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다크 솔저
* * *
“내, 내가… 인간 따위에게, 상처를……?”
갈레인의 메마른 목소리가 건조히 흘러나왔다.
“나는 더 이상 인간도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호문쿨루스라고. 직업상 약효와 약성과 부작용에 관해 반복해서 설명하는 거 잘하는데, 한 100회 말해 줘?”
그렇게 노골적인 도발을 흘리면서도 나는 곁눈질로 녀석의 상처를 살폈다.
활짝 열어젖힌 롱코트 속의 맨몸의 상체에 사선으로 새겨진 검상.
“역시 딱딱하네.”
나의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통상적인 검격은 옅은 생채기를 내는 수준에 그쳤다.
마족은 평범한 인간이 휘두르는 날붙이 따위는 맨몸으로 부러트릴 정도의 내구도를 지닌다.
평범한 인간들의 군대가 쏟아붓는 화살비의 속이라면, 한복판을 산보하듯 유유히 거닐 수 있는 극강의 내구도를 지닌 천족과 완벽히 대등한 수준이자 완전한 대척점을 이루는 종족.
연금술을 하지 않는 때는 공방 앞에 트인 공터와, 주변의 숲에서 홀로 독학의 검술을 피나게 단련했다.
그렇게나 수련하고는, 현재 적혈급의 반열에 오른 내가 분명히 선명한 정타를 넣었는데도, 피부를 찢고 옅게 갈라진 검흔을 내는 게 고작이었다.
마족은 육체적 및 마력적 소양이 방대한 그릇이며, 천족, 용족, 거인족을 위시로 한 나머지 4권족들도 서로가 전력적으로 대등하다.
지금 싸우는 게 마족이 아니라 천족, 용족, 거인족의 정병이었어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을 거란 말.
같은 마족들끼리도 서로 싸울 때는, 이런 태생적으로도 굳건한 방어력을 뚫기 위해 기력과 마력을 두르고 치는 게 전형이니 당연한 결과.
확연한 실력의 차이가 있지 않은 이상, 비슷한 수준이라면 평범한 정타로는 결코 못 쓰러뜨리는 것들이다.
“……큿!”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의 갈레인이 손톱들이 비죽하게 돋아난 오른손으로 스스로의 가슴팍을 훑었다.
그러고는 손을 들춰 흔적을 확인한다.
마혈. 피부가 찢어져 검붉게 흐르는 자신의 마족의 피였다.
“이, 이이이……!”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자신의 혈흔을 내려보는 갈레인이 심하게 부들댔다.
“어이! 너 지금 저 녀석한테 정타를 허용한 거냐!?”
“뭐어!? 설마!? 결국 조잡한 호문쿨루스 따위한테!?
“인형 따위한테 당하다니! 스스로 목을 그어 자살해라!”
관전하던 마의 일족들의 질시와 야유가 쏟아졌다.
“니 관객들한테 판돈 다 돌려줘야겠다?”
나도 거기에 자연스럽게 조롱을 첨가했다.
“그, 어어억……!”
격앙에 휩싸인 갈레인이 끄트머리가 불꽃처럼 치솟은 듯한 눈썹을 더욱 솟구쳤다.
“선수가 경기를 개판으로 진행했으면, 자기 파이트머니로 관객에 배상해야지!!!”
연달아 도발을 날린 나는 오른손에 파지한 마법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이제부터 마력격을 넣는다. 다음엔 그런 미약한 스크래치 수준이 아니라, 완벽한 커팅으로 비화될 거야. 각오 단단히 해.”
갈레인의 눈매에 음영이 드리워졌다.
“웃기지, 마라아아아……!”
“뭐? 패배감에 물들어 너무 작게 속삭여 못 알아듣겠어.”
잔잔하게 자라나 늘어진 머릿결들 사이의 눈을 치켜떴다.
격앙한 마족의 허옇던 눈자위가 먹물을 탄 듯이 시커멓게 물든다.
세로로 갈라진 핏빛 동공은 형광으로 형형하게 발광하기까지 시작한다.
“…나, 갈레인 녹스 스퀴르갈 발테사이온이, 고작 인간 따위에 패배르으을!?”
“왜? 도무지 현실이 용납되지 않고 수긍되지 않아 미칠 것만 같아?”
짜자아아악, 본격적으로 격앙하기 시작한 갈레인이 발한 마력에 흉부의 창상이 순식간에 봉합되듯이 아물렸다.
“그딴 것, 용납할까 보냐아아아아아!!!!!!”
목이 터질 정도의 쩌렁한 함성을 갈레인이 내질렀다.
격렬히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흑황색 마력풍과 함께 상체를 적시며 흐르던 마혈도 말끔히 날아갔다.
전신에 마력을 순환해 발휘하는 재생을 통해, 체내로 침투된 나의 마력성 매질의 추방도 완료되었다.
주변의 갈레인을 놀려대던 모든 반응들이 뚝 그쳤다.
“네놈…!”
격앙 마족이 흉폭하게 짐승적 송곳니들을 악물었다.
“…곱게 죽지는, 못할 줄 알아라아아아!!!!!!”
부우훅! 옷감을 찢는 소리와 함께 날개 발톱들이 솟은 박쥐 날개들이 등판의 롱코트를 찢으며 치솟았다.
좌우로 사람 둘만큼이나 커다란 마익 한 쌍을 펄럭이는 갈레인이 공중에 발을 띄웠다.
허공을 박찬 갈레인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스피드로 신형을 급가속했다.
“카아하아앗!!!”
암황색 돌풍이 세찬 칼바람처럼 전방으로 휘몰아친다.
섬전과도 같이 날아든 주홍빛 신형과 붉은 적발을 인식한 순간.
나의 왼쪽 어깻죽지에는 백은의 은파처럼 시린 도신이 아득한 후방까지 투과해 있었다.
“하, 하핫……!”
갈레인이 이죽대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노골적인 비소를 내걸었다.
녀석의 마력과 비행력이 합산된 순간적 가속력.
방심 따위는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놓칠 스피드.
녀석이 분기로 컨트롤이 엇나간 것이 아닌, 즉각 심장을 겨냥해 내꽂았으면 죽었다.
“킥!”
박쥐 날개를 퍼덕대는 갈레인이 오른손에 쥔 도신을 이리저리 틀어댔다.
나는 마법검을 쥔 오른손과 왼손을 볼에 맞붙여 뭉크의 절규를 연출했다.
“끄어하아앙~! 세상에 이럴 수가아앙~!”
“으하핫!!! 꼴좋다!!! 흄! 이것이 네놈의 한계─”
“…라고 말할 줄 알았냐! 페이크다! 이 병신아!”
나는 마석화된 이마를 냅다 들이박았다.
뻐어헉!
“끄어허어억!? 칵!”
“리얼 스톤 헤드벗의 맛이 어떠냐! 미친 새끼야!”
터진 이마에서 끈적한 핏줄기를 솟구치며 질끈 인상을 찌푸린 갈레인이 허수아비처럼 떨어져 나갔다.
“켁……!”
“아프면 두 번 다시 이딴 식으로 접근하지 말도록! 부딪쳐봤자 니가 손해인 거 같으니까!”
일갈한 나는 마석화된 이마를 풀며 왼팔을 휘휘 돌렸다.
마속성의 상위 재생술 리제너레이션을 영창하자, 어깨에 선명하게 뚫렸던 바람구멍이 즉각 봉합된다.
그닥 아프지 않다.
호문쿨루스는 신진대사의 조절이 자유로운 특성.
원한다면 특정 부위의 통감과 같은 감각을 차단에 가깝게 떨어트릴 수 있다.
“조금 쓰리네.”
역시 재생술로 봉합하기는 했어도 관통상이었던 부위가 다소 아릿하다.
물론 남용은 금물이다.
머리 아래가 물에 빠져 불은 나무토막과 같은 감각이 되어 누가 다리를 썰어내고 있어도 모르기 십상이기에, 가급적이면 전신의 감각을 살리고 전투하는 것이 좋다.
사용할 때는 오직 명백히 공격이 임박하는 부위나, 슈퍼아머와 같은 기능으로 일단 살을 주고 확실히 상대의 뼈를 깎을 때만.
시마법 리와인드를 영창해 밖의 재킷과 안의 셔츠에 발생한 국소 부위의 천공을 봉합, 피에 옷이 젖은 느낌 역시 찜찜하기에 브리즈를 영창해 새것처럼 정화했다.
언제나 정돈과 청결의 자태.
다시 말끔한 사복 집사의 태세가 되었다.
허공에 양발을 띄워 박쥐 날개를 펄럭이는 갈레인이 이를 바득댔다.
“빌어…먹을! 끝없이, 기묘한 수작질으을……!”
나는 내심 놀란 것을 철저히 숨기며 추가적인 도발을 걸었다.
“계속 어떤 방식으로 깝칠래?”
“닥, 쳐엇……!”
“진정해라, 마족. 현재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군.”
“닥, 치라고오오옷!!! 키햐아아아악!!!”
악을 쓰는 갈레인이 매직 세이버를 곧게 들춰 내게 지향했다.
돌연 오른손을 기점으로 치솟은 나선형의 시커먼 불길에 도신이 활활 타오른다.
다크 오러.
어둠을 다루는 능력의 마족들이 드물지 않게 가지는 특술.
마왕군은 도합 20개 군단으로 전사들의 특성들에 따라 분류 및 배속.
미드나이트 걸즈와 마찬가지로, 제8군단 칠흑의 절규 소속인 녀석은 암속성과 마속성에 적성을 갖추고 있다.
선풍의 마염, 흑검귀라는 이명이 아마 능력의 투영.
마족은 이명을 아는 것만으로 능력과 병행할 주특기가 무엇인지 추측할 수 있다.
자신들은 쉽게 인지하지 못할, 외부에서는 참 알기 쉬운 특성이었다.
“그어하아아아악!!!!!!”
쩌렁한 포효를 날리며 지반을 박찬 갈레인이 드높게 비상했다.
요란하게 튀기는 깨진 포석들 속에 갈레인의 신형이 급격히 작아져 간다.
내가 날지 못한다고 판단해 공중에서 맹공을 퍼부으려는 모양.
나는 기대를 부수기 위해 함께 지반을 박차 비상했다.
풍마법 플라이트를 발동해 마족을 뒤쫓았다.
다시 열기를 되찾은 마의 일족들의 구경꾼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환호와 환성이 터져 나왔다.
“그래! 싸워라! 날아올라라!”
“마족하면 역시 공중전이지!”
“너도 열심히 해라! 흄인지 뭔지 모를 것!”
“나는 너한테 걸었다아아~!”
본격적인 전투의 돌입과 함께 오른손에 쥐인 마법검을 차원구에 재수납한다.
“으극!”
고개를 돌린 갈레인이 마석화된 주먹을 맞물려 우득대는 나의 접근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흐랴아압!”
일순간 허공을 검게 휘가르는 시커먼 섬광이 쇄도했다.
등을 돌아 뒤로 날아가는 갈레인이 칼을 흩뿌려 흑광을 휘날렸다.
“타아아아압!”
갈레인의 마구잡이로 남발하는 검기에 상공이 쉭쉭 덧칠됐다.
사선형으로 빗겨지거나 내찌르는 직선형의 관통격이 마구 덮쳐들었다.
나는 전반신에 부분적으로 마석화를 둘러 가드를 올린 복서처럼 돌격했다.
정타나 치명상을 노려 날아드는 것은 적극적으로 몸을 비틀어 흘려내며, 피할 수 없는 것만 마석화된 부위로 최대한 빗겨내 스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전후좌우와 종횡무진으로 아득하고도 광대한 범위로 흩뿌려지는 검막의 한복판에 뛰어든다.
마침내 거리의 도달을 마친 나는 갈레인의 면전에 정권을 내질렀다.
“큭!”
까아앙! 다급히 칼을 내세운 갈레인이 나의 마석화된 주먹을 받아냈다.
세찬 날갯짓으로 마력의 칼바람을 일으키며, 나의 몸을 양발로 박차 보다 빠르게 후방으로 빠진다.
갈레인의 내뻗고 있는 왼손에 검누런 마력의 기운이 집결하고 있었다.
“하아아아압!!!”
투콰콰콰쾅! 갈레인의 손바닥으로부터 어마어마한 탄막의 마탄들이 방대한 범위로 흩뿌려져 나왔다.
암황색과 흑황색의 하나하나가 수류탄과도 같은 위력의 마력성 탄환들이 허공의 전방위를 아득하게 도배한다.
주먹질과 발길질로 크게 날아드는 무더기들은 통째로 빗겨내고, 애매하다 싶은 것들은 마탄을 유지하는 종심을 흩어 없앤다.
어느새 주변으로는 3위계 이하의 화, 수, 전, 풍, 지의 5대 주속성들이 무영창으로 영창된 마법구들이 울렁대며 크기들을 키워 나간다.
앞에서는 쏟아지는 방대한 마탄들에 노출되고, 전방위는 오색으로 찬란한 마법의 구체들에 둘러싸인 형국이 되었다.
여전히 왼손으로 마탄들을 내쏟는 갈레인이 오른손의 칼을 크게 휘둘렀다.
“이 나의 레인지 컨트롤에 산산조각나는 편이 좋다!”
녀석이 보유한 두 번째 특술.
그와 함께 나의 주변을 둘러싼 마법구들이 순식간에 몸집을 불렸다.
시전자의 특술의 명령에 발해 울렁대는 다속성 구체들의 범위들이 확장된다.
통상적인 것보다 반경을 훨씬 늘린 마법 구체들이 일제히 인식을 울리며 폭발했다.
콰콰콰콰쾅!!!
쩌렁한 폭성들이 사위를 휩싼 속에 나는 전방위로부터 밀려든 속성들의 대폭발에 휩싸였다.
오색 섬광이 현란한 파노라마와도 같이 빗발치는 속에, 전신에 순간적인 마석화를 실시했던 나는 후반신으로 흑연을 일렁이며 치솟았다.
빛무리처럼 찬란한 마석편들이 탈피하듯 벗겨지는 육신으로 상공의 마족에 쇄도한다.
“그걸 버텼다고!”
갈레인이 격앙에 이를 악물며 다시금 왼손을 내뻗었다.
마탄들을 내쏟던 왼쪽 손바닥에 보다 다르게 집중되고 압축된 기운의 마력이 결집한다.
일렁대는 마력의 기운이 집결을 마치는 순간, 거대한 범위의 확산이 터졌다.
파아아아앗!
갈레인의 왼손으로부터 드넓은 방사형으로 확산되는 흑황색 마력파가 발사되었다.
펑펑대는 폭음과 함께 뒤따라 발사되는 마탄들이 후속타의 연격으로 흩뿌려졌다.
나는 순간적인 전력을 발휘해 급가속했다.
양팔을 몸에 착 맞붙이고는 현란히 몸을 틀어 곡예 비행을 실시한다.
드넓은 연병장을 폭격이라도 당한 듯이 벌집으로 만들고, 수십 세대에 인구 수백의 마을 한복판에 도로를 내고도 남을 파괴력들의 한복판을 돌파한다.
나의 급작스럽게 발휘된 스피드에 적응을 못한 갈레인의 눈이 멍히 뜨였다.
“뭣……?”
포화가 빗발치는 전장의 사신처럼 비상한 나는 마석화해 활짝 펼친 수도를 갈레인의 복부에 그대로 내꽂았다.
퍼어헉!
“꾸어허어억!!!”
충혈된 눈을 부릅뜬 갈레인의 쩍 벌려진 입에서 토사혈의 줄기가 흩뿌려졌다.
여전히 딱딱하다.
수도를 내세워서는 명치부터 척추까지 꿰뚫을 생각이었는데, 강철보다도 단단한 내구도를 지닌 복부에 손가락들이 막혀 자연스럽게 정권을 날린 형색이 되었다.
분명히 마석화에 마력도 휘감은 타격이 이 정도다.
그렇다고 위협도가 드높은 반짝이는 날붙이를 꺼내 들었으면 필사적으로라도 회피했을 것이다.
마석식을 걸려 해도, 나의 능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끊임없이 마력을 발휘해 매질을 몰아내 버린다.
마경에서 단독으로 토벌한 헬 오우거보다 훨씬 버겁다.
마족은 진정한 비장의 수단을 남겨 두고 있는 걸 감안해도.
나는 왼손으로는 매직 세이버의 칼자루를 죈 갈레인의 오른손을 붙들고, 오른손으로는 남은 왼손의 손목을 비틀어 녀석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했다.
“컥……! 큭!?”
“자아, 별나라에서 마신의 궁전까지! 멀리 날아올라 봐라! 박쥐 새끼야!”
“젠, 자아아아앙!!!”
갈레인의 롱코트 뒤쪽 옷자락에서 일렁임이 자아내지고는 살랑대는 형체가 치솟았다.
등허리에서 꼬리마저 꺼내 붙잡은 나의 오른쪽 손목을 채찍처럼 후려쳤다.
나의 왼손도 후리는 것을 손을 치워 피하자, 다시금 양발로 나의 몸을 발판 삼아 박차 날개를 펄럭이고 꼬리를 흔들대며 다급히 날아올랐다.
* * *