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서큐버스-66화 (66/80)

〈 66화 〉 다크 솔저

* * *

“이럴, 수가아……! 나의, 퓨어 다크니스 드래곤이이…….”

갈레인이 바보처럼 멍한 얼굴로 탄식성을 흘렸다.

목이 꺾이도록 잔뜩 뒤젖히고는 그저 상공만을 우러러본다.

조금 전까지 자아내진 성대한 힘의 충돌의 현장을 망연히 지켜본다.

“나 갈레인의… 이 몸의, 비장의 비술이이이…… 막히다니?”

어떻게 보아도 상당한 충격에 휩싸인 반응이었다.

기존에 이 기술을 마주하고는, 살아남았던 생존자들이 없는 모양.

“칫.”

나는 힘을 발산한 오른손을 기준으로 전신에 찌릿하게 내달리는 감각에 혀를 찼다.

외부의 자연력을 체내의 심장에 응축해 형성한 마심, 마나 홀로 마력을 다루는 존재들이 필수적으로 보유하는 구조.

마력회로에 터질 듯한 과열과 방전의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마나를 응집해 마법을 발현하는 회로 내부가 뻑뻑하게 마모라도 된 듯이 윙윙 울린다.

쇠가 세차게 돌아가는 그라인더에 갈리는 듯한 날것의 비명을 내지른다.

한없이 마력적인 성질을 가진 호문쿨루스의 유동성과 고정성의 성질이 급박히 기동하며 안정화에 돌입한다.

심장의 대동맥을 중점으로 한 신체 주요 부위의 혈관들이 실타래처럼 뒤엉키며, 경화 및 괴사 현상이 일어날 조짐마저 엿보인다.

“젠장…….”

마나 플로딩.

마나 역류 현상.

자신의 마력적 그릇의 한도 이상으로 마력을 급박히 과용한 부작용으로, 사용자의 육신의 심장을 중점으로 장기 다방면에 부메랑처럼 필히 찾아드는 반동의 여파.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체내의 마력을 순환해, 거미줄처럼 뒤꼬이고 있는 혈맥을 다스렸다.

이 상태로는 마법의 발동에 심각한 지장이 초래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최악의 사태에는 전신의 혈류가 뒤꼬이는 반동으로 칠공에서 분혈을 내쏟으며 실혈사할 수도 있다.

마술사들에 있어서는 결코 환영받지 못할 현상.

마계에 전생하고는 3년만에 최초로 겪는 사태.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내가 죽었기 때문이다.

“나의, 드래곤이이……!”

녀석은 이런 것 따위는 없다.

태생적으로 마력적 그릇이 방대한 마족이니까.

전력의 발산 한 방으로 당장 응급실에 실려가도 이상하지 않을 나와는 다르게, 최소 4, 5회 이상은 더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나란 깨어났든, 그저 개화하지 못할 가능성으로만 지니든, 누구나 체내에 품는 별의 은혜이자 자연의 원천.

평범한 인간의 마력 그릇의 크기가 50이라면, 통상적인 마족의 마력 그릇의 크기는 2,000 정도.

태생적으로 마력통과 총마력의 규격 자체가 방대한 축복을 타고난 것이다.

소진된 마력의 회복력마저 어떤 종족과 비교해도 남다르다.

“불공평한 새끼들…….”

나는 극심한 불공정성에 노골적인 불만을 머금은 표정으로 전방의 녀석에 흘긋 시선을 돌렸다.

멍하니 시선만을 하늘을 향해 들추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신 역시 상당한 힘이 소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은 힘으로 지금 나를 공격하면 확실히 승기를 잡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에게는 현재 나의 상태보다, 자신의 비술이 막혔다는 사실 자체가 더 충격적으로 와닿아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진짜다.

심리적 위축이 발생하기에 좀처럼 하려 들지 않는 행위지만, 이것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이리 되는군.”

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차원구를 열어 체력 포션, 기력 포션, 마력 포션, 지력 포션을 연달아 들이켰다.

마시는 것도 아닌 고속 흡입에 가까운 속도로 식도에 털어 넣고 들이붓는다.

연금술사는 포션들이 남아돌기에 소위 약빨 플레이가 가능하다.

약 20여 개 정도의 덩그러니 빈 공병들만을 차원구 속에 덩그라니 남기고는, 입가를 소매로 닦으며 뻐근한 목과 어깨의 관절을 연달아 풀었다.

적당한 회복제들의 적절한 공급과 함께, 체내의 마구 날뛰며 휘도는 마력이 슬슬 안정화되어 간다.

나는 옆구리를 짚고는 목을 힘차게 뚜둑여 마지막으로 힘차게 관절을 풀었다.

결국은 우려했던 대로 연장전으로 돌입하고 말았다.

“……응?”

이제야 서서히 정신이 들기 시작한 녀석이 영원처럼 천천히 고개를 낮췄다.

나를 바라보고는 나라라도 빼앗긴 듯한 황망한 표정을 짓는다.

갈레인이 심히 메마른 목소리로 건조히 내뱉었다.

“……네놈. 대체, 무엇하는 놈이더냐?”

“취미로 집사를 하는 사람이다.”

더없이 황당함에 물든 갈레인의 얼굴을 보며 주먹을 맞물려 뼈마디도 풀었다.

여지껏 수십 단위의 마족들을 쓰러트려 왔다.

극소수의 저악마들과 악마들도 있다.

이따금 이해가 일치한 마족들과의 협공을 통해서 막타를 치거나, 심지어 운 좋게 튀어나온 마물들과 마수들의 몬스터 웨이브에 편승하는 방식이었다.

레서 데몬과 데몬으로부터 습득한 경험치는 당연히 비할 바가 아니었다.

레서 데몬은 최소 암영급, 데몬은 최소 적혈급으로 이제 충분히 녀석들과도 자웅을 겨룰 경지에 올라왔다.

그런데 이런 놈을 만나고 말았다.

아마 현재의 녀석과 비슷하다고 추정되나, 카티샤의 구체적인 힘은 보지도 못하고 헤어졌으니 논외고.

내가 여지껏 상대했던 적들에서 단연코 가장 강적이다.

이쯤 되면 이 정도나 되는 녀석의 신상이 급격히 궁금해진다.

“몇 살이나 처먹었냐……?”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녀석이 눈매를 움찔했다.

미약하게 입술을 달싹대다가,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연다.

“…카오스력 4039년. 창흑의 월 야암의 주 분노의 요일 출생…. 금해로… 284세. 흄의 기준으로는, 28세려나? 네놈은…? 단명종…?”

특유의 음흉한 어투로 묻는 갈레인이 노골적인 비소를 내걸었다.

“일단 헬유레이아의 시청에 등록된 시민권과 등본의 호적상으로는 3살. 하지만 지금부터 기대 수명은 최소 3천 년이야. 야생악마의 심장과 융합을 이루었거든. 다시는 내게 단명종 드립을 치지 마라. 딴지도 걸지 마라.”

“무슨─”

붕어처럼 입을 뻐금대는 갈레인에게 거칠게 팔을 휘저어 나머지 소리를 차단했다.

그에 갈레인이 이마에 혈관을 돋치며 눈살도 동시에 찌푸렸다.

얼굴 여기저기의 혈관을 불뚝대면서 이를 질끈 악문다.

잠시 명백히 약이 오른 형형한 기색을 돋보였다.

“하아아.”

이내 지겹다는 표정으로 눈매를 내리감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특유의 중2 포즈로 왼손으로 왼쪽 눈가를 붙잡고 음산하게 큭큭 웃었다.

“…크, 크큭! 재밌군, 재밌어. 역시 인간은 재미있다는 말이야. 이제서야, 갈레인 녹스 스퀴르갈 발테사이온의 진정한 적수를 만난 느낌이다……! 기존에 쓰러트린 것들은, 어찌나 하찮고도 덧없는 업화의 재처럼 휘날렸던 존재들이었는지.”

“적수? 개소리하지 마라. 너 따위의 존재감은 오늘 이후로 말끔히 삭제야. 이 자리에서 나한테 죽을 테니까. 그냥 뇌내에 그런 게 있었을지도 모를 클린한 캐삭이라고. 아주 이따금 떠오르고는 하는 기억의 편린 취급조차 되지 못해.”

스르응, 갈레인이 나긋한 팔짓으로 허리춤의 칼집으로부터 매직 세이버를 발도했다.

섬세하고도 우아한 팔짓으로 도극을 들춰 나를 높고 곧게 겨눈다.

“이쪽도 전적으로 동감인 마음인 것을. 뭐 그리 길게도 토하나? 흄.”

“그러게 말이야. 어쩌면 우리 이렇게 몸과 마음이 잘 통할까? 전생에 부부였나봐.”

나와 갈레인은 동시에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를 머금었다.

녀석은 현재 나와 대등한 단계인 적혈급의 중급전사.

오늘 여기서 놓치면, 분명히 더욱 강해진 실력으로 되돌아온다.

살려 두기에 너무도 위험한 능력의 녀석이다.

그냥 마왕군의 고소를 각오하고, 오늘 여기서 이놈의 목을 따야 한다.

“…차기 마왕을, 잡는다.”

서로가 동시에 대련세와 검세를 취했다.

마계의 붉은 핏빛의 상공에 황량한 바람 소리의 소성이 소슬하게 울린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를 시선의 대치가 계속 이루어지던 순간.

“뒈지십시오, 마왕님.”

“죽어라, 흄.”

동시에 처형 멘트를 날린 나와 갈레인은 서로에 쏘아졌다.

퍼어허어억! 콰드으으윽!

“크으흐으윽!!!”

“끄아하아악!!!”

왼팔이 교차해 정확한 더블 크로스가 이루어졌다.

쿠슈우우욱! 충돌한 나와 갈레인의 주변으로 노도와도 같은 묵직한 충격파가 발산되었다.

나는 견제기이자 주로 쓰는 손이 아닌 마석화가 된 왼손을 페이크로, 갈레인은 검을 꽂으면 고정대 신세가 되는 것을 우려해 건틀렛을 낀 왼손을 내지른 것이다.

“크어허어억……!”

“으그그그긋……!”

서로의 굳게 움켜쥐인 주먹이 각자를 세차게 밀어붙인다.

완전히 터진 구강 안쪽에서 비릿한 피맛이 났다.

나의 오른뺨의 광대뼈가 강판처럼 완전히 함몰되었고, 녀석은 드높은 콧대가 메주처럼 주저앉아 쌍코피가 분수처럼 철철 터져 나왔다.

부러져 뽑힌 이빨들 몇 개가 반대편 치열에서 짓씹히며, 녀석이 벌려진 입새로 깨진 앞니들을 내뱉었다.

극도로 오기가 치솟았다.

차라리 딴 놈들한테는 질 수 있더라도.

이놈한테는 절대 지면 안 된다.

무언가 명백히 다른 발현의 감정.

퍽! 스거헉!

“큭!”

“커헉!”

나는 급격히 들춘 니킥으로 갈레인의 복부에 추가타를 넣고, 갈레인은 재빨리 훑은 도신으로 나의 어깻죽지를 베었다.

다시금 각자의 거리를 벌리고는, 미약한 재생력을 발휘하며 서로에게 쏘아진다.

그렇게 서로의 자존심과 이상을 내건 충돌이 개시되었다.

“으아아아아아!!!”

“크어어어어어!!!”

검붉은 섬광과 검누런 섬광이 섬전이 되어 충돌하고 이별을 반복한다.

저공과 상공을 넘나들며 초고속으로 맞부딪치는 주먹질과 칼질이 서로에게 날아들었다.

나와 갈레인이 충돌하는 주변으로 폭발하는 활화산과도 같은 기세로 방대히 날뛰는 기운이 방출되었다.

딱히 주변 지물들이 여파에 휘말려 배상금 걱정을 할 필요도 없는 아득한 상공에서 호문쿨루스와 데블이 격렬히 충돌했다.

“이야아아아압!!!”

“하아아아아압!!!”

비수와 같은 발길질과 망치와 같은 주먹질을 제각기 다른 시차로 날렸다.

그때마다 타격당한 부위의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파육과 파골의 중첩음이 울렸다.

갈레인은 섬광과도 같이 세이버를 훑어 신체 주요 부위를 마석막으로 둘렀음에도 찰흙을 조각칼로 파내듯 나에게 확실한 검상을 남겼다.

확실한 호각지세의 치열한 난투전이 벌어졌다.

“달라붙지 말아라아아! 역겨운 흄!”

“남자는 주먹이지! 뭐 불만 있어!? 느끼한 마족!”

나와의 초근접전만은 여전히 기피하는 갈레인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여전히 마탄들을 내쏟고 마파를 내쏘았다.

나는 날갯짓으로 끊임없이 현란한 곡예 비행을 시도하는 갈레인에 마석식을 도배해 견제하며 거리를 좁혔다.

방사형과 확산형으로 내뿜어지는 마력파들을 꿰뚫고, 무영창으로 터지는 마술의 난무를 뚫어 날아든다.

서로가 확연한 스타일을 지니고, 각자의 장단점과 전투법을 파악했기에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는다.

“하하핫!”

“크큭!”

어느새 서로는 즐거이 웃으며 몇십의 목숨은 일격에 딸 맹공들을 각자에 격렬히 퍼붓고 있었다.

내가 전투를 하며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던가?

무언가 실로 미묘했다.

선명한 후련함.

“나는…… 결국 살아 있군.”

전생하고는 좀처럼 확립하지 못했던 선명한 정체성과 생명력의 각인.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이것보다 더욱 강력했을 방어력이 아쉽다.

현재 나의 복장은 레더 재킷에 셔츠를 껴입고 레더 팬츠를 입은 사복.

공방의 나의 방의 옷장에 모셔진 아다마스를 착용 상태였다면 우위였을까?

녀석을 보다 호쾌하게 압도할 수 없는 점에 괜스레 아쉬움이 들었다.

현란한 다각도로 급격히 변화하던 공중전의 양상은 서서히 낮춰져 갔다.

그토록 격렬하던 지상전과 공중전의 전환은, 어느새 서로가 최초의 교전을 시작했던 공터의 상공으로 돌아와 있었다.

카가가가각!!!

나와 갈레인은 격렬히 권각과 도극을 주고받으며 서서히 착지했다.

“음!”

“흐읍!”

타아악, 서로가 각기 뒷발을 박차며 뒤로 빠졌다.

목까지 가득 차오른 심호흡을 고르며, 전투세를 유지하며 벌려진 거리에서 대치를 유지한다.

“…….”

지상으로부터 완벽히 넋이 나간 채, 멍한 모습들을 하고 있는 다채로운 마의 일족들의 면전들이 보였다.

누구도 나와 갈레인의 싸움의 여파에 입을 열지 않는다.

현장의 자신들의 힘보다 강한 것을 넘어, 단 하나의 호문쿨루스와 데블이 자아낼 수 있는 무위의 여파에 심혼의 레벨까지 완전히 압도되었기에.

갈레인이 대동한 다크 솔저들이 구경꾼들의 인파에서 그야말로 바위처럼 굳은 부동자세들이 된 모습들이 보였다.

“후우, 하아아……!”

“헉! 흐윽, 제기일……!”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이 쾅쾅대고, 용광로처럼 가열된 육체에서 맹렬한 열기가 뇌를 달군다.

전력을 내건 격전의 여파에 온몸이 뜨겁게 작열하는 불덩이가 된 것만 같았다.

갈레인이 세이버의 칼자루를 쥔 오른손으로 헝클어진 앞머리를 휘저었다.

나도 온통 뒤헝클어진 머릿결을 왼손으로 짜증스럽게 긁적였다.

서로가 동시에 내뱉었다.

“끈질긴 새끼…!”

“지겨운 자식…!”

서로가 각자에 질색했다.

분명 명백히 승부를 내야 하긴 하나, 좀처럼 결착이 나지 않는 상황.

냉정한 적시가 허공에서 무형의 불꽃을 튀기며 맞부딪친다.

돌연 갈레인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는군…. 그렇지 않나? 진드기 녀석….”

“그래서 이 개고생을 하고 있잖냐…. 찰거머리 자식아.”

갈레인이 잔혹하게까지 보이는 흐뭇한 미소를 굳혔다.

돌연 허리를 곧게 펴고는 세이버를 허리춤에 패도한다.

“제안한다. 전력을 내서 끝내지.”

“전력…이라면.”

나는 본능적으로 긴장감을 굳혔다.

“호오, 알고 있는 겐가?”

“왜 모르겠냐. 내가 도살한 마족이 수십 단위라 하지 않았어?”

갈레인이 입꼬리를 귓가에 걸리도록 찢었다.

“…네놈도, 전력을 꺼내는 편이 좋아. 실력도 못 꺼내고, 참살당하기 전에.”

“흔한 패하는 악당의 대사를 정말 트레이드 마크처럼 내뱉는구나. 못 바꾸겠네.”

역시 녀석도 알고 있었다.

나의 진정한 전력은 보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창석술 파워 스톤의 힘을 육신에 완벽하게 개방한 형태.

“……좋다. 그럼 가도록 하지. 목도하거라.”

적발과 적안의 마족이 돌연 흉폭하게 양팔을 떨쳤다.

“금일 네놈이 체험할, 생애 최후의 공포르으을!!!!!!”

쿠화아아악!!! 쿠드드드드!!!

일순 어마어마한 흑황색의 맹포한 기류가 갈레인으로부터 발산되어 나왔다.

대기를 세차게 찢어발길 듯한 일진 광풍이 자아내지며, 주변의 지물에 선명한 검흔마저 새길 칼바람마저 군데군데 방출됐다.

“뭐, 뭐야!? 저 녀석!? 흉화까지 하려고!?”

“힉!?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낸다구욧!? 진심!?”

“여자들은 꺼리는 걸 남자들은 잘만 한다니깐~!”

구경꾼 마의 일족들로부터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졌다.

“흉화…….”

갈레인과 거리를 띄워 대치하는 나는 나지막한 탄성을 흘렸다.

“크아하아앗!!!!!!”

양팔을 떨치고 격렬히 몸을 떨며 흉화에 돌입한 갈레인의 신형에서 돌연 거대한 암황색 빛줄기가 치솟았다.

섬광이 도달한 마계의 핏빛 상공에 미약한 천공마저 자아내며, 그 주변부로 시커먼 검은 구름들이 모여 휘감기는 운무를 생성한다.

나선형의 맹포한 기운이 휘몰아치며, 검누런색의 스파크와 전류의 줄기들이 사납게 파직댄다.

“크어허어엇!!!!!! 캬하아아아아아아!!!!!!”

하늘을 꿰뚫듯 치솟는 빛기둥 속에서 시커멓게 물든 갈레인의 신형이 급격히 변화되어 갔다.

간드러진 특유의 미성은끔찍한 불협화음과 저음 일변도의 형태로 변조되어 찢겨져 나온다.

흉화.

마의 일족의 본신으로 돌아가, 진정한 힘이 개방되는 형태.

본질을 드러내는 궁극의 비술이자, 궁지에 몰려서 꺼내는 최후의 수단.

꽤나 무섭게 생기거나, 정말 흉악하고 끔찍한 박쥐인간의 형태로 회귀한다.

기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어마어마하게 폭증된 전력을 발휘하게 된다.

자신들을 창조한 마신의 형상에 근접함으로, 마족이 보유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는 섭리다.

“결국은 이리 되나…….”

마족 및 마족과 동렬로 치부되는 마의 일족들은 이렇게 자신의 본연의 형태로 회귀하는 능력을 지닌다.

리나 씨도. 파릴케도. 모두가 그녀들의 진짜 본모습인 흉화형이 있다.

혈통적으로 다른 존재들인 레서 데몬 트노시아와 데몬 카티샤는 악마형을 지닌다.

마족은 흉화, 악마는 악마화.

천족은 미화, 천사는 천사화, 용족은 용화, 거인족은 거인화를 본신으로 지니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매우 재미있게도, 남자 마족들은 자신의 흉화 형태를 자랑스러워하지만, 여자 마족들은 자신의 흉화 형태를 수치스러워하는 성향이 있다.

미적 요소와 관련된 기호겠지.

그야 흉화한 모습은 통상적이라면 정말 깨니까.

나도 리나 씨에게 몽마의 흉화형을 보여 달라고 몇 번이나 간청했으나 결국은 거절당했다.

모습을 보는 순간 나의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식을지도 모른다며.

그녀가 설령 무슨 모습이라도, 결코 그럴 리가 없는 것을 알면서.

“참 마족들이란…….”

얼굴로 먹고사는 서큐버스들에게는 그야말로 생명과도 같은 요소.

몽마들은 자신들의 진짜 모습들을 보이느니, 기꺼이 그대로 죽는 것을 선택할 정도다.

비슷하게 미적 의식이 드높으면서도, 궁지에 몰리면 기꺼이 흉화하는 뱀파이어들과는 확연히 정반대의 성향.

왜 갑자기 공방의 리나 씨가 생각나는 걸까.

“설마 오늘 내가 여기서 최후를 맞기에……?”

나는 지상으로부터 치솟는 빛기둥에 광포히 휘몰아치는 마계의 붉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쓰게 탄식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엎어진 물이다.

나도 전력을 꺼낼 수밖에 없다.

어쩌면 꺼낸 말부터 허세였다.

녀석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아아아아악!!!!!! 그거거거거걱!!!!!!”

소름끼치는 흉성을 내지르는 갈레인의 주변으로 나선형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치솟으며 중앙의 형체에 수렴했다.

이제 거의 흉화의 돌입이 완료되었다.

“쯧…….”

나는 혀를 차고 말았다.

그냥 참고 말걸 그랬나. 보통 상대가 아니다.

차리라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강해지고 붙었더라도.

결국 들개에게 한계가 있다.

승률과 확률은 반반.

여기서 내가 죽더라도, 리나 씨를 수호령이 되어 지킬 수 있을까.

이틀 뒤에 공방에 동거하기 위해 이사할 파릴케.

그리고 길드의 접수원 규리스와 모험가 아비카.

그녀들은 나를 어떤 형태로 기억할까.

어째서 돌연 그녀들이 떠오를까.

나는 파워 스톤을 전개해 전신을 서서히 마석화로 뒤덮어 나갔다.

이제 정말 누가 이길지 모를 미지수의 싸움이다.

앞을 볼 수 없을 영역.

“해보자. 누가 이기는지.”

“캬하아아아악!!!!!!”

나는 실로 끔찍한 박쥐인간의 형상이 된 갈레인에게 담담히 내뱉었다.

쩌렁한 흉성을 내뱉는, 기존의 존재의 옷가지만을 걸쳤을 뿐인 괴물과 충돌하려는 때였다.

[거기까지.]

돌연 끈적하고도 몽롱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치솟았다.

초기의 전장이었던 카페 측면의 벽면에 모서리가 진 그늘에서 발생하는 소리였다.

쮸르르르륵…….

질척하고도 끈적한 물소리가 공터의 허공에 울려 퍼진다.

갑자기 허공에 동시다발적으로 기묘한 검은 덩어리들이 형체들을 취해 나간다.

마경에나 있을 법한 온갖 마물들과 마수들의 머리들만이 시커먼 그림자들로 이루어져 둥둥 떠올랐다.

“크르르르륵…!”

“키시히익!”

“캬하악!”

나의 곁에 형상화되어 입을 쩍 벌린 메갈로 와그의 그림자로 이루어진 머리를 보았다.

“뭐야……?”

갓 지면을 박차기 직전이던 갈레인의 곁에도, 어비스 샤크의 그림자로 이루어진 머리가 쩍 젖혀진 상어이빨들을 목에 들이대고 있었다.

“큭……? 마, 말도 안 되는!?”

기세가 완전히 일변한 갈레인이 다급히 외쳤다.

폭발할 듯이 끓어오르던 살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뭐, 뭐야아…? 이것들!?”

“자, 잠깐!? 설마!?”

“제8군단의……!”

구경꾼들도 허공에 제각기 다른 고저로 떠올라, 정체불명의 검은 그림자들로 이루어진 마물들과 마수들의 머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도중 현상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끝내라 했을 텐데. 아직도 살기를 거두지 않는구나.]

카페의 공터의 담벼락 하단에 진 그늘에서 다시금 울리는 낭랑한 미성이 전투의 중단을 알렸다.

쮸르으으윽.

그늘로부터 먹물의 덩어리와 같은 형체가 끈적히 치솟는다.

수면 밑의 의식에 잠기는 듯하던 목소리가 돌연 형태를 취한다.

바닥으로부터 이어져 치솟은 그림자의 먹물에서 훤칠한 사지가 치솟는다.

흉부에는 평평함에 가까운 융기가 생성되고, 낭창한 정강이가 쭉 뻗어 다리가 된다.

이윽고, 선명한 여성의 형태를 취했다.

그 모습을 목도한 구경꾼들로부터 어마어마한 호들갑과 비명이 자아내졌다.

“크, 크루시아 님! 크루시아 님이시다아아!!!”

“제8군단 칠흑의 절규의 군단장! 순흑의 옥성의 이명! 크루시아 님 말이야!?”

“말도 안 돼! 군단장이, 도대체 왜 여기에!?”

이제서야, 주변의 반응들을 듣고 알 수 있었다.

“크루시아…….”

다양한 목소리로, 어둠을 구현화해 특정한 형태를 취하는 능력.

어비스 콜링.

마계에서 단 하나의 유구한 존재만이 갖춘 마신의 가호.

크루시아 녹스 아테르 리스타엔 메르케니샤.

아크데블의 증표인 아테르를 마족성과 중간 이름의 사이에 지닌 존재.

“크루시아, 니임……! 허, 어어어억!”

끔찍한 형상의 박쥐인간이 된 갈레인으로부터 어울리지 않는 신음이 기어나왔다.

자신이 속한 군단의 군단장을 맞닥뜨린 자칭 마왕의 경악과 고뇌의 흔적이 너무도 역력하다.

철커덕, 여성이 낭창한 정강이와 허벅지 중간까지를 덮는 사바톤과 그리브에 감싸인 철화를 내디뎠다.

“내가 직접 나타나 말해야, 상황을 정리하느냐? 갈레인?”

허스키하고도 딱딱 끊어지는 카랑한 음색.

좌우 옆머리로는 나사와 같이 선명한 스크루 모양의 나사선이 새겨진 황금빛 뿔이 치솟았다.

보는 이의 내면을 자극해, 혼마저 빨아들일 듯한 진한 보랏빛의 눈동자가 깊고도 시니컬한 감정으로 깜빡인다.

그닥 크지 않은 가냘픈 체형의 좌우에는 엎어진 식판처럼 둥그렇고, 어린아이 둘만큼이나 거대한 견갑들을 양어깨에 장착해 몸을 더욱 위축되어 보이게 만든다.

등에는 좌우의 견갑으로부터 착용한 제8군단의 문양이 박힌 칠흑처럼 시커먼 망토가 커다랗게 늘어져 나부낀다.

황동만큼이나 진한 황갈색의 곱슬곱슬한 중단발머리와, 천과 금속체 테두리가 세트를 이룬 듯한 브라와 T팬티로 드높은 노출도의 옷차림.

늘어진 머릿결로 한쪽 눈매를 슬쩍 가린 연녹빛 피부의 마족 여성이 근엄히 발언했다.

“이 이상의 마투는, 내가 철저히 금하노라.”

제8군단의 군단장이 등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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