파동의 목소리를 울린다.

그리곤, 그대로 녹아내려 바닥에 스며든다. 제법 신기한 방식이다. 물론, 우산으로 벽면의 벽돌들을 순서대로 두드리는 게 조금 더 고전적인 방식이긴 했지만….

본래 주문은 말의 예술이라고 하니까.

“따라와, 서운.”

에스테야는 종종거리며 눈앞의 계단을 먼저 내려갔고, 나는 기겁하며 에스테야의 허리를 잡아 끌어안았다.

“아…?”

“조심해야지, 에스테야. 너 다리 풀렸잖냐.”

“…맞다.”

잠시 놀라 바둥거리다 다시 온순해지는 가냘픈 몸뚱이. 나는 다시 그녀를 챙겨선 안아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리를 가득 메운 마녀와 마법사들. 영화 ‘해리 포터’에 나오는 다이애건 앨리의 확장판마냥 보이는 거리. 커다란 큰길 한가운데로는 말과 마차가 지나다니고, 하늘에는 열쇠와 까마귀가 날아다닌다.

놀랍다.

이런 세상이 있을 줄이야.

“서운. 정신차려.”

에스테야가 내 머리칼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아, 어. 그래.”

“일단 옷부터 사러 갈 거야. 망토를 새로 맞춰야겠어.”

망토를?

그게 그렇게 자주 새로 맞출만한 옷인가?

갸웃거리는 내 얼굴을 보며, 에스테야가 한심하다는 듯 쏘아붙였다.

“망토 없으면 나 죽어. 대부분의 인간들은 마녀를 경외하지만, 동시에 증오한다고. 나처럼 나약한…마녀는 흘러나오는 신비를 차단하는 망토가 필요해. 안 그러면….”

본능적으로 안다는 거겠지.

눈앞의 소녀가 인간이 아니라, 마녀라는 사실을.

“너에게 손대면 다른 마녀나 마법사들이 들고일어나진 않고?”

그 때였다.

날달걀 하나가 날아와 에스테야의 목덜미에 적중했다.

“…악!”

이어지는 고성.

“학살의 마녀가 발 붙일 곳은 없다!”

매대 위에 올라선 한 여자의 외침이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거리의 모든 눈동자가 우리 쪽으로 쏠렸다. 에스테야는 묵묵히 새하얀 목덜미를 더럽힌 달걀을 닦아냈고, 눈물을 감추려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거기 너.”

그 여자가 나를 부른다. 큰 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흔들리는 가슴. 냅다 날달걀부터 집어던지는 야만스러운 대화법.

아, 내 취향 아니다. 얼른 꺼져줬으면.

“뭐, 씨발.”

욕지거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야만스러운 대화법에는 그에 걸맞는 야만스러운 단어가 선택되기 마련이다.

“씨발?”

매대에서 뛰어내린 새빨간 머리칼의 마녀가 눈을 확 찢었다. 아무리 봐도 허리 건강에 좋지 못할 만한 부피와 무게의 가슴이 흔들거리고, 주변 사내들의 눈길이 쏠린다.

저게 좋은가? 난 모르겠다.

“좋은 말로 할 때 품에 챙겨놓은 그 가증스러운 년을 내려놓는게 좋을거야. 걔가 뭔 짓을 한 지 알아?”

씨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점점 화가 올라온다.

“뭔 짓을 했는데?”

붉은 머리칼의 마녀는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 이를 부득부득 갈며 성토했다.

“네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그 여자가 기어코 내 멱살을 잡았다.

하. 품에 안고 있던 에스테야만 아니었더라면 이미 남녀평등권(男????)을 그 얼굴에 먹여줬을텐데.

“마녀 아닌 것이 마녀가 되려면, 마녀의 심장을 666개나 먹어야 해. 알아? 네가 소중한 장난감처럼 끌어안고 있는 그 조그마한 여자애가, 마녀의 심장을 666개나 파먹은 괴물년인거?”

“…뭐?”

나는 가만히 에스테야를 내려다보았다. 이 조그맣고 가냘픈 여자애가, 같은 마녀의 심장을 666개나 먹어치웠다고? 아니 잠깐. 이거 어디선가 분명히 본 듯한 설정인데.

그럴 리가 없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에스테야가 얼마나—.”

“권속. 나, 세레니아 아드로프가 ‘홍염’의 이름을 걸고 권고하겠는데….”

그녀는 내 멱살을 놓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 손끝에 휘몰아치는 화염은 분명, 분명 위험하다. 그 열량은 치사의 범위를 한참 넘고 있었다.

“그 마녀사냥꾼의 딸을 당장 자리에 내려놔. 나도 그 썅년의 아비가 했던 것처럼, 저 년의 심장을 파내고 나체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불태워야 성질이 풀리겠으니까.”

그녀의 오두막에서 나오기 전에, 잠시 이곳의 역사서를 에스테야로부터 빌려 읽은 적이 있었다. 기초적인 상식을 습득하기 위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악마의 살점으로 빚었다는 이 육신에는 기본적인 언어와 문자에 대한 지식은 있었다.

“…에스테야의 아버지가 누군데?”

빠드득. 저 여자의 이빨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누구냐고? ‘가시검’ 칼릭스다.”

인간의 시대를 지나 악마의 시대.

악마의 시대를 지나 마녀의 시대.

최초의 시대격변은 한 인간 마법사가 악마를 불러내는 것으로 도래했고, 그것은 하나의 종말에 가까웠다. 악마들은 인간들 중 그 몸에 신비를 품기에 적합한 영혼이 깃들어진 소녀를 골라 범하고, 길들이고, 그 영혼과 신체를 개조해 마녀로 만들었다.

마녀들의 어머니이자 마법사들의 구원자라 불리우는 ‘대마녀’. 가장 강력한 마녀 개체였던 그녀의 희생과 봉기로 마녀들은 악마를 차원문 너머로 내쫓고, 대륙의 지배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마녀가 악마에게 그러했듯, 인간 또한 마녀에게 그러하고 있었다. 에스테야의 아버지는 마녀사냥꾼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고 집요했던 사내, ‘가시검’ 칼릭스 공이었다.

“다시 경고하겠어, 권속.”

새빨간 불꽃은 마치 뱀의 혀처럼 저 여자의 팔을 감고 있었다. 악마의 몸을 빌려 입은 나에게는, 강맹하게 휘몰아치는 마력의 폭풍마저도 느껴졌다.

“그 가증스러운 마녀사냥꾼의 딸을 내려놔. 뭐? 라스푸틴 칼리지? 꼴에 마녀라고 제대로 된 교육은 받고 싶었나본데, 잿더미로 만들어주겠어!”

권속, 권속 거리지만…내가 입은 몸은 악마의 것. 한때는 그녀들의 상위종이었던 악마의 육신이다.

대마녀는 칼과 창을 들고 악마에게 맞섰다. 그녀를 따르던 다른 마녀와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악마를 공략하는 유일한 방법은, 마법이 아닌 칼과 창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마녀와 마법사들은 더 이상 칼과 창을 배우지 않는다.

“해 봐.”

나는 에스테야를 품에 더 깊이 끌어안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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