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다크 솔저
* * *
“이제, 금일의 사안에 대해 논의할 때군.”
크루시아의 근엄한 미성이 공터에 울렸다.
“누가 먼저 시비를 시작했지?”
여군단장의 진자색 자안이 나와 갈레인을 동시에 향했다.
“…….”
“…….”
서로는 동시에 침묵에 빠져들었다.
급작스러운 진상 규명의 개시였기 때문이다.
“묻겠다. 누가 먼저 시비를 시작했지? 참고로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크루시아가 그윽한 시선을 내게 흘렸다.
“아무쪼록 그대도 협조해 주었으면 좋겠군. 양쪽 이야기를 들어야 하니까.”
나는 폭발할 듯한 심경을 필사적으로 갈무리하며 결연한 포커페이스를 연출했다.
“무엇이든 질문하시기를.”
“실로 독특한 능력을 사용하더군. 그게 무엇인가?”
“창석술 파워 스톤. 음욕의 여신 바빌론에게 하사받은 가호입니다.”
일순간 구름처럼 둘러진 인파의 좌중에 술렁임이 자아내졌다.
7흑야마의 일부도 고개를 기웃대거나 몸을 들썩였다.
“그러한가…. 바빌론이라면 몽마들의 수호자들이기도 하며, 세상의 모든 음탕한 욕정을 품는 존재들을 깊이 품는 대탕녀를 말함이로군. 역시 보통의 능력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윽하게 눈매를 내리깐 크루시아가 잠잠하게 받아냈다.
“……!”
갈레인이 육안적으로도 눈에 띄게 동요해 보였다.
사실 녀석을 겨냥한 것도 있다.
나도 녀석과 동일한 디바인 기프트의 보유자니, 나를 건드리려 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어필.
이렇게 된 이상 세게 나가는 것이 좋다.
크루시아가 다시금 독촉의 눈빛을 갈레인에게 흘겼다.
그녀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저, 저 녀석이……! 저의 소마대원인 자이르와 코텔, 가르가와 얘기하던 도중, 뜬금없이 폭력을 휘둘러서─”
“말은 똑바로 해야지? 개새끼야? 내가 사이코니? 아무나 붙잡고 뜬금없이 패게? 같잖은 시비를 털리면 모를까.”
크루시아가 깊게 다크서클이 드리워진 특유의 퇴폐적 시선을 나와 갈레인에 교차로 훑었다.
하아, 허스키하고도 카랑한 음색의 탄식성.
“일단 말로 발생한 시비는 말로 푸는 편이 좋아. 그것이 설령 자신의 기준점에서 용납하거나 용인할 수 없는 성질이어도 말이지.다혈질적인 기질과 폭력적인 성정은 이 마의 세계에서 크게 환대받으며 용인되는 표상이라고는 하나, 결국 먼저 참지 못하고 저지르는 녀석이 손해이지 않겠는가?몸을 사리는 놈이 나대는 놈보다 훨씬 장수하지 않겠는가?”
묘하게 크루시아의 말은 논리적이며 냉철했다.
어쨌든 결국 먼저 손찌검을 가한 건 나였으니까.
전생에서도, 이쪽 세계의 중간계나 마계도 그렇지만 꼭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은 하층민들과 하류 계층들이다.
군무가 아닐 때의 사회에서의 하급 마족들은 마왕군에서 받은 봉급을 술과 도박으로탕진하기에 바쁘다.
그렇게 돈을 날리고 생활고가 닥치면, 다른 휴가자들과 함께 지상에 나가 약탈에 몰두하는 게 현실이다.
중간계에서 악행과 약탈로 이름이 드높은 것들은, 마계에서는 하류 계층에 속하는 마족들이란 말이다.
이런 성향들은 진급과 함께 완벽히 역변해,역설적으로 중급전사 정도만 되도 은근히 몸들을 사린다.
그렇다고 시비에 털리면 참는 건 아니고, 나대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먹고 마실 것과 입을 것에 전혀 부족함이 없으니까.
마왕군 전사장의 자격이 있는 상급전사가 되면,마계의 온갖 명소들로 이름난 휴양지들에서 진미와 미주를 대동한 멋드러진 휴가들을 보내기에 바쁘다.
처한 현실과 각기 형편에 따라 빈곤과 부유가 교차하는마계의 사회상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쪽 사회에서 관측할 수 있는 빈부 격차의 단상.
“계속 묻고 싶은 게 있었다만.”
크루시아가 퇴폐적인 시선을 인파에 낀 다크 솔저들에 돌렸다.
“네놈들, 현재 근무 도중이 아니더냐? 시내 순찰을 하던 도중, 카페에서 노닥거리고 있었나?”
“흐엇!”
“헛!”
마왕군 칠흑병들로부터 동시에 탄식성들이 터져 나왔다.
“허, 어어어…….”
갈레인이 바보처럼 경직된 얼굴로 기나긴 장탄식을 흘려냈다.
“군무자 후임병들이 휴가자 선임병을 먼저 꼬드겼을 리는 없고. 보나마나 네 녀석이 근무 중인 녀석들을 꼬셨겠지. 지상의 레이드에서 얻은 전과를 자랑하고 싶기라도 했을 테니 말이야. 맞나?”
“윽……!”
크루시아의 진자색 눈동자가 시니컬하고도 싸늘하게 빛났다.
“근무 도중 이탈. 일단 그것은 제쳐 두고.”
여마족의 냉랭한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저 갈레인을 대등하게 맞서며 밀어붙이다니.강한 전사는 언제나 존경과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냉철한 시선은 다시금 갈레인에 내꽂혔다.
“반면 네 녀석은 무엇이더냐? 평시에 그토록이나 실력에 대해 자부하고, 자신을 당할 자는 없다며 자랑질하더니 말이야. 모두 허세에 불과했나? 자칭 허구헌날 떠들어대는 차기 마왕?”
“…아, 아닙니다! 크루시아 님! 전반적인 기량은 제가 완전히 우위였습니다! 총마력조차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녀석이! 갑자기 마석을 부리는 이상한 기술을 쓰기 시작하지만 않았어도─”
“아가리 닥치지 못해! 이 구더기보다 역한 놈아!”
여군단장의 쩌렁한 노호성이 터졌다.
“본래 전투란 무위와 기교의 총합! 모든 것이 종합을 이루는 총체적인 예술이란 말이다! 내가 단지 네놈을 거둔 건 다른 녀석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뒷배경이 화려하기 때문이었다! 토양과 대기가기후마다 철저히 다르듯이,실전에서는 어떠한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어떤 변수가 전장에 도사릴지 모른단 말이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서, 자만감에 몸을 내맡겨 임한 것이 네놈의 졸전을 초래했다!인간인지 마족인지 알 수도 없을근본도 모를 상대에게 허덕이던녀석이 무슨 잘난 듯한 말이냐!지상의 나약한 것들이 힘이 없기에 우리에게 도륙당하는 신세더냐!? 아니다! 우리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그 증거로 확실한 준비를 갖춘지상인들에게 마족들이 참패한 사례들은 썩어나도록넘쳐난다! 우리는, 무적이 아니다!!!”
크루시아가마족 특유의 짐승적인 송곳니들을 내보이며 앙칼지게 일갈했다.
“다음번에 예정된 휴가를 반납해라. 네놈의군단장으로서의 직접적인 군명이다.”
그야말로 사색이 된 갈레인이 창백하게 된 낯빛을 부들댔다.
“크, 루시아 님……!”
“싫으면 항명하며 즉각 도전하도록. 마투라면 언제든지 받아 주마.”
크루시아가 더는 듣기도 귀찮다는 듯이 퇴폐적인 미모를 잔뜩 찌푸리며 손을 털었다.
그러고는 흘긋 고개를 돌려 공터 후방의 카페를 쳐다보았다.
“대강 어둠 속에서 사정은 청취해서 알고 있다.카페의 주인장과 점원들의 대화도 들었지.점포의 유리창을부순 것은 저 남자지만, 먼저 시비를 건 것은 네놈의 소마대더군.주인장은 제2군단 해일의 격랑 소속이더군. 점원들은 제3군단 벽력의 전광 소속, 제4군단 광풍의 쇄도 소속, 제5군단 격진의 초래 소속으로 구성되었다.일부러 다양한 군단원들을 받아들여, 각 군단들 사이에 존재하기 일쑤인 알력을 해소하며 사회에서의 화합을 중시하는 성향이더군.같은 마전사들이자 전우들의 점포에 물질적 피해를 입히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냐?”
크루시아가 판결하듯이 내뱉었다.
“2층의 깨진 유리창이니, 네놈이 비상하느라 공터의 깨지고 날아간 포석들의 가격도 모조리 물어내라. 기타 저쪽의 벽면에 마력을 휘감은 날갯짓에 의한 칼바람으로 갈라지고 팬흔적들도 포함이다.죄다 네놈의 급료에서 빼내 배상해라. 중급전사로의 진급에 맞춰 다음 달부터 봉급 인상이 예정이던데, 한동안 금전적 출혈이 좀 심하겠어. 실질적 감봉이나 다름없군.”
“…….”
이제최후의 종언마저 상실한 갈레인이 그야말로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침묵에 빠져들었다.
녀석들의 후임들과 함께 지상에서 벌일 레이드 플랜은완전히 무마되었다.
나는 어쩐지 녀석이 조금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크루시아의 사뭇 냉랭한 시선이 인파 속에서 뻘쭘하게 시립한 다크 솔저 둘을 향했다.
“너희 둘, 지금 즉시 위크 위크엔드의 점주와 면담해라. 우리가 떠나고 나서도, 끝까지 이야기가 해결될 때까지! 그리고, 정확히 얼마만큼의 피해액이 발생했는지 추산해. 모든 보상금은갈레인 녹스 스퀴르갈 발테사이온의 이름으로 걸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예!”
“알겠습니다!”
양팔을 몸에 바짝 맞붙여 차렷을 취한 칠흑병들이 절도 넘치게 군례를 올려붙였다.
전신의 칠흑갑에서 철그럭대는 쇳소리를 울리며 즉각 몸을 돌려 카페로 뛰어들어 간다.
크루시아의 얼음장처럼 엄격한 시선은 갈레인에 뚫어지게 고정되어 있었다.
“네놈은 돌아가자마자 창고에 벌거벗겨져 거꾸로 매달릴 생각해라. 제8군단장. 8만 5천의 마전사들을 거느린 이크루시아 녹스 아테르 리스타엔 메르케니샤가혹독한 매질로 엄정히 다스릴 것이야.죽이면 군의 전투력 손실이 일어날 테니, 적당히 다지고 두드릴 뿐이다. 각오하도록.”
“크, 허억……!”
좌절한 갈레인이 제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 핫핫! 저 갈레인이 저렇게나 낙심해 꿇어앉다니이~! 우리! 지금 꿈꾸는 거 아니지이!?”
“타인의 불행을 보는 게 그리도 즐겁나요? 발정 암늑대? 아무리 웃겨도 일단 겉으로는 숨겨야죠.”
“넌 닥치랬지. 한 번만 더 입을 열면 다시는 날개가 안 돋게 해당 부위를 후벼파 버린다?”
“그렇게 하세요~! 그전에 이미 저는 당신의 털을 모조리 뽑아 털코트를 짜는 중일 테니깐~!”
늑대인간과 흡혈귀가 그야말로 원수처럼 티격댔다.
이를 악물고 으르렁대는 인랑의 주변에 유형화된 투기가 맺힐 듯한 기세가 범상치 않다.
현재는 늑대의 귀와 꼬리조차 존재하지 않으며, 동공형조차 둥그런 완벽한 인간의 외형.
허나 특유의 짐승적인 느낌이 여전히 강렬히 휘돌며, 힘의 개방에 따라 본질을 이루는 늑대의 형질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제 좀 분이 풀리셨는가?”
내게 몇 발짝의 발걸음을 옮기는 크루시아가 은근히 속삭였다.
흘긋 고개를 돌려 완전한 좌절에 휩싸여 어떤 이야기도 들어오지 않는 갈레인의 상태를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은 내가 특별히 눈여겨보는 마전사다. 단련과 수련을 지지리도 싫어하는 마의 일족의 종특답지 않게, 시간이 나면 연무장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다. 녀석이 거쳐간 현장은 항시 피와 땀으로 점철되어 있으니까. 녀석의 유일한 낙은 지상으로 나갈 때지. 현재 군단의 어느 누구도 녀석만큼 열심히 하는 자가 없다. 실로 나날이 다른 폭발적인 성장률이지. 아마 언젠가는 전사장으로 올라올 것이다. 그때의 인원은 8명으로 늘어 8흑야마가 되거나, 도전을 받은 한 명이 죽어서 빠지고 대신 들어오겠지.”
이야기를 늘어놓는 크루시아가 다시금 후방의 갈레인에게 그윽히 눈길을 흘렸다.
“죽음의 문턱으로부터 부활할 때마다 강해져 봤자 별거 있냐며, 다들 대수롭지 않게 보는데, 아니야……. 녀석은 정말 남다르다. 녀석은 제2마군도 이라 출신이다. 제4군단 광풍의 쇄도의 군단장 이네아스 녹스 아테르 팔크리움 발테사이온의 외아들이지. 자식의 무사수행을 위해 내게 녀석을 맡겼다. 보조병인 섀도 파이터와 정규병 다크 솔저에서 서로 함께 군단장으로 올라오며, 온갖 악전과 고투를 함께 치른 둘도 없는 전우이기도 하다.”
크루시아가 내리감은 눈을 잔잔하게 깜빡였다.
“가혹하고 악랄한 것으로 악평이 자자한 성격인 내게 녀석을 강건히 키워 달라 주문하기도 했기에, 일부러 혹독하게 굴리는 감이 있다. 표면과 형식상일 뿐인 체벌 뒤에는, 가장 좋은 대접과 위로를 베풀고 우수한 마의를 붙여 상처의 치료를 돕지. 결코 어떤 잔상처 하나 덧나지 않으며 흉터조차 남지 않도록. 이러는 이유는, 언젠가 녀석이 올라와 내게 군단장을 탈취했을 때, 목숨만은 그나마 보존받기 위해서. 치트를 통제하는 것은, 참으로도 어려워…….”
나는 이미 바윗덩이처럼 굳었던 마음에 뻑뻑한 자갈마저 끼는 느낌을 받았다.
제4군단장의 아들.
기적적으로 녀석을 잡았어도 결코 편한 전개가 아니었다.
마족은 혈육의 정이 희박하더라도, 힘이 있으며 입지가 확고한 가족의 일원에게는 극진한 대우.
아마 죽지 않고 이득도 취하기 위해서.
내가 갈레인을 죽였다면, 온갖 불법적인 어둠의 루트로 수배한 자들에게 척살령을 내렸을 것이다.
마계 어디에서든암살자들과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추적당하는 신세로 몰렸을지 모르는 일.
출신은 금수저에 능력은 치트.
나는 이런 녀석과 악연의 스탯을 쌓은 셈인가.
“그리 화려한 뒷배경을 가진 녀석이, 왜 저렇게 막무가내에 망나니랍니까? 다음 마왕이 되실 분께서?”
“그야 나도 모르지. 대체적으로 계급이 낮은 전사들이 질도 낮은 경향은 있다. 허나, 녀석은 힘이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무마되며 용인되는 것이지. 그것이 마계다.”
크루시아가 진하게 웃으며나지막한 쓴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마계에 마왕을 꿈꾸며 자칭하는 녀석들이 한둘이어야지. 수백, 수천도 거뜬히 넘어간다. 하지만 녀석은 진짜다.아마 빠르면 몇십 년, 적어도 몇백 년 이내에는 나의 자리도 밀어내고 군단장으로 올라오겠지.마왕군은 폭언과 구타가 일상화되었다지만, 너무 지나치면 체벌자에 대한 원한과 업보가 되는 법이다.나의 신변을 위해서라도 녀석에 더 이상의 체벌을 가하는 것은 힘들 듯하군. 또한 배상이 이루어진다면 이미 충분하기도 하다. 부디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나는 한일자로 굳게 입을 다물었다.
역시 녀석은 목을 따는 게 옳았다.
마족의 전형을 투영한 녀석은, 사악하고 잔혹하면서도 마의 일족의 종특답지 않게 수련에 매진하는 무모한 노력가이기도 하다.
죽음의 문턱으로부터 부활할 때마다 강해지는 마신의 가호자이기도 하다.
마왕이 되고도 남을 녀석이다.
이대로 살려 둔다면, 지상의 무고하고도 죄없는 사람들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초래할 거다.
더 이상 나와 관련은 없는 부류들이라도, 그런 사례들을 들으면 결코 개운치가 않다.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녀석과 확실하게 악연의 스탯이 축적된 느낌이었다.
“빌어먹을……!”
어째서 의지와 무관하게 욕지거리가 나오는 걸까.
“하, 아……!”
다시 정신을 차린 갈레인이 기상해서는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추스리고 있었다.
아마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도 전혀 모르는 듯한 눈치.
이윽고 붉은 적안을 내게 서서히 들췄다.
나와 갈레인의 시선이 무형의 불꽃을 튀기며 허공에서 사납게 맞부딪쳤다.
“빌어먹을 흄……! 쓰레기 자식.”
“뭘 꼬라보냐? 씨발 새끼야.”
다시금 조금 전에 싸우던 때처럼 서로에 살기가 치솟기 시작한다.
팔짱을 끼고는 나와 갈레인을 번갈아 훑던 크루시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희 둘이 꾸준히 교류하며 단련하는 것은 어떻겠느냐?”
나와 갈레인의 약속된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크루시아 니임~!!!”
“크루시아 님!”
믿을 수 없이 완벽하게 맞춰진 호흡이었다.
“절대! 무리입니다!”
“한사코 거절하겠습니다.”
나와 갈레인의 사이에 선 크루시아가 팔짱을 끼고는 그윽한 미소로그저 끄덕거렸다.
“안다, 알아. 알고 있다. 역시 무리겠지. 지금은. 그렇다 하더라도.”
크루시아가 꺼림칙한 후렴구를 덧붙였다.
“너희와 같은 우수한 전사들이 마왕군의 선봉에 서준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마경의 정기적인몬스터 웨이브의 조절만이 아닌…마족들과 악마들의 창대하고도 지고한 대적, 변경의 야만마족들과 야생악마들을 격멸하는 데에 크나큰 전력들이 되어 줄 것이다.”
크루시아가 안다는 듯이지긋한 눈웃음과 미소를 동시에 내걸었다.
“본래 친구는 싸우면서 정드는 법이다.”
“결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예쁘지만 않았다면.
군단장만 아니었다면.
아득한 실력차만 아니었다면.
당장 입은 옷차림이랄 것도 없는 복장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알몸으로 만들고 싶을 발언이었다.
내가 저딴 쓰레기와 친구를?
차라리 자지를 자르고 공방의 몰래 조제한 음양환을 먹어 여자로 성전환을 하고 말지.
그리 되면 리나 씨의 반응이 일품이겠지만.
“저 저열하고도 하찮은 흄과 전우가 되라!? 차라리 헬하운드와 의형제를 맺고 말지요! 아무리 제게 명령권과 전반적인 생사여탈권을 소유하신 군단장이시라도, 너무 지나치시며 과도한 발언이십니다! ”
“녀석은 제가 봐왔던 마의 일족들에서도 단연코 톱이 될 가능성이 드높은 쓰레기입니다. 재활용조차 불가능할 폐기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지요. 치트와 힘도 있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하겠군요.”
나와 녀석은 동시에 열변을 토했다.
그도 그럴 듯이 서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유형의 성정들이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된다라?
모녀를 수백 마리 고블린들에 윤간시키고, 그걸 자랑스럽다는 듯이 떠드는 완벽한 마족의 전형인 녀석과?
나도 결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전생에 그닥 찾지도 않던 신이지만, 만약 내가 녀석과 친구가 되는 날이 온다면.
부디 이 머리에 천벌을 떨어뜨려 죽여 주시기를.
“주둥이 닥쳐라! 시원찮을 쓰레기 흄! 빌어먹을 자식아! 네놈이 벌인 이 사단으로 인해, 대체 내가 왜 이 수모를 겪어야 하나!?”
“너나 아가리 닥쳐! 개새끼야! 먼저 시비를 걸어 놓고, 인맥을 동원한 협박질까지 시전한 주제에 어디서 큰소리야!? 큰소리는!”
나와 갈레인은 각자에 거나한 욕지거리를 퍼부으며온갖 참신한 욕을 동원해 서로를 매도했다.
서로의 사이에 강대한 장벽이 서 있으니 도무지 충돌은 못하고 입만 격렬히 놀리는 형색이다.
그 사이에 위치한 크루시아는 실로 즐기는 듯이 그저 팔짱을 끼고는 지긋이 내리감은 눈으로 쿡쿡댈 뿐이었다.
7흑야마들과 둘러싼 구경꾼들 사이에서도 대체적으로 비슷한 웃음들이 흘러나왔다.
“그대는 알고 있겠지?”
미묘하게 분위기를 일변한크루시아가 진보랏빛 홍채를 요사스럽게 깜빡댔다.
“나의 전사 둘을 상하게 했군.”
“정당방위였을 뿐입니다. 물리적 행사는 제가 먼저 실시했더라도.”
나는 올 것이 왔구나의 생각에 각오를 굳혔다.
잘하면 말로 나누는 이상의 결과가 도출할 수도 있다.
“허나 입장이란 것이 참 곤란해. 나는 결국 군단장이지 않은가? 휘하의 전사가 상한 것을 좌시하는 것은, 그들을 책임지는 정점에 속한 지휘관으로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 자칫하면, 외압에 그저 굴한 것으로 비칠 수도 있지. 약하게 보이면 끝장인 이 마계에서, 기필코 기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마, 맞습니다! 크루시아 님! 녀석은 저를 죽일 뻔하기도 했습니다! 실로 불온한 의도가 가득하며, 어쩌면 지금도 기회를 노려 기습을 가할지 모르지요! 처분하시기를!”
기세가 살아난 갈레인이 입을 털기 시작했다.
이죽대는 미소를 감출 생각도 안 하며 나와 크루시아를 번갈아 훑는다.
“넌 좀 닥치고 있는 편이 어떻겠냐!? 고작 저런 흄 같은 것에 털린 주제에 신나서 입을 털기는!”
7흑야마의 일원인 시라크라는 임프가 나대는 갈레인에 삿대질하며 통렬한 일침을 날렸다.
“일단 저는 결코 죽일 생각은 없이 마투를 걸었을 뿐입니다. 오랜 전통을 통해서.”
“일단 나의 휘하 전사에 상해를 입힌 죄를 물을 수도 있다만. 법적 수단을 통해서.”
크루시아가 간결하고도 완곡한 어조로 답했다.
나는 눈을 감으며 주소를 포함한 인적 사항이 적힌 신분증을 품에서 뒤적였다.
“결국 이리 되는군요. 그렇다면 마회를 통해 연금공방 에우포리아를 고소하시기를. 지금 연락처를 드리겠습니다.자세한 것은 법정에 출두해 진술하겠습니다. 자신과 제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변호하려 노력할 뿐입니다.”
크루시아가 의미심장하게 한쪽 눈썹을 솟구쳤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만?”
깊게 드리워진 다크서클에 치명적인 미모의 여군단장이 팔짱을 낀 손가락들을 토닥였다.
“그거야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수단일 뿐이고. 그대가 오늘 이곳의 현장에서 나의 휘하 마전사와 주먹다짐을 벌인 것과 같이,우리 마족은 법제보다는무력적 수단들이훨씬 가까운 존재들이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 몸이, 네놈에게 마투를 거는 방법도 있다만? 실추된 나의 마전사의 명예 회복을 위하여.”
크루시아가 칠흑의 장벽마저 녹일 듯한 끈덕진 웃음을 머금었다.
“오오오! 크루시아 님! 경애합니다! 저를 위해서나 이렇게에에~!”
“닥쳐! 이 병신아! 한마디 나올 때마다 존나게 나대기는!”
7흑야마의 일원인 웨어울프 카라마저 갈레인에 신랄한 욕질을 내꽂고 말았다.
기타 전사장들의 몇몇 쓴소리들이 녀석에게 빗발쳤으나 자칭 마왕은 아랑곳없었다.
해가 쏘아대는 햇살이라면 그저 좋아, 현란히 몸을 틀어댈 뿐인 해바라기처럼.
“직접 손을 쓰실 것이라면 제게 명하시기를. 군단장님이 나서시기에는 가치가 없어 보이는 상대군요.”
“기다리고 있어 보거라, 네헬리츠.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크루시아 다음의 최강자, 강렬한 악마기가 감지되는 부군단장이 즉각 움직이려 들었다.
까마귀 악마를 잔잔히 제지한 크루시아는 내게 알 수 없을 진한 눈빛만을 내꽂을 뿐이었다.
“음…….”
나는 식은땀 한 줄기가 뒷덜미에 차게 내달리는 것을 느꼈다.
크루시아와 마투를 벌이게 된다면 무슨 수단을 써도 일격사다.
저 뒤의 다크 와이번들에 승룡한 전사장들 모두와 싸우더라도.
모두가 현재의 나보다 한 단계의 마강계가 높은 칠흑급들이니까.
대체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이 난국을 파헤치는 방법.
결코 내색하지 않으며 깊은 고심에 물든 나에게, 크루시아가 녹아들 듯한 진한 미소로 입술을 벌렸다.
“그런 그대에게 한 가지 방안이 있다.”
매혹적인 미모의 여군단장이 달콤히 웃었다.
“마왕군에 입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