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서큐버스-70화 (70/80)

〈 70화 〉 다크 솔저

* * *

“마왕군에… 입대라니?”

나는 황망한 침음성을 흘렸다.

그야말로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기에.

일순간 내가 들은 말이 무엇인지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마왕군에 입대하라… 말씀하셨습니까?”

“그러하다.”

팔짱을 낀 크루시아가 고혹적인 미소를 내걸었다.

“그대가 금일 초래한 사태로부터 면책되고 싶다면. 제8군단의 군단장인 이 몸의 면책 특권을 전격적으로 발휘해, 오늘 이 현장에 있었던 사태를 원천적으로 무마시키겠다.”

“크, 크루시아 니이임!!! 그, 그게 대체 무슨!? 즈, 즉전! 분명 녀석에게 마투를 거셔서, 저 갈레인의 실추된 명예 회복과 마왕군의 존엄을 살리신다고─”

“네놈은 진심으로 입을 닥치고 있을 필요가 있다! 똥 마려운 개처럼 한마디하면 튀어나와 설레발을 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크루시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격정적 희비가 교차하는 갈레인에게 다이타로스라는 발로그의 호령이 빗발쳤다.

“…….”

나와 제8군단의 여군단장 사이에 연결된 시선이 교차했다.

바라보는 크루시아의 눈빛이 한없이 진하다.

결코 허투나 허언으로 내뱉은 게 아니다.

하아, 도대체?

나는 다시금 마왕군의 군례를 취했다.

지긋이 눈을 내리감고는 정중하고도 최대의 예우를 담은 말투와 행위로, 마족들의 가식적이고도 이중적이기 짝이 없는 화술을 구사했다.

“조금 전의 말씀은 재고하실 필요가 있다 판단되옵니다. 황혼의 어둠보다도 붉으며 검게 타오르시는 존재. 제8군단장의 드높으시고도 존귀하신 군단장님께서, 저와 같이 하찮은 무지렁이에 눈독을 들이실 가치가 있겠사옵니까? 부디, 발언을 재고하소서.”

“아니, 진심이다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속으로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이건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발상이다.

진성의 마족 혐오자인 나에게 마왕군에 입대해,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인 이야기를 자랑거리처럼 떠드는 녀석들과 전우조가 되라?

농담이 아니고 차라리 전생의 군대에 한군두하는 게 낫다.

여기에 비하면 거기는 진짜 캠핑이자 병영 체험이자 보이스카우트로 느껴질 정도다.

“절대 말이 안 되지…….”

가뜩이나 마왕군은 한국의 쌍팔년 군대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폭언과 구타의 문화가 극심할 정도로 만연하다.

서로 쌍욕을 박으며 패고 때리는 게 일상이란 말이다.

그 수준은 정말 사람 잡기 직전의 수준까지 죽도록 두들기고 온갖 잔혹한 고문까지 동원한다.

어차피 마족들은 체질적으로 매우 튼튼하고 강건하기에,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패면 재생술로 회복시킬 수 있으니까.

나보고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마족을 두들기고, 마족에게 얻어맞는 것을 일상처럼 하라고?

절대 사절이다.

내가 두들기는 것은 대환영이지만.

상명하복의 체계에서 선임에 해당하는 마족들에 맞는 것은 기필코 거절이다.

전생의 군대도 개좆 같아 뒈질 것 같았는데, 그 짓거리를 여기서 다시 하라?

누구 혈압 솟구쳐서 고혈압으로 뒈지게 만들 일 있나?

이걸 대체 어찌 거절해야 되는지 쩔쩔매고 있는 나에게, 크루시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니다. 역시 무리겠지. 괘념치 말거라.”

“예?”

이건 또 뭐야?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지긋이 눈을 감은 크루시아가 말했다.

“…그대를 본 것은 금일이 처음이나, 그대는 결코 군문에 어울릴 것 같지는 않아. 무언가, 자유로워 보여.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크루시아가 진자색 홍채의 세로로 갈라진 검은 동공을 요염히 깜빡였다.

“그렇기에 무리겠지. 허나 그대를 종용하고 싶은 생각 자체를 멈추고 싶은 게 아니야. 마왕군의 정식 편제는 아니나, 마경의 토벌단에 지원할 생각은 없는가? 내가 직접 추천서를 써주지.”

역시 스카우트는 끝이 아니었다.

“무리입니다. 저는 본업이 있습니다.”

“마법에도 나름 능한 듯하던데, 마술에 적성을 지닌 자들이나 마술사들이 배속된 마술지원단이나 마방지원단에지원하는 방안도 있다만.변경에서 야만마족과 야생악마의 준동이 극심해지고 있다. 남자 마족은 포식하고, 여자 마족은 강간하는 것들. 우리보다 더욱 잔혹하고 보다 악독한 녀석들이지. 그대가 전선에 즉각 투입될 수 있으면, 교착 상태이던 전황에서 분명 크나큰 진척을 볼 거야.”

크루시아가 더욱 만족스럽다는 듯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권유했다.

마의 일족들로 구성된 20개의 마왕군 군단들은 철저히 순혈만 받는 구조.

마의 일족들과 지상인들의 피가 섞인 반마족 혼혈들과, 타종족들은 당연히 훈련소에 지원서를 내미는 것조차불가능하다.

아무리 강하며 자질이 뛰어나도 예외는 없다.

마왕군은 오직 순수한 마의 일족들만이 입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군부 역시 자신들의 이러한 맹점을 알고 있다.

마왕권에 속한 신민 전체를 출생과 동시에 사망의 순간까지 군대에 묶는다는 것은 자신들의 기준으로는 확고히 혁신적이나, 순혈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혼혈 반마족들을 배제하는 것은 비효율적.

그러한 모순점을 타개하고 그들의 전투력을 활용하기 위해, 마왕군은 비공식적으로 토벌단과 용병대와 지원대 형식의 의용대들을 운용하고 있다.

마왕군과 이러한 계약을 체결한 사회의 모험가 길드나 용병 길드와 같은 온갖 조합들로부터 모인 자들은, 마왕군이 동원령을 선포하는 순간 즉각마왕군에 배속되어 운용되는 구조다.

여기에 혼혈의 마의 일족들도 활동하는 제도.

물론 철저한 비편제다.

“정말 생각이 없는가?강한 전사는 언제나 대환영이다. 앞으로 더욱 강해질 자질이 돋보이는 진주와도 같이 찬란한 자들이라면야 더더욱.”

다크서클의 미녀 마족이, 나의 깍듯이 갖춘 화법이 마음에 드는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끌어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유인지, 그녀는 끊임없이 나를 영입 시도하고 있었다.

마왕군의 일원으로.

이쯤되면 확고히 할 수밖에 없다.

“무리인 이유를 분명히 밝히겠습니다. 첫 번째로, 저는 사회에서 연금술사라는 본업을 갖추고 있습니다. 연금술이란 심히 섬세하며 다채로운 한 폭의 예술과도 같은 학문으로, 정기적인 관측과 정밀한 작업이동반되어야 합니다.이따금은 연구실과 실험실을 교차하며 주야로 자아내지는 변화를 측정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군무가 아닌 사회에서의 마족들이야 주로 몸을 쓰는 본업들에 투자한다지만,저는 오직 머리만을 쓰는 완벽한 두뇌 계열이란 말입니다. 고로 심적으로 심히 피곤한 군무를 수행하는 것은 도무지 무리입니다. 두 번째로, 저는 군대가 싫습니다. 이곳은 아니지만, 저는 이미 군대를 체험한 경력이 있습니다.군대, 좋지요.자국의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집단적인 방위 체계를이룩한집단. 더 나아가, 자국의 것이라 판단되는 고토를 수복하는 운동을 일으킬 수도 있는 실로 동적인 집단. 하지만 그런 조직은 필히 강제적인 명령들과수단들이 수반됩니다. 군법과 계급의 조직하에. 그런 것이 맞는 유형들도 있겠지만, 저는 태생적으로나 성향적으로나 도무지 무리군요. 언제나 자유를 동경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하늘로 날아가는 새와 같은 존재라 스스로를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나는 조금 뜸을 들였다.

눈을 지긋이 감으며 말했다.

“집에 지켜야 할 여자가 있습니다. 잠시라도 떨어지면, 그녀가 신경 쓰여서 도무지 안 됩니다. 가뜩이나 그녀가 군무를 위해 떠날 때는 강제 생이별을 경험하는 참인데.”

잠시 정적이 흘렀다.

“호오~.”

“꺄아아아!”

“우, 우와화화홧!?”

크루시아만이 아닌 전사장들에서도 몇몇 여성적인 음색들이 더 터져 나왔다.

핏빛 손톱들이 비죽한 손가락들로 깍지를 끼고는, 눈을 별빛처럼 빛내는 여자 뱀파이어 이네사.

미녀의 이목구비이나, 퀴클롭스를 연상시키는 외눈의 녹안이 인상적인 여자 카코데몬 뮤라.

“여자를 위해 군무를 거절하겠다구! 그것도 이 마의 세계에 살아가는 존재에 있어서는, 평생보장권이나 다름없으며 천추의 명예로 대대손손 가보로 전달해도 되는군단장의 추천서마저 거부하며!? 승낙만 하면 앞으로 끝없이 올라가는 상향세는 보장된 셈인데도오오!?당신! 무지 좋아 보여어어어! 일단 내 점수는 확실히 땄다고옷!?”

흡사 남자 아이돌의 콘서트에 빠순이처럼 광란하는 급의 전희와 환희가 뮤라에게 터져 나왔다.

이네사가 황홀의 얀데레를 연출하며 지긋이 눈을 감고는 양손으로 뺨을 맞잡았다.

“여자들이라면, 저런 말을 들으면 가버릴 수밖에 없어요오…. 어떤 종족이라도, 남자가 저런 말을 하는데 버틸 수 있을 리가. 좋다아……!”

“넌 남자들의 저런 사탕발림 소리가 좋냐? 능구렁이 같은 속이 훤히 보이는데?”

“발정난 암늑대는 관측의 시점이 다르니 원천적으로 이해가 무리겠구요.”

“야!”

숙명의 악연인 뱀파이어 이네사와 웨어울프 카라가 재차 티격대격한다.

“저런 듬직하고도 멋진 발언에 비하면, 네놈은 군단장님에 빌붙으며 대신 복수 타령이니 마투니 운운하고 말이야! 앙!? 저 남자에게 좀 배워랏! 이 멍청한 자칭 차기 마왕! 크기만 작았어도, 확 납치해서 마염이 타오르는 불가마에 바삭바삭 구워 버리는 건데에~! 데블 바비큐우~! 그런데 너무 커서 바구니에 들어가지를 않네에~!? 끼께께께껫!”

한쪽은 염소의 발굽이나, 한쪽은 인간의 발바닥이 아무리 봐도 실로 인상적인 크람푸스 아켈리드가 시붉은 혀를 기나길게 빼물어 낼름댔다.

지적받은 갈레인의 얼굴이 터질 듯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런 사연이 있다면, 아무래도 제의는 무리겠지요~! 이 아름다운 세상에는 실로 다채로운 존재들이 살아가지만, 각자 보는 시선들과 가치관들도 다르다는 겁니다아~! 허나, 저 남자가 보는 그 여자에 대한 시선은 확고한 듯하군요! 오! 사랑! 평화! 주! 주! 주! 마신의 축복에 가까운 저주가 이 자리의 모두에게 깃들기르을~!”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새하얀 로브, 칠흑처럼 시커멓게 물든 눈알을 번득이는 성스러운 악마가 부르짖었다.

마의 일족에서는 이례적으로 성력과 신성력을 다루며, 마기를 변질시킨 성마기마저 다루는 존재를 태운 다크 와이번이 종의 형질을 간섭받아 심히 힘겨워 보인다.

아가토데몬 데시헬이 그것이 애틋한지 젓가락처럼 비죽하게 돋아난 손톱들의 손아귀로 다크 와이번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시체처럼 창백하고 시허연 피붓빛의 손이 쓰다듬으며 가하는 악마기의 주입에, 혀를 빼물고 있던 다크 와이번이 차차 기운을 찾는다.

“그대들이 보아도 그런 듯하면, 할 수 없는 일인 듯하구나.”

깊게 눈을 내리감은 크루시아가 잔잔히 내뱉었다.

입가의 입꼬리는 상승해 확연한 호선을 그리고 있다.

“죄송합니다. 그것은 저의 의지.”

나는 확고히 밝혔다.

내가 마왕군에 들어갈 수가 없는 이유를.

눈매를 내깐 크루시아가 조금은 씁쓸하게도 느껴지게 말했다.

“이제는마왕군도 슬슬 개혁할 때가 되었다. 마왕이 바뀔 때마다 군의 재편이야 필히 이루어진다지만, 이따금은 너무 정체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모든 마족들과 악마들의 깊은 어둠에 군림하시기에 가장 검으신 마왕 루시퍼 님은 금해로 5,204세. 마왕좌에의 제위와 동시에 기존의 서력을 철폐하시고는, 카오스력이라는 새로운 서력을 제정하셔서 이은지 연 4,323년째다.전대 마왕의 업적과 치적을 철저히 배제하기 위한 단행. 마계에는 순혈만 아닐 뿐인 실로 우수한 전사들이 많아. 그대처럼 원천 자체가 불명이거나, 아예 혈통적으로 격을 달리하는 보석들…. 특히나 마의 일족의 피가 섞인 혼혈의 전사들은 실로 하나하나가 자질이 우수하다. 비록 전투에 특화되지는 않았어도, 보조나 지원을 통해 특수한 능력들의역량을 선보일자들도수두룩하다.그토록이나 우수한 자질들이, 군에뜻이 있어도 입대를 못해용병단이나 도적단을 떠돌며 전전하는 것은 그릇된 실태야. 어째서 우수한 자질의 전사들을 놓쳐야 하는가?”

크루시아가 신랄한 어조와 어투로 돌연 마왕군을 비판했다.

“순혈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마왕군의 입대마저 거부된다는 것이 심히 자원의 낭비와도 같다 느껴진다만….따로 정식의 군단을 편제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만….군부에서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군회마다 내가 매번 발안하는 건의지만, 도통 먹히지를 않는다.이것은 어쩔 수가 없지. 본디 군대란 정체된 집단이며, 마왕군은 그 성향이 더욱 심하다.오죽하면 마왕이 바뀌는 때가 마왕군도 바뀌는 때라는 농도 있으니.”

크루시아가 볼륨이랄 것도 없는 빈약한 볼륨 아래로 간드러지게 팔짱을 꼈다.

살긋이 눈매를 내리감으며 회상한다.

“일찍이 중간계의 성자와 마계의 여몽마가 맺어진 사랑의 결실을 본 적이 있다……. 오지에서 고행하며 홀로 독신으로 살아가던 아직 젊은 세인트에게, 드높은 고농도의 정기를 탐낸서큐버스가 적극적으로 접근하며 유혹을 가한 경우였지.결국 서큐버스는 캠비온을 출산했다. 오두막에서 인간과 몽마가 이어진 품에 안겨,한쪽 머리에만 앙증맞은 외뿔을 단 작은 생명.왼손에는 성속성의 신성력을, 오른손에는 마속성의 마기를각기 양손에 천진난만한 해맑은 얼굴로 다루는 캠비온 아기….그렇게나 신비로울 수가 없었다….그 아이는, 양측에 내성을 갖춘 셈이니까. 하나하나의 순수한 위력의 발현은 순혈의 천족이나 마족보다 못해도, 둘을 모두 다룬다는 것에서 이미 전술적 메리트는 더할 나위 없이 크다.우리 마족은 혈통적으로 광속성과 성속성에 취약하다. 역설적으로 천족도 혈통적으로 암속성과 마속성에 취약하지. 서로가 서로를 완벽히 해치는 상극인 것이다.마왕군은, 어째서 이런 혼혈 전사들을 대거 양산할 생각을 안 하는지?그 점을 통해 종의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깊게 눈매를 내깐 크루시아가 사뭇 씁쓸한 어투로 토로했다.

고지식하며 오만한 성향들이 많은 마왕군 군단장들치고는믿을 수 없는 발언과 사고방식의처사였다.

아마 이 정도의 오픈 마인드는 마왕군의 간부들에서도 가히 톱급이 아닐까?

“남자 마족들과 지상의 여자 종족들, 여자 마족들과 지상의 남자 종족들을 대거 엮으면 전폭적인 군의 전투력에서 혁신이 일어나겠지만, 우리는 성욕이 희박해서 생식력이 낮기에 어쩔 수가 없구나……. 애초 중간계인들과 마계인들 모두가, 서로를 비슷한 객체로 보기보다는 각자를 무언가 어설프게 닮았을 뿐인 존재로 보는시선도 허다하니. 아마 저 녀석들조차도 중간계의 남녀들이, 남자들이나 여자들로 보이냐는 물음에는 엉뚱한 대답들을 내놓을지 모르겠구나. 그냥 비슷하게 생긴 동물들로 볼 자들도 있겠고. 마계 전체에서라면 지상의 남녀들과 육체적으로 이어지라는 발언에 질겁하거나 반사적으로 경기를 일으키는 부류가 태반일 거다.”

크루시아가 한쪽 팔짱을 풀며 주변을 두른 흑야마에 빙 둘러 삿대질해 가리켰다.

몇몇 흑야마의 일원들이 입꼬리를 끌어올리거나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 실로 개방적인 시야를 갖춘 마왕군의 군단장에 감탄을 표했다.

“통상적인 마족들과는 완벽히 다른 사고와 발상이로군요. 당신과 같은 부류가 많아진다면, 중간계에서는 심대한 위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래 살다 보니 사고방식이 변했을 뿐이다. 나 역시 군단장으로 처음 부임하고는, 몇백 년은 오만한 객기와 광오한 아집에 휩싸여 살아갔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살아가다 보니 보이더군. 결국 나는 꽉 막혀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열리려 시도할 뿐이다.”

여지껏 가장 궁금하던 점을 물었다.

“이곳에는 어떤 용무로?”

“지금 그대와 저 녀석이 휘말린 것과 같은 사안이다. 나의 군단 일부가 이쪽 마군도의 전투력이 부족한 음몽군단의 전사들을 지원하며 주둔하고 있으니, 마계 각지에서 찾아든 휴가자들이나 토착민들과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필수다. 몇몇 녀석들은 몽마들이나 기타 다른 마군도에서 몰리는 사복 마왕군 녀석들과 마투를 벌이기 일쑤지.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문제가 필히 발생하기 마련이다.벌써 12명이나 사망자가 발생했다. 마전사를 12명이나 손실했다는 말이다. 고로 여기에서 개정되는마재판에 휘하 전사장들을 데리고 책임자이자 참고인들의 신분으로서 참석할 예정이었다.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다만.”

“참으로 피곤하시겠습니다. 앞으로의 여정이 결코 순탄치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대가 이 몸의 사정까지 헤아려 주는가? 사려 깊군.”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당신의 강인하고도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무상이 품은 흥미. 본디 이쪽의 거주민이 아닌 자로서 느낀 자그마한 우려일 뿐입니다.”

“호오, 본래 이쪽 세계의 출생이 아닌 겐가? 그건 흥미롭군.”

크루시아가 한쪽 눈을 가린 앞머리를 슬쩍 떠넘기며 눈동자를 깊게 깜빡였다.

지금은 극히 목소리를 낮췄기에 나와 그녀 외에는 누구도 듣지 못했다.

명백한 서로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교차.

나와 그녀는 한동안 서로를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이내 팔짱을 낀 크루시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심히 아깝군. 현재는 그대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방안이 없어.”

잔악한 여왕의 풍모, 크루시아 녹스 아테르 리스타엔 메르케니샤는 잔인하게 웃었다.

녹스라는 마족성의 뒤에 아테르라는 대마족성마저 지닌 고결하고도 강건한 무위의 증거.

“빌어먹을. 생각하면 할수록 탐나는데.”

“세상에는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내뱉은 나는 이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7흑야마들에 시선을 돌렸다.

데블과 동렬인 임프, 웨어울프, 뱀파이어.

데몬과 동렬인 발로그, 크람푸스, 카코데몬, 아가토데몬.

7명의 전사장들이 제각기 이채롭고도 독특한 눈동자들을 빛내고 있었다.

크루시아가 왼쪽 손매에 시마법 리얼 타이머를 발현해 현시각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제 갈 때인가…….”

여군단장이 전사장들에게 흘긋 시선을 던졌다.

그러고는 내게 제8군단의 문양이 박힌 칠흑처럼 시커먼 망토를 나부꼈다.

등을 돌려 곧장 자신의 전사장들에게 걸어가기 시작한다.

눈매에 어둡게 음영이 드리워진 갈레인이 나를 암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못마땅할 수밖에 없는 표정으로 보다가, 이내 입을 열어 궁시렁댄다.

“…내가, 오늘의 수모를 결코 잊을 줄 아나?”

“어쩌라구. 씨발아. 또 협박질이니?”

“두고 보자. 이제 오늘부터 네놈은 마계에서 결코 살아가지 못한다.쓰레기 인간.”

“아가리 닥쳐! 개새끼야!내가 넘어온 역경이 몇인데 너 따위를 무서워할 것 같냐!?”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 네 녀석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네놈을 괴롭게 하고 비탄에 절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이제부터 내가 살아갈 목적의 하나로 추가되었다.”

“수십이든 수백이든 패거리를 떼거리로 끌고 와라! 죄다 죽여 버리면 끝이니까! 시체들은 공방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는 헬하운드 패밀리에 개밥으로 거하게 처먹여 버릴 테니까!”

크루시아가 나와 갈레인에 사납게 시선을 흘겼다.

“둘 다 입 닥치지 못할까! 이제 마투는 종결되었다! 금일의 사건은 없는 일이 되었다! 이미 끝난 일을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말도록!”

아랑곳없이 이죽대는 갈레인이 가느다랗게 눈썹을 치켜올렸다.

“자이르가 말하기를, 공방에 서큐버스가 있다고 했지….네놈이 사는 곳과 인적 사항을 훤히 아는데, 과연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을까나……? 어느 날, 불행을 자초할 대규모 습격이 있을지도. ……그래. 여자를 먼저 노리는 편이 좋겠군.”

이성을 잃은 나는 일갈을 내지르고 말았다.

“야이, 씨발 새끼야!!!”

“갈레이이인!!! 네 이놈!!!”

나의 일갈과 함께 크루시아의 팔이 움직였다.

“크어하아악!!! 끄아하아아악!!!”

돌연 새카만 전격이 크루시아의 팔이 흐른 궤도를 따라 피어나 갈레인에 불붙었다.

“끄어허억!!! 크어허어억!?!? 쿠, 으하아아아악!?!?!?”

한동안 세차게 휘도는 칠흑의 전격에 온몸이 휩싸여 제자리에서 격렬히 경련한다.

헤벌어진 입에서 허연 거품까지 스멀스멀 뿜어내는 녀석이 이내 허옇게 넘어간 백안으로 축 늘어졌다.

털써억, 갈레인이 바닥에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쯧, 결국 이 몸의 손을 쓰게 만들다니.양해하도록. 녀석이 좀 그렇다.”

송곳니들을 내보이는 크루시아가 인상을 험악히 일그러트리며 힘을 발휘했던 팔을 털었다.

결국 나의 선택은 옳았다.

갈레인 패거리에 덤비듯 달려들었다면, 나는 그녀에게 일격에 참살당했다.

지금의 수준이라면.

마계에서의 생존을 위해서는, 적당한 겸손과 겸양이 상시 필요하다는 반증이었다.

“에휴, 별 없어 보이는 것들이 뭐 이런 시답잖은 난리법석을? 진짜 허접해서 못 봐주겠네.”

“괜찮아, 괜찮아~! 다들 이러면서 친해지는 거야. 미래엔 너네가 베프가 될지 어떻게 알아!?”

웨어울프 카라와 카코데몬 뮤라가 각기 심히 엇갈린 반응들을 내보였다.

팔짱을 낀 크루시아가 까칠한 표정으로 전사장들에 고갯짓했다.

그에 발로그 다이타로스가 올라탄 특별히 거대한 다크 와이번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뻗은 갈레인에 다가와 엄지와 검지만으로 주사위를 집듯 가볍게 들춰 쌀가마니만큼 거대한 한쪽 어깨에 걸멘다.

그대로 되돌아가서 갈레인을 자신의 안장 후방에 과묵하게 결박하기 시작한다.

물에 젖은 해먹처럼 축 늘어진 갈레인이 안장 뒤의 여유 공간에 비룡의 몸도 크게 빙 둘러 밧줄로 칭칭 묶였다.

공교롭게도 곁의 임프 시라크의 안장 후방에는 자이르가 결박되어 있다.

“하아. 그 녀석 참 끝까지 애먹이고 민폐 끼치는 자식이군.”

“어떻게 하겠어? 배경과 능력은 훌륭해도, 타고난 그릇이 찌질한 자칭 마왕님이신데.”

느른히 넋두리하는 시라크에 카라가 대놓고 이죽댔다.

과묵한 다이타로스가 자신의 특대형 다크 와이번에 올라타 다시금 과중을 부과했다.

크루시아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보며 말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짐짝과 예전에 뻗은 짐짝의 회수를 완료했군. 남은 녀석들은 매장에서 피해액을 추산한 뒤에 복귀할 테고. 이제 우리는 다른 한심한 녀석들이 저지른 죄상을 듣기 위해 마재판에 참석하러 가야 한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동편 하늘에서 검은 점이 깜빡인다.

안장에 주인을 태우고 있지 않은 다크 와이번이었다.

그것을 보는크루시아가 다시금 내게 흘긋 시선을 돌렸다.

나는 지긋이 눈을 감으며 정중히 군례를 취해 보였다.

카랑한 쇳소리를 내는 다크 와이번이 공터에 요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홀로 착지한다.

그대로 힘껏 몸을 날린 크루시아가 자신의 앞에 내려앉은 다크 와이번에 올라탔다.

몸을 돌리며 안장에 착석한 크루시아가 호기 넘치게 고삐를 양손으로 낚아챘다.

상큼히 웃는 크루시아가 다크 와이번의 고삐를 세차게 휘저었다.

“자아! 다시 날아올라라!”

공터의 여기저기에 거친 황풍이 자아내지며 흑비룡들이 비상했다.

“퀴헤에에에엑!!!”

“키시이이익!!!”

“크허어어!!!”

날카로운 쇳소리를 울리며 안광을 번득이는 다크 와이번들이 날아오른다.

안장의 좌우로 제8군단의 문양이 찍힌 검은 천들이아홉 마리 비룡들이 자아내는 돌풍에 세차게 나부낀다.

“얏호! 다시 올라간다구!?”

“늘상 신나네요! 암늑대!”

그와 동시에 카라와 이네사가 다시금 티격대기 시작했다.

흑정장의 적발 뱀파이어가 내게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잘 있어요~! 어디의 흄일지 모를 남자!”

“안냥~! 로맨티스트 옵빠아! 볼 수 있으면 또 보쟙!”

외눈을 빛내는 뮤라가발랄히손키스를 쪽 날렸다.

기타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말소리들이벌써 잔잔한 소성이 되어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군단장, 부군단장, 전사장들이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럼, 또 보자꾸나! 어디로부터 표류해 와서, 어디로 흘러들어 가는지 모를 미지의 전사여! 운명과 인연이 허락한다면! 다시 어딘가에서!!!”

크루시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턱을 들췄다.

그와 함께 충분한 고도에 도달한 다크 와이번들이상공의 서편으로 세차게 쏘아졌다.

땅의 인파가 빙 두른 카페 전방의 공터에 천막마저 날아갈 듯한 자욱한 황사가 자아내졌다.

이리저리 머릿결들이 흩날리는 속에 나는 탄식했다.

“이젠 질리네…….”

대충 오늘 하루만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난 걸까.

그저 소재를 매각하기 위해 길드에 왔다가는 시비에 휘말렸다가72악마교단의 일원을 독대하고.

카페에서는 2차로 시비에 휘말려마왕군의 군단장과 전사장들과 대면하고.

정말 지지리도 개 같은 운의 날이다.

“감히 협박질을 시전해……?”

이후 어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징하게 볼 듯한 느낌이었다.

저런 배경과 치트를 가진 녀석이 이제 독기까지 품었으니.

라이벌이라기엔, 엄청난 쓰레기와 질긴 악연이 생성되고 말았다.

다음에 볼 때는 무조건 힘이 더욱 상승하겠지.

지금보다 더더욱 실력과 무위를 갈고닦아야 한다.

나와 리나 씨, 파릴케와 공방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피나도록 단련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했다.

녀석이 어떤 형태를 취해 복수를 하러 찾아오더라도, 격퇴할 힘을 갖추기 위해서.

거물들의 퇴장과 함께 주변의 땅과 하늘을 구름처럼 뒤덮었던 마의 일족들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단지 하늘땅의 몇몇만이 남아 내게 손가락질하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궁시렁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카페의 전경을 고개를 돌아보며 황망히 내뱉었다.

“2층의 쓰던 양피지들과 잉크통도 회수해야 되는데…….”

들어가면 또 잔류한 갈레인 패거리들과 필히 마주칠 테고.

다시금 녀석들과 시비가 벌어질까?

아니면 이미 서로가 주의를 받은 입장이니 아무 일도 없을까?

재차 하늘로 시선을 올린다.

나는 마계의 핏빛 하늘에 수렴되어 가는 아홉 개의 검은 점들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하루만에 너무 피곤한 일을 겪었다.

“집에 가고 싶네…….”

그저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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