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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마녀, 에스테야-6화 (6/42)

〈 6화 〉 입학준비 (2)

* * *

005. 입학준비 (2)

에스테야는 잠에서 깨어난 후에야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달았다. 악마의 살점을 사서 제단에 주문을 건 다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빚었다. 그리곤 아스트랄계를 떠다니는 영혼 하나를 건져 불어넣었고….

그 다음은.

“…미쳤어.”

그 사내가 제 곁에서 잠들어있었다. 그것도, 제 배 위에 손을 올려둔 채로. 어째 밤새 그에게 박히고 또 박히는 꿈을 꿨었다. 다 그가 자기 아랫배에 새겨진 각인을 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

그 탓인지, 이불을 걷자 제 다리 사이에서 투명한 단물이 흘러나와선 침대보를 둥글게 적신 채였다. 어젯밤에 얼마나 박히고 얼마나 가버렸는지, 침대 밖으로 다리를 빼내는 것도 힘들었다. 허리가 삐걱

거리고, 골반이 아득하게 아팠다.

“각인…되어버렸어.”

침대 근처의 전신거울이 제 몸을 비추자, 그제서야 실감되었다. 좋으나 싫으나 이제 저 사내에게밖에 마력을 얻을 수 없다. 결국 저 사람의 품에 안겨선 다리를 벌려야 하는 거다.

“하…. 맞다, 편지. 편지 확인 안 했는데.”

안타깝게도 편지는 이미 열려있었다. 범인이 누군지는 명백했다. 에스테야는 한숨을 쉬며 이미 읽은 흔적이 역력한 편지를 다시금 읽어내렸다.

그리곤, 눈물을 참지 못했다.

“…흑.”

기스테르 가문의 말이 맞았다. 에스테야는 마녀지만, 스스로가 마녀라는 사실을 깨달은지 오 년도 안 된, 젊다못해 새파랗게 어린 마녀였다.

심지어 자신의 핏줄 중에는 첫 번째 마녀라서, 아무것도 배운 적도 없었다. 발푸르기스 의회나 라스푸틴 칼리지의 존재 자체도 까마귀 서신을 통해서 겨우 알게 된 것이다.

아직도 자신에게 ‘기본적인 지식’을 알려주기 위해 오두막을 들렀던 의회의 하인이라던 작자의 무례함이 뼛속깊이 새겨져있었다.

“…어떻게 기회를 잡았는데.”

라스푸틴 칼리지는 최고의 인재만을 뽑는다. 다행스럽게도 에스테야 체라서스는 비록 보유하고 있는 마력의 양이나 노련함은 덜했지만, 마력을 교묘하고 정교하게 엮어 복잡하고 다채로운 고수준의 마법을 사용하는 재능만큼은 빼어나게 특출났다. 그건 타고난 거였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 최고의 마법 대학이라는 라스푸틴 칼리지의 주문학과에 초청받았다.

그걸 포기하라고?

심지어 편지 말미에는 기스테르 가문의 대외적 사업이었던 황금까마귀 출판사와의 거래 정지 통보까지 있었다.

에스테야는 편지 뒷면의 주문을 불러, 갈라진 허공에서 금화 주머니를 꺼냈다.

다네인 금화 120닢. 큰돈이었다. 기억하기로, 인간 서민들은 한 가족이 한 달에 두네디컷 은화 열다섯 닢 정도를 소비한다. 그리고 은화 백 닢이 금화 한 닢이다.

가만히 아직 잠들어있는 저 사내를 바라보았다.

악마.

들어있는 영혼은 인간의 것이지만, 그 몸은 분명 악마다. 그렇다면 저 자의 정기도…분명 악마의 것이겠지. 제 아랫배에 새겨진 각인이 그걸 증명했다.

바닥에 듬성듬성 떨어진 제 벚꽃과…거울 너머로 보이는, 한껏 만발하다 못해 흐드러질 것 같은 제 머리 근처의 꽃들도.

“…그래.”

에스테야는 침을 꿀꺽 삼키곤, 아직 잠들어있는 저 사내의 허리 위로 올라갔다. 그리곤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거…지고의 마녀가 되어주겠어.”

*

사실 나는 먼저 깨어 있었다. 그냥 에스테야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지. 내가 잠든 척 하면 그녀가 어떻게 구나를 확인하고 싶었다.

놀랍게도, 에스테야는 편지를 보고 눈물을 두어 방울 떨구더니…내 몸 위로 올라갔다.

아직 허리가 다 안 나았을텐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고의 마녀가 되어주겠어.”

다행스럽게도 나를 불러낸 이 열아홉 살 하고도 이틀이 지난 미소녀는 제법 의지가 강한 모양이었다. 쉽게 꺾이는 건 질색이니까. 그 몸은 손쉽게 떨고 꺾여도, 그 영혼만큼은 꼿꼿하고 파릇파릇한 게 좋다.

“결심했나?”

나는 느릿하게 눈을 뜨며 에스테야를 올려다봤다. 허리를 콱 움켜잡는 내 손아귀에 놀라 파르르 떠는 모습이 보였지만, 에스테야는 용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어. 억울해. 증명하고 싶어. 내가 재능 있는 마녀라는 걸. 그러니까…도와줘.”

에스테야는 어설프게 허리를 움직이며, 내 물건을 찾아 되려 제 아래에 박아넣으려 했다. 나는 그런 에스테야를 끌어안곤 되려 침대에 앉혀놨다.

“그러려면 일단 몸 관리부터 해라. 어제 그렇게 당해놓고 오늘 또 하면, 허리 삐끗하기 딱 좋다고.”

분홍색의 눈동자.

눈물 가득 고인 그 눈이 나를 똑바로 올려다본다.

“…지금, 내 걱정 해 준 거야?”

조금 멋쩍어졌다.

“시끄러워. 오래 두고 따먹으려고 관리해주는거야.”

원래는 조금 더 상냥하게 굴어주려고 했는데, 마음과 달리 말이 거칠게 나왔다. 하지만 에스테야는 피식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왠지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워서, 나는 멍하니 에스테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봐. 왜, 또 따먹고 싶다는 뜻이야?”

에스테야는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선, 허리를 곧게 폈다. 분명 머리는 헝클어져있고, 온 상체에는 키스마크가, 다리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왜 그 모습이 그렇게 고결하게 보였을까.

“…밥이나 먹어라.”

그녀는 대답 대신 비틀거리며 옷장으로 다가갔다.

“나가서 먹자. 네 옷은 여기에 내 옷이랑 같이 뒀는데, 아!”

에스테야의 조그마한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울어졌다. 그러게, 풀린 다리로 걸으려 연신 애쓰니 그렇지.

나는 잽싸게 에스테야를 끌어안아들곤, 옷장 앞까지 걸어갔다. 옷장 문을 열자 몸을 꽁꽁 싸매는 온갖 옷들이 보였다.

“안 다쳤냐.”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고관절은 빠질 거 같아.”

“그걸…물어본 게 아니잖아.”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단정한 옷을 속옷과 함께 꺼내선, 에스테야를 옷장 옆 화장대의 의자에 앉혀놓곤 입히기 시작했다. 끌어안고 여기까지 와서인지, 에스테야의 목덜미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래. 나랑 살갗만 닿아도 몸이 발정난다고 했지, 아마.

뽀드득.

내가 벗겼던 것과 같은 색의 새하얀 속옷이 에스테야의 다리를 타고 다시 올라간다.

“…엉덩이 들어.”

“흣, 아…알아. 말 안 해 줘도 돼.”

괜히 장난기가 들어서, 팬티를 입혀준 다음 에스테야의 각인을 한 번 손끝으로 꾹 눌렀다.

아니, 누르려고 했다.

에스테야가 두 손으로 내 손가락을 잡은 채 밀어낸다.

“…또 젖으면 갈아입어야 한다고. 응?”

얼굴을 발갛게 붉히고 중얼거리는게, 귀여웠다.

“좋아.”

나는 브래지어도 입혀주고 나서, 새하얀 블라우스와 감청색의 하이웨스트 스커트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에스테야가 내 손에서 그 옷들을 빼앗아갔다.

“…너무 부끄러우니까, 내가, 내가 입을래….”

아, 맞아.

아직 열아홉 생일 지난지 이틀밖에 안 된 애였지. 나는 에스테야의 머리를 한껏 쓰다듬어 헝클어트려놓곤, 뺨을 어루만져줬다.

“그래. 내 옷은 어디있지?”

“…저기.”

에스테야의 조그마한 손가락이 서랍 하나를 가리켰다. 나는 평범하게 셔츠와 슬랙스를 갖춰입곤, 코트 하나를 몸에 걸쳤다. 확실히 키와 체격이 받쳐주니 별 거 없는 옷도 태가 산다.

“다 입었냐, 에스테야?”

“그…도와줘….”

문제는 단추였다. 자꾸만 달달 떨리는 손가락이 헛방질을 해대는 통에, 에스테야는 스커트 단추부터 블라우스 단추까지 죄다 채우지를 못하고 있었다.

“계속 그러고 있으면 나한테 또 따먹힌다.”

내 장난스러운 협박에, 에스테야는 내 뺨에 손을 얹었다.

“하, 흐으….”

자기가 먼저 만져놓고도 발정이 나는거냐.

조금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그 모습이 꼴리긴 했다. 나는 일단 에스테야의 손목을 붙잡아 내렸다.

“그러다 정말 박혀, 에스테야.”

“…알았어.”

에스테야는 나에게 두 팔을 뻗었다. 안아달라는 뜻이었다. 이제 옷을 입었으니 옷 너머로는 괜찮을 것이다. 살갗을 직접 맞댈 때나 그렇지.

나는 부드럽게 에스테야를 안아들으며, 그녀의 몸에 내 피부가 직접적으로 닿지 않게 주의했다. 또 품 안에서 할딱이며 자지러지는 모습을…보는 게 싫지는 않았지만, 나가자는 걸 보면 해야 할 일이 있는 거겠지.

“에스독 앨리에 갈 거야.”

에스테야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거기가 뭐 하는 곳인데?”

“그…마녀와 마법사가 물건 사는 곳 있어. 아참, 가기 전에 그…내가 흘렸던 꽃들 좀 주워줄래?”

나는 에스테야를 침대에 앉혀놓곤, 그녀의 화관에서 흐드러지다 못해 떨어졌던 벚꽃들을 주웠다. 에스테야는 제 조그마한 손에 그 꽃들을 고이 모으더니, 작은 크리스탈 병에 채워넣었다.

“모아놓는 건가?”

“응. 마녀의 부산물…이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화인 출신 마녀는 내가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어. 다른 인간 마녀나 마법사들이 머리에서 꽃이 피지는 않을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

에스테야는 가볍게 손가락을 딱 튕겼다. 옷장에서 내가 깜빡하고 챙겨오지 않았던 양말이 한 켤레씩 날아왔다.

그리고 그녀와 내 몫의 구두도.

“근데, 너.”

벚꽃의 마녀는 내가 봤던 그 어떤 여자보다 목소리가 고왔다. 게다가 바닥에 쪼그려앉아 구두를 신는 나를 내려다보는 그 모습은, 창문 밖에서 쏟아지는 햇빛 덕분에 신성함마저 느껴지게 만들었다.

“이름이 뭐야?”

허.

참 빨리도 묻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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