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서큐버스의 사명
* * *
“헉……!”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비명이 울렸다.
나는 즉각 허공을 박차며 뒤로 빠져 지상에 착지하고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상황을 인식한 상대에 계속 연계기를 퍼붓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아직 가진 능력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판에.
“너, 너어…!”
메엘의 시커먼 눈이 공허하게 부릅뜨였다.
살긋이 뜨인 입새의 톱니들이 부서질 듯이 부딪치며 달각댄다.
“서, 설마?”
왼손으로 뻘건 피부색 때문에 맞은 티도 안 나는 왼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진다.
이윽고 카랑한 비명이 허공에 터졌다.
“설마! 나를 때렸어!?!?!? 끼햐아아아악!?”
맞은 뺨을 붙들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서큐버스의 절규가 쩌렁히 울려 퍼졌다.
“미쳤어어어! 어맛, 어맛? 꺄아아아악!? 완전 미쳤어! 어, 어떻게!? 여자를 때릴 수가 있어어!? 그것도 너무나도 소중한 얼굴을! 이 미친 버러지야! 축생 같은 수컷 새끼야!”
“창관의 서큐버스 플레이에서 온갖 기행을 다 겪어 놓고, 구타에 익숙하지 않은 척은. 순결한 척은 때려치워라. 진심으로 토악질 쏠린다.”
나는 냉랭한 현실 지목과 팩트 폭격으로 응대했다.
“히, 이익……!”
부들대는 서큐버스의 검은 눈알에 물기가 가득 차올랐다.
메엘이 절규하며 상체를 바짝 뒤젖혔다.
“끼햐아아악!!! 절대 용서 못해애애애!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릴 테야아아악─!”
콰드드드드!
일순간 그녀를 중심으로 엄청난 마력의 기운이 결집하기 시작했다.
허공에 파직대는 자기장이 새겨지는 것이 흡사 스스로가 폭풍의 눈이 된 것 같았다.
“이제 리나도 필요 없어! 끝까지 말 안 들으면 죽이든지 이제 버리든지 하면 되니까! 뒤쪽의 공방도 때려 부술 테야! 네 친구일지 가족일지 모를 헬하운드들도 복속시키고는, 네놈의 시체를 개밥으로 모조리 처먹여 버릴 테닷!”
원체 피부 자체가 핏빛처럼 붉기에 티도 안 나는 메엘이 얻어맞은 낯짝을 붙들고 진심으로 분개했다.
“흐햐아아앗!!!”
박쥐 날개를 병풍처럼 활짝 펼친 메엘이 허공에서 즉각 덮쳐들었다.
후방으로 불어닥치는 어마어마한 역풍을 동반하며 사선으로 떨어져 내린다.
나는 왼팔목을 내세우고 오른팔을 뒤로 당겨 대련세로 대비했다.
마석화하며 굳어 가는 양팔이 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죽엇!!!”
메엘의 뒤로 잔뜩 내빼 쥔 오른팔의 채찍이 파공성을 동반한 궤도를 그리며 즉각 나에게 내꽂혔다.
나도 상체를 급격히 굽하며 뒤로 당긴 오른쪽 주먹을 내뻗었다.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나의 마석화한 주먹과 메엘의 마력을 잔뜩 머금은 채찍이 마주치며 충격파가 터져 나갔다.
더 이상 자갈도 남아 있지 않은 흙바닥의 타고 그을린 잿더미가 거칠게 휘몰아치며 재차 상공으로 역류했다.
“으극!”
격렬한 힘의 충돌에 상어이빨을 사납게 악문 메엘이 으르렁거렸다.
거칠게 발생하는 돌풍에 휘청거리는 동체의 밸런스를 다잡으려 날갯짓하며 마구 채찍질했다.
“이이이이익!”
마의 일족 최약체라고는 하나, 확연한 살의로 불타오르는 서큐버스가 맹렬히 투지를 불살랐다.
주먹질과 채찍질이 초고속으로 맞부딪히는 공방전이 이어졌다.
나는 기습적으로 안면 앞에 차원구를 개방해 5급 마법검의 검극을 메엘의 면전을 향해 사출했다.
“으힉! 또 씨바알!”
얼굴로의 칼침 시도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메엘이 박쥐 날개를 활짝 젖히고는 허공을 박차 거리를 벌렸다.
가까스로 고개를 뒤젖힌 메엘을 맞추지 못한 마법검이 다시 염동력으로 되돌아와 차원구와 함께 소멸했다.
간격을 확보해 주변을 세차게 휘도는 메엘의 덜렁거리는 채찍 표면에는 검붉은 마염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메엘이 날선 기합성과 함께 채찍질을 휘갈랐다.
“히햐아아압!!!”
후후후후훅!
사방팔방에서 현란하게 휘둘린 채찍으로부터 검붉은 불덩이들이 쏘아져 날아들었다.
채찍의 끄트머리에서 끈덕진 불꼬리들을 뒤잇는 불덩어리들이 퍽퍽 떨어져 날아든다.
나는 전방위에 부채꼴 형태로 퍼지는 마석막을 전개했다.
쩌어엉!
요란한 파열음을 울리며 나의 마석막들이 갈라져 녹아내렸다.
나는 속으로 침음성을 삼키며 더욱 마력을 투자한 마석막들을 내세웠다.
쩌저저저적!
사방에서 눈부신 빛의 확산과 함께 쩌렁한 포성이 울리며 화구들의 직격을 받아냈다.
방심 일변도이던 메엘이 전력을 꺼내기 시작하며 기존의 강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역시 비슷한 적혈급의 반열.
충분한 서로의 공방이 성립되는 수준.
“아햐햐햐햣!!! 뭐 해, 자기!? 방어 굳히기로 돌아섰어? 이번에 또 그걸 날리면 녹아내릴 것 같아서어!?”
발끝으로 지면을 고속으로 호버링하는 메엘이 요염하고도 야릇한 손짓으로 입을 가렸다.
요란하게 휘가르는 채찍의 끄트머리에 맺히는 검붉은 마염의 화구를 연거푸 내쏘았다.
돌연 그녀가 팔을 커다랗게 휘두르는 채찍질로 허공에 오망성을 그었다.
끈덕진 먹물처럼 불길하게 울렁이는 흑마술의 표식 중앙에 핏빛으로 불타오르는 마법진.
“햡!”
메엘이 허리를 크게 돌리며 높게 들춘 하이킥으로 완성된 술식을 뒤에서 걷어찼다.
파차아아앙! 화르으으윽!
파열한 마법진이 현란한 마결정들로 비산하는 속에 검붉은 불기둥이 어둠의 심판처럼 내쏘아졌다.
나는 재빨리 양손으로 지면을 내짚으며 아크로바틱하게 휘돌아 현장을 이탈했다.
화르르르륵!
거목의 직경처럼이나 두터운 헬파이어의 불줄기가 마석막들을 살라먹고 모조리 꿰뚫으며 반대편으로 치솟았다.
공방의 방향으로부터 아슬아슬하게 엇나가 뒤편의 숲을 대신 태웠다.
“이, 망할 쌍년이…!”
내가 포착했을 때의 그녀는 검지로 입술을 짚고 요염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랄~라앗!”
고개를 기울이는 그녀의 신형이 돌연 좌우로 분열했다.
셋이 된 메엘이 검지를 까닥대며 씨익 웃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셋이 된 전후로 각기 셋이나 더 늘어났다.
총 아홉 명이나 된 메엘에서 하나의 메엘이 중앙에서 더 늘어나 팔짱을 끼고 위로 떠올랐다.
“일루전 워크스. 나 메엘 녹스 파키나 슈렐리안 님의 특술이란다. 이 분신술의 파도에서, 우리 자기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아~?”
“깔깔깔깔깔깔!”
“유후우~!?”
중앙에 떠오른 메엘이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투명 의자에 앉은 듯이 요염하게 허벅지를 꼬았다.
뒤따라 제각기 다양한 포즈들을 취하는 메엘들이 요사스러운 웃음들을 터뜨렸다.
이것이 그녀의 고유 능력.
일순간 다방면으로 산개한 메엘들이 각기 방위들을 점했다.
중앙에 있었다 추정되는 메엘이 화사히 웃으며 감아 쥔 채찍으로 나를 가리켰다.
“공격! 휩쓸자!”
메엘들의 맹공이 시작되었다.
콰콰콰콰쾅!
사방에서 마탄들이 쏟아지고 채찍질이 휘갈랐다.
“아햐햐햣!”
“햐앗~!?”
“얏얏!”
분신체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전술적인 움직임을 구사하는 메엘들이 시야를 아득히 채웠다.
“여기야아~! 자기이!”
푸른색 장미의 화편들을 흩날리며 손등으로 턱밑을 짚은 메엘이 몸을 기울여 뒤로 빠졌다.
빗발치는 협공의 속에서 나는 가장 가까운 그녀에 달려들어 마석화한 수도로 갈랐다.
“꺄아항~!?”
나긋한 탄성과 함께 수중에 은은히 흩날리는 푸른 장미 화편들.
뒤에서 일제히 내꽂히는 마탄들과 전방의 좌우에서 넷이나 날아오는 화구들로부터 지면을 박차 드높게 뛰어올랐다.
그에 지상에서 한 손이나 양손들을 들춘 메엘들이 동시에 흑청색으로 발광하는 마력파들을 발사했다.
파아아아앗!
나는 전반신에 마석화를 부분 발동해 드넓은 방사형으로 퍼지는 빛무리의 직격을 받아냈다.
팔목과 정강이를 크로스한 표면에서 검은 흑연들이 피어오르며 후끈한 작열통이 엄습했다.
분신들을 늘린 수만큼 위력이 경감되는 것도 없다.
하나하나가 원본과 완전히 동일한 능력을 갖춘 분신체들이었다.
“성가시군.”
미라지 라이프.
리나 씨가 가지고 있는 특술이기도 하며, 환술에 실체를 입혀 타격을 가하는 능력.
환몽을 다루기에 환술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몽마들이 드물지 않게 가지며, 메엘이 보유한 두 번째 특술의 확인이었다.
“아앙~! 자기, 벌써 사랑이 식어 버린 거야? 그렇게나 대낮의 도주를 저질러 버릴 정도로~?”
조금 전에 해치웠던 메엘이 거짓말처럼 다시 제자리에 생겨나 팔짱을 끼고 손등으로 입을 가린 채 비웃고 있었다.
어느새 둘이 추가적으로 늘어 현장의 메엘은 열둘이 되었다.
“일루전 워크스와 미라지 라이프의 조합. 이걸로 건방지게 주제도 모르고 들이대던 수컷들을, 모조리 골로 보내 주었단다~? 상대를 보고 주제를 알고 까불어야지~!? 우훗훗훗훗!”
열두 명의 메엘들이 동시에 입을 맞춰 팔짱을 끼고 손등으로 입을 가린 같은 포즈들로 폭소했다.
이로써 그녀가 가진 특술은 둘로 판명.
더 꺼낼 것이 없다는 가정하에.
더 이상의 분신은 늘리지 않은 채 정확히 12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상 늘리는 것도 가능한지, 이게 가장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한계인지는 모르나, 이 정도가 그녀가 운용할 수 있는 정도.
“하지만 어렴풋하게 약점이 보이는데.”
“약점!? 환술에 실체를 입히는 능력과, 분신을 생성하는 능력이라는 이 천하무적의 조합에? 애가 허세력이 충만해 배때지까지 찢고 흘러나오는구나! 아무리 답이 없는 상황이어도 그렇게 과시하는 거 아냐~!? 넘쳐나는 허세가 대가리까지 터뜨리고 활활 분출할라!”
메엘 하나가 어깨를 끌어안고는 허벅지를 비벼대며 혀를 빼물었다.
“실체까지 입힐 정도의 환술과, 특성을 공유하는 분신의 조합이라면 뻔하잖아?”
나는 풍마법 플라이트로 허공에 부유한 채 왼손을 빠르게 6회 그었다.
“답은 제시되었다. 폭광.”
시이이이잉!
일순간 나의 전신으로 폭발적인 빛의 방출이 발산되었다.
전장의 상공인 마계의 붉은 하늘과 검은 구름마저 시허옇게 물들 정도의 강력한 광휘가 사위를 물들였다.
“흐, 흐햐앗!? 가, 갑자기 무스으으은!?”
나와 말하던 메엘이 부릅뜬 눈에 쏟아져 들어오는 백광의 범람에 입을 떡 벌렸다.
광마석의 술식 발동과 함께 순간적인 폭광에 노출된 메엘들이 자지러지는 비명들을 내질렀다.
“끼햐아아아앗!”
“꺄아아아악!”
“끄아아앙!”
역시 모두가 적용이 되는군.
이미 나의 눈에는 왼손을 7회 긋는 암마석의 술식으로 암흑 상태로 만드는 블라인드를 걸어 적당한 암전 처리를 해두었다.
암흑과 폭광이 조합되니 세상은 나만에게 적절한 시야를 제공했다.
나는 재빨리 움직여 강렬한 고통에 눈이 먼 메엘들을 덮쳤다.
마석화한 양완과 양각이 휘두르고 휘가를 때마다 양손으로 눈을 가린 메엘들이 푸른 장미 화편들을 흩날리며 소실했다.
본디 분신체가 당할 때마다 다시 나타나는 원리나 현재는 술자의 집중이 흐트러져 돌아오지 않는다.
또한 즉각 본체라 추정되는 메엘도 나타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최후의 분신체가 당할 때까지 유지하는 원리.
“히, 히익!?”
그렇게 모든 메엘들을 처리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메엘에 달려들자, 분신체들의 소멸을 감지한 그녀가 저릿한 안통 속에서도 경악으로 시커먼 눈을 부릅떴다.
“크, 크아아아아!”
입을 쩍 벌린 메엘의 구강 주변으로 흑청색 마력이 점점이 결집하기 시작했다.
안면의 혈관들마저 팽창할 정도로 힘을 결집한 서큐버스가 포효했다.
“으라아아압!!!”
투콰하아앙! 콰르르르륵!
메엘의 입으로부터 청색 스파크가 파직대는 시커먼 마력의 기둥이 발사되었다.
테두리는 푸르지만 내부는 흑색인 굵직하고 거대한 빛기둥이 쇄도한다.
마의 일족의 공용기이자 꽤나 강력한 필살기 개념, 데몬즈 브레스.
허나 너무도 다급히 발사했기에 충분한 위력이 결집되지 않았다.
전신으로부터 끌어낸 마력을 충전하지 못한 동급인 적수의 마구포는 내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접근을 마친 나는 빠르게 몸을 좌측으로 수그리면서 들춘 마석화된 오른쪽 손아귀로 메엘의 입을 틀어막았다.
퍼허어어엉!
“끼햐아아악!?”
구강으로 쏘아내던 마구포가 입이 틀어막히면서 귓구멍들과 콧구멍들로 네 갈래로 치솟았다.
“꿍후루우웁!!! 후우우우웅!!!”
역류한 마구포에 비공과 내이가 찢겨지고 타오르는 고통에 메엘이 눈을 부릅뜨고 비명을 내질렀다.
오래전에 빠른 회복력의 특술을 통해 마구포를 남발하던 레서 데몬을 상대하면서 습득했던 파훼법이었다.
강력한 에너지의 방출을 틀어막고 있는 오른손이 금세라도 날아갈 듯이 들썩댄다.
나는 그걸로 끝내지 않고 양손으로 메엘의 양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파츠츠츠으!
“꾸후우우웅!”
피격자의 체내에 축적된 마나를 한도까지 소진시키는 마나 블라스트가 작렬했다.
메엘의 육체에 강제적으로 흘려내는 나의 마력이 마찰의 체류를 형성하며 그녀의 마력을 급속으로 마모시키기 시작했다.
백파이어된 마구포의 여파가 끝난 메엘이 입을 쩍 젖히고 자지러지는 비명성을 내질렀다.
“끼, 히햐아아악!!! 흐햐아아아악!!!”
온몸을 고속으로 경련하며 벌린 입에서 말간 게거품이 솟구친다.
무영창의 전마법 패럴라이즈도 부가적으로 넣어 팽팽히 긴장하는 근육도 마비시켰다.
마비류의 대전류가 서큐버스의 말초 신경을 훑으며 잔여 마력의 소진과 함께 몸체도 겸사겸사 마비시켜 갔다.
그렇게 마나 블라스트와 패럴라이즈를 번갈아 흘렸다.
자신과 전력적으로 비슷하거나, 마력적 소양과 마력의 운용이 더 우수한 상대에게 사용하면 필히 마나 역류가 찾아들 가능성이 있다.
더군다나 자신보다 아득한 강자라면 그럴 확률은 명약관화.
예전에 싸운 갈레인에게 만약 사용했다면 씹히고 반격당하거나 되려 내가 역류당했을 수도 있지만, 그녀 정도라면 문제없다.
애초 전투의 시작부터 나는 그녀보다는 강한 상태였기에.
“흐, 아아앗……!”
오랜 방전이 끝나자, 메엘이 실이 풀린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나는 오른팔로 기다란 포니테일을 축 늘어트리며 앞으로 엎어진 그녀의 동체를 받아냈다.
“흐, 햐, 아악……!”
메엘이 풀어진 눈으로 헤벌려진 입에서 희멀건 타액을 대방류했다.
본디의 패럴라이즈는 대상을 실신시키나, 그러지는 않을 정도의 약한 전류로 조절했다.
나는 메엘의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을 흘긋 내려보았다.
“으, 갸아……!”
상어와 같은 톱니들이 몽땅 날아가 잇몸만 남은 서큐버스가 가느다란 신음성을 흘렸다.
그렁대는 검은 눈망울에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콧구멍과 귓구멍으로는 핏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졸지에 틀니와 여러 보조 기구들이 필요한 신세가 되었다.
“흑, 히이잇!”
“이런, 이런. 아직 틀니가 필요한 나이가 아닐 텐데도, 벌써 이런 몰골이. 이건 못 봐주겠군요.”
나는 즉각 마속성의 하위 재생술 리그로우를 영창해 메엘의 안면부 국소 부위에만 적용했다.
잇몸만 남은 곳에 상어이빨들이 다시 돋아나고, 야릇하고도 색정적인 서큐버스의 미색이 눈깜짝할 사이에 회복된다.
클린즈도 발동해 피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을 포함해, 온몸에 가득한 흙먼지와 기타 더러운 것들도 말끔히 날려 갓 목욕한 것과 같은 상태로 만들었다.
“으, 아……!”
서큐버스의 믿을 수 없다는 탄성이 흘렀다.
어제 싸웠던 어떤 자칭 마왕 녀석과 판박이의 반응이다.
마치 이런 양상을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
특술을 둘이나 가지고 신호마저 보유했던 갈레인에 비해서는 명백한 급수 아래다.
간격을 유지하며 다채로운 상황에 적응한 공방을 펼치는 체술이나, 영창과 견제의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상정한 전투술 자체가 영 미흡했다.
힘 자체는 어엿한 마왕군 중급전사이자 마계 길드 기준 청등급의 모험가지만 그게 능사는 아니라는 반증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강대한 힘을 갖췄으나 다루지 못하면 허사라는 증명.
“창관에만 틀어박혀 떡쳐서 강해진 적혈급 따위야.”
나와 갈레인 녹스 스퀴르갈 발테사이온과 동등한 반열의 전사들에 모욕이다.
“하지만 인정은 해야지.”
서큐버스치고는 매우 강한 반열.
단지 천 단위가 넘어가는 마물들과 마수들에 다리를 벌렸다고 이런 산물이 탄생했다.
이론적으로는 섹스하면 할수록, 몸을 팔면 팔수록 그냥 강해지는 족속.
몽마들도 참 어지간한 사기성을 지닌 일족이다.
흉화해서 전력으로 임했다면 최초에 나와 싸웠던 갈레인과 거의 비슷한 정도로 꽤나 위험하게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외모로 먹고사는 몽마들에 있어서는, 마의 일족으로서의 자신들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서 진정한 힘을 발휘하느니 기꺼이 죽음을 택할 정도니까.
그것이 전투의 시작부터 나를 이길 수 없었던 이유였다.
서큐버스와 동거하는 나는, 그녀의 일족의 특성을 너무도 속속들이 잘 알고 있기에.
“흐, 으……! 대체.”
서큐버스로부터 여전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탄식과 신음이 거듭 흘러나왔다.
그녀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운 나는 쓰게 내뱉었다.
“당신과 마투를 치르기 전에, 더한 사투를 치른 적이 있습니다.”
“으, 응……?”
엎어져 뒤통수를 내보이는 메엘이 감각이 미약한 몸을 움직이려 애썼다.
“그 남자의 이름은 갈레인 녹스 스퀴르갈 발테사이온. 차기 마왕을 노리는 강자입니다. 서로의 목숨과 신념을 내걸고 싸웠던 힘겨운 싸움이었습니다. 죽을 뻔한 기회도 몇 번이나 있었지요. 하지만 그에 비하면, 당신은. 단평하자면.”
나는 본성을 드러냈다.
“참 쓰레기 같이 약하네. 이 개씨발년아.”
“……힉?”
붉은 서큐버스의 뒷덜미가 새파랗게 질리는 모습이 보였다.
여지껏 보이던 가식적인 태도에서의 완전한 반전.
“도살자 갈레인.”
최소한 그렇게라도 알려진 위명을 딱히 모르는 듯한, 아마 창관 붙박이일 그녀에게 덧붙였다.
“가, 갈레인…? 그, 그거! 무진장 유명한 놈이잖…아!?”
메엘이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목소리를 어렵사리 쥐어짜내 내뱉었다.
명백히 경악이 실린 반응이었다.
“풋.”
나는 코웃음을 치며 덤으로 발치에 굴러다니는 그녀의 채찍도 주웠다.
적어도 5급은 되지 않을까 싶은 나름의 매직 웨폰.
“플레이에 적당한 아이템이네.”
허리를 굽혀 채찍도 집은 나는 공방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메엘을 끼우고 공방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큰 화재는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미약하게 수목의 여기저기에 잔불이 타닥거리거나 하는 풍광이 심히 황량하다.
공방을 두르던 주변의 나무들이 통째로 깎이고 날아가거나 해서 벌목 작업이 벌어지기라도 한 듯 넓어져 버렸다.
덕택에 숲의 공터가 드넓어져 버렸다.
본래의 면적에서 최소 5배 정도.
“리나 씨가 돌아오면 이 광경을 대체 뭐라고 설명하지….”
앞으로 공방이 이주할 여자들로 부쩍 드넓어진다는 암시일까?
이 서큐버스가 부지를 확장하는 토목 공사를 해준 셈?
여하튼 리나 씨가 돌아오면 놀라겠군.
“가자, 씨발년아.”
“흐, 익!?”
나는 옆구리에 끼운 서큐버스에 팔힘을 주었다.
사악한 성향과는 상관없이 무진장 꼴리게 생긴 비주얼의 미녀에, 바지 속에서 만개발기한 끄트머리에서 쿠퍼액이 실금되는 것이 느꼈다.
나의 서큐버스를 찬탈하려 한 악녀.
답 없는 걸레 서큐버스를 원없이 따먹을 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