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서큐버스-72화 (72/80)

〈 72화 〉 서큐버스의 사명

* * *

“누구십니까.”

평일의 점심 휴식 시간, 나는 때아닌 손님의 방문을 받았다.

“안냥~!? 리나 있어어어어~!?”

화사한 눈웃음을 보이며, 팔짱을 끼지 않은 남은 손을 들춰 높게 흔들대는 여성.

한 가닥 정수리에 높게 올려 땋은 포니테일이 심히 색정적인 복장의 허벅지까지 늘어져 살랑댄다.

“호문쿨루스~! 내가 지금 리나가 안에 있냐 묻고 있는데에에~?”

보다 화사히 웃는 좌우 옆머리에 산양의 뿔이 돋은 서큐버스가 고개를 기울이며 검지로 자신의 볼을 짚었다.

석유처럼 시커멓고 끈덕진 느낌의 흑발. 피처럼 새빨간 피부. 백옥처럼 새하얀 톱니형 상어이빨.

붉은 피부 서큐버스의 새카만 눈자위에 갇힌 진청색 눈동자가 요악스레 빛났다.

나는 지긋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며 팔을 가슴에 맞붙여 정중히 사정을 설명했다.

“계시기는 하나, 현재 에우포리아는 오후의 영업을 위한 휴식 시간에 있습니다. 저 역시 점심을 먹던 와중이었습니다. 근무자들인 저희 역시 법적으로 정당한 휴식을 보장받는 때이지요. 어지간히 급한 사안이 아니며, 사적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미리 예약을 잡으시거나 근무 시간 이후 재방문해 주시는 게─”

타악! 나의 오른쪽 어깨를 세차게 떼미는 손짓에 주춤대며 물러났다.

“얍! 비켯! 선임전사가 후임전사의 집까지 찾아왔는데, 법적 영업 시간과 휴식 시간이 어디에 있어! 당연히 무슨 일을 하고 있건 튀어나와 모셔야지, 재방문은 무슨! 건방지게시리! 아햐햣!!!”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요사스럽게 떠들썩한 폭소를 터뜨리는 서큐버스가 그대로 들어섰다.

파악! 일절의 빠꾸조차 없는 강렬한 어깨빵에 떠밀린 나는 안쪽으로 열린 현관문의 문짝까지 밀려났다.

“어딜 인형 따위가 가로막는데에!? 흥~ 흐응. 나, 나앗!”

폭발적 흉부 아래로 팔짱을 낀 서큐버스가 탄실한 각선미의 허벅지까지 감싸는 롱부츠를 내딛는다.

달달한 몽마의 향기가 코끝을 지나치며, 혈압이 상승하고 아랫도리의 물건이 폭발적으로 치솟는다.

“꼴에 남자라고 또 곧추서기는. 에휴, 쯧. 인형 거는 아무리 크고 양이 많아도 안 먹어~! 나 생각보다 비싼 여자다아~!?”

나의 눈앞으로 정수리에 높게 올려 묶은 롱 웨이브 포니테일이 살랑대며 지나쳤다.

168센티미터 정도인 리나 씨와 파릴케, 조금 큰 170센티미터 정도인 아비카보다도 훨씬 큰 173센티미터 정도일까?

여자치고는 꽤나 키가 있는 서큐버스였다.

그래 봤자 수천이 넘어가는 마의 일족들에서는 남녀의 구분조차 불가능한 외형과 몇 미터도 넘어서는 체격도 넘쳐나지만.

그야말로 서큐버스의 결정체이자 전형답게 호리호리하고도 쭉쭉빵빵의 핏빛 피부 미녀가 공방에 들어섰다.

“…….”

나는 왼눈의 모노클을 올려 쓰며 거실로 들어서는 서큐버스의 뒤태를 만개발기 상태로 바라보았다.

리나 씨와 그닥 차이가 없는 에나멜처럼 검은 빛깔의 올 블랙 복식.

D컵은 되고도 넘칠 듯한 흉부는 브라탑 형식의 미니 코르셋에 휘감기고, 풍만한 살집으로 육덕진 히프는 로라이즈 팬티에 감싸였다.

거실로 직행하는 서큐버스의 음란한 히프 모핑과 함께 허벅지까지 늘어져 살랑이는 기나긴 꽁지머리를 보며 현관문을 닫았다.

문을 닫고 들어서자 섀도 디어의 가죽을 가공한 소파에 다리를 꼬고 멋대로 앉은 서큐버스가 보였다.

“리나 불러와.”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메엘 녹스 파키나 슈렐리안. 그녀가 속한 음몽군단 몽염사마단 늪뱀연마대 2대마대 1중마대 3소마대의 소마장이야.”

“알겠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말렴~!”

화사히 웃는 서큐버스에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나는 즉각 2층으로 직행했다.

계단을 올라서자 전방에 리나 씨의 침실이 나온다.

당연히 현재는 사용하고 있지 않는 그녀의 침실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좌편의 문이 닫힌 화장실과 너머의 마찬가지로 닫힌 욕실도 패스.

마침내 복도의 끝에 도달해, 좌측 약초실이 아닌 우측 연구실의 문고리를 젖혔다.

몽마 특유의 자욱한 화향이 깃든 내부에는, 커다란 금빛 양 갈래 머리를 바닥까지 늘어트린 서큐버스가 창가에 위치한 작업 책상에 웅크리고 있다.

“응? 지크? 무슨 일?”

쭈루룩, 쭈루루욱. 음탕한 물소리를 내는 그녀가 동그란 눈을 내게 서서히 돌렸다.

찻잔에 담긴 백탁한 액체를 연신 내꽂은 스트로로 쭉쭉 들이킨다.

어젯밤 침실에서 그녀에게 잔뜩 쌌던 나의 정액이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응?”

스트로를 입에서 완전히 뽑은 그녀가 입가 주변의 가득한 백탁액을 할짝였다.

“손님? 휴식 시간에 말이야? 도대체 누군데?”

“리나 씨가 속한 마왕군의 선임전사. 메엘 씨라고 합니다.”

“뭐어어어엇!?”

화들짝 경악한 리나 씨의 트윈테일이 대각선으로 크게 치솟았다.

하마터면 서큐버스의 식사를 바닥으로 떨어트릴 뻔했다.

그녀의 책상에 놓인 플라스크에는 파쇄된 약초의 알갱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 그 작자가 대체 왜!? 나의 공방에는 어째서? 내가 뭘 잘못했어!?”

“그건 저도 모르지요.”

“표, 표정이 어땠어!? 혹시!? 무지 화났다거나?”

“일단 화사히 웃고 계십니다. 몽마들은 포커페이스가 뛰어나 표정으로는 알 수 없다지만.”

“힉! 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얏!”

리나 씨가 찻잔에 담긴 나의 정액을 다급히 스트로로 쭉쭉 들이켰다.

그러고는 컵을 책상에 내팽개치며 나의 연구실보다 난잡하고 복잡한 카오스의 도가니에서 다급히 뛰쳐나갔다.

“뭐지…?”

나는 그녀만큼 급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늘상 변화가 없는 그녀의 방의 너무도 어수선한 상태를 잠시 정리한다.

대강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 놓고는 적당히 뜸을 들이며 나왔다.

그러고는 문을 닫으며 복도로 나오자 여자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2층까지 요란히 들려왔다.

“아, 하하하핫!!! 그, 그러셨구나!”

“그렇지! 그렇지!? 오, 호호호홋!!!”

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것 없이 그저 쩌렁한 폭음이다.

오직 수다에 돌입한 여자들만이 낼 수 있는 고유의 종특적 사운드.

계단을 내려오자 나의 서큐버스와 붉은 서큐버스의 사이에 화사한 웃음꽃이 피어난다.

내게 흘긋 돌린 리나 씨의 시선을 받고는 주방 쪽으로 향했다.

연금술사 이전에 집사가 본업인 나는 고유한 스킬을 개발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공방의 손님의 기호에 맞춰 음료를 타고 과자를 준비해 다과를 내는 것이다.

통상적으로는 리나 씨가 내게 무엇을 타라 명확한 지시를 주는 편이지만, 이렇게 애매하게 눈짓만을 줄 때도 부지기수로 많다.

그럴 때는 여지껏 축적한 경험과 독학한 지식을 바탕으로 나의 재량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주방에 당도한 나는 즉각 내장식 화마석으로 가동하는 매직 스톤 레인지의 스위치를 돌려 켰다.

그러고는 상단에 부착된 찬장으로부터 차향과 풍미에 따라 찻잎들을 티백들에 세세하게 분류한 그물망 뭉치를 꺼내 들었다.

연금술사는 약초를 필수에 가깝게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이런 것도 박식할 수밖에 없다.

중간계와는 다소 다른 식생군을 지닌 마계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다양한 식물류들이 자생하는데, 개중 일부는 평시에는 약성을 잘만 띄다가도 그릇된 온도에 노출되거나 가열을 잘못한 것만으로 독성을 띄게 되는 등 취급에 주의 사항이 요구된다.

“애매할 때에는, 무난하게 간다.”

사용을 마친 매직 스톤 레인지의 스위치를 다시 돌려 잊지 않고 끈다.

나는 물이 팔팔 끓어 김을 내뿜기 시작하는 찻주전자의 물을 찻잔 둘에 각기 나눠 들이부었다.

그물망에서 이미 정했던 티백 둘을 뽑아 찻물들에 투하.

김이 솔솔 피어오르는 차받침 둘을 양손에 각기 잡아 측면의 접시꽂이로부터 꺼낸 직사각형 은쟁반에 담는다.

중간에 다른 소형 접시를 추가적으로 놓고는 다시금 거실로 직행한다.

“아, 하하하핫!!! 진짜, 웃겨어! 어떻게 그 남자가 내게 그런 말을 했을까나~?”

“그러게 말이에요! 오호호호홋!!!”

실로 요란한 걸즈 토크가 1층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주방과 거실의 사이에 위치한 1층 화장실 건너편에 등을 지고 멈춰 섰다.

내부 공간이 안쪽으로 조금 트인 정면에는 거울이 붙어 있고, 밑의 붙박이형 서랍장 위의 공간에 놓인 바구니에는 온갖 제과류를 위시로 한 과자들이 담겨 있다.

역시 애매하기에 무난한 것들을 골라 잡는다.

마계산의 말린 과실들과 곡물류들을 뒤섞은 비스킷들을 중앙의 소형 접시에 담고는 마침내 거실로 나아갔다.

“호호호호호! 확실히 남자들은 이따금 그런 뻔히 보이는 말과 행동을 한다니까요! 더군다나 우린 그쪽에 특화된 서큐버스다 보니, 그런 게 그냥 보여~!”

“아, 하하하핫! 그렇지!? 그치!? 리나!? 역시 너도 그렇게 볼 줄 알았단다아~!”

트윈테일을 요란히 흔들어대며 웃는 리나 씨와 만만치않게 포니테일을 성대히 휘적대는 서큐버스의 사이로 나아간다.

두 서큐버스들의 사이에 은쟁반을 오른손으로 공손히 내려놓고 물러났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말씀하시기를.”

“고마워, 지크~!”

“어머, 착실한 호문쿨루스로구나! 너가 하도 떠들던 것을 오늘 처음 보기는 했는데! 되게 독특하게 생겼어!? 흄 베이스라며?”

리나 씨가 내게 찡긋 윙크를 날리고, 메엘이라는 서큐버스가 나에게 흘긋 눈길을 흘리고는 다시금 리나 씨에 눈을 돌렸다.

“아, 그게…! 본래 중간계의 흄은 아닌가 봐요. 본래 있던 곳은 동방이라던데….”

“동, 방~!? 어머나! 그 실체조차 불분명한, 서방과는 완전히 풍토와 문물이 다른 세계 말이지!? 그건 신기하구나아!”

이러쿵저러쿵 주고받는 서큐버스들이 동시에 찻잔들을 들었다.

그러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지긋이 눈들을 내리감으며 들이켰다.

리나 씨는 그저 언제나 만족.

메엘이라는 서큐버스는 잠시 눈매를 파르르 떨었으나 이내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호오? 뭐니? 이건? 차향이 독특하네?”

“라이아 허브를 먼저 중불에 우려낸 것에 루루카 향초를 추후 첨가한 저희 에우포리아 특제에요. 압축의 술식을 통해 조금의 손실도 없이 꽉꽉 우려 담은 거예요. 쟤가 만들었답니다? 전반적으로 진정제의 작용을 갖추고, 수면 유도 및 저량의 해독 작용도 갖췄답니당!”

“어머~! 참으로 대단한 발명품이로구나! 유능한 인형이기도 하지! 오호호호홋!!! 호호호호홋!!!”

핏빛 피부의 서큐버스가 들춘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요란한 폭소를 터뜨렸다.

둘의 뒤로 물러나 양손으로 모으고 공손히 시립한 나는 선택이 옳았음에 만족감을 느꼈다.

애매할 때는 무난한 것만큼 최적의 선택이 없다.

두 서큐버스가 잠시 말을 아끼며 점심 휴식 시간에의 티타임을 즐겼다.

이내 리나 씨가 들이키던 차받침을 먼저 모아 맞붙인 허벅지에 내려놓았다.

여전히 깊게 내리감은 눈매로 차를 음미하는 붉은 피부 서큐버스를 심유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이 입술을 달싹대던 리나 씨가 입을 벌렸다.

“음……. 그래서? 이제,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응? 이야기? 계속 하고 있었잖아.”

“아니요, 소마장님…. 지금은 사실 저희의 휴식 시간이기도 하고, 어째서 직접 저를 방문까지 하셨는지 심히 궁금한지라….”

“어머, 불안한 거니!? 선임병이 후임병을 직접 방문해서? 하지만 여긴 부대가 아닌 사회잖아?”

“그렇다 해도, 저희의 진정한 본업은 결국 역시 마왕군의 군무인 걸요……!”

“기특한 말이야! 마족들이 참으로 좋아하며 호평하고 점수들을 내던지겠어! 호호호호홋!!!”

핏빛 피부의 서큐버스가 요란한 바스트 모핑을 자아내며 재차 폭소를 터뜨렸다.

한참을 웃은 그녀도 차받침을 테이블의 은쟁반에 내려놓았다.

서큐버스가 요염히 다리를 꼬며 무릎에 깍지를 끼웠다.

“으응, 그래. 사실 오늘 너를 방문한 목적은 달리 있어.”

“그것이 뭔가요?”

“으음~ 서큐버스의 본업? 그래, 서큐버스의 사명이랄까! 서큐버스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과 같은 것들 말이야!”

리나 씨의 상사되는 붉은 서큐버스가 검은 눈자위를 찡긋 윙크하며 검지를 들췄다.

“서큐버스의…… 사명이라면?”

문맥을 잡지 못한 리나 씨가 앞으로 내린 트윈테일의 머리칼 몇 가닥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아댔다.

그것을 지긋한 미소로 바라보던 서큐버스가 한없이 화사한 웃음을 머금었다.

“너도 이제 슬슬 창관으로 나와야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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