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서큐버스의 사명
* * *
“리나 씨, 지크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녀의 침실 방문을 두드린 나는 딱히 기다리지 않고 문고리를 돌렸다.
리나 씨는 내가 그녀를 확인하고 나왔을 때와 동일한 자세였다.
팔목으로 이마와 눈매를 괴고 침대에 완전히 내뻗은 포즈.
“어차피 이 집에 너밖에 없기도 하고, 딱히 노크할 필요도 없이 들어와도 되며, 그런데 노크하고는 기다리지 않고 그냥 들어온 것도 삼박자로 웃긴데…….”
우윳빛의 가녀린 새하얀 손목 아래에 드러난 입술이 달싹댄다.
“더 웃기는 작자는 그녀야. 웃겨서 정말… 매출과 매상은 단 1도 올려 주지 않으면서, 아주 직권 남용을 한다니까? 서큐버스들은 서큐버스들에 걸맞는 삶이 있다? 창관에 대해 지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 지가 뭔데 나보고 지랄이야! 자기가 왜 남의 라이프 스타일에 이래라저래라 왕왕 짖냐구! 힘만 아니었어도 콱!”
빠르게 뇌까린 리나 씨가 진심으로 분한지 틀어쥔 주먹을 높게 들췄다.
“진짜 생각할수록 빡치네!? 그거 완전 자기가 필요할 때만 찾는다니까!? 그러고는 창관 따위 안 나가도 너랑 잘 먹고 잘 사는 내게 대뜸 나오라? 연수입을 확인해서 마시청에 신고하겠다! 하, 참! 진짜 어이없네!”
리나 씨가 몸을 벌컥 일으켜 정좌 자세로 앉았다.
맞물린 양발을 손아귀들로 조물딱댄다.
“흐아…! 내가 힘만 있었어도! 아니, 세상에! 몸 팔아서 적혈급까지 올라간 게 자랑이야!? 아니, 서큐버스라면 자랑스러울 만도 한가? 어쨌든 겁나 기분 나쁘잖아! 선임이면 다냐구! 후임에게 이렇게 창관에 나와서 같이 몸 팔라 하는 게 말이 되는 요구야? 하여간 이 마계는 구조 자체부터가……”
왱알앵알, 리나 씨의 끝없이 궁시렁대는 불평이 메들리처럼 연이어졌다.
마계의 세금은 수익에 맞춰 내는 세금도 똑같이 증가하는 구조.
빈민가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고철과 잡동사니를 주워 연명하는 폐마족이나, 교외에 군대처럼 즐비한 고용인들과 마술식의 설비가 완비된 별장을 갖추고 호화 생활을 누리는 마귀족이나 세금에 대한 부담감은 엇비슷하다.
납세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은 오직 마왕과 마왕가의 혈족밖에 없으며, 의외로 합리적이며 평등한 부의 배분과 권리의 보장을 실현하는 이상적 복지국가에 가까운 사회 시스템이다.
물론 실체는 마왕권의 200만 마의 일족 신민들이 속한 정부가 아닌, 마왕과 6마군장들과 72악마교단원들의 카오스 왕조의 주축이자 핵심을 이루는 요직들에 흘러들어 간다.
나머지는 마왕군 군단들의 군단장들과 부군단장들 및 전사장들을 위시로 한 마귀족들과 간부들의 호주머니로 다시금 흘러든다.
정식의 연봉을 제외한 위로금이니 회식비니 기타 품위유지비니 등의 이런저런 명목으로.
모든 혈세의 집산을 주물대는 정점에는 이 마계의 주인인 마왕이 있겠지만, 차마 혼자 다 해처먹을 수는 없으니 의례상 나누는 것이겠고.
“가뜩이나 수익이 늘어나면 뜯기는 세금도 비례해 늘어나는데! 어차피 그거나 그거인데, 간신히 정착한 누구의 장사 망칠 일 있어!? 으휴! 그 빨갱이! 까막눈! 톱니! 하나같이 불호 외모 요소들이야!”
“수익이 많은 대상들은 더 많은 수익을 뜯어내는 게 보다 이득이기 때문이죠. 제가 마왕이라도 그리 합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반발심과 환멸감이 치솟지만.”
애초 마왕 루시퍼의 카오스 왕조 자체가 현재의 마왕권을 적법하게 지배하는 정권이자, 군부와 일체화를 이룬 기형적 형태의 거대한 군사 정부.
물론 마계는 모든 적합한 신민을 출생과 동시에 군역에 강제로 묶는 비정상적이면서도 기형적인 구조이기에, 통상적인 국가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와 형태의 상시 소모되는 군자금이니, 마왕성의 군무부와 마군도들의 군무청들에 할당되는 정기 예산이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발생할 잔여 혈세인 마세가 어떻게 사용되며 남은 돈이 어디로 가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마왕성의 정부와 마왕군의 군부에 속한 윗대가리들의 초호화 파티 비용 및 연회비로 쓰이지 않을까?
당연히 신민들이 납세한 세금의 사용 내역에 대한 투명한 공개 따위도 없기에, 적합한 의구심을 품으며 적법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하는 순간 강자존의 섭리가 존재하는 이쪽 세계의 절대적 법칙에 의해 즉각 저세상행일 테니까.
이런 주제조차 입밖으로 꺼내는 것도 위험하다.
결국 검과 마법의 환상이 공존하는 중세를 기반으로 한 중간계와는 다른 하나의 엇비슷한 이세계.
그 구조에는 이쪽 세계의 원주민들은 결코 알지 못할 선천적 및 본질적 한계가 있다.
“그 빨갱이가 우리를 헬유레이아 마시청에 신고하면 어떻게 해!? 그것만으로 일단 무진장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것은 확정이야! 아흑! 진짜! 어제까지만 해도 너만 귀찮은 일에 휘말린 줄로 알았더니, 이젠 나마저 같이 휘말렸어!”
“같은 배에 올라탄 셈이 되었군요. 저나 리나 씨나.”
“침몰선이지! 어떻게 해결책 좀 안 나와!? 지크!?”
머리를 부여잡은 리나 씨가 커다란 양 갈래 트윈테일들이 마구 뒤엉키도록 헤드뱅잉을 내저었다.
결국 뺀질하고 찌질하며 잔머리가 참으로 뛰어난 종특답게, 어떻게든 마세를 조금이라도 덜 내기 위해 내빼고 째는 자들도 허다하다.
매해 온갖 편법들을 동원한 기막힌 탈세들을 위한 수단들이 출현해, 납세의 기간만 되면 마시청으로부터 파견된 마공무원이 마군도의 군민들을 대상으로 적발 사례들을 설명하며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간담회가 벌어질 정도.
고로 마군도 소속의 마시청에 있는 마공무원들과 마직원들은 탈세와 관련해서는 다소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다.
설령 우리의 문제는 전혀 없더라도, 최대한 꼬일 경우에는 일단 전수 조사가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리 되면 증빙을 위한 관련 서류들을 준비해서 마시청을 들락날락거리고, 마시청 소속의 직원들이 조사를 명목으로 시도 때도 없이 공방에 들이닥치는 식으로 결국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된다.
붉은 피부의 걸레 서큐버스는, 철저한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나와 리나 씨에게 빅엿을 먹이려 시도하고 있었다.
논리를 설파하나, 실체는 한없는 비논리의 결정체에 가까운 것이 마의 일족이다.
“비논리적이군요.”
“그런가?”
“비합리적이군요.”
“그래?”
“비효율적이군요.”
“흠.”
리나 씨가 검지로 입술을 짚으며 곰곰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당연히 나는 현재의 모든 상황을 아니꼽게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왼눈에 끼운 모노클에 반사되는 등광을 빛내며 물었다.
“리나 씨, 창관에 나가고 싶으십니까?”
동그랗게 눈을 뜬 그녀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이내 트윈테일을 세차게 휘저었다.
“아니, 절대 안 가.”
나는 모노클을 빛내며 거듭 확인했다.
“정말이십니까? 이건 당신의 의지에 달린 문제입니다.”
리나 씨가 더욱 질색하며 허공에 금빛 원반이 자아내질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어휴! 창관의 창이란 단어조차 꺼내지 마! 내가 왜 그렇게 더러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해!? 애초 내가 연금술사로 전업한 이유도 창관에 안 나가기 위해서야! 음몽군단에의 군복무야 순환제고 평생이니 어쩔 수는 없다지만! 지크 너 말고 다른 남자는 관심도 없어! 발정난 마물들과 마수들에 능욕당하고, 못된 마족들과 악마들의 밑에 깔려 서서히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지고 붕괴되어 가느니, 스스로의 심장을 불살라 목숨을 끊는 게 나아!”
빽 소리를 내지른 리나 씨의 많은 감정을 담은 분홍안들이 잘게 떨렸다.
선명한 의지의 확인.
나는 만족스럽게 눈을 내리감았다.
“…그러면, 저에게 맡겨 주시기를. 그녀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뭐? 죽이면 안 돼! 메엘 님은 내 상관이라구! 하급자와 상급자가 합의하에 마투를 겨루는 거야 관계없지만! 마왕군도 아닌 고용인이 마왕군에 속한 고용주의 상관을 살해한다면, 사실상 상시 해당되는 군법을 적용받은 하극상도 아닌 살마죄야! 중간계로 치면 마계인을 살해한 살인죄! 어엿한 시민권도 갖췄다고는 해도, 애초 너는 마의 일족도 아니기 때문이지! 잘하면 우리의 모든 가산이 몰수당하고 너와 나는 극형에 처해질지도 몰라!”
반응을 역변한 리나 씨가 그야말로 경악해 재차 빽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고도 이내 떨리는 눈으로 묻는다.
“지크, 현재 너의 전력은 어느 정도 수준이야? 분명 적혈급의 수준으로 진입했다고 했지? 아직 길드에서 승급전만 치르지 않았을 뿐인?”
마지막 희망을 품은 눈빛이었다.
“맞습니다.”
“그녀도 같은 적혈급이라구? 몽마의 수준으로는 정말로 강한 거야? 암영급인 나도 몽마치고는 꽤나 강한 수준인데? 힘으로 맞부딪칠 수 있겠어?”
“자칭 차기 마왕과 사투를 치른 판에, 그깟 걸레가 대수겠습니까? 걸레라면 걸레의 용도에 걸맞게, 박박 닦게 시키면 되지.”
내가 자신감을 갖춘 이유였다.
그녀는 비교적 최근에 적혈급의 진입이 이루어졌고, 그렇다면 결국 갈레인보다는 약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초기에는 나와 완전히 대등했고, 후기에는 나를 압도까지 하며 밀어붙이던 갈레인보다 못하다면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기껏해야 다크 하트 길드에서 싸운 배드 브로스 파티 멤버들보다만 강한 수준일 것이다.
나는 리나 씨의 우려로 희미하게 떨리는 눈빛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의외의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게 뭔데?”
“제3마군도 아케디아와 제5마군도 굴라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나는 여러 상황을 헤아리며 머릿속에 추론한 가설을 내뱉었다.
“마대륙 이블리오스는 마족 300만, 마수 1,250만, 마물 1억 5천만이 살아가는 마계라 불리는 세계. 저희와 마족들과 악마들은 마대륙의 중앙을 차지한 마왕 루시퍼의 마왕권에 속한 신민이고, 6개의 마군도들로 구성된 마왕권을 빙 둘러싼 구조인 마대륙의 변경에는 야만마왕 불드라크의 야만마왕권에 속한 신민들인 야만마족들과 야생악마들이 있지요. 이쪽의 마의 일족은 200만, 저쪽의 마의 일족은 100만으로 추산되며 여기가 약 2배의 인구를 지닙니다. 국력으로나 군사력으로나 경제력으로나 대부분의 면모에서 압도적 우위지요.”
“20세의 유마기에 마유치원에 들어가자마자 배우는 기초 지식의 설파는 뜬금없이 대체 왜?”
“주로 척박한 황무지나 가가브 산맥을 낀 고원 지대가 중점인 마계의 변경이라면, 마계의 마경을 비롯한 광대한 대자연에서 자생하는 독초들에서도 특히 위험하며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진 가스트라 극독초와 데스트로나 사독초의 군생지입니다.”
“내가 연금술사인데 그 정도야 알지. 스스로의 피를 추출해 응집한 마혈 및 마혈석을 매개로, 온갖 용법으로 조제한 마족 전용 맹독인 마독의 사용에 특화된 마전사들이 모인 제7군단 극독의 침투가 상시 매입하는 군수품이잖아? 어지간한 독에 내성을 지닌 마족도 확실히 죽이거나, 악마마저 존재에 심대한 위협을 끼치거나 구성에 변질을 가할 정도의 꽤나 비싼 독초들이기도 하고. 그것들 300그라그 정도가 최소 3배의 무게를 지닌 5급 이상의 포션들에 거래되거나, 같은 무게의 귀금속 및 보석류와 동등한 가치로 교환된다는.”
리나 씨가 의미심장한 눈초리를 빛냈다.
“마대륙의 정중앙에는 마신의 혀라 불리는 이슬라트 화설산이 있습니다. 6마군도들의 중심부에 위치한 마왕도 수페르비아에 살아가는 마왕성과 교외의 모든 신민들이 어디에서든 상시 육안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입지이기도 하며, 마계에 살아가는 모든 마종들의 상징이자 정기가 서린 불길하고도 사악하며 영험한 영산. 대륙의 중심을 꿰뚫고 우뚝 치솟은 터무니없이 거대한 존재의 혀가 마치 태산처럼 굳어진 듯한 형상이, 본래는 갈라졌던 땅들을 이 마대륙을 둘러싼 칠흑해의 중앙에 하나로 뭉친 듯한 형태를 유지하는 구조입니다.”
“왜 자꾸 지리 정보의 설파를?”
“마대륙의 대지와 지맥에는 화설산으로부터 발원한 마신혈이 광대한 거미줄처럼 뻗쳐 흐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어떤 존재든, 은총이자 보위 그 자체인 마신의 피가 흐르는 토지를 내밟는데… 상대적으로 마대륙을 둘러싼 외곽의 칠흑해와 가까울수록, 가스트라 극독초와 데스트로나 사독초의 분포도도 덩달아 증가하지요. 아마 대륙 외부에 흐르는 칠흑해의 해수가 지맥에 일부 침식했을 시에, 그것이 대지에 흐르던 마신혈과 만나 어떤 독특한 작용으로 중앙에 가까운 내륙에서는 보기 힘든 특수한 야생초들의 자생지들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그거야 아는데? 이야기의 요점이 뭐야?”
나는 검지를 내세웠다.
“야만마족의 강역과 가스트라 극독초와 데스트로나 사독초의 군생지가 겹칩니다. 광마약은 복용한 마의 일족들로 하여금 3급 미만의 해독제는 제대로 먹히지도 않을 극심한 중독 및 금단 현상을 자아내다가, 종래에는 본연의 체구가 극단적으로 부풀고, 흉폭성이 극도로 증대된 이형적인 존재로 변질시켜 버립니다. 바로 그들과 같은 존재들로 말이지요. 마의 일족도 제대로 저항할 수 없을 치명적 독성. 마계에서 가장 위험한 독초들이 나는 곳은 야만마족들의 영역.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요?”
“…….”
입을 벌린 리나 씨가 침묵에 빠져들었다.
여지껏 발상조차 못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아마도 광마약의 성분에 두 가지의 독초들이 함유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지요. 우연이라 보기엔, 미묘하게 겹칩니다. 최근 변경에서 발생하는 주로 몽마들이 대상인 실종 사건들. 독성에 선천적인 내성을 지닌 마의 일족들을 빠르게 제압하거나, 결코 빠져나갈 수 없게 유혹해 버리는 수단. 변경에서는 그닥 드물지도 않기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극독초들과 사독초들. 상시 의심하던 가설에 불과했습니다만은……. 이제 조금 추론의 톱니바퀴가 맞물리기 시작하는군요.”
“광마약에… 그것들이 함유되었을 거라구? 정말일까?”
“물론 아직까지도 확증은 안 된 추론에 불과합니다. 본디는 데블들 혹은 데블들과 동렬인 마의 일족들이 보다 거대하고 흉폭하게 변이한 존재들, 야만마족이 복용하는 광마약의 실체는 지금까지도 세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로 그럴 듯이 행여나 마왕권 내의 마군도들에서 은밀히 유통되었다는 소문이 들거나, 포착되었다는 경황만 보여도 즉각 연금학회 및 마술원 소속의 연구원들이 파견되어 현장을 휩쓸고 강탈에 가깝게 회수하니까요.”
“엄청나게 위험한 거니까 그렇겠지. 단 한 모금이라도 들이키거나 하는 순간, 사실상 이미 틀렸다구 들었어……. 일족에 따라 훨씬 더 강한 독성의 내성을 갖춘 게 아니라면.”
“광마약의 제조법이나, 만드는 방법에 대한 일말의 단서라도 시중에 퍼져서 결코 득이 될 것이 없다는 반증입니다. 반면 반대의 입장에서라면 적극적으로 적국에 마약을 유통시킬 만합니다. 마왕권 내부의 모든 마의 일족들이 광마약에 취한 약쟁이들이 되는 순간 끝이니까요. 전부 야만마족들과 야생악마들로 변이한 상황에서, 카오스 왕조를 이루는 마왕가를 비롯한 주축들은 마계와 함께 자폭하거나 마계에서 탈주한다는 선택지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저의 전생에서도 몇몇 국가들은 그런 식으로 대국들을 무너트려 식민지화하는 방식을 택했지요. 일단 전술적 시점에서라면 충분히 효율적입니다.”
“역시 이건 야만마족이 배후에 있는 사태일까?”
나는 팔짱을 끼며 그녀가 앉은 침대 너머의 창가를 주시했다.
“만약 현장에 파견되어 접근할 수 있다면, 광마약의 샘플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말씀대로 있지 않을까 추정되는 마왕군의 내통자와 조우하거나, 야만마족이나 야생악마와 전투가 벌어질 위험성마저 있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 다른 마군도들로 출장을 가고 싶다는 제안이잖아?”
“리스크가 없이는 리턴도 없는 법입니다. 또한 연금술사로서 성공하는 법은 남들은 모르는 재료와 소재를 입수해 철저한 분석을 가하고는, 그것을 기반으로 나만의 배합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형태로든 마왕군에 잘 보이며 이득이 될 공적을 세우면 좋습니다. 저희 공방의 신용도와 급수가 극적으로 상승하는 계기가 될 테니까. 잘하면 몇몇 군단들에 포션들을 정기적으로 납품하는 계약을 따게 될지도 모르지요. 고정적이며 지속성이 있는 수입만큼 좋은 것도 역시 없습니다.”
“아……!”
리나 씨가 입을 벌려 탄성을 흘렸다.
그것만큼은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다는 발상이란 듯한 반응이었다.
“그 서큐버스가 물어다 준 정보는 의외로 유용하다는 것이지요. 아직까지는 모르지만, 만약 보다 확실한 정보의 취합이 일어난다면 이후 행동할 만한 가치가 있을지 모릅니다. 모든 것은 연금공방 에우포리아의 이익을 위하여.”
나는 턱을 어루만졌다.
“광마약이라면, 뭔가 획기적인 것을 개발할 수 있을지도. 음마인 리나 씨의 적절한 조력하에, 성욕이 희박한 마의 일족 모두를 섹스 중독자로 거듭나게 할 미약을 개발해 돈방석에 앉는다거나? 극심한 중독성을 지닌 광마약의 섭리를 그대로 비틀어서 말입니다. 물론 어둠의 루트가 아닌 명백한 양지에서의 사업이니, 저희 에우포리아의 이름을 내건 안정성과 신뢰성은 보장하구요. 이것 역시 그냥 생각으로만 품던 발상이었습니다.”
”지크……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직 안 했습니다. 곧 해야 될지도 모르겠지만.”
리나 씨가 투명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불법을 저지를 셈이야?”
“애초 힘이 진리라는 미명하에, 모든 것을 힘으로 단정하는 세계에 법은 무슨. 안 걸리게만 하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포괄적인 의미로써의 불법이라면, 마왕을 필두로 마왕성의 윗대가리들이 훨씬 더 많이 저지르고 있을 겁니다. 모든 마의 일족이 적용되는 불후의 법전. 마계권리법령 데몬즈 코드에 확연히 명시된 조항들을 은밀히 우회하는 형태로.”
“나는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데, 그렇게 볼 수 있는 시선이 새삼 신기하기만 하다. 역시 지크 너는 이세계 출신의 전생자구나. 본디 너가 있던 세계는 대체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쪽 사람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며 살아갔을지 심히 궁금해. 설마 너만 좀 유별난 별종이거나 한 건 아니겠지?”
나는 지긋이 눈을 내리감았다.
“그냥, 전반적으로 현재와 관련된 모든 사안을 저에게 맡겨 주시기를.”
“……지크.”
“저는 집사이기 이전에 당신의 기사이지 않습니까? 당신이 내버려진 이 목숨을 거둔 그날 이후, 언제까지고 당신을 수호하기로 맹세한. 자신의 여군주를 지키는 것은 기사로서 당연한 사명입니다. 이 몸의 사지 말단이 단 하나조차 기동하지 않게 될 때까지. 허가된다면, 혼의 형태로라도 머물며 수호를 유지하는.”
“와아, 너무 감동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입꼬리를 올려 이죽대는 리나 씨가 커다란 트윈테일을 휙 돌렸다.
실제 그녀의 안구에는 약간의 습기가 차올라 있었다.
사실이었다.
3년이 지나도, 이몸의 혼에 내건 맹세의 서약은 결코 변화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저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살아갑니다. 리나 녹스 에파네 페를렌데.”
“지크…….”
내게 다시 고개를 돌린 리나 씨가 양팔로 어깨를 끌어안아 야릇한 포즈를 취하며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더니 돌연 눈을 사팔뜨기로 모으며 혀를 빼물었다.
“하나도 안 멋져!”
“아, 그래요? 기껏 잔뜩 폼 잡았는데!”
풉, 동시에 터지는 폭발적 폭소.
“하하하하하! 뭐야아! 이게 뭔데에!?”
“크크큭! 핫하하! 뭐긴요! 이게 이거죠!”
나와 리나 씨는 동시에 쿡쿡 웃었다.
어쩐지 깊게 묵혀져 숙성되었던 응어리가 빵 터진 느낌.
역시 사람은 웃어야 한다.
그래야 굳은 마음도 풀리는 법.
한참의 해소의 시간이 지나고는, 나는 정장의 옷깃을 단정히 여몄다.
“내일은 저희 공방의 휴무일이니, 아예 대놓고 찾아올 것입니다. 리나 씨는 잠시 공방에서 나가 계시기를. 사이에 끼면 굉장히 애매한 입장일 테니까요. 저는 그녀에게 당신이 외출했다고 하며, 잠시 기다리라고 할 것입니다.”
“괜찮겠어?”
“제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비효율적인 빨갱이 서큐버스를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저의 방식대로이니, 너무 과정과 처리에 대해 뭐라 하지 마시길. 행여나 다시 돌아오셔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의 모습을 목도하셨을 경우에는, 적잖은 충격에 휩싸이실 수도 있습니다.”
“절대 죽이는 건 안 된다? 그냥 따끔한 혼쭐 정도로, 두 번 다시 창관의 창이란 단어조차 안 튀어나오게 할 수준이면 돼. 만약 죽이면 그때야말로 너나 나나 마계에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해질 테니까? 진짜 최악의 선택지인 중간계 도피행을 택해야 할지 몰라?”
“명심하겠습니다. 딱 죽기 직전의 수준까지만 혼쭐을 내겠습니다. 음탕한 서큐버스에 걸맞는 방식으로.”
가늘게 눈매를 휜 리나 씨가 양팔을 크게 치켜올려 기지개를 켰다.
“흣, 차차차아……! 지크, 너랑 이야기하고 나니까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러니까, 이제 매대를 안 봐줘도 괜찮아. 근무표대로, 내가 이제 내려가서 볼 테니까 너는 개인실에 돌아가서 휴식을─”
“아니요, 제게 위임하셨으니 그냥 계속 누우셔서 쉬시기를.”
너무 오래 떠들었다.
“오후 영업 시간입니다.”
“뭐? 나는 진짜 괜찮은데?”
나는 뒷걸음질로 그녀의 침실에서 물러나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등을 돌려 1층으로 향했다.
현관문 좌측에 위치한 매직 셔터를 내려 닫은 매대에는, 마평원 제르디아에 들어가기 전에 포션들을 구입하려는 마족들의 웅성거림이 금속의 표면에 울려 반사되고 있었다.
서둘러 카운터 우측 하단의 모서리에 부착된 매직 스위치를 누르는 것으로 셔터를 개방했다.
나의 무장이며 복장이자, 근무복이며 전투복인 집사복 아다마스를 툭툭 두드려 먼지를 털어내며 첫 번째 손님을 맞이했다.
닭대가리의 좌우로 세 쌍이나 돋은 여섯 뿔이 인상적인 치킨 레서 데몬에 화사한 영업용 미소를 머금었다.
“어서 오시기를. 상시 웃음과 사랑이 넘쳐나는 금장미의 화원. 연금공방 에우포리아에.”
이미 방침은 정해졌다.
빨갱이 서큐버스를 조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